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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전라북도

전북 2박 3일 여행, 변산반도 및 고창의 역사문화 탐방

by 혜강(惠江) 2006. 11. 6.

 

전북 2박 3일 여행 (부안과 고창 여행)

 

변산(邊山)반도 및 고창의 역사문화 탐방

 

·사진 남상학

 

 
♣변산반도 : 개암사, 내소사, 부안댐, 모항, 궁항, 채석강, 격포항, 곰소항

♣고창지역 : 김성수 생가. 미당문학관, 선운사, 고창읍성, 신재효생가, 판소리기념관

 

 

 

 

 

 신록이 짙은 5월 하순. 좋은 벗님들을 태운 차는  산과 바다가 정겹게 어울어진 변산반도를 향하여 출발했다. 야탑역에서 출발한 차는 경부고속도로로 안성까지 내달려 새로 뚫린 충주-평택간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이 도로는 경부고속도로와는 달리 통행하는 차들이 여유가 있어 보였다.  

  서평택 분기점을 통하여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한 차는 신나게 달려 줄포 나들목으로 빠져 나왔을 때 먼저 우리를 맞아주는 것은 지천으로 핀 하얀 꽃의 찔레꽃 무더기와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 풍경이었다. 이 두 풍경은 우리 어렸을 적 시골에서 흔히 보던 것으로 오랜만에 진한 향수를 느끼게 했다.  어느 새 우리는 찔레꽃과 보리밭을 소재로 한 노래를 부르면서 마냥 즐거운 아이들로 돌아가 있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변산반도 국립공원 

 


  198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변산 안에 의상봉(508m), 신선봉(486m), 쌍선봉(459m) 등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를 지녔다. 그 사이에 개암사, 내소사, 월명암 등 유서 깊은 고찰이 있고 직소폭포, 봉래구곡, 낙조대 등 승경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에는 유천리도요지, 구암리 지석묘군과 호벌치와 우금산성 등 역사 유적지가 있다.  

   채석강, 적벽강, 신석정 시비, 한국에서 최초로 조성된 금구원 조각공원, 그리고 변산해수욕장, 격포, 고사포 해수욕장 등 3개의 해수욕장까지 갖추고 있으며, 또한 내변산에 1995년 부안댐이 완공되어 물이 차면서 중계계곡이 호수로 변해, 천연적인 단애를 이룬 기암괴석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또한 공원지구 내에 다양한 동식물이 분포 되어 있으며, 이중 호랑가시나무, 후박나무, 꽝꽝나무, 미선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해수욕과 등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사시사철 수많은 탐방객이 찾는다.  국내 국립공원 중 유일하게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다기능 공원이다. 해안가는 외변산, 내륙 산악 지역은 내변산이라 구분하고 있다.


울금바위 품에 안긴 호젓한 개암사(開岩寺)

 

 


   
  
  우리는 숲 속에 호젓이 잠긴 저수지 길을 돌아 내륙지역의 내변산을 먼저 보기로 하고, 울금바위 산 아래 호젓이 자리한 개암사를 찾았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줄포 방면 710번 지방도를 타고 다시 보안면 방향 20번 국도로 상서면에 이르면 여기가 개암사다.

   필자가 여러 해 전에 이곳을 찾아왔을 때는 매화꽃이 벙그는 2월 하순이었는데, 그 때는 이 절의 대웅전은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양식인 정면3간, 측면3간의 팔작지붕이 인상적이었고, 대웅전 오른쪽으로 대나무 울타리와 숲이 이채로웠고, 울금바위의 산을 배경으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한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찾은 개암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부속 건물이 지어지고, 노천에  홀로 서 있던 좌불은 새로지은 건물 안에 안치되어 있었고, 대웅전은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는 중이어서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개암사는 백제 고찰로 백제무왕 35년(634년)에 묘련 왕사가 변한에 있는 궁전을 절로 고쳐 지을 때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 부른데서 비롯되었으며, 40여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들어와 개암사를 다시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1313년(고려충숙왕)에는 원감국사가 순천 송광사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중창하면서 황금전, 청련각, 청허루 등 30여개소의 건물을 지어 대규모의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가운데로 축대가 가로 놓여 있는 절 안에는 대웅보전, 응진전, 요사채, 그리고 요사로 쓰이는 월성대 정도가 있어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하면 한적한 편이다.         
           
  

울창한 전나무 숲길 뒤에 숨은 내소사(來蘇寺)

 

 

  


  개암사를 둘러보고 들어간 길로 되돌아 나와 30번 국도에서 우회전하여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서 북쪽으로 1.2km 정도 들어가면 변산반도의 자랑거리인 내소사(來蘇寺)를 만난다. 절 입구 매표소로부터 300m 가량 늘어선 울창한 전나무 숲길은 매우 인상적이다. 숲길을 벗어나면 일주문까지 단풍나무 터널을 이루고, 천왕문까지 화사한 벚꽃터널이 이어진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혜구(惠丘) 두타 스님이 이곳에 절을 세워 큰 절을 '대소래사', 작은 절을 '소소래사'라고 하였는데, 그 중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이다.

  보유한 문화재로는 국가 지정문화재 4점과 지방 유형문화재 2점이 있다. 또한 잘 보존된 봉래루 화장실 등 옛 건축물과 근래에 신축한 무설당, 진화사, 범 종각, 보종각, 선원, 회승당 등의 건축물이 도량에 조화롭게 잘 자리 잡고 있다. 

 

  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조선시대 때 건립된 것으로 전면에 꽃살 무늬를 조각 한 문짝을 달았는데 이들은 모두 정교한 공예품들이며, 단청이 없어 더욱 자연스러운 고찰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녀 아래 귀 한 대와 내부 충량머리는 용머리를 조각하였으며, 전내 후불벽에는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큰 것이다. 경내에는 이 외에도 고려 동종, 법화 경절 복사본, 영산회 괘불탱화 등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설선다와 요사, 삼층석탑 등의 지방유형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부근식당에는 청국장 백반으로 이름이 알려진 초원식당( 063-581-1077 , 청국장백반, 순두부)에서 청국장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전어구이도 입맛을 돋구는 음식의 하나다. 그외에도 내소산장( 063-582-7281 ), 산촌식당( 063-582-2502 , 한식), 석포가든( 063-582-7225 , 한식), 전주식당( 063-584-9090 ) 등이 유명하다.    


경관이 아름다운 모항 해수욕장

 

  
  내소사에서 나와 격포 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모항해수욕장이 발아래 언덕 밑으로 앙증맞게 보인다. 협소한 내리막길로 내려가면 조용한 어촌으로 그 곁에 모래사장이 있다. 현대상선 휴양소가 생기고 주변 갯바위 바다낚시터가 있어 주로 휴양객 및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평소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백사장 주변에 노송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운치도 있으며, 근래에 상점들이 생기고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해수욕장으로 형성되었다. 인근 길가에 천연기념물 호랑가시나무 군락이 있어 이것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모항 조금 못가서 좌측 산속에 있는 썬리치랜드( 063-584-8028 ~9), 언덕 위에 외국 취향의 별장 모항레져 타운(콘도,  063-584-8867 )이 있고, 모항비치(모항 해수욕장,  063-583-5545 )가 있어 하루쯤 묵고 가기 좋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또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대덕사슴목장 민박집( 063-583-9750 ,  011-684-9750 )이 있다.      


'불멸의 이순신’세트장이 있는 궁항과 영상테마파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부안에서 촬영을 시작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전라좌수영은 궁항, 왜군진지는 성천, 명군진지는 죽막, 조선군진지는 위도 논금 해수욕장, 선박들은 격포항에 각각 자리해 있다. 그밖에 석불산 영상랜드에도 세트장이 마련돼 있다. 마침 궁항 조금 못 미쳐 왼쪽 해변에서는 이 드라마의 한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지휘함에서 명령을 내리고, 그 명령과 동시에 대포가 발사되는 대목이었다. 나는 여기서 촬영장으로 들어서는 영등포만호와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전라좌수영은 궁항의 한적한 해변에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언덕 아래로 지세가 험하고, 해변의 모양이 활처럼 생겼다 해서 궁항이다. 이곳을 포함한 인근 격포항 일대는 실제로 조선시대에 수군이 주둔했던 곳. 전라좌수영 세트장은 해변 풍경과 함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평민들의 주거지, 관가의 동헌, 높이 솟은 망루 등 드라마에서 보이던 낯익은 배경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층으로 된 누각과 기와집, 초가집, 정자 등 다양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를 여행하는 듯하다. 세트장 앞에 바위와 자갈밭으로 된 아담한 해변이 있다.


  궁항에는 옛날식 선박들이 여러 척 정박돼 있다. 이것들 또한 드라마용 세트로 거북선과 판옥선, 안택선, 일본 선박 등이 파도의 출렁거림에 따라 조용히 움직인다. 그중 왜군을 호령하던 조선의 거북선이 가장 인상적이다.


  또 이곳에는 부안 영상테마마크가 개장을 서두르고 있다. 부안 영상테마파크는 해변 맞은편으로 뻗은 산 아래에 부안군과 KBS가 공동으로 추진 중에 있다.  부안 영상테마마크에는 경복궁의 근정전을 중심으로 한 궁궐, 양반집, 초가삼간 등이 10만평 부지 위에 들어섰다. 이 테마파크 조성에만 약 70억 원이 투입됐다. 앞으로도 120억원 정도의 추가적인 민자유치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한다.


변산반도의 젖줄 부안땜 

 

 



   해안 절경 채석강 격포항에서 세트장을 감상한 다음 찾아봐야 할 곳은 채석강이다. 격포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정도. 마침 만조 시간이어서 채석강을 돌아보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격포의 수협어판장을 둘러보고 부안 다목적댐으로 향했다. 쪽시간을 이용, 해변 길 드라이브와 댐구경을 하는 일석이조의 행운을 잡은 것이다.  

   북쪽으로 달려 새만금방조제를 막 지나서 변산온천 쪽으로 우회전하여 10여분간이면 닿는데, 왼쪽으로 흐르는 물을 따라 오르면서 뜻밖에 여기서 절경을 만난다. 물 위에 우뚝 선 절벽과 나무들이 물과 조화를 이루어 여러 폭의 풍경화를 펼친다. 한적한 길을 달리는 멋이 괜찮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숲 속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떨어지는 물의 낙차로 물레방아를 힘있게 돌려댄다. 나무계단을 올라 잠시 걸어오르면 바로 댐이다.  이 부안댐은 부안군 부안읍 및 고창군 고창읍을 비롯한 인근 서해안지역의 2군 2읍 21면 1지구에 공업 및 농업 용수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 댐은 홍수조절용량을 별도로 두지 않고 생공용수 및 농업용수, 하천유지, 용수공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항상 만수위 이상의 잉여저수량은 자연월류방식인 여수로로 방류하여 댐하류지역의 홍수피해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본댐의 취수탑과 정수장의 착수정사이의 잉여낙차를 이용하여 소수력을 가동하여 1,522 MWH/년을 발전하여 한전에 공급하고 있다.  댐의 높이는 50 m,  댐의 길이는 280.0 m, 총저수량은 4154만 m3나 된다.
 부안댐을 보고 나와 격포쪽으로 좌회전하니, 바다를 끼고 조성한 석정공원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신석정의 시비가 있다.
  

해식 단애의 채석강(彩石江)

 


  부안댐을 보고 나와 우리가 하룻밤을 지낼 집을 찾았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곳이 채석산장( 063-58...). 산장은 해안으로 돌출된 닭이봉 기슭으로 오르다 우회전하여 해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옛집을 헐고 새로 지은 집인데 가건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알고 보니 땅은 개인 소유지만 공원부지로 묶여 증개축에 제한을 받는다고 한다. 앞으로 산장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지붕과 벽을 둘러 나무를 입힐 예정이란다. 

   그런데 이 산장의 최대장점은 몇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해변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곳은 시야가 확 트인 일몰 포인트라는 점이다. 방을 배정 받아 짐을 풀고 쉬는 동안, 어느새 물길은 저만치 물러가 격포 쪽으로 해변을 돌며 채석강의 신비스런 풍광을 감상했다.  
  
  채석강은 바닷가에 우뚝 솟은 바위 절벽을 두고 이르는 것인데, 이는 옛 시인 이태백이 강에 비친 달을 보고 손을 내밀었다가 빠져 목숨을 잃었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채석강은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 일대 1.5km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채석강은 선켐프라이대에 화강암, 편마암을 기층으로 하고, 중생대의 백악기(약 7천만 년 전)에 퇴적한 해식단애가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은 듯한 와층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자연이 빚은 퇴적예술의 걸작이라 할 만큼 경관이 빼어나며, 다른 퇴적암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가 많고, 퇴적된 과정들이 절벽에 입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어 학술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해안절벽 앞에는 먼 바다에서부터 깎여 들어온 암반이 널따랗게 펼쳐져 있어 해안의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절벽 앞으로는 평평한 바위들이 해안에 널려 있어 그 위를 거닐거나 앉아서 쉬기에도 그만이다.

  구름이 좀 낀 날이라 화려한 일몰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이 좀 아쉽다. 또 하나는 내변산에 숨겨진 비경인 직소폭포를 보지 못하고 변산반도 탐방을 마쳐야 한다는 점이다. 하루에 직소폭포까지 보기에는 무리한 일정이었나 보다.

   하루 여정을 끝내고 채석산장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서해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산장에서 드는 식사는 운치가 있었다. 산장지기 젊은 아줌마가 내놓은 우럭 매운탕은 말할 것도 없고, 밑반찬 또한 맛갈스러웠다. 방을 어찌나 덥혀 놓았는지 별도의 돈을 들이지 않고 찜질방에서 찜질하는 효과를 얻었다.

  신성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오른 닭이봉 산책은 변산반도 여행의 또 하나의 멋. 아침식사는 시원한 조개탕을 겻들인 백반. 산장지기 젊은 아줌마 장금이씨의 풋풋한 마음씨와 정성이 깃든 음

 

식은 우리 여행팀의 입을 즐겁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꼴뚜기 젓이 맛있다고 했더니, 떠날 때 꼴뚜기 젓을 병에 담아 주던 그 마은은 변산반도 여행의 추억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젓갈의 고장 곰소항

 


  이튿날, 채석강에서 변산반도의 남쪽 해안을 따라 다시 모항을 지나 곰소항으로 차를 몰았다. 고창군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적과 선운사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침 햇살이 나무 잎에서 반짝이고,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밭에서 빛나고 있다.

   곰소항은 부안에서 24km지점에 위치한 곰소항은 진서면에 위치하고 있다. 이 항구는 왜정 말 줄포항이 토사로 인해 수심이 점점 낮아지자 그 대안으로 일제가 제방을 축조하여 만든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서 착취한 농산물과 군수물자를 반출하기 위하여 항만을 구축하고자 도로 제방을 축조케 되어 현재의 곰소가 육지가 되면서 만들어진 항구이다. 


 
 이 항구는 1986년 3월1일 제2종 어항으로 지정되어 물량장 및 부대시설을 갖추어 150척의 배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하루에 130여척의 어선들이 드나드는 항구로 주변 소규모 상가와 마을을 끼고 있으며, 더 나아가 항구 북쪽에 8ha 에 달하는 드넓은 염전이 있어 소금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근해에서 나는 싱싱한 어패류를 재료로 각종 젓갈을 생산하는 대규모 젓갈 단지가 조성돼 있어 젓갈 쇼핑을 겸한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곰소에 와서 젓갈을 맛보려면 젓갈백반을 주 메뉴로 내놓는 곰소쉼터( 063-..., 젓갈백반, 곰소포구 입구)에 들르면 된다. 이것저것 젓갈을 맛보는 동안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먹어치우게 된다.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생가

 

 



  
 곰소를 좀 지나 보안사거리에서 우회전 23번 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734번 지방도로를 달리면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 있는 인촌 김성수생가에 이른다.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지내고, 고려대를 창설한 인촌 김성수 생가는 1977년 12월 31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었다. 남북으로 긴 직사각형 대지 안에 낮은 담을 경계로, 북쪽에 큰집이, 남쪽에 작은집이 있다. 큰집 안채는 1861년, 사랑채는 1879년, 작은집 안채는 1881년에 조부 낙재(樂齋) 김요협이 건립하였다.  

  큰집 사랑채의 문간채는 1893년 김성수의 양부인 원파(圓坡) 김기중이, 작은집 사랑채는 1903년 친부인 지산(芝山) 김경중이 건립하였다. 이곳은 안채·사랑채·곳간 등 여러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호남 토호의 집 규모를 보여준다.  

   1907년 그의 일가는 당시 이 고장을 휩쓸던 화적의 행패와 귀화의 출몰로 현 부안군 줄포면 줄포리로 이사하였다. 이 집은 마을 사람에게 맡겨 보존해오다가, 1977년 김성수의 동생 수당 김연수(金秊洙:1896~1979)가 옛 모습 그대로 보수함과 동시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미당(未堂)생가 및 미당시문학관


   미당 시문학관은 미당 서정주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1년 9억7000여만원의 예산을 투입, 그의 고향인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 5층 규모로 건립했으며 미당의 유품과 문학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인촌 생가 바로 옆에 우리나라 현대시의 거목이었던 미당 서정주 시인의 기념관과 생가가 자리하고 있다.

   2001년 미당의 고향 마을 폐교 터에 건립된 미당 시문학관은 생가에서 지척지간에 있는데, 친일 행적과 군사정권을 예찬하는 행위 등으로 미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썩 좋지 않아 지어질 때까지 반대여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기념관 내에는 ‘귀촉도’'국화 옆에서' '무등을 보며' 등 주옥같은 미당의 시들이 전시되어 있어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부지 9천400여㎡에 지어진 문학관은 크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면서도 자연미가 돋보인다. 건물 앞에는 파릇파릇 잔디가 잘 정돈되어 있고 전시동 건물은 옛 학교건물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아무 것도 칠하지 않은 가운데 콘크리트 건물동이 우뚝 솟은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미당의 시들과 그의 유품, 생전의 모습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특히 학도병 지원을 독려하는 친일적인 시와 전두환 정권을 찬양하는 시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시들도 함께 전시되어 눈길을 끈다. 주 관람 공간은 4층 반짜리 콘크리트 건물. 건물 꼭대기에는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1층부터 4층까지 계단 벽과 비좁은 공간을 이용해 미당의 작품들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옥상에 설치된 전망대에 오르면 화려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져 입이 딱 벌어진다. 앞쪽으로 변산반도의 울퉁불퉁한 산자락과 함께 곰소만 갯벌을 메워 만든 드넓은 평야가 시원스럽게 열린다.  뒤로는 바다에 면한 산으로는 높이가 만만치 않은 소요산(444)이 병풍처럼 감싸 안고 있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다. 

  미당시문학관에서 포장도로를 건너 10여 분 정도 비탈을 오르면 미당 묘소다. 묘소에는 미당의 시 '선운사 동구'를 새긴 시비가 서 있고 그 옆으로 미당 내외의 무덤이 앉아 있다.

   미당 서정주 문학관(전북 고창)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안현마을 동산의 미당 산소 주변에 피기 시작한 국화꽃. 이곳 주변 일대에는 그의 대표작인 <국화 옆에서>를  상징하는 국화를 심어 가을철에는 광대한 억덕을  노란 국화꽃으로 덮어 장관을 이룬다.    


천년 고찰 고창 선운사(禪雲寺)

 

 



   선운산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명승지로서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의 뜻으로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다. 곳곳에 기암괴석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고 숲이 울창한 가운데 천년 고찰 선운사가 자리하고 있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년)에 검단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금산사와 더불어 전라북도 내 조계종의 2대 본사이다.  선운사에 보존되어 있는 사적기에 의하면, 창건 당시 한때는 89 암자에 3,000여 승려가 수도하는 대찰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본사와 도솔암, 참당암, 동운암, 석상암 만이 남아 있다. 참당암은 신라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현재, 선운사에는 금동보살좌상 등 보물 4점과 동백나무, 장시송, 송악 등 천연기념물 3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9점, 전라북도 문 화재자료 2점 등 총 19점이 있다.  특히 대웅전 뒤에는 수령 약 500년, 높이가 평균 6m 되는 동백나무들의 군락이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꽃이 만개하는 봄이면 사찰 뒤로 꽃 병풍을 펼쳐 놓은 듯 장관을 이루고, 해마다 이 무렵 이면 동백꽃 축제가 열린다. 여름에는 계곡과 백일홍, 가을이면 길 앞 물가로 늘어선 상사초(꽃무릇)와 단풍나무 숲이 불타는 듯한 절경을 이루며, 겨울에는 작설차와 설경이 기다린다. 또한 이곳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해낙조도 장관이다.   


   미당 서정주는 생전에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라고 시작되는 ''선운사 동구''라는 시를 남겼다. 그만큼 미당은 고창 선운사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그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은 창작의 샘물이 되었던 것 같다. 선운사만큼 서정성이 물씬 나는 사찰도 드물다. 봄에는 동백꽃이, 가을엔 꽃 무릇과 단풍이 절 주위를 불긋불긋 물들인다. 그런 덕택에 선운사는 어느새 고창을 대표하는 여행 일번지가 되었다.
 

 

   이곳에는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대부분의 식당은 이 지역의 명물인 풍천장어와 복분자를 내놓고 있다.  장춘가든( 063-563-5382 ), 한솔가든( 063-56...), 선운식당( 063-561-1959 ),물레방아가든( 063-562-6315 ), 유신식당( 563...), 신덕식당 562-1533), 동백식당(562-1560/1), 귀거래식당(562-1564) 등을 손님들이 즐겨 찾는다.


호국의 자취 고창읍성(高敞邑城)

 


  고창읍성은 전국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자연석 성곽으로 단종1년(1453)에 세워졌다고 하며 여자들이 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도 있다. 사적 제145호로서 성의 높이는 4~6m, 둘레는 1,680m에 이른다. 동, 서, 북의 세 개의 문과 여섯 군데의 치(적의 접근을 관측하고 성벽에 달라붙은 적을 물리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반달꼴로 밖으로 내쌓은 것), 두 군 데의 수구문이 있다.

  이 성은 왜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이 축성한 것으로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나주 진관의 입암 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로서 만들어진 읍성이다. 성내에는 동헌(東軒), 객사(客舍) 등 24동의 조선시대 관아(官衙) 건물과 2지(池) 4천(泉)이 있었으나 병화 등으로 소진되고 성곽과 공북루(拱北樓) 해자, 길영천(吉靈泉)만 남아있던 것을 1976년부터 옛 모습으로 복원해 오고 있다.  


   음력 윤달에는 성곽을 3회 돌면 무병장수하고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에 따라 고창읍성 탑성놀이(성 밟기 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경내에 판소리 체험장을 마련하여 어린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판소리 배우기에 열심이었다.

   이곳의 먹거리로는 읍내 천변에 있는 조양식당( 063-564-2026 , 한정식, 백반)과 읍성 바로 앞에 있는 미향( 063-564-8762 , 돌솥비빕밥)을 추천한다.


판소리의 대가 신재효의 고택과 판소리 문학관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 1812~1884)는 잔라도 고창이 고향으로 조선조 고종 때의 극가 작가로서 순조 이후에 일어난 서민문학을 대성한 사람이다.  자신이 지은 극가에는 <광대가>, <오섬가>, <도리화가>, <성조가> 등의 창작이 있고, <토별가> <적벽가> <심청가> <춘향가> <흥부가> <가루지기타령> 등 여섯마당을 개작하였다.

   신재효 고택은 동리 신재효 선생이 명창들을 모아 이론을 강론하고, 토끼타령, 방아타령, 적벽가, 춘향가, 가루지기타령 등 6마당의 판소리 사설을  편술하던 곳으로 1850년경에 지어졌으며, 1979년 보수하여 중요 민속자료 제39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지어진 사랑채와 오동나무, 우물 등이 남아 있다. 그의 고택은 현재 사랑채만 복원되어 남아 있으며 바로 옆에는 동리 국악당이 있다.

 

   고창 판소리 박물관은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개작자, 후원가였던 동리 신재효 및 진채선, 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의 유형무형의 자료를 수집, 보존, 조사, 연구, 전시, 해석함으로써 일반 대중에게 수준 높은 판소리 예술의 재교육과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택 자리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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