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운악산 중턱에 자리잡은 현등사
글·사진 남상학
3월 1일 이른 아침, 아파트 베란다에 태극기를 달고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가평운악산 현등사로 향했다. 우리 부부의 건강을 진단한 의사가 열심히 등산을 하라는 권유도 있고, 70년대 중반 한번 다녀온 기억이 있어 다시 찾고 싶어서였다. 거기다가 어느 핸가 이동에 다녀오는 길에 막보았던 운악산 ‘비가림포도’의 단맛을 잊을 수 없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되었다.
강남에서 출발하면 으레 팔당대교를 건너 6번 도로를 이용 양수리 쪽으로 달리다가 조안에서 북한강 좌안을 끼고 45번 도로로 올라간다. 이어 경춘도로를 이용 청평을 지나 조정내에서 좌회전하여 조정천을 끼고 가평군 하면으로 향한다. 하면에 이르면 다시 군부대를 끼고 우회전하여 하판리로 올라가면 표지판이 보이고 좌회전하여 조정천 다리를 건너면 민박촌이 나타나며 왼쪽이 대형 주차장이다.
해발 936m의 운악산은 경기도 가평군 하면과 포천군 화현면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솟아 있는 산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청평에서 북동쪽으로 약 20km, 가평군 현리로부터 약 6km 지점에 있으며 동북 산간 지역에 위치한다. ‘운악산(雲岳山)’이란 이름은 망경대를 중심으로 높이 솟구친 암봉들이 구름을 뚫을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현등사의 이름을 빌려 현등산이라고도 한다.
광주산맥의 여러 맥 가운데 한북정맥에 속한 산으로, 북쪽에는 한북정맥(漢北正脈)이 북동에서 남서방향으로 뻗어있고, 동쪽 계곡의 물은 조종천을 이루고 서쪽과 북쪽 계곡의 물은 농경지를 형성하면서 포천천으로 흘러들고, 남쪽에는 북한강이 동서로 흐르고 있다. 운악산은 화악산,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과 함께 경기 5악으로 불리는 오악 중 가장 수려한 산으로 꼽힌다.
경기의 금강(金剛)으로 불릴 만큼 산세와 기암괴석, 계곡이 잘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주봉인 망경대를 중심으로 봉우리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이 우뚝우뚝 치솟아 있고 주변에는 뾰족봉 · 편편봉 · 완만봉 등의 봉우리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산악미가 빼어나고 한 쪽이 단애와 절벽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아 조망조건이 좋고, 무우폭포, 백연폭포, 궁소, 눈썹 바위, 치마바위, 거북바위 등 자연의 절경이 많아 명승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 서울에서 가깝고, 산행코스도 흥미로워 수도권 일대의 등산객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산이다.
특히 운악산 중턱에는 신라시대 법흥왕 때 창건한 현등사가 주봉인 망경대를 둘러싸고 커다란 바위들이 봉우리마다 구름을 뚫고 솟아있으며, 오래된 절 현등사와 물 맑은 조종천은 매력을 한층 더해 준다.
예전 허름했던 민박촌은 어느새 그럴 듯한 펜션으로 탈바꿈 중이며 식당이 줄을 이었다. 운악산마을펜션 두부골가든에서는 벌써부터 할머니 두 분이 메밀전과 두부를 부쳐놓고 손님을 부른다. 그냥 맛을 보고 가라는 것이다. 내려오면서 들르리라 약속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매표소 옆에는 돌에 새긴 운악산 시비와 그 옆으로 등산로 안내표지판이 우리를 맞이한다. 먼저 운악산 시비에 눈이 갔다. 운악산 만경대를 금강산에 견중준 것으로 보아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운악산(雲岳山) 만경대는 금강산을 노래하고
현등사(懸燈寺) 범종소리 솔바람에 날리는데
백년소(沼) 무우폭포(舞雩瀑布)에 푸른 안개 오르네.
작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현등사의 범종소리와 무우폭포의 멋을 느껴볼 수 있다는 기쁨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 우측에는 깔끔하게 단장해 놓은 비석들이 보였다. 가까이 보니 조병세(趙秉世) · 민영환(閔泳煥) · 최익현(崔益鉉)의 신위를 모신 3충신단이었다. 3.1절에 이곳에 와서 세 분 충신을 기리는 곳에 서니 감회가 새롭다. 1905년 일제는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였으며, 드디어 국권을 침탈하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당시 조병세 선생은 의정대신으로 있다가 가평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하며 이 조약에 서명한 오적(五賊)을 처단하고 하루 속히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며 항소하였으나 왜헌(倭憲)들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고국중사민서(訣告國中士民書)’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충신이다.
또 최익현 선생은 을미의병운동(乙未義兵運動)의 태두였는데 소위 오조약의 체결을 보고 통분하여다시 의병을 봉기하여 왜구토벌에 앞장 서 싸우다 체포되어 대마도로 이송 구금되었으나 단식으로 항거하다가 순국한 충신이다.
민영환 선생은 시종무관(侍從武官)이었는데 을사조약을 보고 대한문 앞에 나가 석고대죄하며 국권회복의 상소문을 올리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국민과 각국공사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충신이다. 이 삼충단은 일제치하이던 1910년 설단(設壇)되었고, 1989년에 복원하고, 매년 11월 25일 제향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충신단 앞에 서니 숙연한 마음에 머리가 숙여진다.
산사에 들어가려면 흔히 일주문을 거치게 마련인데 여기도 예외는 아니다. 일심(一心)으로 진리의 세계를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는 일주문은 본래 기둥을 일직선상에 세웠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말인데, 네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지붕을 얹은 독특한 형식이다. 무게 중심이 위에 있는 것 같은 좀 불안정한 느낌이 든다.
일주문 잘 정돈된 임도는 계곡을 따라 현등사로 이어지는데, 언덕길인 데도 그리 힘들지 않다. 현등사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그 옛날 찾아왔던 때와는 달리 지독한 가뭄에 메말라 물소리를 들을 수 없다. 다만 약 2km의 구간과 현등사 주변으로 우거진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다래, 산철쭉, 산진달래 등이 얼마 안 있어 잎이 돋아나리라는 기대만 가져볼 뿐이다. 다만 활엽수 가지 사이로 푸른 소나무가 자태를 자랑하고 있을 뿐이다. 등산로는 이제 차가 다닐 만큼 잘 닦여 있어 가족, 연인끼리 등반하기에 아주 좋다.
몇 개의 작은 폭포를 지나 매표소에서 약 20분 정도 오를 때쯤에는 운악7경 중 제6경에 속하는 무우폭포(舞雩瀑布)를 만난다. 무우폭포에는 널따란 바위 위에 ‘민영환’이란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이것이 민영환 암각서이다. 구한말 민영환 선생이 이곳을 찾아 기울어가는 국운을 탄식하였다고 하여, 1906년 나세환 외 12명의 뜻에 의하여 각서한 것이며, 그 후 이 바위를 ‘민영환바위’라고도 부른다.
이 바위를 지나면 현등사 전에 두 갈래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측은 철사다리를 통과해 코끼리바위를 지나 안부에 이르는 길이며 왼편은 계속 임도를 따라 올라 현등사에 이른다. 우리는 왼쪽길로 현등사로 발길을 옮겼다.
그 뒤 조선 태종11 년(1411) 함허대사가 중수했고, 순조 29년(1829) 화재를 만나 건물이 전소된 것을 이듬해 최윤 원빈스님이 보광전, 극락전, 요사 등 건물을 중수, 1984년 충현 스님이 극락전, 보광전 등을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약 2km 정도 오르니 숲 속 높은 언덕 위로 현등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현등사 경내에 오르려면 가파른 108계단을 올라야 한다. 우선 가파른 계단을 오르려면 언덕 옆에 서 있는 불이문을 거쳐야 한다. 이 불이문은 절에 이르는 3문 중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으로, ‘불이(不二)’는 진리는 본래 하나라는 뜻으로 붙인다고 한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불교의 세계인 불국토에 이르기 때문에 해탈문이라고 한다. 그런 데 현등사 불이문은 본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으로 빠져 있어 본전으로 올라가는 이들이 실제로 통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무튼 해탈의 경지는 108 계단을 오르는 수행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리라.
어찌되었건 가파른 계단을 숨차게 올랐다. 현등사는 가평군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찰로서, 신라 제23대 법흥왕 27년(540년) 인도에서 온 마라가미 스님을 위하여 창건한 것이라 한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폐허로 버려져 오다가 고려 제21대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이 운악산 중턱에서 불빛이 비치는 곳을 찾아가니 석대 위에 옥등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절을 중건하고 현등사라 했다.
계단을 올라서면 지진탑(地鎭塔, 보조국사사리탑)이다. 현등사 경내 언덕 아래 위치한 지진탑이 본래 여기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기단부 및 1층 탑 신석이 없어져 원형을 잃고 있는 모습이다. 가장 하단에 있는 지석대에는 2단의 괴임대가 마련되었고, 네 귀퉁이의 합각이 뚜렷하다.
한 단을 올라서서 본전 경내 뜰에 들어서면 3층 석탑이 있다. 이 탑은 신라 법흥왕 때 건조한 탑으로 높이 3.7m 자연석반을 지대석으로 하고 그 위에 4각 하대석과 낮은 상태 중석 다시 두터운 상대갑석으로 기단부를 이루고 있으며, 아무런 조각이 없는 4각 옥신 위에 3층 석탑을 세웠다. 그 양식으로 보아 고려 말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어지은 건물의 전면 중앙에는 ‘보광전(普光殿)’, 우측에는 ‘운악산현등사’좌측에는 ‘보합태화루(保合太和樓)’란 현판을 달았다. 사찰 건물 내에는 아미타불 좌불상, 후불탱화, 동종 등 전래의 유물들이 보존되고 있다. 뒤에는 지장전, 극락전, 삼성각 등이 좁은 공간 안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그리고 범종은 범종각이 따로 없이 지장전 외벽 쪽에 설치해 놓았다. 현등사에서 절고개 방향 등산로를 10여 분 오르면 함허대사의 부도탑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화담 박경화의 부도탑이 있다.
등산로는 이 부도탑을 지나면서 급경사의 오르막이 이어진다. 현등사에서 운악산 정상(만경대)까지는 1.4km (소요시간 40분). 운악산 산행에서 가장 쉬운 길은 현등사와 절 고개를 거쳐 주릉까지 갔다가 다시 절고개로 와서 길원 목장으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절 뒤로 나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가파른 산록을 오르게 되며, 능선에서 내려가면 암릉 지대가 되고 다시 능선을 올라간 뒤로 깎아지른 단애가 나타난다. 주봉인 만경대를 중심으로 우람한 바위들이 봉우리마다 구름을 뚫고 솟아있다.
암봉과 암릉 곳곳에 서있는 소나무가 운치를 더해주고, 암봉의 끝에 도달하면 명지산, 청계산, 우목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암봉에서 줄사다리를 타고 안부로 가 능선 길로 들어서면 절고개, 길원 목장 길로 올라온 코스와 만나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마침 3.1절 공휴일을 이용하여 등산객들이 몰려들었다. 점심때가 되자 계곡 곳곳에 자리를 펴고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장비도 없이 아내와 함께 온 터라 쇠줄을 타고 암벽을 오르기 전 지점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하산하였다.
하산하여 약속한 대로 운악 두부골가든( 031-585-6172 )에 들렀다. 달군 철판에 부침을 하면서 구수한 냄새가 구수했다. 홀에는 어느 새 하산한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생두부, 순두부, 두부전골, 청국장 등 두부요리가 주종을 이루는 두부집, 할머니 한 분은 큰 가마솥에서 두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주인장에게 손님이 많다고 하자 주인은 ‘이 집이 ’시름을 두고 가는 집’이라 그렇다고 했다. 어쨌거나 담백한 두부맛은 일품이다.
* 산행코스 : 산행코스는 여러 방향 중에서 자신이 선택하면 된다. 가평군방향 등산로 (소요시간 4~5시간)
(1) 매표소 - 방향표지판1번 - 눈썹바위 - 미륵바위 - 병풍바위 - 철사다리 - 만경대 - 남근석 바위 - 절고개 - 코끼리바위 - 현등사 - 민영환 바위 - 백년폭포 - 하산
(2) 매표소 - 방향표지판2번 - 눈썹바위 - 미륵바위 - 병풍바위 - 철사다리 - 만경대 - 남근석 바위 - 절고개 - 코끼리바위 - 현등사 - 민영환 바위 - 백년폭포 - 하산
(3) 매표소 - 방향표지판3번(민영환 바위 밑) - 눈썹바위 - 미륵바위 - 병풍바위 - 만경대 - 남근석바위 - 절고개 - 코끼리바위 - 현등사 - 민영환 바위 - 백년폭포 - 하산
(4) 매표소 - 민영환 바위 - 현등사 - 코끼리바위- 절고개 - 남근석바위 - 만경대 - 철사다리 - 병풍바위 - 미륵바위 - 눈썹바위 - 방향표지판1번 - 매표소
* 가는 길 : 퇴계원과 광능내 쪽에서 접근할 경우는 47번 국도를 타고 서파에서 우회전해 37번 국도를 타면 현리까지 간다. 현리에서 상판리까지는 금방이다. 경춘가도를 타개 될 때는 청평을 지나면, 가평 검문소가 나온다. 여기서 현리방향으로 좌회전하면 37번 국도다. 이를 타고 현리까지 간 다음 현리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서 바로 우회전하면 상판리로 들어선다. 이 길을 따라가면 현등사 입구가 나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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