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가볼만한 곳 총정리
무등산을 품고 있는 예향(藝鄕)의 도시
글·사진 남상학
예향(藝鄕)·의향(義鄕)·미향(味鄕)이라 불리는 만큼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하다. 철마다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무등산 일대는 2012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고, 국가지질공원에 이어 2018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또한, 임진왜란 때의 의병활동으로부터 5·18민주화운동에 이르는 역사와 문화 유적 들이 즐비하다. 그런가 하면, 광주 비엔날레 등 수준 높은 예술적 활동이 전개되는 곳이기도 하다.
1. 무등산 권역
무등산은 광주의 모산(母山)이다. 무등산옛길을 따라 서석대에 오르면 그 까닭을 온몸으로 확인할 수 있다. 광주와 담양에 걸쳐 가슴을 연 무등산의 장관도 누릴 수 있다. 통일신라 시대의 사찰인 증심사에서 출발하면 무등산의 서쪽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증심사
동구 증심사길 177 (운림동), 062-226-0107
증심사는 광주지역의 대표적인 불교도량으로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때 고승 철감선사(澈鑒禪師) 도윤(道允)이 517년에 세운 절로 고려 선종 때(1094년) 혜소국사가 고쳐 짓고 조선 세종 때(1443년) 김방이 삼창하였는데 이때 오백나한의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의 3대 선사가 네 번째로 창건했다. 그 후 신도들의 정성으로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6 ·25전쟁 때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가 1970년에야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복구되었다.
증심사의 유물로는 오백전과 비로전(사성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제 131호), 신라 말기의 석탑인 증심사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1호), 범종각, 각층의 4면에 범자가 새겨진 범자칠층석탑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특히 오백전은 무등산에 남아 있는 사찰 건물들 중 현재 가장 오래된 조선 초기(세종 25년)의 건물로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과 계통을 같이 하는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심포 양식으로 그 희귀성이 돋보인다.
무등산, 무등산국립공원
주소 : 광주 북구 무등산천왕봉길 792 (금곡동 산1-1) / 062-227-1187
무등산은 광주와 담양군·화순군과 경계에 있는 산으로, 무악(武岳)·무진악(武珍岳)·서석산(瑞石山)·입석산(立石山)이라고도 한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불려진 이름으로,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1972년 5월 22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12월 27일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였다. 전체면적은 해발 1,187m이며, 75.425㎢에 해당한다. 나주평야를 내려다 보는 무등산 산중에는 많은 명승고적이 있다.
무등산은 오르기에 가파르지 않다. 광주에서 무등산에 오르는 주요 등산로는 증심사(證心寺)를 기점으로 하는 용추계곡 등산로와 원효사를 기점으로 하는 원효계곡 등산로 등 두 가지가 있다. 산기슭의 증심사를 기점으로 출발하여 두어 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산의 동북쪽으로 관광도로가 개설되어 산허리의 원효계곡까지 자동차로 거의 30분 거리이며, 여기서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오르면 된다.
증심사는 통일신라 시대 철감국사(哲鑑國師) 도윤(道允)이 창건한 절로서, 이곳에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31), 5층 석탑·오백나한전 등이 있다. 부근에 말사인 천문사·미력사·동국사·보덕사·백운암·약사암 등이 있다. 그중 약사암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600)이 있다. 용추계곡은 새인봉을 끼고 오르는 골짝 길이며, 무등산 등산의 주코스이다. 두어 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장불재를 넘어 능선의 동쪽 사면에는 입석대·서석대·지공터널·삼존석·규봉암·풍혈대 등이 있고 정상 가까이에는 수신대가 있다. 입석대는 장불재에서 동쪽으로 200m 가량 가면 나타나는 무등산의 대표적인 경승지로, 단석 위에 20m가량의 입석이 마치 석공의 다듬질을 받은 것처럼 서 있다. 서석대는 수정병풍이라고도 하는 돌무더기이고, 지공 터널은 무수한 암괴가 깔려 있으나 서로 얽혀서 덜컥거리지 않는다. 장불재에서 동쪽으로 나가면, 무등산의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1km정도 거리에 광석대라고도 하는 곳에 규봉이 있는데 부근에 규봉암이 있다. 규봉암 앞에는 여래존석·관음존석·미륵존석 등의 삼존석이 있다.
원효사를 기점으로 하는 원효계곡은 곳곳에 급단폭류와 심연을 이루는 곳이 많아서 피서에도 알맞은 경승지이다. 원효사는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인데, 증심사와 함께 6 ·25전쟁 때 공비 토벌 작전으로 소실되었다가, 근년에 복구되었다. 시내에서 원효사에 이르는 도중의 충효동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 장군의 출생지이며, 그의 의복(중요민속자료 111)이 보관되어 있고, 또 충장공으로 추증된 공을 모시는 충장사와 공의 묘소가 있다. 주상절리가 발달하여 입석대를 비롯 암석병풍·암석원 등 명소가 많다. 정상에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의 정상삼봉이 있으며, 맑은 날에는 남해가 보인다.
무등산의 가을철은 규봉암의 단풍과 장불재, 백마능선의 억새풀이 절경을 이루고 겨울에는 설화와 빙화가 일품이다.
평촌마을, 무등산반디마을
북구 평촌길 15, 062-266-2287
무등산반디마을평촌은 무등산 북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동림, 담안, 우성, 닭뫼 4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된 아담하고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마을 들녘에는 평무뜰이 있어 친환경 우렁이쌀을 재배하고 있으며, 마을 중심으로 흐르는 풍암천에는 도심에서는 이미 자취가 사라진 반딧불이와 무등산의 깃대종인 수달(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어 우수한 자연생태를 지니고 있는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이곳 평촌마을이 분청사기를 만들었던 곳으로 남도의 예술적 혼을 지니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현재 마을에 있는 평촌 도예공방이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 길목에는 무돌길 쉼터와 반디민박이 있어 마을을 지나는 이들과 무등산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평촌마을에서는 민박과 다양한 농촌체험, 먹거리 체험, 전통문화체험, 도자기체험, 생태체험 등이 가능하다. 단, 마을의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에 전화로 문의해 보는 것이 좋다. 월요일은 쉰다.
충장사,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모신 사우
북구 송강로 13
충장사는 무등산이 낳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모신 사우로 1975년에 세워졌다. 경내에는 김덕령의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사우 충장사, 동재와 서재, 은륜비각과 해설비, 유물관, 충용문, 익호문 등이 세워져 있다.
유물관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김덕령 장군 의복과 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관곽, 친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당 뒤쪽 언덕에는 김덕령의 묘와 묘비가 있으며 가족묘도 조성되어 있다.
광주시 충효동에서 태어난 김덕령 장군은 장성하면서 우계 성혼의 문하에서 송강 정철과 함께 수학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덕홍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가하였다. 이때 형 덕홍은 의병장 조헌이 이끈 금산싸움에서 전사하였으며, 장군은 담양부사 이경린과 장성 현감 이귀등의 천거로 선조로부터 형조 좌랑의 벼슬을 받았다.
1593년 담양지방에서 의병 5,000여 명을 이끌고 출정할 때 나라에서는 장군을 선전관으로 임명하고 익호장군의 호를 내렸다. 1594년 권율 장군의 휘하에서 진해, 고성에서 왜군을 방어했으며, 장문포 싸움에서는 충무공 이순신과 수륙연합전으로 왜군을 크게 물리쳤다.
1595년에는 고성에 상륙하는 왜군을 기습 격퇴하여 큰공을 세워 선조로부터 충용장이란 군호를 받았다. 1596년 이몽학의 반란을 토벌하던 중 모함으로 투옥돼 갖은 고문 끝에 그 해 9월 15일 29세의 나이로 결국 김덕령은 감옥에서 고문을 받다가 장독으로 옥사하였다.
나라를 위해서 수많은 공을 세우고도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의 생애와 도술을 묘사한 작자 ·연대 미상의 전기소설 《김덕령전》이 있다. 1661년(헌종2년)에야 공의 억울함이 조정에 알려져 관직이 복직되고, 1668년 병조판서에 가증, 영조 때 의열사에 제향되었으며 1788년 정조는 장군께 충장공의 시호를 내렸으며, 장군이 태어난 마을 석저촌을 충효의 고을이라 하여 충효리로 바꾸도록 하였다.
충장사로 향하는 길은 광주 사람들에게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는 길이다. 봄이면 노란 개나리가 길섶을 수놓고, 여름이면 신록이 우거져 터널을 이루며, 가을이면 빨간 단풍이 숲을 물들이고, 겨울이면 나무마다 눈꽃이 피어 설원에 온 듯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광주 사람들이 즐겨 찾는 길이다.
원효사, 선조 때의 승병장이었던 영규가 수도했던 곳
북구 무등로 1514-35, 062-266-0326
원효사는 광주 무등산 원효계곡의 웅장한 산세 속에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각을 가지고 있는 전통사찰이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산의 수려함을 사랑하여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지냈다 하여 원효암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일설에는 고려 충숙왕 당시의 이름 있는 화엄종 스님이 창건한 뒤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한다. 그 후의 역사는 입증할 길이 없으나 문정왕후의 섭정 때 사세가 다시 일어났으며, 선조 때의 승병장이었던 영규가 수도했던 곳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뒤 증심사를 중창했던 석경이 직접 기와를 구워 중창하였다. 원효봉 기슭에 있는 원효사 동부도는 현존하는 부도 중 조각기법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사면에 동물 모양의 해학적 모습이 특이하다. 절 바로 앞에 높고 긴 계단이 있고 양옆으로 하늘을 뒤덮은 우거진 대숲 때문에 절을 향해 나 있는 통로가 마치 하늘을 오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1980년 5월 대웅전 신축 작업 중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팀에 의해 발굴된 청동, 청동불 입상, 동경(구리거울), 각종 소조불 등 백여 점의 유물은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것들로서 원효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 광주광역시 동구 권역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동구 문화전당로 38 (광산동 13), 전화 1899-5566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의 문화 교류와, 문화자원 수집·연구, 콘텐츠의 창·제작, 전시, 공연, 아카이브, 유통이 한 곳에서 모두 이루어지는 세계적인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국립아시아
문화전당의 대표적인 콘텐츠를 보여주는 상설전시와 기획전시, 레지던시 전시, 특별전시 등 대중과 함께 공감하고 즐기는 약 40개의 다양한 전시를 매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요람인 광주의 지역적 정체성을 근간으로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창의성, 혁신성, 전문성을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융합된 예술적 표현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시를 선보임으로써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관람객들과 공유하고 있다.
콘서트, 연극, 무용, 클래식, 토크쇼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아시아의 동시대 담론을 소재로 한 실험적 공연을 매년 30회 이상 제작하고 있다. 국내외 유수 창작진과 협업하여 ACC고유의 아시아콘텐츠 공연, 국제공동 창·제작 공연,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창·제작 공연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브런치 콘서트, 슈퍼클래식, 빅도어 시네마, 수요극장, 지역협력 공연, 송년음악회, 신년음악회 등의 공연도 진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늘마당, 열린마당 등 야외공간과 ‘빛의 숲’을 주제로 한 지상정원은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방문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아시아문화박물관, 복합전시관은 수, 토요일에는 20시까지 연장운영한다. (외부시설 06:00~22:00),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은 휴관한다.
대인예술시장
동구 제봉로194번길 8 (대인동 309-6), 070-8234-8929
활기 잃은 재래시장이 상상력 가득한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상점 셔터에는 그림이 그려지고 문 닫은 점포에는 공방이 들어섰다. 좁은 골목 안쪽에는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 바로 대인예술시장이다.
1959년 5월 공설시장으로 문을 연 이래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문전성시를 이루던 대인시장은 양동시장과 더불어 광주의 2대 시장으로 꼽혔다. 그러나 시외버스터미널과 광주시청이 이전한 자리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진행된 '복덕방프로젝트'를 통해 작업 공간을 찾는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대인시장에 모여들면서 변화가 이루어졌다. 인적이 적어 그늘졌던 공간에 작가의 손길이 닿기 시작한 것이다. 정기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파는 예술야시장이 열리고 갤러리가 들어섰다. 이름도 '대인예술시장'으로 바꿔 불리게 되었다. 구경 삼아 시장을 찾은 여행자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시장통을 돌다가 문득 예술가들의 열린 작업실을 만나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시장에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빈 벽에 야구선수를 그리고, 빈 상점의 셔터에 역도선수 장미란을 그려 넣었다. 돼지머릿고기를 팔던 가게 문에는 귀여운 돼지인형을 입혀주었다. 시장을 돌며 리어카 행상을 하는 하문순 씨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벽화 덕분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상인도 생기고, 골동품점을 연 상인도 있다. 건어물을 팔던 사장님은 자신의 가게 옆에 공간을 마련해 골동품 가게를 열었다.
시장통 중심에는 여행자와 상인들에게 개방된 도서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친 다리를 쉬며 시원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상인들에게 각종 공구를 대여해주고 안내센터의 역할도 현재 광주 대인시장은 예술가와 상인들이 함께 거주하는 공간이 되었다. 금남로4가역 3번 출구에서 571m 거리에 있으며,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3. 근대문화 100년의 숨결, 양림동 역사문화권
광주광역시 양림동 여행은 시간의 보물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100년 전 광주를 비롯한 전남 지역 근대화의 물꼬를 튼 유적들이 가슴 찡한 이야기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잘 보존된 전통가옥을 둘러보는 정취와 더불어 시인 김현승의 흔적을 만나는 시간이 반가운 길이다.
양림교회, 오웬기념각
양림동 시간여행은 양림교회에서 출발한다. 1898년 목포에서 선교를 시작한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는 광주 선교를 위해 1904년 12월 선교사 유진 벨(E.Bell)과 오웬(C.C.Owen)을 광주에 파견하였다. 이들은 김윤수(金允洙) · 변창연(邊昌淵) 등과 함께 양림리(楊林里)에 사택을 마련하고 12월 25일 주일에 첫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양림교회의 시작이다.
1906년 북문안 사창골에 예배당을 신축하여 북문안교회로 개칭하였으나, 1919년 3월 10일 교인들의 3·1운동 참여로 북문안교회가 폐쇄되자, 남문밖(금정 소재)에 교회당을 세웠다. 이로부터 남문밖교회로 불렸다. 그후 1924년 금정교회(광주제일교회)와 분립하여 양림교회로 재창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54년에 지어진 것으로 양림동 여행에서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양림교회 바로 앞에는 오웬기념각(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이 있다. 1914년 선교사로 활동하다 순교한 오웬(Clement C. Owen, 1867~1909)과 그 할아버지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당시의 유교적 관습에 따라 남녀가 들어가는 문이 달랐기에 출입문이 2개이고, 설교단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 구조로 되어 있다. 개화기에 다양한 문화행사가 이곳에서 열리며 근대문화의 전당으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 <각시탈>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선교사들의 사택
오웬기념각을 나와 호남신학대학교로 길을 잡으면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들어와 활동했던 서양 선교사들의 사택을 만난다. 호남신학대학교가 자리한 야트막한 언덕은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나 어린 주검들을 풍장했던 곳이다. 선교사들은 이곳에 사택을 짓고 병자들, 특히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낯선 이국의 끄트머리, 가난하고 병든 자들, 버림받은 주검들이 있는 곳에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이 언덕은 ‘광주의 예루살렘’, ‘선교사마을’로 불리며 치유의 공간, 교육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광주시 지정 기념물 제15호)은 광주에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이다. 장애아와 고아들을 돌보며 한센병 치유에 앞장섰던 우일선(R. M. Willson)이 지었다. 1905년에 건축하고 1921년에 증축했다고 한다. 사택 앞마당에는 선교사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고국에서 가져다 심은 은단풍나무, 아름드리 피칸나무, 흑호두나무 등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건축 시기는 오래되지 않았으나 선교사 사택으로 쓰였던 다른 건축물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뒤편 산책로를 따라가면 선교사 묘원에 이른다. 배유지와 우일선을 비롯해 수많은 선교사들이 잠든 곳이다.
수피아여중·고교, 수피아홀과 배유지기념예배당
바로 이어 자리한 수피아여중·고교에는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수피아 홀(제158호), 배유지 기념예배당(제159호), 윈스보로우 홀(제370호)이 있다. 수피아여학교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제니 스피어(Jennie Speer)를 기념하기 위해 1911년 그녀의 언니가 헌금한 돈으로 설립되었다. 선교의 근거지였을 뿐 아니라 여성 교육의 요람이 되었던 공간이다. 이곳은 모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으로서 휴교와 폐교를 거듭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수피아여학교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호랑가시나무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서 수피아여중·고교로 가는 길목에 호랑가시나무(광주시 지정 기념물 제17호)가 서 있다. 이 나무도 당시 선교사들이 심은 것이다. 잎 주위에 톱니바퀴 같은 가시가 있는데 호랑이가 이를 등 긁개로 쓴다 하여 호랑가시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열매 때문에 ‘예수나무’로도 불린다. 불우이웃돕기를 상징하는 ‘사랑의 열매’ 도안이 바로 이 호랑가시나무 열매에서 나왔다.
휴식이 있는 시인의 길과 전통가옥
양림교회를 지나 선교사들의 사택이 있는 언덕을 오르고 수피아여학교를 내려다보며 시를 쓰던 시인이 있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가을의 기도>를 쓴 시인 김현승(1913~1975)이다. 평양에서 태어난 후 양림교회 목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광주로 내려와 생활한 그는 선교사 사택이 있는 현 호남신학대학의 언덕길을 자주 산책하며 사색을 즐겼다고 한다.
호남신학대학 안에는 김현승의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의 기도>를 새긴 시비가 있고, 가까이에 저렴한 가격으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쉬어갈 수 있는 카페가 자리했다. 또, 양림동 골목으로 내려서면 김현승 시인의 호 ‘다형(茶兄)’의 이름을 딴 무인 카페 다형다방이 기다리고 있다. 좁은 골목 초입에 자리한 작은 카페로 누구나 들어가 시인과 양림동의 옛 모습을 만나고 직접 찻물을 끓여 차를 마실 수 있다. 차 값은 주머니 사정에 따라 통에 넣으면 된다.
전통가옥, 이장우 가옥과 최승효 가옥
다형다방에서 나오면 전통가옥인 이장우 가옥(광주광역시 민속자료 1호)과 최승효 가옥(광주광역시 민속자료 2호)을 만난다. 이장우 가옥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공간과 광주 최고의 부자들이 살았던 공간을 분리하는 기준이 되는 집이었다. 1899년에 지어진 전통가옥으로 일자형이 주를 이루는 남부 지방의 가옥과 달리 한양의 가옥처럼 ‘ㄱ’자 구조다. 나름 부를 과시하고 멋을 부린 것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일본식 정원과 사랑채, 멋스런 안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상시에는 대문을 닫아놓고 있으니 왼편의 샛문을 이용해 들어가면 된다.
최승효 가옥은 1920년 최상현이 지어 일본 요정으로 운영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조달하고 한편으로는 본채에 비밀 다락을 두어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현재는 설치미술가 최인준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전통의 아름다움과 현대미술이 조화를 이루어 시선 닿는 곳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잔잔한 음악을 감상하며 산책하듯 둘러보아도 좋다. 이 외에도 양림동에는 양림미술관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공간과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양림동 펭귄마을 공예거리
남구 천변좌로446번길 7 (양림동 201-64)
양림동펭귄마을에는 40여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살고 있었다. 그 어르신은 불편한 몸으로 인해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못했는데, 마치 펭귄처럼 뒤뚱거리는 모습에서 마을의 이름이 비롯되었다.
실제 펭귄은 없지만, 골목마다 펭귄을 만난 것보다도 훨씬 더 재미를 주는 볼거리가 많다. 어떤 골목에는 집에서 안 쓰는 벽시계와 손목시계가 벽면 가득 걸려 있다. 시간이 맞는 건 하나도 없지만 고장난 것들이 모여서 더 정감이 넘친다. 양림커뮤니티센터에서 펭귄 모양의 이정표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면 이색적인 볼거리가 즐비한 1970~1980년대 마을이 골목박물관을 연상하게 한다.
가죽 공방, 섬유 공방, 목공방 등 다채로운 공방들이 공예 거리에 입주해 있어서 예쁜 공예품을 구매하거나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레트로 감성의 업사이클링 공예체험도 가능하다. 폐현수막 소재 파우치 만들기, 폐품 활용 미술작품 만들기 등 업사이클링 공방 체험 프로그램, 예쓰(예술+쓰레기 줍기) 투어코스, 원데이 클래스와 같은 체험 활동들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펭귄주막은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고, 양철냄비 등의 생활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민들은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위해 달고나, 꽈배기 등의 먹거리와 비눗방울, 풍선놀이 등 추억의 체험거리도 만들어 놓았다. 전문가들은 주민들의 일상과 정서가 예술로 승화되어 사라져가는 골목길 문화를 되살린 정감 있는 마을로 평가한다.
4. 5·18 민주화역사 권역
광주는 민주화의 성역이다.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전라남도 광주에서 촉발된 항쟁, 항거운동으로 대한민국을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로 만든 역사적인 운동이다. 이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돌아볼수 있는 곳으로 5.18 기념공원,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국립 5·18 민주묘지 등이 있다.
5.18 기념공원
서구 내방로 152 (치평동 1268), 5·18 기념문화관 062-376-5197
5.18 기념공원은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다. 5.18 민주화운동이 전개될 당시 군사시설이었던 상무대가 이전하자 정부가 공원부지를 제공하였다. 이에 따라 1998년 광주광역시는 5·18의 교훈을 올바르게 계승, 발전하기 위해 208,000㎡ 규모로 5·18 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5.18 기념공원에는 5.18 자료실과 공연 및 행사시설을 갖춘 5.18 기념문화센터, 시민군조각상, 추모공간 등으로 구성된 5.18 현황 조각 및 추모승화공간, 5.18 정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원형 분수 공간을 갖춘 대동광장, 5.18 민주화운동학생기념탑이 있다.
5.18 기념공원이 조성된 여의산 자락에는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이 있고, 산 둘레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정상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누각인 오월대가 있다. 현재 5.18 기념공원은 광주시민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의 추모와 기념 공간일 뿐만 아니라 도심 속의 쾌적한 휴식 공간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전체면적의 약 45%인 92,099㎡가 녹지로 조성되어 전통 연못과 다양한 수목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밖에 사찰 무각사와 잔디광장, 산책로 등이 있어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동구 금남로 221 (금남로3가), 062-613-8204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은 5·18 민주화운동 기록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영구 보존하고, 5·18의 역사적 의미를 세계인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1980년 5월 역사적 현장이었던 옛 광주가톨릭센터에 2015년 설립되었다.
광주 시민들의 노력으로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된 5·18 민주화운동의 기록들을 직접 관람할 수 있고, 정기 해설, 온라인 전시관 등을 이용한 관람도 가능하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며, 이용요금은 없다, 단, 특별·기획전시는 유료로 진행되기도 한다.
국립 5·18 민주묘지
북구 민주로 200 (운정동 산34), 전화 062-268-0518
문민정부 출범과 더불어 5.18 민주항쟁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광주광역시는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산34번지 165k㎡의 부지 위에 5.18묘지를 조성하였다.
묘역 안에는 300여 기가 넘는 5·18 영령의 묘가 있으며, 건축물 7동(민주의 문, 유영봉안소, 역사의 문, 숭모루, 추념문, 관리동, 휴게실)과 역사 공간, 민주광장, 참배광장, 전시공간, 상징조형물, 광주민주화운동추모탑, 7개 역사마당(의병, 동학, 3·1운동, 광주학생운동,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통일마당), 헌수기념비, 준공기념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높이 40m의 추모탑은 5·18정신이 삼라만상과 우주를 꿰뚫어 범우주적 존재로 승화하라는 염원을 담고 있으며, 영령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장소인 유영봉안소는 전통 고분인 고인돌 형태를 응용하였다. 7개 역사마당은 한국 역사상 불의와 폭압에 대한 민족불굴의 저항정신이 잘 드러난 대표적인 7개 사건을 부조로 만든 것이고, 숭모루는 전시공간과 5·18 관련 영상을 상영할 수 있는 기능을 고려한 복층건물이다.
광주호 호수생태원
북구 충효샘길 7, 062-613-7891
광주 호주생태원은 광주 북구 광주호의 호숫가 인근 184,948m²의 부지에 수생식물원·생태연못·야생화테마원·목재탐방로·전망대·수변관찰대, 자연관찰원, 자연학습장, 잔디 휴식광장, 수변 습지 등 테마별 단지로 조성되었다. 광주 시내에서 약 30분 정도 거리에 있어, 시민들이 찾기가 좋아 2006년 3월에 개장한 후 아이들의 자연 생태학습장이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시원한 느낌을 받는 공원으로, 추운 날씨가 아니라면 꽃이나 동·식물들의 생태자료를 직접 볼 수 있다. 진달래, 개나리, 자산홍, 장미, 철쭉, 수국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 17만 본이 심어진 테마별 꽃단지와 부엽식물원, 버드나무군락지, 수변부 관찰 데크, 암석원, 그리고 때죽나무, 모과나무, 벽도동, 단풍나무 등 3,000여 그루의 나무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메타세쿼이아 양편 가로수 사이로 목재계단을 조성하였다. 입구에는 400년 수령의 왕버들나무가 있고, 공원 가까이에 식영정·환벽당·소쇄원 등의 문화유적들이있다.
환벽당 : 북구 충효동
호수생태원 인근에 조선 시대 가사문학의 유적으로 환벽당, 식영정, 취가정 등 다수의 누정이 모여 있다. 이 일원은 1913년 국가지정유산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金允悌 :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이다.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고,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와가이며, 송시열이 쓴 제액(題額)이 걸려 있고, 임억령·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김윤제의 제자이며, 가사문학의 대가인 정철은 이곳에서 김인후(金麟厚), 기대승(奇大升) 등 명현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학문과 시를 배웠다. 후에 김윤제는 그를 외손녀와 혼인을 하게 하고 그가 27세로 관계에 진출할 때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환벽당 인근에 취가정, 독수정, 소쇄원이 있다. 환벽당은 정철의 4대손 정수환(鄭守環)이 김윤제의 후손으로부터 사들여 현재 연일 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5. 북구 중외공원 주변 문화벨트
중외공원
북구 하서로 50 (운암동), 중외공원 062-613-7124
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중외공원은 수려한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시 근린공원이다. 공원의 드넓은 잔디밭과 다양한 꽃과 수목이 심어져 있어 봄꽃 놀이와 가을철 단풍 명소로 유명하다.
특히 중외공원에는 국립광주박물관·문화예술회관·광주시립미술관·시립민속박물관·비엔날레전시장 등 공연 및 전시시설이 밀집되어 문화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그 외에도, 중외공원에는 어린이대공원, 올림픽동산, 올림픽기념탑 등이 있고, 회관을 중심으로 북한관·교육관·야외전시장 등의 전시실과 축구·테니스·야구·수영 등을 즐길 수 있는 체육시설, 민속박물관, 생활과학관, 역사관, 문화관, 토산품 전시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국립광주박물관
북구 하서로 110 (매곡동),062-570-7000
국립광주박물관은 1976년 수중발굴이 시작된 신안해저문화재를 비롯한 호남지역의 문화유산을 수집·보관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1978년 12월 6일 개관하였다.
총면적 80,444㎡(24,334평)에 지상 2층, 지하 4층의 누각 형태를 본뜬 국립광주박물관은 국보·보물 등의 지정 문화재를 포함하여 160,0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맞춤형 교육·체험프로그램과 문화행사를 연중 운영하고 있다.
박물관은 선사ㆍ고대문화실, 농경문화실, 도자실, 불교미술실, 서화실, 신안해저문화재실, 중앙홀의 7개 상설전시실과 야외전시장이 있다. 선사ㆍ고대문화실에는 구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역사의 전개과정을 볼 수 있다. 신안해저문화재실에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9년동안 신안해저침몰무역선으로부터 인양한 중국 송·원대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또, 불교미술실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공예품과 불화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장흥 보림사삼층석탑, 광주 서오층석탑 등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와 보성 화방리 출토 금동여래입상, 화순 운주사출토 금동보살입상, 영암 용흥리출토 금동사천황상, 영암 용암사지출토 금동지장보살좌상, 광주 원효사 출토 부처얼굴, 담양 서봉사지출토 나한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입구로비에는 중흥산성쌍사자석등이 있다. 서화실에는 호남 회화의 흐름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감상하며 향토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 조선시대와 근대기에 활약한 호남출신 화가들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
북구 하서로 52 (운암동 164), 062-613-7100
1992년 8월 개관한 시립미술관은 본관과 비엔날레관·교육홍보관 등 3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18개의 전시실과 2개의 휴게시설을 갖추고 있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지역에 연고를 둔 허백련과 오지호·양수아·임직순 등 유명 작고작가 작품으로부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약 560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본관은 총 2,800㎡ 규모로 1층 4개, 2층 5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1층은 국내외 우수작가들의 작품을 특정한 주제로 전시하는 기획전시실이며, 2층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장르별로 구분해 전시하는 상설전시실이다.
허백련기념관과 오지호기념관·하정웅기증작품전시실 등 소규모 전시실이 내부에 있다. 비엔날레관은 약 8,800㎡ 규모로 3개층 5전시실로 구성된다. 교육홍보관은 1,300㎡ 규모로 1층에 3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으며, 2층은 세미나실이다. 이 밖에도 미술관계 전문도서와 밥지, 국내외 전시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미술자료실과 미술전문서점이 있다.
주요사업으로는 상설전시와 기획전시 등의 전시사업,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통한 교육사업과 지역 미술의 활성화 등이 있으며, 1996년 기구를 확대 개편하여 광주비엔날레를 관장해 오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설날 · 추석은 휴관한다.
광주역사민속박물관
북구 서하로 48-25 (용봉동 1004-4), 062-613-5378
1963년 광주광역시 남구 광주공원에서 개관한 도립광주박물관에 뿌리를 두고, 1987년 용봉동에 광주직할시립민속박물관을 개관하였으며, 1995년 이후 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으로 변경하였다. 2020년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재개관하였다.
1987년 개관 이래 약 30년 동안 남도 민속문화에 대해 전시하다가 2020년 재개관 후부터 광주의 역사에 대해서도 전시하게 되었다. 부지면적 7만 2,655㎡, 건물 연면적 7,076㎡의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이다.
1층은 남도민속실로, 전라도의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다. 남도의 자연, 남도의 농업, 남도의 집, 남도의 어업, 남도의 시장, 남도의 예술이라는 6개의 주제로 구분하여 다양한 전시품과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층은 광주근대역사실로, 조선시대·일제강점기·광복 후의 광주 역사를 다룬다. 광주읍성, 충정로, 금남로의 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00년대에 사라진 광주읍성을 모형으로 복원하여 광주의 옛 모습을 보여주고, 1920~30년대 충장로 거리 재현을 통하여 일제강점기의 생활상을 소개한다.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도 갖추어져 있다.
대표적 전시물은 광주의 관문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절양루(折楊樓)의 1/4 크기 복원물, 광주읍성 모형, 고려시대 유물인 ‘장지장군 갑옷(보물)’의 원형 복원품, 1798년 정조의 명으로 치른 전라도 유생 대상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인 길이 28m의 ‘어고방목’, 임진왜란 의병장 고경명·김덕령 관련 자료, 항일운동에 앞장선 호남의병 관련 자료 등이다. 광주역, 광주우편국, 광주극장, 흥학관 등 광주의 옛 명소들도 재현되어 있다.
소장품 중 주요 지정문화유산은 ‘정지장군 갑옷(보물)’을 비롯하여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국가민속문화유산)’, ‘고운 묘 출토유물(국가민속문화유산)’, 유형문화재인 ‘십신사지 석물’, ‘십신사지 석비’, ‘눌재집목판각’, ‘사암집목판각(광주광역시유형문화유산)’ 등이다. 야외전시장에는 선돌·석등·석장승·석불·석비·동자석·문인석·부도 등 각종 석물과 정려, 물레방앗간 등 100여 점의 민속자료와 시설물이 전시·설치되어 있다.
광주 비엔날레
북구 비엔날레로 111(용봉동 산 149-2), 062-608-4114
1995년 광복 50주년과 ‘미술의 해’를 기념하고 한국 미술문화를 새롭게 도약시키는 한편, 광주의 문화예술 전통과 5·18 광주민주항쟁 이후 국제사회 속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광주 민주정신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창설되었다.
1995년 4월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가 설립되었고, 1995년 9월과 1997년 9월에 각각 제1회와 제2회 비엔날레가 개최되었고, 2000년 3월 제3회 비엔날레가 개최된 이후 중외공원문화벨트 일원에서 매년 2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비엔날레관을 주무대로 한 전시는 총감독의 전시기획 방향과 개념, 연출방식에 따라 몇몇 섹션들로 구성되며 35개국 내외 80∼100여 명의 작가의 작품들로 꾸며진다. 중외공원 이외의 광주 시내의 장소에서 일부 전시 또는 프로그램을 분산 개최하기도 한다.
광주 페밀리랜드
북구 우치로 677 (생용동), 062-607-8000
광주패밀리랜드는 광주광역시 북구 우치로에 자리한 호남 최대 규모의 놀이공원이다. 면적 22만 9031㎡ 안에 최신 놀이기구 24종, 국내 최대 높이의 관람차 빅아이, 호남 최장 슬로프를 갖춘 눈썰매장, 최첨단 카라반 캠핑장, 각종 공연과 오락, 체험시설 등이 갖추고 있다 울창한 자연림과 저수지 등 자연조건이 빼어나 주변 전체가 우치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코스에 따라 연인 코스, 가족코스, 어린이 코스 등으로 나누어 이용할 수 있다. 우선 연인 코스는 청룡열차, 카오스, 바이킹, 박치기왕, 타가 디스코, 나는 그네 등으로 연인들이 함께 즐기면 좋을 놀이 기구들이다. 가족코스는 패밀리 열차, 사막의 폭풍 등 가족 단위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즐기면 좋은 놀이 기구이다. 이외에 어린이 범퍼카, 꼬마 비행기, 회전목마 등 어린이 전용 놀이기구도 구비되어 있다.
중앙광장·잔디광장·사계절썰매장·아이스링크·수영장 등도 있다. 이외에 동물원·식물원 등의 볼거리가 있다.
6. 광주 서부·남부 권역
►청춘발산마을 (서구 양동)
청춘발산마을은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있는 도시 재생 마을을 일컫는다. 청춘발산마을에서는 도시재생사업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이 모여들어 주민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1950년대 후반 발산마을에는 소나무가 많아 '따박솔'이라고 하였다. '따박솔'은 가지가 많아 탐스럽고 소복한 어린 소나무를 칭하는 ‘다복솔’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발산을 한자로 풀어보면, '발(鉢)' 자가 ‘쇠 금(金)’ 변에 ‘나무 목(木)’ 자, 즉 바라(바리)로 스님들 공양 그릇을 뜻한다. 여기에 뫼산(山)을 합해서 '발산(鉢山)'이 되었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을 한다면 산이 바리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15년 발산마을에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청춘발산마을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갖게 되었다.
원래 발산마을은 전쟁 피난민들이 모였던 곳이다. 1970~1980년대 인근에 방직공장이 생기면서 일자리를 찾아온 여공들로 한때 활력이 넘치기도 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점차 빈집들이 늘어났고, 고령자들만 남아 마을을 지켜왔다.
2015년 민관협력 도시재생 프로그램 ‘청춘발산마을’ 사업을 계기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다. 오래된 골목에 컬러아트 프로젝트와 공공디자인으로 방문객들이 찾아들었고, 청년 창업팀이 입주하며 활기를 얻었다.
청춘발산마을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이 시간이 멈춘 마을 골목길에 정원을 만들고 벽화를 그리며 숨을 불어 넣었다. 낡은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창업공간으로 만들었고, 비좁은 골목길에도 젊은 청춘길, 열정 청춘길, 푸른 청춘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젊은 예술가들은 점차 마을 전체를 갤러리로 만들었으며, 매달 국내외 작가의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마을미술 프로젝트로 작품이 설치되고, 공가와 폐가를 거점공간으로 활용해 청년들이 모여들며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광주향교
남구 중앙로107번길 5 (구동 22-3), 062-672-7008
1398년(태조 7)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서석산 장원봉 아래에 창건되었다. 1974년에 대성전을 보수하고 단청하였으며, 1976년에 동 · 서재와 1978년에 명륜당을 보수하고 1981년에 담장 등을 보수하였다.
이 향교는 1985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동무·서무·동재·서재·내삼문·외삼문·비각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 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외삼문 밖에 있는 비각에는 흥학비와 중수비·위성묘비 등이 있는데, 흥학비는 1563년에 세워진 것으로, 기대승(奇大升)이 찬기하고 박광옥(朴光玉)이 음기를 찬하였다.
중수비는 둘이 있는데 하나는 1803년에 목사 김선(金銑)이 중수하고, 또 하나는 1855년에 목사 홍재응(洪在應)이 중수한 것이다. 위성묘비는 권일제가 성묘를 지킨 것을 1843년에 목사 조철영(趙徹永)이 그 기(記)를 새겨 세운 비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으며,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포충사
남구 포충로 767 (원산동 775)
포충사는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高敬命, 1533~1592)과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高從厚, 1554~1593), 고인후(高因厚, 1561~1592)와 금산전투에서 같이 순절한 유팽로(柳彭老, 1554~1592), 안영(安瑛, 1564~1592)을 배향하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 서원과 사우 중에서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령(1868년, 고종 5) 때 훼철되지 않은 곳이다. 1601년(선조 34) 호남 지역 유학자들이 고경명 등을 기리기 위하여 지금 자리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1603년(선조 34) 박지효(朴之孝) 등을 중심으로 한 유학자와 고경명의 후손들이 사액을 청하여 조정에서 '포충(褒忠)'이란 이름을 받았다. 이후 수차례 중수가 되었고, 1978~1980년 유적정화사업이 진행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갖추었다. 1974년 5월 22일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포충사는 신사우 구역과 구사우 구역로 나누어진다. 신사우 구역에는 사당인 포충사와 내삼문인 성인문(成仁門)이 있으며, 내삼문 앞에는 유물전시관인 정기관(正氣館)과 외삼문인 충효문이 있다. 구사우 구역은 신사우 구역의 서쪽에 있으며, 사당과 동재, 서재 및 내삼문, 외삼문이 있고,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다. 매년 4월 15일에 제향 행사를 한다. 1974년 5월 22일에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7. 광주광역시 광산구 권역
월봉서원
광산구 광곡길 133 (광산동), 062-951-6434
월봉서원은 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으로 한 지방 유림의 공의로 기대승(奇大升)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46년(인조 24)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1654년(효종 5)에 ‘월봉(月峯)’이라고 사액되었다. 1671년에 송시열 등의 건의로 인근의 덕산사에 모셔져 있던 박상과 박순을 이향하였으며, 1673년에 김장생과 김집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그 뒤 전라남도 유림에 의하여 1938년 5칸의 빙월당(氷月堂)이 건립되었으며, 1972년에 4칸의 고직사, 1978년에 외삼문과 3칸의 장판각, 1980년에 사우, 1981년에 내삼문이 건립되었다. 빙월당은 광주광역시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판각에는 『고봉집(高峯集)』 목판 474판이 보관되어 있다.
용아 박용철 생가
광산구 소촌로46번길 24 (소촌동)
우리나라 현대 문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초창기 시단을 빛낸 시인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 1904~1938) 선생의 생가는 1986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용아의 생가는 19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몸채의 초가지붕을 시멘트 기와로 교체하고 부속 건물은 슬레이트로 개량했었으나 최근에 다시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용아 박용철의 생가로 그의 고조부가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실제 건립연대는 1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로 맨 왼쪽은 부엌으로 전면에는 부엌방을 두었으며, 중앙 2칸은 방으로 4분합문을 달았고 나머지 2칸은 2짝 여닫이의 井자살문이다. 창호는 걸쇠를 걸어 들어 열 수 있는 들어열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 2자 높이로 자연석을 바른층 쌓기한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전면은 두리기둥을 세우고 측면과 내부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주두 위에 납도리를 올려 5량 구조를 만들었다. 서까래 위에 부연을 얹은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사랑채도 5칸집으로 우측으로부터 부엌, 방, 방, 마루의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그 외에 사당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인 맞배집이며 서재는 원래 초가집이던 것을 시멘트 기와로 이었다. 행랑채는 4칸집으로 사랑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다.
용아 박용철은 1904년 이곳에서 태어나 광주 공립보통학교와 배재고보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 청산학원, 동경외국어대 독문과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교 시절부터(1918) 지하신문 《목탁》을 발간하여 항일 독립 정신을 고취하고, 1922년 동경 청산학원 4학년에 편입, 1923년 김영랑과 교류하였고, 자비로 《월간문예》, 《시문학》, 《문학》 등의 잡지를 간행하였다. 1923년 9월에 귀국하여 당시 강진에 있던 김영랑과 본격적으로 왕래하면서 시작에 전념하였다.
1930년 《문예월간》을 창간하여 외국어 문학을 소개하는 한편 1931년에는 김영랑, 정지용 등과 함께 순수시 전문지인 《시문학》을 발간하여 창간호에 대표작인 「떠나가는 배」, 「밤 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등을 발표하였고, 다시 《시원 詩苑》을 발간하였으며 1937년 《청색지 靑色紙》라는 순수문학 잡지를 간행하였다. 또, 극예술연구회의 동인으로 신극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외 시의 이론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의 조선 문단은 이른바 프로레타리아문학에 깊은 영향을 받아 온 때였으나 용아는 이 고장의 김영랑 등과 어울려 순수시 운동에 몸을 바쳐 30년대의 서정시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용아는 아깝게도 1938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여 더 이상의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다.
1913 송정역시장
광산구 송정로 8번길 13 (송정동 990-18)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 있는 상설 시장으로 송정매일시장, 송정5일시장과 함께 일명 '송정리 3대시장'으로 불린다. 1913년, '매일송정역전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하여, 호남고속선개통 이후 외지인들의 관광인구가 늘어나자 100년의 역사를 강조하기 위해 시장 이름을 1913송정역시장으로 변경했다.
지상 2층의 적벽돌조 건물이며, 100년을 지켜온 36여 개의 기존 상점들은 간판의 글씨, 가게 형태, 가게 색상 중 하나는 꼭 보존하였다. 비교적 시설 현대화 작업이 잘 돼 깔끔한 곳이며, 신구 조화가 잘 이뤄져 젊은 청년층이 창업한 가게들도 많다. 옛 정취를 되살리자는 취지로 건물 자체의 리모델링은 최소화하고, 간판의 디자인은 상인들의 추억을 담아 제작하였다.
시장의 이용 시간은 보통 오전 11시에서 오후 10시까지이고, 금요일에서 일요일까지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11시까지 운영한다. 주류 판매점은 보통 오후 12시까지 운영한다. 휴일은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 월요일이고, 주차시설은 1913 송정역시장 공용주차장에 주차 하면 된다. 점포 수는 총 81개이고, 취급 상품은 농·축·수산물, 공산품, 의류업, 음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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