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태종대
부산의 경승 태종대를 가다
- 파도는 하염없이 절벽에 부서지고 -
글·사진 남상학
태종대로 가는 길은 멀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부산대교를 지나 영도해안을 따라 9.1㎞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태종대유원지는 54만 2천평의 면적에 해발250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해송을 비롯한 120여종의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해안에는 깎아 세운 듯한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굽이치는 파도와 더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청명한 날에는 약 56㎞거리인 일본의 쓰시마섬까지 볼 수 있어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예부터 시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이곳은 일제 때부터 오랫동안 군 요새지로 사용되던 관계로 일반시민의 출입이 제한되어 오다가 지난 1967년 건설교통부는 유원지로 고시하였고 뒤이어 1969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1970년부터 총연장 4.3㎞의 순환도로를 개설하기 시작하여 3년만에 완공하였고 1974년에 태종대유원지 조성계획에 의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하여 전국적인 관광지로 면모를 쇄신하였다.
태종대는 옛날의 동래부에서 남쪽으로 30리가 되는 절영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의 등대에서 남쪽으로 돌아 절벽 비탈로로 10m쯤 가면 해안가 쪽에 암석이 비바람에 침식되어 낮아진 반반한 넓은 자리를 태종대라고 한다.
태종대는 바닷물이 臺(대)의 주위를 돌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석교가 하나 있고, 그 석교로 사람이 간신히 건널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 두 臺(대) 가운데 바다를 향한 오른쪽 대를 ‘신선대’ 또는‘사선암’이라 하였고, 그 대위에 우뚝 선 바위 하나가 있는데 이 바위를‘망부석’이라 한다. 이 망부석은 왜국에 잡혀간 지아비를 부인이 신선대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며 오랜 날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그대로 몸이 굳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태종대의 유래에 대하여 ‘동래부지’에서는 몇 가지로 설명해 놓고 있다. 그 하나는 신라 태종무열왕이 이곳에서 활을 쏘고 말을 달리며 군사를 조련하여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에 전해지고, 다른 하나는 태종이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 후, 이곳에서 궁인들과 함께 울창한 수림과 수려한 해안의 절경을 즐기며 한유를 했다는 것에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태종이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궁인들이 마중을 나와 이곳에서 만나 연회를 베풀었다는 장소로 사용되어 그것이 유래가 되었다고도 구전되어 온다. 속전에서는 신라 태종무열왕의 사후(射侯)의 장소였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와 같은 이유에 따라서 현재는「태종대」라는 호칭이 보편화되었다.
등대
4.3㎞의 순환도로를 시계방향으로 돌면 태종사 입구를 지나 바위 절벽에 위치한 등대를 만난다. 유원지 입구에서 등대까지는 약 2㎞로, 도보로 유원지 광장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등대 입구까지 약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바다 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하얀 몸집의 등대가 반간다. 1906년 당시 대한제국 세관공사국 등대부에서 설치한 유인등대로 선박들의 안전 항해를 위해 50만 촉광의 빛을 18초 간격으로 24마일(38㎞)까지 비추며 안개가 짙은 날에는 음향으로 뱃길을 지켜주고 있다.
신선대와 망부석
영도 등대 오른쪽으로 30m쯤 되는 곳에 바다를 향하여 위쪽이 좁다란 평면으로 되어 있는 두 개의 나지막한 고소(高所-臺) 중 왼쪽에 있는 것을 신선대(神仙臺, 신선바위 혹은 신선암)라 하는데 여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은 옛날에 선녀들이 이곳에서 놀았다고 하는 전설에서 연유한다. 신라 말 석학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신선대라고 쓴 진필각자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신선대 위에는 돌 하나가 외로이 서 있는데, 옛날 왜구에 끌려간 지아비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 여인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곳에서 돌처럼 서 있다가 마침내 돌덩어리로 굳어 버렸다는 애틋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그 이름이 망부석으로 굳어졌다.
이곳의 암석 형성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2만 년 전인 제4기의 최종 간빙기로 알려져 있느데, 파도의 영향이 약한 지역이어서 파식대가 발달한 신선바위 아래 해안은 태종대를 만들어온 파도에 의한 침식과정이 현재도 활발히 진행 중이어서 흥미롭다.
신선바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해변 절벽에 파도가 드나드는 너비 1m 안팎인 여러 개의 동굴과 해수면 높이의 평평한 바위들이 보인다. 이들 해식동굴이 파도가 절벽을 깎아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평평한 바위들은 지반이 융기할 경우 융기 파식대로 될 것이다. 신선바위를 둘로 가르는 너비 7m의 바위틈도 파도에 바위가 깎여나간 해식동굴이다. 신선바위 위에서의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한 기암의 절경은 빼어난 볼거리로 손색이 없다.
뭍이 끝난 이곳
급작스러운 벼랑에서 이제야 본다
그토록 뒤설레던 그리움이
얼마나 아득한 수평에서 밀려온 파문이었는지
마음 하나 떨쳐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물결의 가슴앓이였는지
(중략)
회색빛 도심에서 언제나 움츠려야 했던
에메랄드 물빛 갈망
이따금 꿈속에서나 힘껏
펼쳐 보았던 미완의 날갯짓들
광활한 해원(海原)으로 우뚝 치솟아
소름 끼치는 압박으로 나를 밀치는
이 단절의 벼랑에서
이제야
이루지 못한 나의 비상을 본다
- 김호의 '태종대에서' 중에서
전망대
등대에서 올라와 순환도로를 따라 돌다보면 중간쯤에 바다를 향해 돌출한 곳에 전망대(프리즘)가 있다. 일명 자살바위가 있던 자리에 설치되어 있던 기존 전망대 휴게소가 노후되어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1999년 8월 현대식 전망대와 휴게시설로 새롭게 건립한 것이다. 연면적 1,736㎡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식당, 기념품점, 패스트푸드점 등 갖추어져 있다.
이 전망대에서는 왼쪽으로 멀리 오륙도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생도(주전자섬)가 눈앞에 보인다. 그리고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각종 배들이 운항하는 모습이 보인다. 전망대 건물 앞에 세워놓은 인자한 모자상 조각은 인생을 비관하여 찾아온 사람에게 자살을 방지하려는 의도라고 한다.
자갈마당
전망대에서 구명사 앞을 지나 왼쪽으로 난 돌계단을 내려오면 널찍한 자갈마당이 있다. 어른의 머리만한 것부터 주먹만한 둥근 돌들이 해변에 가득차 있어 자갈마당이라 부른다. 푸른 해안선을 끼고 울창한 산림과 해안 양쪽으로 바위절벽이 솟아 있고, 양쪽 갯바위에서는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다.
해녀들이 직접 잡아온 생선을 횟감으로 내놓는 해안 포장마차에서는 자갈마당을 찾은 관광객을 부른다. 우측해안에서는 태원유람선이 뜬다. 이곳에서는 시원한 바다바람에 땀을 식히며 눈앞에 펼쳐진 탁 트인 바다와 절경을 구경하면서 도시생활의 답답함을 시원스럽게 뚫어내는 상쾌함을 만끽할 수 있어서 좋다.
이 외에도 태종대유원지 안에는 사찰로 태종사와 구명사가 있고 순국장병 추모비가 있다. 입구에는 어린이 놀이시설로 자유랜드가 있다.
현재 태종대유원지는 오전 4시부터 오후 12시(자정)까지 무료로 운영되고 있어 부산시민이 아끼고 사랑받는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태종대유원지의 자연경관을 보호하기 위하여 차량통행이 제한되고 있으며, 이용객에게 쾌적한 여가 및 안전한 보행환경을 제공하고자 운행하는 “다누비”열차는 태종대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는 순수한 우리말로서 “다누비”는 태종대 입구를 출발하여 정류장 5개소를 거쳐 돌아오는데 약 20여분이 소요된다. 태종사, 영도등대, 전망대, 구명사, 태원자갈마당 등 각 정류장에서는 자유롭게 다누비 열차 승·하차를 할 수 있으며, 원하시는 장소에서 하차 후 태종대의 천혜의 절경을 감상한 후 다음열차를 탑승하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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