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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인천 자유공원, 한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

by 혜강(惠江) 2006. 12. 20.

 

인천 자유공원

한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

 

·사진 남상학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용봉산 전역을 아우르는 자유공원은 1888년 인천항 개항 5년 만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인천과 함께한 유서 깊은 공원이다. 면적이 6만 4480㎡로 터가 넓고 지대가 높은데다 숲이 울창하여 산책하기에 알맞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유공원은 인천에서 손꼽히는 명소였다. 1888년에 러시아 토목기사 사마틴이 측량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그 이름의 변천은 이 땅의 시대상과 일치한다. 구한말 공원 근처의 각국 지계에 살던 미국, 영국, 중국 등의 거류민들이 공동출자하여 만들어서 처음에는 만국공원(萬國公園)이라고 불렀다.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서공원으로 바뀌었고, 세계대전사에 길이 남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지면서 1957년 10월 3일 개천절에 자유공원(自由公園)으로 개칭되었다. 이처럼 인천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자유공원은 이제 민족상잔의 뼈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인천시민의 안식처로 각광을 받고 있다. 


   구시가지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자유공원에 서면 인천항, 월미도, 작약도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공원 주변 일대는 구한말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였던 창구로서 지금도 정연한 가로망과 상수도, 철도, 공원, 기상대 등의 서구식 도시계획과 근대시설의 유물이 남아있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였던 맥아더장군의 동상(1957)이 서 있고,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연오정, 석정루, 충혼탑, 자유의 여신상 등 현대와 전통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운치와 풍류를 더해준다. 그 외에도 자유공원 안에는 소규모 동물원과 팔각정, 쉼터 등이 마련되어 있다.

   맥아더 동상을 이곳에 세운 이유는 인천상륙작전과 관계가 있다. 인천상륙작전(Battle of Inchon)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UN군 총사령관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시작된 상륙작전으로, 한국전쟁 전반의 전세를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작전 코드네임은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

   그는 인천이 자연조건상 작전을 수행하는데 매우 불리하지만 불리한 여건을 역이용, 상대방의 허점을 찔러 기습공격을 감행한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E.M. 아먼드 장군의 지휘 아래 한국의 백인엽(白仁燁)대령이 가세하여 합동으로 작전을 수행, 양동작전(陽動作戰)을 펼쳤다. 상륙부대의 병력은 약 7만여 명에 달하였다. 


   작전의 제1단계는 월미도(月尾島)의 점령으로 시작되었다. 새벽 5시 시작된 공격준비사격에 이어 미 제5해병연대의 3대대가 전차 9대를 앞세우고 월미도 전면에 상륙하였다. 월미도는 2시간 만에 완전히 장악되었다. 미군은 부상 7명의 경미한 피해를 입었으며, 인민군은 108명이 전사하고 106명이 포로로 잡혔다.

   제2단계는 국군 제17연대, 미군 제7사단, 미군 제1해병사단의 주도로 인천반도 공격으로 이어졌다. 인민군 제18사단과 인천의 경비 병력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미군 제1해병사단과 국군 해병 제1연대는 성공적으로 인민군의 주력이 규합할 시간적 여유를 빼앗아버리고 인천 장악에 성공하였다.

  이 작전으로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의 보급로를 차단함으로써, 북한군은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퇴각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라 서울을 탈환하기에 이르렀다. 이 작전은 6·25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난 UN군과 한국군이 초기의 수세에서 벗어나 대반격을 취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맥아더 동상은 6ㆍ25전쟁 중 획기적 전환을 가져온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 공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고려하여 자유공원 정상에 높이 5m, 둘레 7m의 크기로 1957년 9월15일 인천 시민들의 성금에 의하여 세워졌다. 오른쪽 손에 망원경을 들고 상륙이 최초로 이뤄졌던 월미도를 내려다보는 자세로 상륙 7년째인 송학산 정상에 섰다.

 

  지금 동상의 주인공 맥아더(1880-1964년)에 대한, 특히 한국전쟁의 총사령관으로서의 공적에 대한 찬ㆍ반은 엇갈려 있다. 그러나 그가 한반도의 서해 입구인 인천에서 떨친 상륙작전 성공에 대한 ‘역사성’과 ‘장소성’에 대한 평가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부 친북 시민단체들이  ‘맥아더 동상이 제국주의 상징’이라며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에게 나는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만약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이 없었다면 한국전쟁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라고.    더구나 맥아더 동상이 무슨 친미의 증거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으로서 국가 차원에서 세운 것도 아니다. 친미의 논쟁을 접어두고라도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함으로서 어쨌든 인천 탈환에 성공한 건 사실 아닌가. 그 사실에 감사하며 인천시민들이 돈을 모아 세운 것이 맥아더 동상인데, 철거 주장은 인천 시민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맥아더 동상 뒤편에는 인천학도의용대 호국기념탑과 기념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학도병임을 표현하기 위한 ‘연필탑'이 인상 깊다. 

  또 공원의 정상에는 100주년기념탑이 서 있다. 한미수호통상 조약은 1882년 5월 22일 조선 전권대신(全權大官) 신헌(申櫶), 부대신 김홍집(金弘集)과 미국 전권대사 슈벨트 제독사이에 이곳 인천 화도진에서 4월 4일 전문 14관(款)으로 이루어진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체결되었다. 

  이로써 미국은 한국과 국교를 맺은 최초의 구미국가(歐美國家)가 되었으며, 이후 영국·독일 등 유럽 국가와 체결하는 수호조약은 거의 이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준용하였다. 자유공원에서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는 파라다이스호텔(옛 올림포스호텔) 자리는 1882년 조선이 서구 국가 중에는 처음으로 미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한 곳이라 전해진다. 

   자유공원 정상에 위치한 이 기념탑은 조약체결 100주년이 되는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韓美修好通商條約)체결을 기념하고 나아가 양국 간의 상호신뢰와 우호협력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대형 삼각형 청동판으로 만들어진 현대미술 조형물로 된 이 기념탑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세워져 우뚝 서 있다. 

 

   원래 그 자리에는 1905년에 세워진 영국인 존스톤의 별장(別莊)이 있었다. 당시 건축물의 백미로 손꼽히는 이 건물은 성곽풍의 장엄함 때문에 한때 인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팀난방시설 건물이란 이력을 지닌 그 별장은 안타깝게도 한국전쟁 때 함포사격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수림이 우거지고 경치가 아름다운 이곳에는 청춘남녀들을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안식처 구실을 한다. 청소년 쉼터도 있다. 특히 아침이면 많은 시민들이 에어로빅, 배드민턴, 체조 등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푼다.

 

  석양 무렵 드넓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떼 지어 날아오는 수천마리 비둘기의 비상(飛翔)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공원 정상에서 인천항과 월미도를 바라보는 맛도 그만인데, 특히 늦은 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인천항의 야경이 아름다워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인근에 차이나타운, 신포동시장, 인천백화점, 파라다이스호텔 등이 있다. 약간 멀리는 연안부두, 월미도가 보인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내려오는 길에 홍예문을 보고 오는 것도 좋다. 일본인들이 자국의 조계와 축현역(현 동인천역)을 연결시키려고 응암산 줄기를 뚫어 1905년 착공했다. 1908년 준공했는데 고개문의 형태가 무지개와 같아 홍예문이라 고 불렀다. 

 

 내년부터는 자유공원 일대가 100년 전 모습으로 되돌아갈 계획이다. 인천시가 277억을 투입 하여 2011년까지 마무리 할 계획으로 철거 시위가 발생했던 중구 북성동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일대 2만 600여 평에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들과 옛 만국공원을 복원키로 한 것이다.

 

  우선 1900년대를 전후해 일대에 들어섰던 근대건축물 가운데 미국, 영국, 러시아, 독일 등 4개국의 대표적 건물 5채를 복원하고,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 자리에 있었던 영국 기업체 사택인 존스턴 별장을 복원할 것도 구상 중이다. 별장 건물 안에는 개항문화자료 관, 전망대, 카페테리아, 기념품판매점 등이 들어선다.

 

   또 도보관광탐방 코스로 개발된다고 한다. 인천시 중구청이 인천역~차이나타운~자유공원~근대건축물 구역을 둘러보는 도보관광 코스를 마련, 운영에 들어가는 것. 탐방 내용은 근대문화 발상지 탐구, 근대 건축양식과 개항기 문화유산 답사 이해, 차이나타운의 다양한 풍물 소개, 월미 관광특구 소개 등이다. 

 

 

 


* 가는 길 *

승용차 : 경인고속도로 또는 제2 경인고속도로 -> 월미도 방향 -> 인천우체국 -> 홍예문  -> 자유공원
전철 : 전철 이용시 자유공원은 경인전철 동인천역과 인천역을 이용하는 게 가장 편리하
  다.  동인천역을  이용할 경우 지하상가를 이 용해 대한서림 옆 골목으로 나와 위로  300m 정도 오르면 홍예문이 나온다. 그곳부터가 자유공원이다.  아니면 종착역인 인천역에 내려 앞쪽 언덕길로 오르면 북성동 차이나타운이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 바로 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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