통영 전혁림미술관
통영이 낳은 화가의 창작 공간
바다 색채를 모티프로 삼은 ‘한국적 추상화’의 시조
글·사진 남상학
내가 처음 통영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냥 바다를 끼고 있는 남쪽 항구가 좋아서였다. 호수 같은 통영 앞바다에 조각배처럼 떠 있는 미륵도의 풍광과 충무교, 통영대교 밑으로 통영운하의 물길 따라 파도를 가르며 지나가는 배들, 펄펄 뛰는 생선과 어판장 생선장수의 구수한 입담이 좋았다. 그리고 통영이 임진왜란 때 세계 해전사상 빛나는 이충무공의 한산대첩의 현장이라는 것도 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 뒤 통영에 더욱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많은 예술가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였다. 통영은 음악가 윤이상, 시인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극작가 유치진, 소설가 박경리 등 많은 예술인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 시대 예술의 각 부분에서 중심에 섰던 수많은 예술인들이다. 그래서 통영에 오면 그분들의 생가를 비롯하여 그분의 이름을 딴 거리와 시비, 기념관들을 볼 수 있다.
그만큼 통영은 메마른 사람도 감수성이 용솟음칠 만큼 서정적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 바다의 빼어난 풍경과 탁월한 서정미가 세계적인 음악가와 시인, 소설가, 극작가를 낳았으리라. 몇 차례에 걸친 통영 방문을 통하여 아직 방문하지 못한 전혁림미술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강구안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통영교를 지나 전혁림미술관 이정표를 따라 1㎞나 갔을까. 만선의 깃발을 달고 통통거리며 포구로 돌아오는 어선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로 착각될 정도로 아름답고 정겨웠다.
생각보다 쉽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통영시 봉평동 1892 270여 평 대지에 3층 건물로 자리 잡은 ‘전혁림 미술관’. 전혁림미술관은 미륵도 용화사 가는 주택가에 숨어 있다. 전혁림(全爀林·93)화백이 1975년부터 30년 가까이 그림을 그리며 생활하던 집을 헐고, 지난 2003년 5월 11일 새로운 창작의 공간으로 거듭 태어났다.
1∼2층은 통영을 상징하는 ‘등대(燈臺)'를, 3층은 한국적 전통인 ‘탑(塔)’을 형상화해 설계했다고 한다. 건물의 외벽은 전혁림 화백의 그림과 아들 전영근의 작품 다섯 점씩을 각각 선택하여 20×20Cm의 세라믹타일로 제작, 7,500여개로 조합하여 빈틈없이 이어 붙였다.
통영의 이미지와 화백의 예술적 이미지를 표현한 것으로, 3층 전면의 벽은 화백의 1992년 작품 ‘창(Window)’을 타일 조합으로 재구성한 가로10m×세로3m의 대형 벽화로 구성했다. 하얀 바탕에 선명한 색깔로 알록달록 채색된 3층 건물 외관이 독특하다.
전시실은 80평 규모. 1층 전시실에 들어서니 화가가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 작가가 작업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통영이 낳은 전혁림은 경남 충무에서 출생하여 통영보통학교(1929)와 통영 수산전문학교(1933)를 졸업하였다. 독특한 색감으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었던 서양화의 대가로 불린다. ‘색채의 마술사’ 또는 ‘바다의 화가’로 불리는 전혁림 화백은 한국적 색면 추상의 선구자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조형의식을 토대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전 화백은 1975년부터 고향에 은둔하면서 통영 앞바다의 색채를 주요 모티프로 삼아 독특한 화면 구성과 색채 사용으로 화단에선 그를 `한국적 추상화의 시조'로 평가하고 있다. ‘통영의 피카소', ‘색채의 마술사', `바다의 화가'로 불리며 한국 화단에 뚜렷한 족적을 새기고 있는 전 화백은 망백(望百)에도 지칠 줄 모르고 지금도 넘치는 열정으로 캔버스에 채색을 한다.
라파엘 소토, 대니 카라반, 다카미치 이토, 이우환, 박종배 등 국내외 조각가 작품 15점이 언덕바지를 따라 배치돼 있다. 그리고 곳곳에 강렬한 빛과 순수한 색채로 이루어진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화가 전혁림은 고향인 통영 앞바다 특유의 색채와 빛깔을 작품에 그대로 담았다는 찬사를 받는다.
색채에 예민한 눈을 바다로부터 선물 받은 화가, ‘코발트빛의 화가’로도 불리는 전혁림(89)은 고향인 통영 앞바다 출렁대는 물결에 반사되는 강렬한 빛과 순수한 색채를 화폭에 그대로 옮겨놨다는 찬사를 듣는다. 통영의 밝고 푸른 바다는 전혁림에게 영감을 준 것이 분명하다.
2층 휴게실에서는 통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주문이 들어가면 바로 커피원두를 갈아서 에스프레소 커피와 일반 커피를 끓여준다. 또 1층 한쪽에는 아트상품 코너가 있다. 이곳에선 전 화백의 작품을 도안으로 쓴 멋진 문화상품(머그컵과 넥타이 등)을 판매한다. 그 수입으로 관(官)으로부터 지원받지 않으면서도 미술관을 안정적인 기반 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 현대미술 거장’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작업·전시공간이 청적백(靑赤白)의 아름다운 조화로 세워지면서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입장료는 없다. 문의 : (055)643-8825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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