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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터키.그리스

베르가마(버가모), 신전과 학문의 도시

by 혜강(惠江) 2005. 12. 7.

 

터키  베르가마(버가모)

 

왕국의 중심, 신전과 학문의 도시

아스클레피온, 아크로폴리스 왕궁, 세라피스 신전 등 산재

 

 

글 · 사진 남상학

 

 

 

 

베르가마의 아크로폴리스

 

 

   베르가마(Bergama)의 도시명은 페르가몬이며, 성서명은 버가모이다, 베르가마는 트로이 목마가 있는 트루바와 이즈미르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이 도시의 유래는 트로이 전쟁시로 올라가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더 시대부터로, 그 후 로마가 이 지역을 정복하기 전까지인 기원전 4∼1세기경이 전성기였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그의 막료였던 리시마쿠스는 베르가마가 천연적 요새에 위치하고 있음을 깨닫고 산의 정상에 성을 쌓고 아크로폴리스를 형성하였다. 

  그 후 페르가몬 왕국 시대로부터 로마, 비잔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국의 중심지로서 산업과 무역이 활발하였고, 문화와 의학의 도시로 번영하였다.  곳곳에 황제신의 숭배와 관련이 있는 많은 신전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권력과 영화가 극치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또 베르가마는 초대 교회 일곱 교회 중 버가모 교회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도시에 들어서면 경사가 심한 산꼭대기에 거대한 베르가마 왕국의 유적이 나타나는데, 그 정상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전설의 나라에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 아스클레피온

 

 

  베르가마 시내 입구에는 세계 최초의 종합병원인 아스클레피온이 있다. 아스클레피온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우스에서 유래한다. 이 병원은 고대의 가장 위대한 내과 의사이자 의료 과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갈리누스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1967년에 발굴된 이 건축물은 기원전 4세기경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기원 후 4세기경까지 약 800년간 소아시아에서 의료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이곳에서 일했다고 하니 보통의 병원은 아닌 게 분명했다. 

  아스클레피온은 헬레니즘 시대의 건축 구조물로 병원 진입로는 폭 20m, 길이 820m인 대로가 한 줄로 길게 뻗어 있으며, 길 양편에는 15m의 석주(石柱)가 세워져 있어 거대한 도시국가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세계 최초로 정신 요법을 중심으로 한 치료 방법을 써서, 현대적 의미로 일반 치료는 물론 명상 요법, 음악 요법, 목욕 요법, 심리 요법, 운동 요법, 일광욕, 맨발 걷기 요법 등으로 치료하였다.

 

  과학 연구센터로 알려진 입구에 있는 도서관, 병원 입구로부터 이어지는 대리석 대로(大路), 환자들에게 삶의 의욕과 희망을 주기 위한 야외 원형 극장, 이오니아식 주랑(柱廊), 정신 치료를 위한 터널과 외래 환자 진료실로 사용된 텔레스포루스 신전 등이 방대한 중앙 정원 주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런 시설들이 다양한 요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는데 사용된 시설물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 환자들을 위하여 이처럼 다양한 요법의 치료 방법을 이용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병원 건물은 지진으로 대파되었으나 아직도 그 잔해가 남아 웅장한 규모였음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산정(山頂)에 세운 왕궁, 아크로폴리스 

 

 

  아스클레피온을 둘러보고 나서 산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베르가마 왕국의 유적을 보기 위해 산정으로 향했다. 경사가 심한 나선형(螺旋形) 산길을 돌아 힘겹게 정상에 올랐다. 산정에 오르니 시내는 물론이고 먼 곳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지형적으로 천연적인 요새임을 말해준다.


  산 정상의 가파른 언덕 끝에 위치한 아크로폴리스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성채(城砦)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겼다. 사실 이 성은 고대에는 적들에 의해 점령당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산 정상의 아크로폴리스 왕궁은 비록 지금은 지진과 전쟁으로 많이 파괴되었으나, 복원 작업에 힘입어 그 규모가 드러남으로써 왕궁이 방대한 지역에 걸쳐 웅대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왕궁에는 제우스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 아데나 신전, 트라야누스 신전, 도서관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산 위에 넓게 퍼져 세워진 아크로폴리스의 왕궁과 많은 수의 신전은 베르가모 왕국의 화려했던 영광을 말해 주고 있다. 

   입구의 왼쪽에 위치한 신성한 장소인 해룬은 페르가마 왕들에게 봉헌된 곳이다.  성벽 옆에 세워진 아데나 신전은 당시의 뛰어난 석공예 기술을 보여 준다. 세 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제우스 신전이 있던 장소라고 한다. 

   고대에 지어진 웅장한 도서관은 신전 바로 옆에 있다. 낮은 테라스에 제우스 신전이 있던 장소에 현재는 3그루의 소나무가 서 있다.  헬레니즘 극장이 보이는 지점에서 트라잔 신전과 갤러리를 볼 수 있다. 신전의 둥근 지붕이 있는 부속 건물에 사용된 석공 예술은 뛰어나다.

 

  아크로폴리스의 가장 높은 곳으로 가다보면 저수지와 성벽과 병기고를 볼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 관광을 끝내기 전에 완이 살던 궁전, 디오니소스 신전, 그리고 헬레니즘 극장의 무대를 볼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이오니아와 고린도의 영향을 받은 데메테르 신전이 있다. 아무리 ‘신들의 나라’라고 하지만, 어떻게 이토록 많은 신전들을 지어 신들에게 봉헌했을까 궁금증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버가모 교회의 자취, 세라피스 신전 (크즐 아블루)

 

 

  베르가마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태양의 신 세라피스를 위한 신전이 남아 있는데, 신전의 레드 홀(Red Hall)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교회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신전 밑에는 세리누스(Selinus) 강이 흐르도록 설계하였다. 이 신전은 2세기에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를 위해 지은 것이어서 이집트 신전이라고도 하며, 붉은 벽돌로 지어져 ‘붉은 정원’이란 뜻의 '크즐 아블루'라고도 불린다.  

   신전의 규모는 가로 100m, 세로 260m에 이르고, 높이도 20여m에 달해 그 규모가 매우 웅장한 편이다. 지금은 건축물의 벽채만 남아 있지만, 그 벽채의 모습만으로도 이 신전의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신전은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교회로 전환되었고 버가모 교회로 사용되었다. 다음은 한계시록 2장 12절-13절에 버가모 교회에 대해 언급한 글이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位)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이 기록을 보면, 당시 버가모 교회의 교인들은 신전이 산재해 있는 도시, 우상 숭배가 극심한 상황에서 순교자를 배출하였고, 신도들이 끝까지 그리스도의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여기서 순교한 안다바는 버가모 교회의 초대 감독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의 쇠퇴와 함께 교회의 역할도 사라지고, 지금은 이 건물의 일부가 이스람 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전에서 교회로, 교회는 다시 이스람 사원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는 듯하다. 

 

 

 

버가모 교회 후원에 있는 이 돌은 석관인듯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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