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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馬耳山)의 신비를 찾아서

by 혜강(惠江) 2007. 5. 21.

 

진안 마이산

안 마이산(馬耳山)의 신비를 찾아서

 - 80여개의 석탑 이채로와 -

 

 

·사진 남상학

 

 

 

마이산 조형물(미이산 휴게소)

 

  마이산은 전북 진안에 있다. 전주에서 40분 정도의 거리다. 멀리서 보이는 독특한 형상만큼이나 가까이서 살펴보는 모습도 신기하고 놀랍다. 국내에 있는 산중에 가장 특징 있는 산을 꼽으라면 마이산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진안을 찾아간다 마이산아 반겨다오 / 우리님 타고오실 말귀닮은 쌍봉우리

   매정한 그 사람도 옥탑보고 정을 쌓고 / 비둘기 사랑속에 변한마음 돌아섰네

   길손도 쉬어가고 사랑도 쉬어가는 / 진안에 마이산 '

 

 

 

 

  이 노랫말은 전라북도와 문화방송국에서 향토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 가사 공모 당선작의 일부이다. 국내 대부분의 산들은 사실 조금씩 비슷비슷하다. 청량산, 주왕산 정도가 독특하고 유별난 산이라 할 수 있으나, 마이산은 이들 산들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특색을 가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이산을 찾아간다.

 

  사실 마이산은 산이라기보다는 두 개의 봉우리(숫마이봉과 암마이봉)일 뿐이며 산행을 할 정도의 산도 아니다. 마이산은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으나 관목과 침엽수, 활엽수 등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으며, 화암굴이 있다. 조선 성종 때의 성리학자인 김종직은 마이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기이한 봉우리가 하늘 밖에서 떨어지니
      쌍으로 쭈뼛한 모양이 말의 귀와 같구나. 
      높이는 몇 천 길이 되는 데
      연기와 안개 속에 우뚝하도다. 
      우연히 임금의 행차하심을 입어
      아름다운 이름이 만년에 전하네. 
      중원에도 또한 이름이 있으니
      이름과 실제가 서로 비슷하도다. 
      천지 조화의 교묘함은 실로 끝이 없으니
      천지가 혼돈했던 처음 일을 생각하도다. 

 

  이 시에 등장하는 임금은 바로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이다. 태종이 남행해서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짓기 전에 이 산은 신라 때 서다산(서쪽에 많은 산들 중에 가장 아름답게 솟은 산!, 섯다산)으로, 고려 시대에는 용출산(용이 하늘로 솟아오를 듯한 기상) 이라 불렸다. 그리고 조선의 태조는 속금산(금을 묶어 놓은 금덩어리 산! 땅속에서 솟아난 산 )이라고 이름 붙였다고도 한다.

 

  서다산과 용출산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즉 서다를 이두식 표기로 볼 때 그 뜻은 '섯다'이고 그 한문식 표현은 용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태종이 진안읍 성묘산에 제를 올리다 바라보니 마치 거대한 말의 귀를 세워 놓은 듯한 모습으로 인해 ‘마이산(馬耳山)’이란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우뚝 솟은 두 귀가 마이봉(馬耳峯)인데

   구름 위로 벽부용(碧芙蓉)을 받치고 있네

   어떻게 하면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날개를 달고

   봉우리 끝까지 날아올라 가슴을 한번 씻어낼꼬


    돌올쌍첨마이봉(突兀雙尖馬耳峯)

    운단경출벽부용(雲端擎出碧芙蓉)

    하당삽득충천익(何當揷得沖天翼)

    비상봉두일탕흉(飛上峯頭一盪胸)

 


  조선전기의 조위 조위(曺偉)의 '진안마이산'은 마이산의 기묘한 모습을 푸른 연꽃에 묘사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포부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마이산 오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명한 마이산 탑사가 있는 남쪽에서 오르는 코스이고, 다른 하나는 북쪽에서 내려가는 코스이다. 차를 가지고 갈 경우에는 진안에서 가깝다는 이유 때문에 흔히들 북부주차장 쪽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보다는 남부주차장 쪽으로 가는 게 마이산의 모습을 재대로 볼 수 있어서 더 좋다. 마이산에서 유명하다는 탑사와 은수사, 그리고 탑영제 등이 모두 남쪽 코스에 있기 때문이다.  

 

 

금당사

  
마이산 남부 진입로에서 마이산을 오르다 보면 매표소를 조금 지나서 왼쪽에 금당사가 있다. 지금은 작은 산사에 그치고 있지만, 약 1,300년 전에 창건된 역사 깊은 사찰로, 대웅전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18호인 목불좌상(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불상의 예술적인 가치나 미려한 조각은 접어두더라도 그 소재만큼은 잘 살펴볼 일이다. 불상자체가 천년이 넘은 하나의 커다란 통 은행나무이기 때문이다. 높이 230cm, 가로 165cm의 이 불상을 조각하려면 얼마나 큰 은행나무를 필요로 했을까? 이런 형태의 불상은 우리나라에 이곳 하나뿐이라고 한다.

 

  또 금당사에는 보물 1266호인 괘불탱화를 소지하고 있다. 이 괘불탱화는 단독의 관음보살입상이 그려져 있으며 표현양식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의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걸작으로 통도사의 관음보살 괘불탱화나 무량사의 미륵보살 괘불탱화 등과 함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또한 이곳에는 백제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당사 3층석탑(지방문화제자료 122호)이 있다.

 

 

 

이산묘와 탑영제


  그리고 산자락에 한국중세문학사상 유일한 부부시인이었다는 심락당의 하립부부시비, 탑영제, 국조 단군을 비롯하여 4성위와 40현위 34열사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인 이산묘 등의 유적이 있다. 남부마이산 주차장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이산묘는 2004년 7월 20일 지방기념물 120호로 지정됐다. 초록 잎이 우거진 산을 뒤로하고 자리한 이곳, 이산묘는 열성(列聖)과 명현(名賢)·우국지사를 봉안한 묘우(廟宇)이며 공식 명칭은 대한이산묘봉찬회이다. 

 탑영제는 마이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계곡수가 담겨져 있으며 저수지에 비치는 마이산의 형상이 마치 물 안에 또 다른 마이산이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다. 특히, 마이산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1,5km의 길에 벚꽃이 만발하고 마이산 벚꽃축제가 열린다. 이곳엔 봄마다 저수지를 따라 벚꽃길이 펼쳐지는데, 본래 관광풍치 조성을 위해 축조된 것이라 한다.

 

 

 

거대한 암반으로 된 두 봉우리

 

 마이산은 2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봉을 숫마이봉(681.1m), 서봉을 암마이봉(687.4m)이라고도 한다. 봄에는 안개 속의 두 봉우리가 쌍돛배를 닮아서 돛대봉, 여름에는 숲 속에서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하여 용각봉, 가을에는 말의 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 덮인 들판 가운데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봉과 서봉은 약 20m 간격을 두고 있으며, 주위에는 부귀산·성수산 등이 있다. 기반암은 수성암이며, 산 전체가 거대한 암석산이나 정상에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사방이 급경사로 이루어졌으며, 남쪽과 북쪽 사면에서는 섬진강과 금강의 지류가 각각 발원한다. 두 산봉은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 북·서 사면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습한 북쪽 사면은 식생이 풍부하나 건조한 남쪽 사면은 식생이 빈약한 반면, 풍화작용으로 암석의 측면에 동굴 형태의 구멍이 생기는 타포니(taffoni)가 현저하게 나타난다.

 

 시멘트에 모래와 돌, 자갈을 배합 해 만든 이상한 바위덩어리, 이른바 역암이다. 굵은 자갈로 반죽한 레미콘을 들이부어 만든 콘크리트더미 같다. 군데군데 자갈이 빠진 듯 크고 작은 구멍이 벌집 같이 뚫려 있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마이산 자체가 수성암덩어리라고 한다. 이곳은 원래 호수였는데 지각변동으로 바닥이 솟아오른 것이란 설명이다. 숫마이봉 중턱의 화암굴에서는 약수가 솟는다. 이 약수를 마시는 사람들은 옥동자를 낳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깎아세운 듯한 V자형 계곡을 이루는 자연경관과 은수사·금당사 등의 사찰을 중심으로 1979년 10월에 이 일대가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총면적 약 16.9㎢. 은수사 왼쪽으로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를 오르는 길이 있다. 448층계 나무계단길이 나 있는데 수림이 울창하여 그늘을 제공한다. 두 봉우리사이의 중간 정상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의자에 앉아서 마이산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지만, 워낙 사람이 많을 때는 한가한 구경은 기대할 수가 없다.

 

 

 

은수사와 탑사


  은수사는 숫마이봉 기슭의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다. 
은수사를 굽어보고 있는 수마이봉의 모습은 이목구비 뚜렷한 미륵불을 마주하는 것 같다. 은수사에는 이성계가 꿈속에서 왕조창업의 계시를 받았다는 몽금척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은수사 오른쪽 삼성각 뒤에는 태조 이성계가 제사를 드렸던 제단이 있으며. 지금껏 산신제를 지내오고 있다. 그 앞으로는 이성계가 씨앗을 심었다던 천년된 청매실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은수사에서는 큰북을 직접 쳐 볼 수 있다.

  은수사 뒤로는 마치 커다란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 숫마이봉이 솟아 있고, 은수사에서 왼쪽에 있는 암마이봉에는 마치 사람의 발자국 같은 큰 형상들이 보이는데 자연 침식 현상으로 생긴 것인데도 퍽이나 신기롭다. 위용이 드높은 바위덩어리 사이에 낀 은수사는 주변 자연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암마이봉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탑사(塔舍:전라북도 기념물 제35호)는 수많은 탑으로 하여 신비롭기 그지없다.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탑사(塔寺)는 태고종단에 소속된 사찰로 마이산 속에 쌓여진 신비한 돌탑무리에 자리 잡아 세워져 있다. 마이산 여행에서 숫마이봉(숫봉 674), 암마이봉(암봉 667m)이라 불리는 두 봉우리와 함께 가장 큰 볼거리에 속한다. 자연석으로 절묘하게 쌓아올린 원추형기둥과도 같은 80여 개의 돌탑으류ㅗ 이루어져 있다.  중생들을 구제하고 만인들의 죄를 속죄한다는 뜻으로 만불탑이라고도 한다. 높이 15m, 둘레 20여m의 거대한 돌탑도 즐비하다.

 

 접착제를 쓴 것도 아니고, 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홈을 파서 서로 끼워 맞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1백여 년의 풍상 속에 태풍과 회오리바람에도 끄떡없이 견고하게 버티고 서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보기 드문 불가사의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 신비로운 얘기는 1백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본명 경의, 호 석정)는 1860년 3월 25일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난 효령대군 16대 손이다. 수행을 위해 25세 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하던 중 신(神)의 계시를 받는다.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 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것이었다.


 이 처사는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던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부분을 쌓고, 상단부분에 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 왔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모아온 돌로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부분은 기공법(氣功琺)을 이용하여 쌓았다. 그 세월이 무려 30여년.  위치와 모양이 제각기 음양오행의 이치에 따라 소우주를 형성하고, 우주의 순행원리를 담고 있다. 외줄탑 가운데 있는 중앙탑은 바람이 심하게 불면 흔들렸다가 다시 제자리에 멎는 신비함이라니. 돌에도 암수가 있어 암수의 조화를 이뤄 쌓은 것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천지탑

 

  오행을 뜻하는 오방탑(五方塔)의 호위를 받고 있는 돌탑의 우두머리 천지탑(天地塔)은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 또한 가장 큰 한 쌍의  탑이다.  이와 같이 형성된 석탑들이 1백여 년의 풍상을 하나같이 지켜오고 있는 것은 정녕 부처만이 알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

 

 

 

 

  이 불가사의에 더하여 마이산 탑사에는 또 하나의 신비가 있다. 바로 역고드름이다. 겨울에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를 드리면 그릇에서 고드름이 뻗쳐오른다는 것. 정성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릇 속에는 이 처사가 쓴 신서가 박힌다. 이 신서는 이처사가 신의 계시를 받을 때마다 그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부적과 같은 형태도 있으며 30여 권의 책에 전해 내려온다. 사적비에는 언젠가 이 글을 해독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없다. 


  현재 이곳에 주석하고 있는 혜명스님은 바로 이갑룡 처사님의 3대손이다. 혜명스님 위로 2대손인 도생 처사님이 이곳에서 수도하였고, 지금은 혜명스님과 4대손인 진성스님이 함께 마이산 탑사를 지키고 있다. 탑사의 경내에는 섬진강의 발원지라는 용궁이 있다.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잇길의 정상에 올라서서 내려다 보면 누구나 산의 모양보다도 산을 형성하고 있는 구조물에 대한 신기함과 놀라움을 느낀다. 마치 어마어마한 양(量)의 시멘트를 부어 만든 인공구조물을 보는 기분이랄까. 정상에서 뒤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바로 북부주차장. (문의처-  063-433-3313 )

 

 

 

  마이산 탑사를 둘러보면서 길 옆에 세워놓은 시를 읽어본다.

 

    마이산 / 이호식

 

    마이산아 夫婦山아

    하늘에 오르지 못한 애절한 사연

    천지탑에 가슴가슴 괴었는가

    天上天下 못다한 사랑의 영원한 化身이여!

 

   용담호 天池를 치솟는 龍馬의 기상은

   山中에 靈山이라 조선 개국의

   胎夢을 품었으니 신비로다.

 

   생명의 석간수는 갈한 영혼의 목축이리니

   청정수맥의 금강, 섬진강을 거느렸다. !

 

   온갖 시름 정갈하게 돌탑을 쌓아

   한 개 두 개 올려놓은 저들의 소망을 만드는가

 

   구구구 산비둘기 탑사 층계를 오른다.!

   아! 하늘문이 바로 여기 있는 것을 !

 

 

 

  가수 정음이 부른 '마이산아'(작사 정음, 작곡 김인철)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마이산아 용출산아 큰 뜻을 품던 산아
   조선태조 나랏님의 말굽소리 들리는 구나
   금강아 섬진강아 천년만년 흘러가다오
   비바람 몰아쳐도 마이산은 변함없네
   천지탑아 너는 알리라

   마이산아 서다산아 큰 사랑 주던 산아
   일편단심 님의 곁을 떠나 본적 없었구나
   한번 맺은 그사랑에 미운정도 품어 안았나
   비바람 몰아쳐도 굳은 약속 변함없네
   용바위야 너는 알리라

   비바람 몰아쳐도 마이산은 변함없네
   천지탑아 너는 알리라

 

 

 

* 찾아가는길

 

 

1. 호남고속도로-전주-전주역-소양/진안방향 26번국도-화심온천-진안-마이산
2. 대전통영간고속도로-무주IC-장수-진안-마이산
3. 금산방면 37번 국도-추부 좌회전-37번국도-11km-금산-195번 지방도로-진안로터리
  -마이산 -남부주차장 쪽으로 들어갈 경우는 마이산 초입에서 오른쪽의 북부 마이산길을 버리고 왼쪽의 마령 가는 길을 타면 된다.

* 숙박 : 밤에 도착할 경우에는 북부 쪽에서 숙박을 하고, 남부로 이동하는 게 낫다. 모텔과  민박 등의 숙박단지는 진안에서 가까운 북부에 대부분 몰려있고 남부 쪽에는 너댓 채의 민박들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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