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대금굴
5억년 전으로 '동굴 속의 산책'
조선일보(삼척=글 김신영 기자/ 사진 유창우 기자)
▲ 대금굴 안 작은 '대금역'까지 들어온 모노레일. 입구에서 140m까지 들어가는 인공 터널을 뚫어 관람객을 동굴 안까지 데려다 준다.
동굴 속을 산책하다 보면 시간의 깊이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길어야 100년에 미치기 어려운, 찰나의 시간을 지구에서 보내는 인간에게 동굴이 살금살금 만들어졌다는 억년 단위의 세월은 상상만으로도 버겁습니다. 빛이 달려도 수만 년이 걸린다는 밤하늘의 먼먼 별들을 보며 공간의 크기를 생각하듯, 싸늘한 동굴 속을 거닐다 보면 억겁의 존재감이 새삼스레 느껴집니다. 그 동안 물소리만 울렸을 5억년 된 동굴 또 하나가 6월 5일 조심스레 일반인에게 공개됩니다. 환선굴 관음굴로도 유명한 강원 삼척시 대이리 동굴지대에 일곱 번째로 모습을 드러내는 대금굴입니다. 발견된 지 5년, 길과 조명을 설치하는 등 개발에 2년이 걸렸는데 동굴의 ‘진짜 끝’이 어딘지는 아직 미지수랍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거나, 제일 오래된 굴은 아니어도 대금굴은 색다른 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덕항산의 녹음(綠陰)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단궤(單軌)열차, 모노레일이 방문객을 싣고 느릿느릿 산을 올라 동굴 입구 ‘대금역’까지 데려다 줍니다. 사람의 빠른 걸음 정도인 시속 약 5㎞에 불과한 느린 움직임이어서 산과 계곡을 찬찬히 구경하며 동굴 속을 상상하게 됩니다.
열차는 작습니다. 14명이 탈 수 있는 객차가 세 칸, 총 42명밖에 태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동굴과 달리 하루에 입장객 수를 제한할 예정입니다. 예약을 통해 하루 약 720명만 이 동굴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당분간 동굴을 닫을 일은 없을 테니 서두를 이유는 없겠습니다. 단 너무 추운 겨울보다는 후텁지근한 여름이 동굴 관광에는 제격일 듯 합니다.
대금굴은 ‘물골 동굴’이라는 별명처럼 폭포와 호수가 곳곳에 있어 서늘하고 촉촉합니다. 동굴 안은 ‘찰랑찰랑’부터 ‘콸콸’까지 물소리가 넘칩니다. 8m 높이의 웅장한 폭포도 있고 깊이가 9m에 달하는 아주 고요하고 넓은 호수도 있습니다. 그 위에 설치된 산책로는 바닥이 그물처럼 뚫려 있어 물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집니다. 막대기 커튼 모래시계 팝콘 모양의 다양한 종유석과 석순을 어느 동굴보다 가까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깊고 웅장하기로 유명한 환선굴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습니다. 1만2000원(성인 기준) 하는 입장권 하나만 끊으면 두 동굴을 한꺼번에 볼 수 있으니 이왕 간 김에 환선굴 구경도 놓치면 아깝겠습니다. 서늘하고 어둡고 휴대폰도 ‘먹통’인 동굴에서 나와 온기 어린 햇살과 만나는 순간, 지구에 사는 일이 알고 보면 즐거운 일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대금굴서 차로 10분 남짓인 거리에 동굴 속 차디찬 물과는 또 다른 넉넉한 삼척의 바닷가도 있습니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동굴 관람 후 착 가라앉은 듯 느껴지는 시간의 속도를 ‘원위치’로 돌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열차타고 동굴속으로 삼척 '대금굴'
- 동굴탐방 - 여기는 미지의 세계 '대금역' 입니다
▲ 대금굴 입구까지는 '은하철도 대금호'라는 모노레일을 타고 들어간다. 7분 남짓한 시간 동안 주변 숲의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은하철도 대금호'라는, 지극히 '바깥세상'스러운 이름의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 속으로 살금살금 따라 들어가 보았다.
상쾌한 산책로 따라 동굴 가는 길
대금굴은 국내 최초로 열차를 타고 진입할 수 있도록 한 굴이다. 열차는 단궤(單軌) 철도인 '모노레일'로 14인승짜리 세 칸으로 된 42인승. 이 주황빛 모노레일 덕에 여유롭고 편안하게 동굴로 즉각 진입이 가능해졌다.
수학여행지로 인기인 환선굴 입구에서 10분만 더 걸어 올라가면 모노레일 승강장 겸 동굴 안내소인 ‘대금굴 관광센터’가 나온다. 센터까지 가는 길엔 짙은 고동색 데크(deck)가 270m 정도 이어져 있어 가볍게 산길을 트레킹하는 기분이 든다.
오른쪽으로는 물 맑은 계곡이 즐겁게 흐르고 정면에는 태백산맥 주능선(主楞線)의 일부인 덕항산의 울룩불룩하고 짙은 초록이 웅장하게 솟아있다. 커다랗고 강한 ‘무엇’이 훑고 지나간 듯 군데군데 거칠게 패인, 높은 산의 정직한 모습이다. 한발 내디딜 때마다 눈에 띄게 맑아지는 공기와 울창한 전나무 숲이 동굴 관람을 준비하는 전채 요리처럼 상큼하다.
동굴까지 7분, 이색체험 모노레일
대금굴 관광센터에서 '은하철도 대금호'에 오른다. '은하철도'라는, 풋풋한 이름의 어원을 묻자 삼척시청 동굴관리기획계 박용인 계장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점이 많은 동굴이 '미지의 세계'라는 점에 착안해 '은하철도'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총 길이 610m 중 4분의 3 정도는 동굴 입구로 향하는 산길이고 나머지는 동굴 안쪽 길이다. 승강장에서 동굴 내부 140m에 설치된 ‘대금역’까지는 약 7분이 걸린다. 운전석이 없고 자동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앞뒤로 동굴 안팎이 잘 보인다. 동굴 내부에 열차를 타고 들어가는 건 분명 이색체험이다.
운이 좋아 맨 앞이나 맨 뒤에 앉으면 넓은 앞(뒤)유리를 통해 제대로 산 구경을 할 수 있다. 동굴에 진입하는 즉시 열차 내부의 조명은 꺼진다. 컴컴한 모노레일 안에서 구경하는 잠깐의 '인공터널'은 이색적이나 '악' 소리 날만큼 웅장하거나 경이로울 정도는 아니다. 특히 모노레일 내부에 울리는 비발디의 '사계'라든지 동굴 벽에 붙여 놓은, 네온 빛에 가까운 퍼런 빛깔의 조명이 조용한 동굴 감상에 흠집을 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동굴 구경 시작도 전 기진맥진해질 일 없이, 산길을 열차로 오를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 유난히 물이 많은 대금굴은 '물길동굴'이라고도 불린다. 입구에 있는 8m 높이의 폭포.
언제나 '섭씨 12도', 물 많은 동굴
동굴 안 '대금역'에 내리는 순간 바깥 세상과는 완전 격리될 각오를 해야 한다. 휴대폰은 '통화 불능' 상태에 돌입하고 공기의 질감도 달라진다. 산소의 밀도가 낮아진 대신 축축한 물기가 그 자리를 대신한 때문이다.
동굴을 찾은 5월 22일, 바깥 온도는 섭씨 22도에 달할 정도로 따뜻했지만 동굴 내부는 12도밖에 되지 않아 싸늘했다. 94%에 달하는 습도도 쌀쌀한 기운을 더한다. 여름에도 겉옷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대금굴은 다른 동굴에 비해 물이 유난히 많아 '물길 동굴'이라고도 불린다. 장마철이 되면 물의 양이 늘어 동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내리자마자 승강장 맞은편 왼쪽에 8m 높이의 거대한 폭포가 정면에서 떨어져 내린다. 관람을 위해 설치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 폭포를 옆에서 위에서 대각선에서 여러 차례 다시 만나게 된다.
폭포 지역을 지나면 종유석 지역이 이어진다. 이 구간에도 물은 끊이지 않는다. 왼쪽으로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마주칠 법한 격렬한 계곡이 콸콸 쏟아지고 오른쪽에는 둥글둥글한 휴석(休石) 위로 물이 사뿐사뿐 걷고 있다. 비교적 짧은 구간에 다양한 종유석과 석순이 모여있다는 게 대금굴의 특징이다. 표주박 모양의 종유석, 빛을 받으면 반짝거리는 휴석 계곡, 종유석과 석순이 이어질 듯 늘어선 '모래시계'형 구간, 커튼 모양의 종유석 등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동굴 내부에 7~9명의 '도우미'가 배치될 예정이다.
관람로를 돌아 나오는 길에 대금굴의 백미인 '호수 지역'이 자리잡고 있다. 세로 60m, 가로 30m의 커다란 호수는 수심이 8~9m에 달한다. 물 속에 설치된 조명 덕분에 맑디 맑은 호수 바닥이 참 깨끗하게 들여다보인다. 바닥이 뚫린 관람로와 호수 사이 폭은 두 뼘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동굴 안 호수의 그 많은 물은 산에서 나왔겠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왜 동굴로 흘러 들어오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동굴 바닥은 약간 미끄럽고 구멍이 많다. 하이힐을 신고 갔다가는 낭패 볼지 모르니 든든한 운동화를 꼭 챙기자.
* 여행수첩
* 찾아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동해 톨게이트’에서 나와 삼척 방향 7번 국도10분 정도 가다 보면 38번 국도로 연결되는 분기점으로 나와 ‘태백’ 방향으로 20분 정도 간다. 여기부터는 대금굴 바로 옆에 있는 ‘환선굴’ 이정표가 계속 나온다.
* 관람료 : 성인 1만2000원, 중·고등학생 및 군인 8500원, 초등학생 6000원. 삼척시청 홈페이지(www.samcheok.go.kr)에 구체적인 신청 방법에 대한 정보가 25일쯤 올라갈 예정이다. 문의 : 대이동굴관리사무소 (033)541-9266, (033)570-3255
* 먹거리 : 삼척은 시원하고 칼칼한 해장국인 곰칫국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5~6월은 곰치 가격이 올라가는 때라서 일반 횟집에서는 곰칫국을 잘 내놓지 않는다. 삼척시청 문화공보실 홍금화 계장은 “삼척 해수욕장 부근 ‘바다마을(033-572-5559)’은 곰칫국 전문 식당이어서 일년 내내 곰칫국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삼척 해수욕장 일대에는 횟집도 많다. 홍 계장은 새천년 횟집(033-572-2800), 바다이야기(033-572-7009) 등을 추천했다.
* 숙소 : 이왕이면 해안가의 숙소로 가자. 영화 ‘외출’의 촬영장소였던 펠리스 관광호텔(www.palace-hotel.co.kr)은 아름다운 동해의 해안선이 내려다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호텔서 약간 남쪽으로 내려와 있는 파라다이스 모텔(033-576-0411) 주변에는 바닷가에 늘어선 횟집들이 많아 밤 늦게 회 한 접시 즐기기에 좋다.
<출처> 2007. 5. 17(목)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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