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 주전골
설악의 비경(秘景) 고스란이 간직
글·사진 남상학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설악산 국립공원 남설악 오색지역에는 주전골이란 이름의 깊은 계곡이 있다. 설악을 넘나드는 네 개의 고개 중에서도 가장 험하고 아름답다는 한계령 자락에 묻혀 있는 계곡이 주전골이다.
흔히 설악산을 가장 대표하는 곳이라면 서슴지 않고 외설악의 천불동계곡을 꼽는다. 설악의 모든 절경이 이 천불동 안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천불동계곡은 설악동에서 와선대, 비선대, 양폭산장을 거쳐서 죽음의 계곡 직전에 이르는 계곡을 말한다.
그러나 짧은 시간의 설악을 찾는 사람이 비경을 접하려면 나는 주저 없이 주전골을 추천한다. 왜냐 하면 좁은 계곡을 따라 펼쳐지는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소(沼)와 담(潭),시원스런 폭포, 깎아지른 절벽에 뿌리를 박고 자란 노송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루어 글자 그대로 비경(秘境)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약수가 있어 다양한 경험을 할 수가 있다.
주전골은 오색온천 입구에서 약수터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시작된다. 왼쪽에 늘어선 상가를 지나면 작은 다리가 나오고 다리 아래로 넓은 암반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면은 보게 된다. 그곳이 유명한 오색약수터다.
위장병에 특효인 오색 약수
암반 위에 두세 개의 구멍이 뚫려있고 그곳에서 천연약수가 솟는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양이 예전 같지 않다. 이곳의 약수는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녹내가 많이 나서 선뜻 마시기가 쉽지 않지만 위장병엔 특효라는 소문이 있다. 여름 한 철에는 약수 한 모금을 얻어 마시기위해 길게 줄을 서야 한다.
바위에서 솟아나는 약수는 계곡 안에 또 한 곳이 있다. 계곡 안의 약수 역시 암반에서 흘러나온다. 바가지로 약수 한 모금 마시고 허리를 세우면 다리 위로 까마득하게 솟은 바위절벽이 눈 앞에 다가선다. 가슴이 훤히 열리는 듯하다.
주전골은 본격적으로 유서 깊은 오색석사에서 시작된다. 지금은 성국사(成國寺)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절이다. 퇴락하여 두 칸짜리 산사로 남아있지만 마당에는 보물로 지정된 신라시대의 3층 석탑을 비롯해 돌사자와 기단석, 탑으로 쓰였던 석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옛날 오색선사 시절의 영광을 대변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수 한 모금 마시고 산행을 준비하자. 생수가 나오는 옆에는 한 나무에서 여러 색깔의 꽃을 피우는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오색에서만 볼 수 있는 '오색나무'인 것이다.
성국사 곁으로 흐르는 명경지수(明鏡止水)
이곳부터 계곡 양쪽으로 무너질 듯 솟은 절벽이 이어진다. 길 왼쪽 아래의 계곡에는 고운 옥빛을 띤 물이 흐르며 노송 우거진 주변 절벽의 그림자가 어리기도 한다. 명경지수와 같은 소와 담, 시원스런 폭포, 깎아지른 절벽에 뿌리를 박고 자란 노송들이 어울려 장관이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평지여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가끔 경사진 암반이나 계곡을 건너지르는 곳에는 쇠다리를 운치있게 설치해 놓았다. 그래서 노약자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겨 찾는다.
제2약수를 한 모금 마시고 조금 오르면 검은 바위벽들이 병풍을 두른 널찍한 소를 이룬 선녀탕 일대가 주전골 경관 중 손꼽을 만하다. 또 용소문을 지나면 마치 시루떡을 쌓은 듯 하다하여 시루떡 바위라 불리는 절벽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협곡사이로 등산로가 만들어져 있다. 용소문은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다. 이곳을 지나야만 선경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 흥미롭다.
옛날 산적들이 주전틀을 훔쳐 돈을 찍어냈다는 골짜기가 바로 이곳. '주전(鑄錢)'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다. 이런 비경에 산적이 연유된 것이 어울리지 않지만, 그만큼 외지에 노출되지 않은, 그윽하고 심원한 장소라는 의미도 된다.
새소리가 계곡 물소리와 어울려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계곡을 오르면서 나는 손님 몇을 만났다. 아니, 손님이 아니라 이곳의 주인공들임에 틀림없다. 하나는 주전골에서 사는 다람쥐들이다. 다람쥐 어느덧 사람들에게 길들여져서 접근해도 도망을 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인공은 이곳 절경을 화폭에 담으려고 계곡에 캔버스를 세워놓고 있는 화가이다. 아마도 이 화가는 이곳의 절경을 화폭에 담으며 어느 새 주전골 산인(山人)으로 동화되어 버렸으리라.
산책하듯 걷는 비경(秘境)의 산행길
비경의 산책길은 철따라 제각기의 모습을 연출한다. 봄에는 절벽에 진달래가 피어나고 막 솟아난 여린 잎들이 다투듯 봄소식을 알린다. 여름에는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리지만, 가을이면 바위와 함께 계곡물에 어리는 단풍의 아름다움은 선경이 따로 없다.
주전골의 단풍은 계곡 전체가 골고루 붉고 노란잎으로 화사하게 물든다는 특징이 있다. 주전골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때는 대개 10월 중순경, 계곡 전체가 붉고 노란 잎으로 연중 가장 화사한 빛을 띤다. 또 겨울에는 계곡마다 눈꽃이 피어 자연 모습 그대로가 한 폭의 동양화다.
따라서 오색약수에서부터 용소폭포에 이르는 한 시간여의 산행길은 계절에 따라 제각기 색다른 멋을 풍긴다. 오색 주전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계절의 모습을 감상하기 위하여 철마다 이곳을 찾아온다.
가슴을 쓸어내는 시원한 용소폭포
천천히 한 시간도 채 않되는 곳에 갈림길이 나온다. 거기서 죄측으로 오르면 12폭포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조금만 가면 높이 10m쯤의 용소폭포가 보인다. 가벼운 산책으로 끝내고자 하면 용소폭포를 감상하고 하산하면 된다.
그리 크지 않은 폭포지만 물줄기가 거세어 계곡을 올라온 사람들의 가슴을 쓸어내기에 충분하다. 물줄기는 아무리 가물어도 사시사철 끊어지는 법이 없어 물줄기 아래는 커다랗고 깊은 소를 이루었다. 시퍼런 것으로 보아 꽤나 깊은 모양이다. 계단을 올라 용소폭포 위쪽에서 뒤돌아보는 경관 또한 뛰어나다.
한계령 도로 중간에서 곧바로 주전골 최고의 경관지인 용소폭포로 내려서는 길도 있다. 인제 쪽에서 한계령을 넘어 내려오다 오색 온천지구의 그린야드 호텔 2㎞쯤 못미쳐에서 들어가거나 반대로 오색그린야드에서 한계령 쪽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면 도로 왼쪽에 매표소가 보인다. 이 매표소 옆에 최근 승용차30여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닦아 두었다.이곳 매표소 아래로 300m만 내려가면 용소폭포가 나온다. 노역자를 동반, 가벼운 운동을 하려면 이 길을 택해도 좋다. 그러나 차를 주차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하다.
대부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속초나 주변 해안지역 나들이의 중간 경유지라고 생각하여 잠시 들렀다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 1박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곳은 온천지역이라 온천을 겸한 숙소도 많거니와 주변 경관이 너무나 아름답고 청정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멋스러운 오색그린야드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멋스러운 오색 그린야드, 독특한 탄산온천수
특히 오색그린야드는 외국풍의 멋을 자랑하는 고색창연한 산중 호텔. 콘도형, 호텔형 두 가지 유형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서 창문을 열면 수려한 설악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때로는 이른 아침에 자고 일어나 창을 열면 안개로 덮힌 아름다운 경관을 만날 수 있다.
더구나 이 호텔은 호텔 자체에서 개발에 성공한 탄산온천수를 자랑한다. 이 온천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아리마(有馬)탄산온천을 능가하는 우수한 성분의 온천으로 납 등이 유해성분이 전혀 없어 미용과 건강에 효능이 탁월한 명천이며, 또한 한 장소에서 기존의 오색온천과 탄산온천이라는 두 가지 온천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다목적 복합온천시설을 자랑한다.
대부분의 국내 온천수의 경우, 대부분 물이 미끈미끈하다는 느낌이 들거나 일부는 색깔이 있다는 정도지만 오색그린야드호텔의 지하에서 용출되는 섭시 27도의 탄산온천수는 황갈색이며, 사이다처럼 기포가 일고 몸에 톡톡 쏘는 특이한 느낌을 주는 국내유일의 온천수이다.
그리고 한겨울 함박눈 속에서도 온천수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거대한 투명 유리돔의 초대형 개폐식 전천후 수영장은 외부온도에 따라 옥외와 옥내를 번갈아 수영을 즐기면서 온천욕 효과를 느낄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초대형 온천 풀장이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산행으로 흠뻑 젖은 몸을 식히기에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산채(山菜)로 꾸민 웰빙 음식
또 이곳 오색 지구 식당에서 내놓는 향토음식은 웰빙 바람을 타고 즐겨 찾는 음식들이다. 점봉산에서 채취하는 산나물로 만드는 산채비빔밥, 산채정식(산채, 도토리, 더덕 등)은 토종 된장찌개와 어울려 환상적인 맛을 제공한다. 여기에 머루주를 한 잔 곁들이면 신선이 따로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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