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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경북. 울산

감포, 천 년의 전설을 간직한 문무왕릉과 감은사

by 혜강(惠江) 2007. 2. 21.

 

 경주 감포

천 년 전설을 간직한 문무왕릉과 감은사


글·사진 남상학

 

 

 

 

  경주 감포에서는 감은사지와 바다 속에 자리 잡은 문무대왕수중릉을 볼 수 있다. 문무대왕수중릉은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이 죽어서도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고 수장을 원해 만든 수중릉이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기 시작하여 신문왕 때 완성한 절이다. 


  바다에 심취해 있는 동안 이윽고 문무왕릉의 표지판이 보였고, 일행은 차에서 내렸다. 몇  년 만에 다시 들른 문무왕릉. 그 때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문무왕릉의 입구는 늙수그레한 노파처럼 한물간 문화재의 전형을 보는 듯했다. 색이 모두 바랜 설명판과 우두커니 붙어 있는 몇 안 되는 음식점들의 퇴색한 간판. 천 년 넘게 전설을 간직해 온 그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문무왕릉의 입구는 궁색하고 초라했다.  

  겨울인 탓일까. 바닷가  모래사장을 따라 몇 사람만이 거닐고 있다. 문무왕릉은 생각만큼 웅장하지도 신비롭지도 않지만 그러나 언제보아도 인상적이다. 저렇게 평범해 보이는 돌무더기가 천 년 넘게 왕의 무덤으로 구전되어 온다는 자체가 기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해안에 내려서는 순간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바라보니 누군가가 던져준 새우깡을 사냥하기 위하여 바다갈매기들이 곡예비행을 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멋진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해안에  않아 있거나 날고 있는 갈매기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나도 새우깡을 사서 이 멋진 장관 속의 한 사람이 되어 한 동안 눈앞에서 전개되는 이 엄청난 사태를 즐겼다. 

 


 그러나 이곳을 찾을 때마다 여전히 떠오르는 문제는 왕릉의 실존여부와 신빙성의 문제였다. 언젠가 KBS '역사스페셜'에서 문무왕릉의 물을 빼고 그 돌무더기가 진짜 무덤인지, 아닌지 밝히고자 했으나 그곳에 무덤의 흔적이 없음을 보여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규명 작업이 천 년을 이어온 문무왕릉의 전설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21세기의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바, 천 년 동안 간직해온 전설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오늘도 대왕암은 찬 물살을 마다않고 누가 뭐래도 묵묵히 바다를 지키고 있지 않은가. 

 

 <삼국사기> '문무왕'조에는 문무왕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시신을 동해 대왕암에 왕의 유언에 따라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 '만파식적'조에는 그 아들 신문왕이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감은사를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세상에 전해지기는 왕이 용이 되어 그것을 대왕석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 감은사 기록에는 '왜병을 진압하고자 절을 짓기 시작했으나 완공하지 못한 문무왕을 이어 그 아들이 공사를 완공했다고 한다. 그 아버지를 위해 신문왕은 금당 뜰아래에 동쪽으로 향한 구멍을 뚫어놓아 용이 된 문무왕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고 되어 있다. 이름 그대로 왕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장소였던 감은사, 적어도 1년에 한 번 그 아비를 뵈러 왔을 왕은 이곳에 들려 목을 축이며 옷매무새라도 다듬었을 것이다.

 

 

 

 1959년 12월 감은사 삼층석탑의 서탑 해체·보수 때 3층탑 사리공(舍利孔)에서 사리 장엄구(舍利莊嚴具)가 발견되었으며, 이것은 청동제의 사리기(舍利器) 및 사각감(四角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를 가지고 있는 감은사는 황룡사, 사천왕사와 함께 나라를 보호하는 호국사찰로 알려져 있으나, 언제 절이 무너졌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절터에는 동서 양쪽에 두 탑이 나란히 서 있을 뿐, 더 이상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잠시 감포항에 들러 어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를 구경하고 장터에서 과일을 산 뒤 다시 31번 국도를 타고 구룡포를 향해 출발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동해바다. 여러 해 전 친구와 버스를 타고 동해를 여행할 때, 승객이 몇 안 되는 버스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던 노래, 가슴을 후련하게 쓸어내리던 송창식의 ‘고래잡이’가 문득 생각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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