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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광주. 전남

여수 향일암(向日庵), 해안 벼랑에 '해를 향해 앉은 암자'

by 혜강(惠江) 2006. 6. 30.

 

여수 향일암

해안 벼랑에 ‘해를 향해 앉은 암자’ 향일암

 

- 해오름의 정기를 받을 수 있는 도량 -

 

 

·사진 남상학

 

 

 



  돌산도 여행의 종착지는 항상 향일암이다. 향일암을 가려면 돌산대교를 건너 무술목, 방죽포 해수욕장을 지나 계속 남쪽으로 달리면 된다. 방죽포 해수욕장을 지나면서 왼쪽으로 해안을 끼고 탁 트인 바다를 감상하며 달리는 맛은 일품이다. 바다에 떠 있는 밤섬이 정겹다.


  향일암이 있는 임포 마을은 넓은 주차장이 없어 마을 입구 좌측에 마련한 대형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가든지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단 저녁 6시 이후~아침 9시까지는 차량 통행이 가능하다. 주차장에서 향일암에 오르는 임포마을까지는 1킬로 남짓, 통행에 편리하도록 목조보도를 깔았고, 이 길을 걸으며 동백나무 숲을 관찰할 수 있다.

  향일암은 우리나라 4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로 이름 높고, 일출이 아름답기로도 소문나 있다. 향일암은 돌산도의 최남단 금오산 해안가 기암절벽 사이의 동백나무와 아열대 숲속에 위치한 이곳은 신라 선덕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현재 향일암의 경내에 불전으로는 대웅전, 관음전, 용왕전, 삼성각이 있고 종각과 요사인 책육당, 영구암이 있다. 이들은 모두 1986년에 새로 지은 것들이다. 

  지명과 관련되어 향일암이  "일본을 향한다"란 뜻이 담긴 이름이라 해서 한 때 ‘영구암’이란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금거북이 등에 올라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천하절경의 장소’란 뜻으로 금오산 향일암으로 불리고 있다.

 

  남해 수평선 위로 오르는 일출은 천하제일의 장관을 이루고 있으니 ‘해를 향해 앉아 있다’는 뜻의 향일암(向日庵)이라 한들 굳이 시비를 걸 필요가 있을까.  따라서 그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일출 풍광이 유달리 좋아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새해 일출을 보러 몰려오는 차량과 인파로 해마다 몸살을 앓는다. 

  또한 불자들의 관음기도처로 낙산사 홍련암, 남해 금산의 보리암과 더불어 국내의 대표적 기도도량으로 불린다. 남해 바다와 바다 속에 솟아오르는 해오름의 정기를 머금고 있는 향일암은 기도도량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바른 수행을 가르치고 있는 도량이다.

 

  다시 말하면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대자연 앞에서 바른 마음과 바른 자세를 갖추고 일출을 향해 희망을 약속하는 자세가 관음기도를 통해 서원을 성취하려는 마음과 무엇이 다르랴. 

  향일암에 오르는 초입에 두 마리의 금거북이 있고, 돌로 된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까지 이어지는 291개의 계단을 오르려면 유월 후덥지근한 날씨에는 땀이 몹시 차고 숨이 차다.

 

 

 

  다리도 아프고 숨차서 발걸음 잠시 멈추고 뒤돌아보면 거북이목처럼 생긴 임포 마을이 저만치 멀어져 간다. 마치 속세는 저만치 멀어져가는 듯하다. 그러나 가파른 길을 오르기가 힘든 사람은 우측의 완만한 길을 다라 우회하면 가쁜 쉼을 쉬지 않아도 된다.  


    여수의 맑은 물위에          

    마음 얹어놓고 
    세상길 따라 가는 향일암
    높고 높은 번뇌의 계단을 밟고
         

    오르는 산허리에 
    불심의 안개 가득하다 
         
    중생의 괴로움이
         

    낭떠러지위에 있어 
    마음속의 온갖 찌꺼기를 바다 속으로
         

    던져버리고 싶다.

    이곳이 

    자비의 터인가?
    속세의 번뇌 잊을 수 있는
        

    관세음보살의 도량인가!
    부처님의 마음은 몰라도,
         

    대자대비의 깊은 뜻은 몰라도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잡념이
         

    분해되고 있다
    원효대사의 숨결이
         

    목탁소리보다 더 멀리          

    퍼져간다. 

      - 글 임윤식의 '향일암' 전문


  힘들어하였지만 아무런 불평 없이 수많은 계단을 오르며 때로는 가로막는 좁은 돌문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자연 앞에 고개를 숙이며 올라온 자세 역시 바로 수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수행을 지킨 자만이 해오름의 정기를 받을 수 있는 도량이 바로 향일암인 셈이다.


  향일암에는 유독 바위굴이 많다. 모두 수행을 위한 것인데 모두 6개나 된다. 그러나 나는 이전에 두 차례 이곳을 방문했어도 제대로 수행에 이르지 못했다. 그만큼 속진(俗塵)이 많은 탓이리라.  그래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평범한 사람은 살아가는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높이 솟은 바닷가 벼랑 
    새둥지 같은 암자를 짓고 
    허리 굽혀 거북등을 하고 수만 번
    부처님 앞에 합장하여 엎드려도
    모진 해풍에 온몸 내 맡겨
    피멍을 터뜨리는 동백(冬柏)의 
    그 아픔을 알지 못한다. 

    여유롭게 날개를 편 한 마리 솔개
    절벽을 타고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바다는 허구헌 날 떠밀리며 보채며
    가파른 세월의 발끝을 물고 
    하염없이 출렁이지만
    어느 누구도 푸른 바다의 속내를 
    눈치 채지 못하듯

    어느 덧 널브러진 푸른 물결 위로 
    천하일품 노을이 지고 
    백팔염주(百八念珠)를 굴리는 
    불자의 손끝에서 마침내 광란하듯
    다시 새로운 태양이 솟는다 해도 
    모진 풍상에 시달려 온 시린 가슴은 
    절망의 참뜻이 무엇인지 모르듯 
    그것이 희망이라는 것을 
    쉽게 알지 못한다. 

    오, 영원한 허상(虛像)이여 
    끝없는 방황이여

       - 졸고 “알 수 없어요-향일암에서” 전문


  그렇다. 이번에는 위 임윤식 시인의 말대로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잡념이라도 분해하고 가자고 다짐하며 계단을 힘차게 올랐다. 바위굴을 지나 대웅전 앞에 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열린 바다 앞에서 가슴이 열린다. 이 순간은 누구에게나 잠시 숭고하고 거룩한 자연의 모습 앞에서 자신의 살아온 날들과 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숨을 돌리고 나서 기념사진을 찍어보라. 관음전 주변에서 동백 숲을 배경으로 세존도가 둥실 떠 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에 좋다. 주위에는 거북바위, 향일암 흔들바위 등이 있어 재미를 더한다.

 

  더욱이 향일암 일출은 주위의 절경과 어우러져 보는 이를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망망대해의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시뻘건 실핏줄이 하나둘 터지는가 싶으면 어느 새 집채만 한 불덩이가 매달려 올라와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향일암에서 20분 정도 더 산길을 오르면 금오산(323m) 정상. 향일암이 일출 명소라면, 금오산 정상은 일몰 감상에도 좋은 곳이다. 이번에는 수행 삼아 내친 김에 금오산에 오르기로 했다.


  향일암은 풍수지리상 금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모시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암자가 소재한 산의 이름도 ‘쇠금(金)’자, ‘큰 바다거북 오(鰲)’자를 써서 금오산이다. 향일암 옆으로 난 몇 개의 철계단과 흔들바위를 거쳐 금오산 정상에 올랐다. 철계단을 오를 때는 좀 아찔한 느낌이 들고 옷 속으로 흥건하게 땀이 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정경은 더욱 좋다. 정상으로 향하는 주변에는 거대하고 각진 돌기둥이 즐비하게 서 있고, 바위덩어리로 된 정산에는 금오산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곳 바위에는 거북등 문양의 바위가 산재해 있다. 어찌 보면 갯벌 위에 고동들이 기어간 흔적 같기도 하여 바다가 어느 시기에 융기하여 형성된 것인가 의심케 한다. 그런데 자료에서 보면 이 무늬는 화산이 폭발할 때 나오는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정상에서 보는 임포항은 마치 그림과 같다. 항구 오른쪽 언덕에 하얀 등대를 지키고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의 모습은 마치 등대를 키 삼아 바다로 들어가려는 거북을 타고 있는 형상이었다. 향일암과 임포항만으로도 돌산도는 충분히 여행해 볼 가치가 있고, 느낌이 좋은 곳이다.


  주변 해상의 풍경을 감상하고 반대편으로 난 자연탐방로를 거쳐 내려왔다. 이곳에는 상록 활엽수인 참나무류의 나무들과 넝쿨식물들이 무성했다. 상록활엽수는 잎 표면이 딱딱하고 두껍고 광택이 진한 녹색을 띠고 있는 것으로 사계절 늘 푸른 숲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넝쿨 중에는 나무를 타고 오르는 으름넝쿨도 보였다. 

  내려오면서 향일암으로 오르내리는 길옆의 즐비한 식당들에서는 먹어보라며 갓김치를 내민다. 돌산도에 들어서면 곳곳에 돌산갓김치를 파는 가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여수의 특산물로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는 돌산갓김치의 맛은 이미 전국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향일암 오르는 길에도 돌산갓김치를 파는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장사하는 아주머니들마다 맛을 보라고 멸치젓국, 찹쌀 풀에 불린 고춧가루에 생강, 마늘, 생새우 등 양념을 섞어서 바로 버무려 먹기 좋게 돌돌 말아 입에 넣어 준다. 향긋하게 씹히는 돌산갓김치를 맛이 일품이다. 작은 가게에 들어가 컵라면 하나를 시켜도 곰삭은 갓김치를 내놓는 후한 인심이다. 이들 식당에서는 돌산도의 특산물 갓김치를 담가 경쟁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전국으로 탁송되는 물량의 대부분이 돌산도에서 나간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그 지방 특유의 맛을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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