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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중국, 대만, 몽골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관, 중국 역사가 한 눈에

by 혜강(惠江) 2006. 8. 23.

 

타이베이 고궁박물관


중국 역사가 한 곳에,  70여만 점 중국 유물의 보물 창고 

- 송대(宋代)부터 명(明), 청(淸)까지 - 

 

 

 

 글·사진 남상학

 

 

 

 

 

   국립고궁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화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중화예술의 보고(寶庫)로, 중국 5000년 역사를 아우르는 진귀한 보물 62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일단 박물관에 도착하면 큰 규모에 압도당한다. 도자기, 청동기, 옥기, 조각, 자수, 서화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종류별로 감상할 수 있다. 그 종류의 방대함과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고 있으며, 매일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관람하는 대표적인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 앞에는 장제스 총통의 동상이 서 있다.

 

 

대륙의 유물이 타이페이에 온 까닭

 

 

장제스(蔣介石) 총통 시절인 1965년 타이베이시에 만들어진 이 고궁박물관은 런던의 대영박물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그리고 러시아의 엘미타주 미술관과 함께 ‘세계 5대 박물관’으로 꼽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문화, 즉 동양문화 유산의 정수만을 모아 놓은 집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시유물 대부분은 1천여 년 전인 송나라 초부터 수집되어진 것들이고, 또한 고대 중국 황실의 소장품 중 최고의 것들이라고 한다.

  고궁박물관의 소장품들은 중국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해가던 1948년 장제스가 내전을 피해 베이징에서 타이베이로 수도를 이전하면서 중국 본토에 있던 청(淸), 명(明)나라 시대에 황제가 직접 구입하여 보관하던 유물을 타이완으로 옮겼다.

 

    “나라를 잃고는 살 수 있지만, 문물을 잃고는 살 수 없다”고 말한 장제스는 당시 소장품들을 군인의 목숨과도 안 바꿀 정도로 강한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왜냐 하면 소장품 대부분이 중국의 국보급 유물로 그 값어치가 중국 대륙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궁(故宮)’이란 말뜻 그대로 '옛날 궁전'을 뜻하는 것으로 현재에도 베이징에 남아 있는 자금성을 가리킨다. 고궁박물원에 전시된 문물도 원래는 베이징의 고궁인 자금성에 소속된 것이었다가, 근대 중국 혼란기에 수차례의 전란 중 파괴, 약탈의 위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요 문물은 베이징(北京)에서 난징(南京)으로, 그리고 다시 이곳 타이베이(臺北)로 아주 멀리서부터 몇 차례 운반 과정을 겪었다.

 

 

 




70여만 점 중국 유물(遺物) 소장 

 

  

   타이베이의 북동쪽 약 8km 지점 스린취 와이상시의 산골짜기에 지어진 고궁박물원은  전통적인 중국 중세기 궁전 건축 양식에 비취색의 유리기와를 얹은 4층 전시관, 왼쪽에 행정집무 빌딩, 본관 오른쪽에는 중국 송대의 정원을 복원해 놓은 즈산웬(至善園)이 펼쳐져 있다.

   박물관 실내는 바닥부터 천정까지 온통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다. 타이완 서북쪽 화련 지방의 석산에서 나는 대리석을 이용한 것이다. 본관 뒷산 지하에는 온도와 습도를 완벽에게 조절할 수 있는 보관 창고를 지어, 1천여 년에 걸쳐 송에서 청나라의 역대 황제들이 수집, 애용한 문물 70여만 점을 보관하고 있다 한다. 

   총건평 5,378평, 4층 본관은 1∼3층이 전시실, 각층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견학하도록 동선이 이루어졌다. 70여만 점의 소장품 가운데 약 2만 점이 전시돼 있으며, 절세의 걸작으로 불리는 수백 점의 상설 전시 이외에는 3∼6개월 단위로 전시품이 바뀐다 .

 

   그렇게 되면 소장품을 다 둘러보는 데만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4층에 중국식 찻집 '싼시탕인차스'가 있어 맛있는 차와 만두를 판다.

 

 

 



중국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유물들

 

   박물관 1층에는 중국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사진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은 105호실의 청동기부터 시작해 109호실의 갑골문, 111호실의 은허(殷墟)로 이어진다. 이 문물들은 상(商)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문물들인데, 1층 왼쪽에는 '근대관'으로 중국의 근대와 현대의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관을 지키는 귀여운 모습의 수호신들이 자리한 111호는 은허실(殷墟室)이다. '후가장(候家蔣) 1001호 대묘(大墓)'라는 타이틀로 전시되었는데, 허난성(河南省)의 안양에서 1932년 박굴된 은상(殷商) 시대 황제의 묘는 남북 69m,동서 46m에 이르는 거대한 관이 지하 10m 되는 지점에 있었는데, 도굴에 의해 유골과 보물, 문헌 등이 사라져 아직 누구의 무덤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대리석과 옥, 해골 조각, 청동기와 도자기 파편 등의 부장품이 다수 출토됐으며 사람과 짐승을 합체한 수많은 석조상에는 당시의 종교 관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곳의 작품들은 군데군데 색깔만 바랬을 뿐, 신기할 정도로 온전한 상태의 청동기들이 까마득한 수천 년 세월의 간격을 무상케 한다.  

 

  교과서에서만 배운 갑골문이 거북이 뼈에 깨알처럼, 조잡하게 적혀 있다. 왕의 귓병, 왕족의 탄생 등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의 이들 문자는 마치 현대인들의 고민을 적어 놓은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은허 갑골문’실은 고대 중국인과의 만남을 더욱 생생하게 한다.

   '갑골문'은 약 3천 년 전의 상(商)나라 시대에 거북이의 등껍질이나 소뼈 등에 점술가가 문자를 새긴 후 새긴 껍질을 불에 구울 때 생기는 금이 간 모양으로 길흉을 점치던 것이다. 이 갑골에 새겨진 문자가 갑골문자인데, 세계최고의 문자이자 한자의 원형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발견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갑골문자 4천 자 가운데 반은 아직까지 해독조차 하지 못했다. 
 
   다음은 청동기 시대 유물실. 중국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2000년 이전 하(夏) 시대부터 시작해 기원전 1000년께의 상(商)∼춘추시대에 전성기를 맞는다. 청동기 가운데도 특히 존중된 것은 예법인 솥(鼎)으로, 권력과 통합의 상징이었다.

 

  또한 술잔은 종류, 형태와 함께 명칭도 다채로운데 무엇보다 고대부터 술 문화가 발달했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밖에 계랑기와 식기, 조리 등 일상생활 잡화로 쓰인 청동기에도 디자인이 멋진 제품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그 가운데 황제가 쓴 것에는 그 상징인 용의 문양이 절대 빠지지 않고 사용되었다.

 

 

 

상(商) / 반룡문 반(蟠龍紋盤)

 

▲상나라 말 갑골문자가 씌어진 거북의 등뼈, 갑골각사

 

 

▲청나라 때 옥으로 만든 돼지고기 모양의 돌(肉形石)

 

▲상(商) 말기 아추방궤(亞醜方?), 산동 익도(益都) 소부둔(蘇埠屯)에서 출토

 

 

중국을 대표하는 서화(書畵)와 도자기(陶瓷器)


   2층엔 송·원·명·청 시대의 도자기, 서화 등이 주로 전시돼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화려하거나 수수하거나 담백하거나 정교한, 각양각색의 도자기들로 눈요기를 실컷 할 수 있다.  도자기실, 회화실, 서예실 등을 돌아보면 중국의 문화적 힘을 새삼 감탄하게 된다.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조각품들이라든가, 수백 년 전의 작품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서예 작품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화려한 색을 담고 있는 공예품들에서는 일찍이 서구와 교류한 국제도시로서의 장안(오늘의 서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명·청대의 도자기와 우리의 도자기의 차이점이 느껴진다.  

   글씨와 수묵화는 중국에서 시작하고 발전해온 예술이다. 서(書)는 정(靜)과 동(動) 두 파로 나뉘었는데 정파에서 글씨의 원조는 진 나라의 왕희지(王羲之)작품인 '쾌설시청첩(快雪時晴帖)'이 유명하다. 1층 '화하문화와 세계문화' 코너에 벌레 먹은 구멍까지 재현한 모사품이 전시되어 있다. '동'파의 글씨는 악동하는 듯한 강력함이 있다.

  당의 회소(繪素)가 그린 '자서첩(自敍帖)'은 그 전형으로 불린다. 서도 역사 속에서 새로운 작풍에 속했던 송의 4대 서가인 채양(蔡襄),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미불(米 )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11세기 북송(北宋)의 정계에서 활약했으며, 왕헌지(王獻之)가 구축해온 유풍(遺風)부터 안진경(顔進卿)의 새로운 작풍까지 능숙하게 흡수해, 대범한 서풍을 구축했다.

  중국 화풍은 선왕과 폭군을 대비해 벽에 그린 인물 풍속화를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중국의 그림은 인물화를 필두로, 산수화· 화조화· 죽석화·종교화 등 10종류로 나뉘어 발전해 왔다. 중국 화단에서 일류 화가로 불리려면 그림의 기교는 물론, 글씨에도 능해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교양이 필요했다.

  소장하고 있는 글씨는 약 1만 5천 점, 그림 약 1만 2천 점으로 모두 엄청난 수를 자랑하지만 서화는 손상되기 쉽고 퇴색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1회의 전시 기간은 3개월 이내로 제한하는 등 보존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한다.

   다음은 도자기실. ‘도자기’라면 누구나 중국을 떠올릴 정도로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도자기가 해외에 수출되기 시작한 송대(10∼13세기), 명대 이후에는 세계의 시장을 중국이 거의 독점해 왔다. 중국의 각 시대별 도자기의 최고봉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  도자기의 소장 작품수가 무려 2만 4천 점으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도자기는 신석기 시대(약 8천년 전)의 채도(彩陶)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며 긴 역사와 광범한 지역, 그리고 고도의 기술, 권력자의 사치스러운 욕구 등에 의해 태어난 작품은 한없이 심오한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고대의 도자기, 유명한 당 삼채, 경덕진(景德鎭) 등 세련된 도자기의 변천사, 지역성이 가득한 가마의 특징 등이 볼 만하다. 특히 송대부터 역대 왕조는 직영 가마(관궁)를 설치하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격전을 벌여왔다. 송대의 대표적 가마로서 백자가 훌륭한 정요(定窯), 청자의 여요(汝窯), 자주색의 요변(窯變)이 독특한 조요(釣窯), 담청색이 절품인 관요(官窯) 등이 있다.

 

 

▲당(唐) 작가미상 / 당인 궁악도(唐人 宮樂圖)

 

▲송나라 때 황정견[黃庭堅]의 글씨, 자서송풍각시[自書松風閣詩]의 한 부분

 

▲송나라 때 마원[馬遠]의 그림 '산경춘행[山徑春行]'

 

▲송(宋) 황정견(黃庭堅, 1045-1105) / 칠언시 화기훈인첩(七言詩 花氣薰人帖)

 

▲북송 / 정요(定窯) 백자 어린이 모양 베개

 

▲나라 때 강희요에서 나온 유리 3색 산수 필통

 

▲명나라 때 만력요에서 나온 5채운룡 개관

 

▲청(淸), 옹정(雍正) 연간 / 법랑채(琺瑯彩) 산수 문양 주전자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세공(細工) 조각들

 

 

   가장 흥미로운 것은 3층 전시실. 이곳에는 예술적, 실질적으로 가치가 있는 보물들만 모아놓은 곳으로, 역대 왕조의 강력한 권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그래서 3층에는 특별전 전시장으로 사용되는 방이 많다. 유럽이나 미국의 박물관에서처럼 거대한 유물보다는 작고 앙증맞은 세공품이나 회화 도자기 작품이 많다.

  3층의 ‘명·청 시대 조각’실은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곳이다. 등을 긁고 있는 시원한 얼굴 표정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은 나한상, 표면이 마치 실로 짠 듯 정교한 상아 조각품 등 진기한 물건들이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특히 야구공만한 크기의 구 안에 모두 17개의 구를 조각한 상아조각품은 ‘귀신이 만든 작품’이라고 불릴 정도다. 돼지 삼겹살과 똑같이 생긴 자연석, 고승의 두개골로 만든 티베트의 그릇 조공품 등도 방문객의 눈길을 한참 붙잡는 3층의 명물들이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무궁무진한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정신적 충만감에 사로잡힌다. 


   4천 년 전의 제사 용품과 옥, 청대의 화려한 자기와 칠보구이인 법랑(琺瑯), 비취와 상아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조각을 새긴 미술공예품, 황제의 장난감 상자로 불린 진완(珍玩) 등 놓칠 수 없는 전시품들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도 '취옥백채(翠玉白寀)'와 유머러스한 '육형석(肉形石)', 부자 3대에 걸쳐 완성했다는 치밀한 세공에 정신이 혼미할 듯한 상아 조각 등이 인기를 독차지하는 전시물이다. 

   옥이나 상아를 이용한 미세한 조각은 너무나 정교하여 시각이 아닌 청각의 예민함으로 파고 들어간 예술적인 기교에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이로운 손재주에 찬사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엄지손가락 하나만한 조각상을 위해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쳤다거나 3대가 오로지 한 작품에만 매달려 완성 한 조각상이라는 식의 전설 같은 얘기가 담긴 전시품들을 보노라면 그들의 예술정신이 얼마나 치열했느냐에 놀라울 뿐이다. 

    조각은 중국인의 뛰어난 손끝에서 재료가 새롭게 변모한 모습을 보여준다. '조상아구층탑(彫象牙九層塔)'은 받침대를 빼고는 모두 1개의 상아에 조각된 작품이다. 각 층에는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한 보살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파풍(破風)에 흔들리는 풍령(風鈴)까지 재현했다.

 

   제작법이 알려지지 않은 조상 아투화 인물투구와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듯 얇은 투각기법의 조상아사층투화제식합, 돋보기로 보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치밀한 조각품들이 가득하다. 상아와 코뿔소의 뿔, 비취, 목재부터 나무열매의 씨앗까지 이곳은 치밀한 중국 조각 작품을 집대성해 놓았고, 극한에까지 이른 세밀한 조각에서 중국의 강한 끈기를 찾아볼 수 있다.

 법랑은 금속제품에 규석(硅石)과 점토 등의 유약(釉藥)을 발라 구어 성질을 유리질로 변성시킨 것을 말한다. 칠보구이라고도 하는데, 서양에서 전래된 기법이다. 법랑에는 겹사( 絲) 법랑, 내전(內塡) 법랑, 필회(筆繪) 법랑 등세 종류가 있으며, 각각 유선칠보, 장르칠보, 칠보그림으로 불린다.

 

   적, 녹, 청등의 에메랄드 질감의 고운 색이 도자기에 화려함을 더하고 액세서리 등 소품부터 테이블과 병풍 등에 이르는 규모가 큰 제품까지 많이 이용된다. 옥과 비취 등에는 영적, 신비적인 힘이 들어있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제기와 액막이 장식품 등의 소재로 귀중히 여겨왔다. 


    황제들은 옥의 6색을 가려 썼는데 창(蒼)-천(天), 황(黃)-지(地), 청(靑)-동(東), 백(白)-서(西),적(赤)-남(南), 흑(黑)-북(北)을 정해 '육기(六器)'를 숭상했다. 이런 관습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와 진귀한 옥과 투영한 옥 조각품이 역대 황제 밑에 모여 있다.

   또 복식부에는 역대 황제와 황후가 입은 복식품 다수가 진열되어 있다. 화려한 자수와 보석 등을 여기저기 박아놓은 관과 의복, 손톱을 장식한'지갑투'와 화려한 팔찌 '탁여반지' 등의 액세서리는 궁정 권력의 상징이다. 황족의 복식관계를 전시하는 311호실이지만, 주로 기획전시장으로 쓰인다.

 

 

 

▲청나라 때 작품으로 상아 조각인 조상아산수인물소경(雕象牙山水人物小景)

 

  

▲청나라 때 옥의 원색을 살려 만든 취옥백채 (翠玉白菜)

▲송(宋)에서 명(明) 사이 / 연꽃 모양 옥잔(玉荷葉杯)

 

▲명(明) 경태(景泰)연간 / 겹사 법랑 반련문 합(?絲 琺瑯 番蓮紋 盒)

 

 

 

황실 정원의 우아한 즈산웬(至善園)

 

 

 고궁박물관을 다 돌아본 후, 박물관 앞에 있는 지선원(至善園)에서 쉬어가는 것도 좋다. 지선원은 왕이(王義)의 저서 “천하제일항서(天下第一行書)”에 따라 계획·설계된 8대 명승지 중 하나로, 중국 황실 정원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작은 시냇물을 감싸는 약 2만3천㎡의 부지에 세워놓은 암석은 높은 산처럼 보이고, 연못은 호수와 바다로 상징되는 한 폭의 풍경화 같다. 관광객 중에는 망루(望樓)에 앉아 커다란 비단잉어들이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는 한가로운 사람들도 있다.

 

   지선원은 양명산 국가공원, 중정기념당, 총통부와 함께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유명관광지로, 박물관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꼭 이곳에도 둘러볼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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