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공원
6·25의 상처, 거제도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전쟁 역사의 산교육장 및 세계적인 관광명소
글·사진 남상학
* 거제 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 들머리 고현삼거리에 세운 포로수용소 유적공원기념탑
수 년 전 아우슈비츠수용소에 들렀을 때,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거제도로 행했다. 거제도는 한국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남해의 아름다운 경관을 둘러보면서 역사와 전쟁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좋은 곳이었다 . 거제대교를 지나 거제도로 들어가 10분쯤 달리면 거제시청이 있는 고현에 이르고, 여기서 포로수용소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을 두 번하여 시청을 지나면 길 오른쪽으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당도하게 된다.
* 포로수용소유적공원 정문(안쪽에서 찍은 것)과 안내도
◆ 포로수용소는 또 하나의 ‘전장(戰場)’
* 국기 게양대에는 대한민국을 비롯하여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터키, 네덜란드,룩셈부르크, 콜롬비아, 벨기에, 에티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타이 등 참전 16개국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
* 입구에 조성된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기념비*
* 북한의 6.25 남침에 맞서 국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용감히 싸웠다.
거제포로수용소는 한민족이 분단된 채 서로 피 흘리며 싸운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최초의 북한군 포로는 전쟁 발발 1주일 후인 1950년 7월 2일 동해안에서 영·미 해군이 북한군 함정을 격침시키고 생포한 5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UN군이 총 반격에 나선 1950년 9월 하순~10월 무렵 포로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UN군은 1951년 2월부터 거제도 신현읍·연초면·남부면 360만평에 수용소를 설치했다. 당시 인구 10만 명이던 거제도(巨濟島)는 '크게 사람들을 구제하는 섬'이란 이름처럼 15만 명이나 되는 피란민과 포로 17만 명을 받아들여 북적거렸다.
하지만 이곳 역시 ‘전장(戰場)’이었다. ‘해방동맹’이라는 비밀조직을 결성한 친공(親共) 포로들과 ‘대한반공청년단’을 조직한 반공포로 사이에 유혈 충돌이 잦았다. 1951년 12월 일부 포로들이 친공(親共)에서 반공(反共)으로의 전향을 맹세하자 공산포로들이 반공포로 105명을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또 이듬해 3월에는 국군이 공산포로들에게 총격을 가해 공산포로 12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포로수용소에는 화장실 시설이 재현되어 있는데, 둥근 드럼통 위에 구멍이 뚫린 나무판자가 있어 이 위에 올라 그대로 용변을 보았다고 한다. 용변을 담은 드럼통은 거제 앞바다에 가져다 버렸는데, 이 드럼통을 버릴 때면 드럼통 안에서 토막 난 사체가 발견되곤 했다고 하니 그 갈등이 얼마나 심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또 1952년 5월에는 수용소 사령관 돗드 준장이 포로에게 납치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휴전협정을 앞두고 1953년 6월18부터 20일까지 ‘반공포로를 공산진영으로 넘겨줄 수 없다’ 는 이념적인 측면에서 이승만대통령이 독자적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하였다. 반공포로 수용인원 35,698명중 27,388명을 석방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세계인들이 경악하였고, 휴전협정에 어려움을 예고했으나 무사히 타결되었다.
◆ 유적공원으로 새롭게 조성된 역사 학습의 현장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거제 시청이 위치한 신현읍에 있다. 계룡산(554m)동쪽 자락을 따라 조성된 유적공원은 거제시가 ‘전쟁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희망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삼기 위해 포로수용소가 있던 ‘바로 그 현장’에 1996년부터 2002년까지 197억 원을 들여 1·2차로 나눠 조성했다.
당시 포로수용소는 생각과 달리 그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포탄에 맞아 부서진 회색빛 건물이 있던 그 자리에 포로수용소유적공원으로 조성했다.
1999년 전시관과 위령탑, 포로 막사와 취사장, 야전병원 등을 재현해 일단 문을 열었다. 그 뒤 2002년 분수광장과 야외폭포를 갖춘 만남 존(Zone), 탱크전시관 등 프리쇼 존, 대동강철교 등 한국전쟁 존, 포로생활관 및 여자수용소 등 포로수용소 존이 추가로 설치돼 현재 2만6000평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으로 조성하였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은 포로의 생활상이나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이 할리우드영화 세트장처럼 정교하다. 초현대적으로 꾸며진 유적공원의 다양한 관람코스는 역사 학습장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탱크전시관을 지나 포로수용소 디오라마관으로 들어가면 전쟁의 축소판이 펼쳐진다. 참혹한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30여 가지 조형물을 배치한 270평 크기 디오라마관은 포로수용소의 배치 상황과 생활상, 폭동 현장 등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6·25 역사관에서는 전쟁의 발발과 진행과정을 볼 수 있다. 전쟁 발발에서부터 낙동강전선 방어, 인천상륙작전과 중공군 개입, 휴전협상과 정전(停戰)의 과정을 담았다. 이어서 폭파된 평양 대동강철교에 매달린 피란민들의 모습에서 전쟁의 참상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포로생포관, 여자 포로관, 포로폭동 체험관, 포로 설득관,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관을 돌아보면 6·25가 남긴 상처와 교훈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 포로생활관에 가면 포로들의 일상생활을 당시 사진과 모형 및 영상자료로 볼 수 있다. 포로막사에 누워있는 포로인형의 비참한 모습은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영화 ‘흑수선’ 촬영장이던 야외막사는 수용소·감시초소·야전병원·생활도구를 완벽하게 재현한 실물 공간이다. 공원 출구 쪽에는 거의 파괴된 기존 유적지인 경비대 막사와 PX자리가 남아있다. 포로수용소 초소, 경비대 건물과 함께 재현된 막사는 당시 포로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제일 위쪽의 군용텐트 중 2개동은 중공군포로, 그 옆의 1개동은 친공 포로를 수용했던 막사로 초창기 수용소의 형태를 보여준다. 막사와 함께 수용소, 병원, 식당 등 시설도 재현돼 있다.
비록 가슴 아픈 비극의 현장이지만 다시는 이 땅에 민족 간 또는 그 누구와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는 역사의 산 교육장임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경상남도는 1983년 12월에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으며, 전쟁 역사의 산교육장 및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관람 문의=포로수용소유적공원, 055-639-8125)
◎ 여행정보
▲가는길 : 통영·대전고속국도를 타고 통영IC에서 내린다. 거제방면으로 10여 분 달리면 만나는 신거제대교를 지나면 거제도이다. 14번 국도를 타고 거제시청 방면으로 가면 포로수용소유적공원이 보인다.
▲맛집 : 유적공원 근처에서 식사를 한다면 거제시청과 거제종합운동장 중간 신현읍 고현리 세무소 앞에 있는 '백만석'을 찾아 이곳의 별미인 멍게비빔밥을 시식해 보면 어떨까? 멍게비빔밥을 주문하면 대접에 직사각형 멍게와 김가루, 깨소금, 참기름이 담겨 나온다. 밥을 대접에 넣어 쓱쓱 비비면 얼었던 멍게가 녹으면서 밥과 섞인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으면서 멍게의 향긋함이 입안에 퍼진다. 비빔밥과 곁들여 나오는 생선국은 개운하고 담백하다. 1인분 1만 원. 055)637-6660. 만약 외도 관람을 위해 장승포, 학동 쪽으로 이동한다면 장승포항 수협 앞에 있는 항만식당(055-682-3416)에 들러보는 것이 좋다. 이곳은 특별히 주문 제작한 뚝배기에 각종 해물을 가득 담아 끌여내는 해물뚝배기가 유명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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