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및 정보/- 중국, 대만, 몽골

타이베이 공묘(孔廟)와 양밍산국가공원

by 혜강(惠江) 2006. 8. 25.

 

 

중국의 위대한 스승

 

공자의 타이베이공묘(孔廟)와 양밍산(陽明山)국가공원

 

·사진 남상학

 

 

 

 

 

 

  타이완의 도시라면 어느 곳이든 공자묘가 있게 마련이다. 이들 공자묘 가운데 타이난(臺南)의 공자묘가 단연 으뜸이지만 1925년 건립된 타이베이의 공자묘 역시 전통적인 중국 건축의 아름다운 선을 자랑한다.

 

검소한 타이베이 공묘(쿵스먀오, 孔廟)

 

 

   타이베이 공자묘는 대룡가(大龍街) 건너 오른쪽에 있다. 이 신전은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면서 스승 중의 하나로 존경받고 있는 공자와 다른 여러 철학자들을 경배하는 곳이다. 정전(正殿) 중앙에 공자(孔子), 그 좌우에 안자(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의 4인을, 대성전의 양측 건물에 공자의 제자 72인과 중국 역대의 현인 150인을 모시고 있다.

   춘추시대 말기의 난세에 노(魯)나라에서 태어난 공자의 이름은 구(丘), 자(字)는 중니(仲尼). 공자(孔子)라고 할 때의 <자(子)>는 존칭이다. 그는 밖으로는 예를 실행하여 잃어버린 질서를 회복하고, 안으로는 인(仁)으로써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고대적·미신적인 하늘의 중압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고, 합리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폈다. 이러한 그의 사상에 공명한 인사들이 그의 문하에 모여들었고, 여기서 유교교단(儒敎敎團)이 발생하였다. 

   그는《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편찬하여<예(禮)><악(樂)>을 제정하였고, 《역경(易經)》을 주석(註釋)하였으며, 《춘추(春秋)》를 창작하였다. 오늘날에는 이 점이 의문시되고 있지만, 이들 경전(經典)이 과거에 중국(中國)에서 권위를 가졌던 것은 공자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신앙(信仰) 때문이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그 제자 또는 재전(再傳)의 제자가 공자의 언행록(言行錄)을 편찬하였다. 《논어(論語, 20편)》가 그것으로, 공자의 사상을 알기 위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공자는 자신을 성인(聖人)이라 칭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100년 뒤 맹자(孟子)는 명료하게 공자를 성인이라고 하였다. 한(漢)나라 때 유교가 국교(國敎)가 되자(BC 136년), 공자는 점점 신비적인 예언자(豫言者)로 취급되었으며, 전한(前漢) 말에는 시호(諡號)가 추증되었다. 후한(後漢) 이후, 역대 왕조는 학교라든지 공자묘(孔子廟)에서 공자와 그의 고제(高弟)를 모시는 것이 상례가 되었다.

 

  그러나 신해혁명(辛亥革命, 1912) 뒤 우유[吳虞(오우)]와 루쉰[魯迅(노신)]은 공자를 중국의 봉건적 누습(陋習)의 근원이라고 하며 공격하였다. 그 논법(論法)은 1973년의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에서 정점(頂點)에 이르렀으나 4인방(四人幇)의 실각 이후 진정되고 있다. 

   공자는 검소함을 소중히 여겼고, 검소함은 그의 신전의 주된 특색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신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복잡하고 값비싼 장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일상적으로 흔하게 볼 수 있는 돌사자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의 기둥, 문 그리고 창문 등에는 명각도 없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이 대가(大家) 앞에서는 감히 자기의 학문의 깊이를 자랑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신전의 본당인 대전 홀에 서 있으면, 천장 중앙에 이어진 한 쌍의 직립 원기둥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책을 숨기는 원통"으로 불리며 여기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진왕조의 첫 번째 황제(통치기간 246 - 241B.C)는 그의 백성들이 문맹자이면 그의 명령에 도전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는 책들을 불살랐고 학자들을 살해하였다. 많은 학생들은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던 서적들을 구하기 위하여, 굴뚝처럼 보이도록 설계한 지붕 정면의 통속에 이 책들을 숨겼다. 

   오늘날 공자묘에서는 이러한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정열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상징물들에 대한 전시를 계속하고 있다. 공자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행사가 9월 28일에 행해지고, 이날은 또한 스승의 날로서 국정 공휴일이다.  어린 학생들과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이곳에서 합격을 기원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 이채롭다.

 

  공자를 시조로 하는 유교의 가르침은 단순히 학문적인 사상에 머물지 않고 2,000년 이상에 걸쳐서 중국의 정치·사회·가정의 도덕률의 기초로서 신봉되어 왔다. 또한 공자는 교사의 사표로서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웅대한 전망을 자랑하는  양밍산국가공원(陽明山國家公園)

 

 

  타이베이 도심에서 약 16km 떨어진 곳에는 해발 443m의 중국식 정원인 양밍산 국가공원이 있다. 중국의 유학자 왕양명(王陽明)의 이름을 딴 것으로, 왕양명은 중국 명(明)나라 사상가이며. 저장성(절강성) 위야오(여요)에서 출생했고. 양명학(陽明學)의 시조가 되었다. 

 

  자는 백안(伯安).  그는<심즉리(心卽理)>라는 근본입장을 확립하여 외물(外物)에서 이(理)를 구하는 주자학적 격물론(格物論)에서 탈피하여, 마음속의 부정(不正)을 없애고 양심을 발휘한다고 하는 새로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해석을 제시하였다.

  이 공원은 치싱산(七星山)이나 따둔산(大屯山) 및 타이베이 평야와 담수하(淡水河) 등의 웅대한 전망이 일품이다. 또 멋진 폭포, 그림 같은 호수, 계단식 논농사, 화산 분화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 등이 있다. 더욱이 공원 내 단층지형에 자리한 온천 밀집지대에는 샤오요우컹(小油坑)의 유황분기공 이외에 칭티엔강(擎天崗)의 광활한 초원, 따둔자연공원(大屯自然公園)의 습지생태는 이 지역의 자연경관 중 으뜸이다.

 

   양밍산 중턱에 있는 샤오요우컹(小油坑)에 올라가려는 등산복 차림의 대만인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샤오유컹은 유황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휴화산 분화구이다. 등산로를 따라가면 경치를 즐기며 2시간 정도 이상적인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이 지역은 도보여행객을 위해 잘 단장해 놓은 보도와 등산로를 갖춘 세계수준의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매년 2~3월경 꽃 시즌에는 수천 명의 상춘객들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양밍산 지역은 타이완에서 화산지형이 가장 잘 발달한 곳이다. 화산활동의 흔적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곳으로는 유황분기공과 화구호, 원추화산체, 화산식물 등을 볼 수 있는 따둔산과 치싱산 등이 있다. 43-58도의 희뿌연 유황천으로 피부병, 신경통에 효험이 있으며 온천물이 폭포를 이루며 흐를 만큼 양이 풍부하다. 


  우선 눈길을 끄는 곳은 지열곡(地熱谷). 80~100도 되는 물로 가득찬 연못이다. 예전에는 울타리가 없어 입구에서 구입한 날계란을 연못에 담가 삶아 먹을 수 있었지만 한 어린이가 물에 빠져 몸을 덴 이후 울타리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끝>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