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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산(靈山) 지리산을 넘다(실상사, 달궁,정령치,성삼재-노고단,천은사)

by 혜강(惠江) 2006. 10. 27.

지리산의 가을 단풍

민족의 영산(靈山) 지리산(智異山)을 넘다


- 실상사, 달궁, 정령치, 성삼재, 노고단, 천은사까지 -
 

 

 

·사진 남상학

 

 

 

 

   지리산은 우리나라 최초(1967.12.29)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민족의 영산이다. 소백산맥 최남단에 우뚝 솟아오른 지리산은 동서로 60㎞, 남북으로 32㎞, 둘레320㎞에 이르는 장대한 규모다. 전북의 남원시, 전남의 구례군, 경남의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에 걸쳐 있다.

 

   오늘은 남원에 있는 실상사를 둘러보고 861번 도로를 따라 달궁~정령치, 성삼재(노고단 등정)를 거쳐구례 천은사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이 길은 성삼재를 거쳐 천은사로 빠지는 지리산 관광도로로서 차량의 통행이 많은 편이다. 특히 가을철에는 지리산의 온 계곡과 산이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드는 뱀사골, 노고단을 찾는 관광객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상사로 가기 위해 88올림픽고속도로 지리산인터체인지로 나와 인월-산내를 거쳐 구산선문의 최초가람인 실상사에 도착했다.

 

 

구산선문의 최초 가람 실상사(實相寺)

 

 

   주차장에 차를 세우로 매표소를 들어서니 좌측에 석장승이 서서 환영한다. 절 입구에서 반달모양의 돌다리인 해탈교를 지나면 보이는 돌장승이 또한 인상적이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자리한 실상사(實相寺)는 실상사(實相寺)는 지리산의 북쪽 자락 널찍한 들판에 자리 잡고 있는 천년고찰로서 선(禪)의 가르침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뿌리내린 곳이다.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證覺大師)가 당나라에 유학하여 마조 도일선사의 제자인 서당(西堂) 지장선사(地藏禪師)의 선맥(禪脈)을 이어받고 돌아와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열면서 창건했다.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고려 초까지 선종의 근본도량으로 크고 웅장한 건물 수십여 동이 장관을 이루던 것이 1468년(세조16년)의 큰불(정유재란설도 있음)로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 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게 되었다.

 

  현재 통일 신라 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 석탑과 백장암 석등, 그리고 보물 11점을 포함하여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여느 사찰과는 달리 진입로는 논 가운데 있고, 절은 산속이 아닌 들판에, 수목들에 둘러싸여 있어 소박한 분위기가 감돈다.  (실상사 전화자동 안내 : 02-134-6081~2)   

 

  실상사를 둘러보고 산내에서 좌회전하여 만수천을 끼고 내령, 반선, 달궁으로 이어지는 달궁계곡(729번 도로)으로 차를 몰았다.

 

 

 

 

원시림 무성한 달궁계곡

 

  달궁마을(남원시 산내면) 계곡은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서도 전라북도 쪽의 대표적인 계곡이다. 특히 반선에서 달궁에 이르는 약 5Km 구간은 짜임새 있고 호젓해서 볼 만하다. 하늘을 가릴 만큼 무성한 원시림에 짙은 이끼 내음는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심산계곡의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 주고 있다.

 

  달궁으로 부터 심원까지 약 5km에 이르는 원시림의 계곡. 달궁계곡의 비경은 달궁마을에서 심원마을에까지 이어지면서 특유의 계곡미를 한껏 과시한다. 쟁기소, 쟁반소, 와폭, 구암소, 청룡소, 안심소를 거치면서 달궁계곡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이면 달궁 계곡의 절경을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기 힘들 만큼 차고 맑은 물은 어느곳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깔끔하게 포장된 관광도로가 난 뒤부터는 이 길은 이름 그대로 차량으로 지리산을 통과하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그런데 이 계곡 주변은 벌써 나무들이 잎을 떨궈 앙상한 모습이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산기슭은 여전히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차가 달궁 마을에 가까워지면서 웬 역한 냄새가 진동하여 웬 일인가 했는데 달궁 마을에 들어서면서 그 냄새의 진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리산 관광객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마다 돼지고기를 굽는 쇠판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그 냄새는 넓은 계곡을 타고 오른다. 달궁마을의 팜스테이 참여 농가는 대부분이 오래 전부터 민박업을 해온 터라 숙박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근처에 식당과 휴게 시설 등 편의시설도 많은 편이라  며칠을 묵어도 불편함이 없다. 마을 옆으로 흐르는 달궁 계곡의 물은 한여름에도 발을 담그기 힘들 정도로 차고 맑디 맑다.

  마을에서는 농가 주인들과 고로쇠액 채취, 표고버섯 묘목 세우기, 산나물 채취 등을 체험할 수 있고 근방 실상사에서는 몇해 전부터 귀농학교를 운영하고 있어  귀농의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달궁 마을 팜스테이 농가에 묵으며 귀농 학교에서 실시하는 유기농법 및 귀농 수업을 받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태고의 원시림, 지리산 계곡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경관이 빼어나 한여름 피서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 지리산 뱀사골을 거쳐5km쯤 들어가면 태고적 원시림이 그대로 숨쉬는 듯한 곳에 달궁마을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삼한의 하나인 마한의 효왕이 진안의 침략을 받고 피난하여 살던 곳으로 궁의 이름을 달에 있는 궁이라 불리던 것이 지금의 달궁이란 지명이  되었으며, 아직도 마을엔 달궁터가 남아 있다.
   "달의 궁전"  달궁. 양파라는 분이 쓴 <달궁마을을 지나며>를 여기 소개한다.

       한 굽이 돌아 어둠이 내리고/ 
또 한 굽이 돌아 달이 뜬다. 
       하늘로 오르다 머문 고개 / 
마한의 혼들이 어둠속에 반짝인다. 
       어느 해인가 지나가 본 길인데 / 
어슴프레 어둠이 내리듯 / 기억도 희미해라

       2000년 신비 머금은 / 
달의 궁전..... / 달궁이라
       백제 온조왕과 진.변한에 쫓겨 / 
지리산 깊고 깊은 계곡에
       효왕의 절치부심 피란의 도성이
/ 세워졌으랴.

       반야봉 좌.우 / 
정령과 황령의 / 충정이 무심해라
       어둠과 잡초 더미에 뭍힌 돌멩이와 / 
주춧돌 잔해만이
       달의 궁전을 말하노니

       달 속의 신비한 궁전은
/ 관광차의 시커먼 매연에 / 뒤덮인지 오래.....
       자작나무 생채기 내 / 
받아낸 거제수약은 / 현대인의 만병통치약
       고로쇠나무 달착지근한 물은 / 우
리네 지친 삶의 정한수인가

 
       마한의 후손들은 해마다 / 
4월이면 거제수 물로 지리산 
       약수제를 지내고 / 
민박이 잘 되도록 치성 드리니
       천은사 극락전 추녀 너머로 / 
휑하니 뚫린 노고단 가는 길

       시주 떠난 사미는 마냥 걸음 가볍고 / 
아미타불
       반야봉 올라 / 
구레 장터로 탁발 나간 스님들
       초발심도 버리고 / 
마신 곡차 한 사발

       노고단 아래로 / 
굽이 굽이 흐르는 계곡들 
       달궁계곡 / 심원계곡 / 칠선계곡 / 문수계곡

       하늘로 오르다 머문 계곡 물 /
 오슬오슬 찬데
       옛날 옛적 비오면 두꺼비들이 모여 / 
울었다는 
       두꺼비소
 / 쟁기소 / 쟁반소 

       달의 궁전은 / 
달빛아래 하얀 폭포로 / 환해 지누나
       내 마음 알 수 없는 글 하나
 / 달빛에 걸어 
       역류하는 / 
세월의 물살에 띄어 놓는다. 

 

 

  수많은 인파가 찾아오는 민족의 영산이 얄팍한 상혼에 의하여 좋지 않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동안 차는 쟁기소, 쟁반소를 지나 삼거리에서 739번 도로로 우회전 남원 방향의 커브 길로 접어든다. 만복대(1,433m)의 등성이에 있는 정령치로 가기 위해서다.  

 

 

 

 

정령치에서의 운해(雲海) 감상


  꼬불꼬불한 커브길을 올라 도달한 정령치는 해발 1,172m 고지의 고개로서 넓은 주차장과 휴게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는 만복대와 고리봉(1,304m)으로 오르는 기점이며, 남원 시가지와 노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아주 좋다.  

 

  국내 최고의 활궁장으로 정평이 나 있고, 전국의 행글라이딩과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연중 대규모의 활공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앞으로 이·착륙장, 활공전시관 등 3만여 평 규모의 국제 활공 레포츠 단지를 조성하게 된다고 한다.  

 

  정면의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1,732m)에서 보는 석양은 ‘반야낙조’라 하여 예로부터 지리산 10경(景)의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그런데 반야봉낙조는 구경은 못하더라도 정령치에서 빗기는 오후의 햇살에 빛나는 지리산 단풍을 구경하려던 계획이 여지없이 무산되었다. 정령치로 오를 때 심상치 않던 하늘이 갑자기 구름으로 덮이고 난데없이 운해(雲海)가 몰려와 산록을 덮쳤다. 이 운해는 삽시에 멀리 올려다 보이는 노고단(해발 1,507m) 골짜기를 휩싸는 것이 아닌가.  

  단풍을 보러 와서 때 아닌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인 노고산 운해를 보게 된 셈이다. 이틀 동안 단풍을 실컷 본 터라 오히려 운해를 만난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에 오르는 길에서 단풍을 즐기다. 

 

  정령치에서 왔던 길로 돌아 나와 우회전 지리산 관광도로를 따라 성삼재로 향했다. 성삼재에는 성삼재휴게소가 있고, 여기서부터 서쪽 끝의 노고단((老姑壇, 1,507m), 서쪽 중간의 반야봉, 최고봉 천왕봉(해발 1,915m)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 등상로의 시발점이 된다. 

  지리산의 3대 주봉 중 하나인 노고단은 지리산 등행시 교통의 요지로서 화엄사,천은사, 만복대, 피아골, 뱀사골 등의 등산코스에 경유하게 되는 곳이다. 꼬불꼬불 한 지리산 순환도로를 타고 올라 성삼재 휴게소에 차를 세운다음, 매표를 하고 40 여분을 오르면 노고단 산장에 닿는다.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20여분을 오르면  노고단 정상바로 아래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노고단(1506m)은 노고단 고개에서 완만한 경사가 서향으로 이루어진 넓은 고원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정상은 길상봉이라 한다. 그러나 94년부터 자연휴식제가 실시, 현재 정상이 부분적으로 개방되고 있다. 이곳은 일찌기 신라시대부터 지리산의 산신을 모시는 민족신앙의 영지로서 해마다 봄, 가을이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지리산의 10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노고운해는 남해에서 조성된 운무가 파도처럼 밀려와 구름바다를 이루는 절경을 이룬다.

 

  내려오는 길은 정령치와 노고단에서 본 운해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고, 올라오던 길과는 사뭇 다르게 오색의 단풍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한 지리산 자락의 남쪽이어서 그만큼 기후가 따뜻해서일 것이다.  

  석양의 햇빛을 받는 곳에는 온통 오색의 물결로 뒤덮이고, 단풍의 색깔이 붉은 곳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인 듯했다. 찬란한 단풍의 빛깔에 취해 바라보는 눈이 충혈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계곡에 숨은 아늑한 천은사(泉隱寺)

  지리산 일주도로를 달려 지리산 서남쪽으로 끝까지 오면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덕운조사와 인도의 승려 <스루>가 터를 닦고 지은 천은사에 이른다.  구례읍에서 북쪽 9km지점. 천은사는 화천양사라 하여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로 손꼽힌다.

  천은사는 여러 차례 화재의 변을 당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광해군 2년(1610년)에 혜정선사가 다시 지었으나 숙종2년(1676년)에 불에 타버려 그 이듬해 절을 지었다가 영조49년(1773)에 화재를 당해, 영조 51년 (1775년)에 혜암선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일주문의 왼쪽에 부도밭이 있는데 소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아 못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일주문 현판에는 "지리산 천은사" 글씨가 석자씩 두 줄로 쓰여 있는데, 그 글씨가  구불구불 흐르는 물줄기 같기도 하고 지리산 속에 부는 바람 같기도 하여 눈길을 끈다.


  천은사의 본래 이름은 828년 인도 승려와 덕운조사가 창건할 당시 경내에 이슬처럼 맑은 차가운 샘이 있어 '감로사(甘露寺)'라 했는데, 이 물을 마시면 흐렸던 정신이 맑아진다 하여 많은 스님들이 몰려 들어 한때는 천명이 넘는 스님이 지내기도 했으며 고려 충렬왕 때는  남방제일 사찰로 승격되기도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중건할  때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잡아죽였더니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샘이 숨었다하여 조선 숙종 4년(1677년)부터 '천은사'라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름을 바꾼 후부터  원인 모를 화재가 잦고 재화가  끊이지 않았다.  주민들도 절의 수기를 지켜주는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하였다.

 

  마침 조선4대 명필의 한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이곳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물 흐르는 듯한 서체로 써서 걸었더니 이후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녘 고요한 시간에는 일주문 현판 글씨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일주문은 절의 귀중한 내력을 담고 있는 셈이다.

 

  일주문을 넘어 계곡 옆을 조금만 걸으면 계곡 건너편에 절이 있고 계곡을 가로질러서 만든 다리에는 수홍루라는 수려한 정자 하나가 올라 앉아 있다. 정자 수홍루는 눈 아래 어리는 물그림자와 더불어 아름다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정자 아래는 계곡을 막아 작은 호수를 꾸며 놓아서 아래에서 보면 마치 물길이 지나는 성문처럼 보인다. 지리산 계곡의 빼어난 산수와 풍광 그리고 천년고찰의 풍취가 잘 어우러진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이곳에는 천은사에서 가장 유명한 감로수 샘이 있다.

 

  수홍루를 지나면 위로 오르는 계단이 나오고 그 끝에 정면 3칸, 옆면 2칸의 천왕문(天王門)이 서 있다. 천왕문을 넘어서면 그제사 넓은 절 마당에 들어선다. 마당 정면에는 보제루가 서 있고 왼쪽에는 해우소와 불심원이 오른쪽에는 운고루와 설선당이 있다.  

 

 천은사의 대웅전격인 극락보전은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안에는 불단에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 대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상이 있고 그 뒤에 보물 제924호인 아미타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단풍 속에 묻혀가는 천은사의 저녁 풍경은 더욱 고즈넉하게 보였다. 문득 최하림의  '泉隱寺 길"이라는 시를 떠올려본다.
                                         
   우리가 걸어갈 새로운 물살이 흘러간다
   우리가 생각할 새로운 물살이 흘러간다
   우리가 꿈꾸고 반성할 물살, 우리가 해찰할
   물살, 우리가 욕지거리를 퍼붓고, 우리가 저주할
   물살이 흘러간다 물살은 살아서 흘러간다
   어떤 때는 수직으로 곤두박질치고
   어떤 때는 화려하게 물보라를 뿌리고
   어떤 때는 느릿느릿
   저를 잊고 저를 생각하면서
   머릿단같이 흘러
   어깨 너머 가랑이 사이로
   욱감적으로 흘러간다
   가을 되어 단풍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단풍잎이 물 속으로 얼비쳐들어가
   물 속을 빨갛게 물들이고 씻어낸다
   우리 마음까지 빨갛게 물들이고 간다
   우리가 간다 천만 가지 단풍잎이 비오듯
    떨어지는 가을 천은사 길로 !      
 

 

  천은사는 아늑한 계곡에 안겨 있다. 그래서 천은사는 방문할 때마다 안온한 느낌을 준다.

 

 

 

 

  산동 지리산 온천랜드로 달려 피로를 풀 겸 잠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저녁식사를 위해 어둠이 내린 길을 달려서 전통 석쇠구이로 이름난 남도음식 별미집 석곡식당(곡성군 석곡면,  061-362-3133 ,  019-642-1419 )으로 향했다. 좀 늦은 저녁이라 시장도 했지만, 얇게 썰어 석쇠에 구워낸 돼지고기는 육질이 연하고 맛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소문이 난 집이라 이곳을 지나는 이들이 꼭 들렀던 곳이라고 한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먼길을 달리고 걸은 셈이다. 돌아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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