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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중국, 대만, 몽골

중국 제일의 상업도시 상해(上海, ShangHai)를 가다.

by 혜강(惠江) 2005. 12. 7.

 중국 상하이


중국 제일의 상업도시 상해(上海)를 가다

 

  

·사진 남상학

 

 

 

 

 

 

    인천공항에서 상해 푸동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거리. 중국 여행의 첫 기착지인 상해를 향해 출발했다.  항구 도시인 상해는 1842년 아편전쟁(阿片戰爭)의 결과 맺어진 영국과의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 구미제국과의 무역을 위한 개항장(開港場)장으로 발전하였다. 

   그로부터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열강들의 조계(租界, 19세기 후반 중국 개항도시에 있던 외국인 거주지)를 거쳐 왔지만, 이제는 외탄(外灘)에 들어서 있는 유럽풍의 건물, 황포강(黃浦江)을 오가는 외국 선박, 번화가의 끊이지 않는 사람들의 물결 등으로 활기가 넘치는 중국 제일의 국제도시, 경제도시가 되었다. 

 

  북경이 역사적 도시라면 상해는 인간의 도시이다. 중심지인 남경동로의 복잡한 거리를 아무 할 일 없이 걷고 있는 사람들, 윈도우 쇼핑을 즐기는 주부와 가족들, 자유시장에서 벌어지는 말싸움, 황포(黃浦)공원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 길가에서 잠을 자는 어린 거지들 그리고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옷차림,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에게서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거리에는 중국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듯한 거대한 빌딩이 빽빽하게 서 있는 반면 중세 유럽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석조의 서양건물, 서민의 생활 그 자체를 보여주는 뒷골목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공존하고 있다.  그 틈 사이를 오가는 무수한 사람들 속에 상해의 모든 것이 집결되어 있다.



상해의 번화가 남경동로

 


   상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다. 흔히 말하는 남경로(南京路)는 남경동로는 일컬으며 남경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면 명품들이 즐비한 상점과 하드락카페, 호텔 등이 들어서 있는 남경서로(南京西路)가 나온다.  남경서로는 항륭광장, 매용진광장, 중신태부, 이세탄 백화점이 세계 유명 브랜드를 진열해놓고 부유층을 대상으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항륭광장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경서로의 주요 소비자층은 대기업의 관리자급으로 연령은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해당하며, 홍콩, 대만, 일본 소비자의 비율이 15∼20%를 점하고 있다. 또한 상해 전체 상업거리에서 신용카드 사용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남경동로와 매장

 

동방명주(동팡밍주) TV 수신탑

 

 

 포동 개발지구에 세워진 높이 468m의 아시아에서 가장 높고,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TV 수신탑이며, 상해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높이가 무려 4백68m나 되는 이 수신탑은 주사기 모양을 하고 있으며, 모두 크고 작은 11개의 둥근 공모양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 둥근 구는 진주를, 황포강은 옥 쟁반을 상징하며 크고 작은 진주가 옥쟁반에 떨어지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파리 에펠탑의 약 18배나 된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층에 오르면 상하이 시와 황푸 강 주변의 모습이 시원스럽게 펼쳐지는데, 특히 저녁에는 와이탄을 비롯한 주변 건물들이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되어 매우 아름답다.

   1층에는 상하이성시 역사발전 진열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상하이의 옛 거리와 생활 모습을 인형과 모형으로 소개하고 있다. 탑의 전망대에 올라가면 상해시가지가 한 눈에 펼쳐진다. 낮에 보면 그다지 멋있어 보이지 않지만 밤에 보면 조명을 받아 상해의 상징처럼 그 위용을 자랑한다.

 

 

 

 


독립투쟁의 요람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마영로(馬營路)에 있는 3층짜리 벽돌집. 임시정부는 1926년부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때(1926-1932)까지 이곳을 청사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이봉창(李奉昌)과 윤봉길(尹奉吉)사건으로 일본의 탄압이 심해져 1932년 저장성(浙江省)의 항저우로 활동지를 옮기기 전까지 이곳을 본거지로 삼아 활동했다고 한다.

   그 당시는 쫓기며 활동하던 시절이어서 그들이 한곳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 꾸며진 이곳이 그들이 활동한 바로 그 곳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현재 유적지로 조성된 곳은 1992년 노태우 전대통령이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삼성그룹의 노력으로 된 것이다. 각 층마다 당시 활동하던 때의 모습을 추적하여 꾸며 놓았으며, 관련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 광객 외에는 찾는 이들이 없기 때문에 관광객이 없을 때에는 자물쇠를 채워 놓고 있다. 
  매우 낡고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언뜻 보면 쉽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 만큼 초라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1층에서 잠시 비디오 상영을 하고나면 1층에서부터 3층까지 전시물을 관람하게 된다. 1층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단체로 촬영한 사진이 걸려있고, 2층에는 백범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다. 전시관 내에는 당시 쓰였던 가구, 서적,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자료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당시의 활동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관람할 때는 비닐 덧신을 신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조잡하나마 기념 스카프와 배지도 준다. 건물 내의 작은 상점에서 우표, 악세서리, 장식품 등 기념품을 팔아서 청사 유지비를 마련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의 임시정부 청사가 복잡한 거리 한켠에 초라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쓸쓸했다. 나라를 찾고자 하는 일념으로 헌신했던 그들의 업적을 평가해서라도, 이제 낡은 정치 싸움은 그만두고 대지를 구입하여 큰 규모로 확장하기를 소원해 본다. 국가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시급한 것이 아닐까.  

 

 

 

옛 모습(위)과 새로 단장하여 문을 연 모습(아래)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 홍구공원(虹口公園) 

 

 

   정식 명칭은 노신공원(루쉰 꽁위엔). 상하이시 북쪽에 위치한 이 공원은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라고 추앙받는 루쉰을 기념한 곳으로, 예전에는 홍구공원(虹口公園)이라고 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 시라가와 대장을 비롯 일본군 거물들을 죽인 곳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한 곳이다. ‘윤봉길 의사 의거 현장’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서 있어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곳을 즐겨 찾곤 한다.

 

  윤봉길 의사의 기념물로는 폭탄을 투척한 현장에 세워진 비석과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2층 누각 매헌(梅軒)이 세워져 있다. 그의 호에서 이름을 딴 '매정(梅亭)'이라는 한국식 정자가 세워져 있으며, 이 정자는 2층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는 그와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 공원 내에는 풍자소설 '아큐정전(阿Q正傳)'으로 유명한 중국의 문학가·사상가·혁명가인 노신(魯迅)의 묘와 기념비가 있다. 기념관은 노신의 고향인 소흥성의 건축 양식을 따라 1951년에 지었으며, 기념관 안에는 작가의 필체가 담긴 원고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노신은 1927년 10월부터 1936년 10월9일 서거할 때까지 상해에서 살았다. 이 노신묘는 1956년 교외의 만국 공묘에서 지금의 곳으로 옮긴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 와서 홍구공원을 노신공원(魯迅公園, 루쉰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윤봉길 의사의 유적
노신공원과 노신기념관

 

 

관광객들로 붐비는 황포공원

  

 

  상해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 중 하나로 1865년에 영국에 의해 조성되었다. 황포강과 오성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삼각형의 공원이다. 이곳은 중국인들에게는 치욕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외국 열강이 침입하던 시절 '개와 중국인은 들어오지 말라(華人與狗不得入內)’이라는 모욕적인 간판이 걸리기도 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새롭게 단장되었으며 높이 60m의 인민영웅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황포강을 끼고 양안에 들어서 있는 높은 빌딩들, 황포강으로 들고나는 각종 선박들을 바라보며 산책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특히 황포공원에서 보는 야경은 상해의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그 중에서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외탄 건너편 포동(浦東) 개발 지구에 우뚝 솟은 총 468m의 TV 수신탑인 동방명주탑이 압권이다.



 

 

 

상해의 젖줄 황포강(黃浦江) 유람

 

 

상해 관광의 하이라이트는 왕복 60킬로, 약 6시간에 걸친 황포강 유람이다. 황포공원 옆에는 황포강 유람선을 탈 수 있는 부두가 있다.  거대한 빌딩들을 왼쪽으로 하고 출항한다. 1시간 반 정도를 항해 한 후 오송구(吳淞口)의 삼협수(三挾水)현상을 볼 무렵 뱃머리를 다시 시내로 돌린다.

  삼협수 현상이란 시가에서 흘러나오는 더러운 물이 섞인 황포강의 검은 물과 진흙을 잔뜩 포함한 양자강의 커피색 탁류, 동지나해의 푸른 해수가 만났을 때 볼 수 있는 현상으로, 각각의 물의 비중이 틀려 서로 섞이지 않고 뚜렷하게 경계가 나타나는 기이한 광경을 말한다.

 



 

 

이국풍의 화려한 외탄(와이탄) 지역

 

 

  상해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으로 황포강변을 따라 북쪽의 외백도교에서 남쪽의 금릉동로까지 이어진 1.5km의 산책로를 말한다. 1930년대 금융 중심지로 부상했던 상하이의 상징이다.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 왕조는 영국과 맺은 남경조약에 따라 상해를 비롯한 5개 도시를 개항했고, 그 이후 상해 중심지는 열강들의 조계지로 나눠지게 되었다. 그래서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식 등 다양한 유럽풍 건충양식을 볼 수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많은 사람들의 산책로이자 데이트 코스로 이용되는 곳으로, 금무(金茂) 빌딩을 비롯한 수많은 고층건물들에서 쏟아내는 조명과 1.5킬로에 걸쳐 조명을 밝힌 거리는 이국풍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람선에서 본 와이탄 야경

 

 

  또 야간에는 황포강 건너편으로 펼쳐지는 포동지역의 건물들이 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서 이곳에서 바라보는 포동지역의 야경이 멋있다. 밤에는 외탄의 야경을 감상하려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낮에는 황포강의 긴 제방, 녹지와 아름다운 빌딩 숲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쏟아져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 사이에서 젊은 연인들이 주위를 의식하니 않고 부둥켜안은 채 사랑을 속삭이는 곳이다.

 

 

 

상해도서관
중국식 정원인 에원



   그 외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장서 700여만 권이 소장되어 있는, 시계탑 스타일의 거대한 대리석 빌딩 상해 도서관과 소주(蘇州)의 4대 정원인과 더불어 화동의 명원으로서 명대 1559~1577년에 걸쳐 조성되어 그 이름을 전국에 떨치고 있는 예원(豫園), 그리고 청대에 세워지고 버마에서 운반되어온 옥불좌상이 있는 옥불사(玉佛寺)와 상해시의 서남지구 7층 동화탑이 아름다운 옹화사 등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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