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
산세 수려한 경기의 소금강
- 원효와 요석공주와의 사랑이야기가 서린 자재암 -
글·사진 남상학
과거에는 멀게만 느껴졌던 소요산이 지하철 1호선이 소요산까지 연결되면서 의정부역에서 소요산역까지 32분, 서울 종로에서 1시간 20분이면 소요산역에 닿을 수 있어 멋진 소요산의 산세를 쉽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소요산은 경기도 동두천시와 포천군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산세가 아름다운 곳이다. 높이 587m의 작은 산이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주변경관이 뛰어나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린다. 옛날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봉래(鳳來) 양사언(楊士彦) 그리고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작자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유유자적하듯 이 산을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逍遙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사육신이 죽음을 당하자 세상을 등지고 한때 스님이 되었다. 그가 스님이 된 뒤로 방방곡곡을 바람처럼 떠돌아다닐 때 이곳을 소요했을까? 여기서 김시습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 1472년 경기도 양주의 시골에 정자를 세우고 조그만 화전을 일구면서 시 쓰기 할 때 일이다. 언젠가 서강(西江)을 여행하다가 보았던 세조의 수족인 한명회(韓明澮)의 시를 인용해 자신의 생각을 적은 일이 있다.
靑春扶社稷(청춘부사직) 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
白首臥江湖(백수와강호)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
그는 위 한명회의 시에서 ‘扶’자 대신 ‘亡’자를, ‘臥’자 대신 ‘汚’자를 넣어 글을 뜻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靑春亡社稷(청춘망사직) 젊어서는 나라를 망치고
白首汚江湖(백수욕강호) 늙어서는 세상을 더럽힌다.
모사와 책략에 능하고 처세에 밝은 한명회에 빗대어 자신의 저항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배꼽을 잡고 웃으며 이 시를 읊었다는 일화가 있다.
소요산의 중심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수련했다는 자재암(自在庵)이 자리 잡고 있다. 자재암을 중심으로 오른쪽 끝머리에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가 주봉인 의상대, 바로 옆으로는 나한대가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 가면서 주봉아래쪽으로 보이는 우뚝 솟은 바위가 칼바위, 그 옆으로 상백운대, 중백운대, 가장 왼쪽에 하백운대가 서 있다. 산세 수려하여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컫는다. 따라서 소요산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주차시설과 편의시설, 식음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소요산역이 있는 소요동이 산행의 들머리가 된다. 들머리 입구 왼쪽에는 구한말 독립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동두천 출신 홍덕문의 추모비가 있고, 다목적 광장에는 우측에는 식당가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개천을 끼고 요석공원이 있고, 근처에는 독립유공자추모비 등이 있고, 공원이 끝나면서 바로 자재암 일주문이 있다. 소요산 입구에서 자재암 일주문까지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이를 지나면 소요산의 얼굴이라 일컬어지는 원효폭포와 원효대를 만난다. 큰 소나무 숲 그늘 아래로 떨어지는 원효폭포는 수량이 많을 때는 상당히 장관이다.
폭포 앞으로 난 속리교를 지나서 원효대를 넘어 오르면 자재암으로 가는 길이다. 제법 산세가 가파르고 물이 어울리는 지점에 이르면, 이곳에서 노닐었다는 서화담과 헤어져 부른 황진이(黃眞伊)의 시조 한 수(首)가 문득 떠오른다.
산은 옛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단순한 자연인 산과 물의 대조를 통하여 의생의 허무함을 관조적으로 읊은 이 작품처럼 인간은 덧없는 모습일지 모른다. 물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들면 왼쪽 가파른 언덕 위에 백운암(白雲庵)이 보이고 곧바로 자재암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자재암(自在庵)은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고 수련했다는 곳이다. 거대한 바위산 협곡에 위치하고 있어 수도처로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또 자재암은 조선 세조 10년에 간행된 반야바라밀다심경 약소언해본이 발견되어 보물 1211호로 지정되어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4년 암자의 서책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낙장 하나 없는 완벽한 언해본이다.
특히 자재암은 원효와 요석공주(瑤石公主)의 사랑이야기가 전해져 찾는 의미가 남다르다. 김춘추의 둘째누이인 요석공주는 첫 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고 홀로 되었는데 불심이 깊었던 공주는 인격이 고매하고 화랑시절 백제전투에도 참가했던 원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는 667년 문무왕 7년경(51세) 부왕인 태종무열왕이 과부공주인 요석(瑤石)과 만났다. 원효는 '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 하늘을 떠받칠 재목을 만들겠노라." 호언하였는데 그 때 만난 사람이 요석공주. 사랑했던 두 사람은 얼마 후 설총을 낳았다. 호언대로 원효가 요석을 통해 만든 재목이 '설총'이라는 대학자다.
이후 원효는 요석공주와의 관계 이후 속세를 버리고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고 무애의 보살행을 떠나 은둔하는데, 그 은둔지가 바로 소요산이다.
그 후 요석공주는 원효대사와 사이에 낳은 어린 설총을 데리고 소요산 기슭에 와 공주봉 기슭에 별궁을 짓고 살면서 지금의 일주문 부근에 와서 원효대사가 수도하는 곳을 향해 세 번 절하게 하고 학업에 정진토록 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원효(元曉 617-686)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혼란한 시기에 의상(義湘)과 더불어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는 최대의 학자이자 사상가였다. 그는 당나라에 유학하려 두 차례나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 되돌아와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성한 저술을 했고, 그의 사변력 통찰력과 문장력에 대한 명성이 항간에 자자하였다.
그는 광대들이나 쓰는 무애박을 치고,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무애춤을 추며 방방곡곡 떠돌며 백정, 기생, 시정잡배, 몽매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코흘리개 아이까지도 부처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원효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발전한다. 원효가 소요산 바위굴 (지금의 나한전)에서 수도를 할 때 비를 흠뻑 맞은 어떤 미모의 여인이 초당을 찾아들었지만 원효는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 여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여인이 바로 관세음보살이었고, 관세음보살로부터 의지력을 시험받은 원효대사는 초당자리에 암자를 짓고는 '내 마음 하나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지신의 거처를 ‘자재암(自在庵)’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수행 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던 원효의 불심이 놀랍다.
이렇듯 소요산에는 의상대 옆에 있는 공주봉(원효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이름),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 등 곳곳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에 얽힌 전설이 담겨 있다.
이곳에 가면 원효가 과연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취가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높은 산 불끈 솟은 바위는 지혜로운 이가 들 곳이요(원효대), 푸른 소나무 깊은 골은 수행자가 깃들 곳이니라(자재암)." "주리면 나무열매를 먹어서 주린 창자를 달랠 것이요(소요산), 목이 타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갈증을 식힐 것이니라(원효폭포)." 등등
자재암은 규모는 작지만 주변 생김이 아주 독특하고 신비롭다. 지금 자재암 앞으로 길이 나 있지만 예전에는 천애 절벽위에 제비집처럼 걸려 있었을 모습이다. 자재암 마당 앞에는 촛대처럼 뾰족 쏫은 옥류봉이 있다.
그 아래로 자연석굴인 나한전과, 청량폭포가 바로 옆으로 떨어져 신비로움을 더한다. 자연 석굴 속에 만들어진 나한전은 촛대처럼 뾰족하게 솟은 옥류봉 아래 굴속에 부처를 모시고 있다. 원효가 해탈의 경지를 얻었다는 바로 그 자리다. 석굴 앞에는 원효샘이라는 작은 샘물이 있다. 원효가 수도를 할 때 없던 물이 바위 속에서 솟아났다고 하는 명수다.
산행을 마음먹고 온 사람이 아니면 대개 자재암까지만 오르고 내려온다. 주차장에서 도로를 따라 걸어 자재암의 일주문을 지나 자재암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소요산은 자재암을 중심으로 오른쪽 끝머리에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가 주봉인 의상대, 바로 옆으로는 나한대가 있고, 그 왼쪽으로 가면서 주봉아래쪽으로 보이는 우뚝 솟은 바위가 칼바위, 그 옆으로 상백운대, 중백운대, 가장 왼쪽에 하백운대가 서 있다. 그리고 의상대 오른쪽으로는 526m의 공주봉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여행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소요산 등반은 일반적으로 왼쪽 능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재암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으로 접어들면 길이 매우 험해진다. 소요산은 아기자기한 암봉과 능선이 조화를 이룬 전형적인 원점 회귀형 산이다.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는 길도 있으나 능선을 종주하다시피 하는 코스는 하백운대를 거쳐 중백운대로 오르는 길이다. 중백운대까지는 가파른 암릉이어서 조망도 좋고 올라가는 맛도 상쾌하다.
중백운대-상백운대 능선은 대체로 평탄한 산길로 이어지나 그렇다고 조망마저 평범한 것은 아니다. 내려다보이는 소요산 골짜기 쪽은 단애를 이루고 있다. 중백운대와 상백운대 중간쯤에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 길로 내려가면 선녀탕, 선녀폭포를 보고 자재암으로 내려갈 수 있다. 선녀탕 일대에는 주능선에서 뻗어 내려온 암릉이 톱니처럼 날카롭고 단애를 이룬 곳곳에 소나무가 서 있어서 절경을 이룬다.
자재암에서 상백운대까지는 1시간쯤 걸린다.상백운대부터 나한대까지는 소위 칼바위 능선. 바위가 많고 오르락내리락을 되풀이한다. 몇 군데 적당한 높이의 절벽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더없이 아기자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나한대에 오른 후 소요산의 주봉인 의상대까지는 100m이상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급경사 길이다. 의상대에 오르면 동두천 시가지가 보이고 멀리 남쪽으로 도봉산과 북한산, 수락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나한대에서 의상대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린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이 산에 와 소요했던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 15171584)은 한편의 시를 읊었으리라.
태산(泰山)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히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그는 이 작품에서 사실적인 감각을 살리기 위해 현존하는 산의 이름을 빌려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예로부터 '태산'은 중국 산동(山東)에 있는 높고 큰 산으로 알려져 있다. 어렵고 힘든 목적이 있다면 그것을 향해 천천히 성실하게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실천으로 옮겨 보지도 않고서 어렵다는 생각만으로 도중에 포기하거나 기피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스스로 꾸준히 노력하면 필경에는 성공을 거두고야 만다는 교훈을, 높고 큰 태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여 시사하고 있다.
의상대 바로 밑에서 구 절터로 내려오는 길이 있으나 이 길은 경사가 심하다.의상대에서 공주봉까지는 30분정도 소요된다. 완만한 능선을 타다가 가파르게 조금만 오르면 주봉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공주봉을 지나 내려가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 하산하면 원점회귀 산행은 끝이 난다
하산 길은 급경사이나 그렇게 위험한 코스는 아니다. 단, 겨울에는 미끄러질 염려가 있다. 넉넉잡아 3시간이면 산 전체를 종주할 수 있어서울근교에서 당일 일정으로 다녀올만한 최고의 산행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주요등산코스의 구간별 소요시간은 다음과 같다.
* 코스1 : 하백운대-중백운대-선녀탕-관리소(1시간 30분)
* 코스2 : 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샘-관리소(2시간 30분
* 코스3 : 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나한대-관리소(3시간)
* 코스4 : 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나한대-의상대-관리소(3시간 30분)
* 코스5 : 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나한대-의상대-공주봉-관리소(완주, 4시간)
자재암의 일주문 안쪽과 주차장 뒤쪽으로 항시 솟아나는 약수가 있어 물통을 한두 개쯤 준비 해가도 좋다. 동두천시가 직접관리를 맡아 주변이 청결하고 질서가 잘 유지되어 있는 곳이다. 또 주차장 옆과 매표소를 지나 개울 건너 우측으로 식당이 많아 얼마든지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관리사무소 031-860-2065)
* 가는 길 : 1호선 전철을 타고 소요산역에 내리거나 상봉터미널에서 직행버스가 12분 간격으로 출발한다.(1시간 40분소요). 완행은 수유리에서 15분 간격으로 출발한다.(1시간 20분소요). 만일 승용차를 가지고 가는 경우 3번 국도를 타고 의정부, 동두천을 거쳐 전곡으로 진행하다 보면 소요산 안내 표지판이 나오고, 여기서 우회전하면 된다. 강남에서 가려면 동부간선도로를 이용하면 좋다.
* 주변여행지 : 신북온천(20분), 열두개울계곡(10분), 회암사(30분), 재인폭포(40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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