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 해군전적비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전적지
글·사진 남상학
영흥도 해군전적비를 보러 가는 중이다. 내비게이션에 영흥도 해군전적비를 찍고 영흥대교를 건너 영흥도에 진입하여 왼쪽 길로 들어서면 동산이 하나 나오는데, 동산 아래 해안가에 차가 멈춘다. 주차장이다.
주차장 옆에 해군전적비 표지판이 보이고, 바다 쪽으로 10개국 국기가 펄럭이는 옆에 해군 퇴역함 참수리호도 전시되어 있다.
먼저 표지판 옆 계단을 따라 동산으로 올라서면, 그곳에 하늘로 높이 솟은 기념탑과 바다를 향해 용감히 돌진하려는 듯한 포즈의 해군 병사 동상이 서 있다. 이곳이 바로 해군 영흥도 전적비가 있는 곳이다. 해군 영흥도 전적비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서 펼쳐진 해군첩보부대와 영흥도 반공청년단 14인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한국 해군 기동함대는 함포 지원 아래 8월 18일 덕적도를, 8월 20일 영흥도를 차례로 탈환하고, 8월 23일부터는 LST에 탑재하고 있던 해군 이동기지 육전대가 상륙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했던 미군은 현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미 해군은 미 극동사령부 클라크 대위와 해군 대위 연정, 육군 방첩 부대장 출신 계인주 대령과 함께 인민군이 미처 들어오지 않은 영흥도로 잠입한다. 이들은 영흥도의 10대 청소년들을 모아 부대를 창설하고 어부로 위장시켜 정찰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
한편, 8월 24일 영흥도를 거점으로 작전을 개시한 한국 해군첩보부대는 9월 1일 미 극동군에서 파견한 첩보팀과 긴밀한 협조하에 상륙목표 해안을 비롯한 인천, 서울, 수원 등 적이 장악 중인 지역에서 용감하게 첩보 활동을 전개하여 상륙 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클라크 대위는 이렇게 모은 정보를 맥아더 장군이 있는 지휘부에 전달함으로써 1950년 9월 15일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는 장병들 외에 영흥도 주민으로 조직된 대한청년단 방위대원들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마자 대부도에 주둔하고 있던 인민군 대대 병력이 영흥도로 몰려와 우리 해군 장병들과 청년방위대원들이 703함의 필사적인 근접 함포 지원 아래 작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러나 영흥도를 지키던 소수의 해군 장병, 소년특공대원들과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영흥도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해군첩보부대와 영흥도 반공청년단 14인이 희생을 당했다. 이때 순국한 소년특공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92년 해군 영흥도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전적비를 둘러보고 내려와 해군 퇴역함 참수리호를 둘러본다. 참수리호는 고속정으로 북한 경비정과의 전투 시 돌격기동으로 적함에 충돌하여 적 선체에 손상을 입히는 등 북한군의 선제도발을 억제하는 임무 수행을 맡았던 함정이다.
해군 영흥도 전적비와 참수리호는 역사의식과 안보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로 영흥도에 가면 꼭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 조국을 키는 보람찬 길에서 / 우리는 젊음을 함께 사르며 / 깨끗이 피고 질 무궁화꽃이다. // 싸우면 이기는 그 신념으로 / 뜨거운 핏줄이 서로 통하고 / 우리는 언제든 나라를 위해 / 떳떳이 피고 질 용사들이다."
어디선가 바람결을 타고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행정보
주소 : 인천 옹진군 영흥면 내리 / 전화 : 032-899-221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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