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선유도에 가다.
글·사진 남상학
▲장자도에서 잡은 풍경 (멀리 선유도의 명물 망주봉이 보인다.
가을을 맛보기 위해 집을 떠났다. 첫날은 아침에 서울에서 떠나 변산반도에서 하루를 마감할 예정이다. 가는 길에 중간 행선지는 선유도 일원, 우리는 군산에서 새만금방조제로 이어진 신시도에서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를 거쳐 맨 끝자락 대장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들 섬은 모두 고군산열도에 속하는 섬으로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와 몇 개의 예쁜 다리로 연결되어 여행자에게 특별한 매력을 준다.
여행자의 설렘은 ‘바다 위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새만금방조제(33.9㎞)로 접어들면서 시작된다. 청명한 하늘과 푸른 바다, 잔잔한 물속에 비친 가을 산의 정경이 모두 그림 같다. 좌우로 푸른 호수와 바다가 펼쳐지고, 곧고 길게 뻗은 도로는 마치 레드카펫을 밟는 기분이다. 우측에 있는 야미도를 지나 고군산군도의 관문과도 같은 섬 ‘신시도’에 닿을 무렵 설렘의 도는 더욱 고조된다.
신시도는 육지와 이어지기 전에는 군산항에서 무려 90여 분 배를 타야 닿을 수 있던 외딴섬이었다. 주위에 있는 선유도·무녀도·야미도·관리도·대장도·장자도·방축도·횡경도 등과 함께 고군산군도를 이루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신시도 월영봉에서 바라본 풍경 (고군산대교 뒤로 멀리 선유도가 잡힌다.)
신시도는 북서쪽에는 최고봉인 대각산(187m), 남동쪽에는 신치산(142m)이 솟아있고, 중앙은 두 산지를 연결해주는 좁은 저지대로 되어 있다. 신시도에는 국립신시도자연휴양림이 있다. 휴양림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원형 전망대에 서면 세계 최장 1주탑 현수교인 고군산대교와 무녀도의 무녀봉, 장구도, 관리도, 대장도, 선유도 남악산, 방축도 등 63개의 섬 (유인도 16, 무인도 47개)으로 이루어진 고군산열도 바다 전망이 시야에 들어온다. 숙박과 관계없이 입장료(성인 1000원)를 내면 당일 탐방도 가능하다.
고군산군도는 고려 때 수군 진영을 두고 ‘군산진’이라 불리다가 조선 세종 때 진영이 육지로 옮겨가면서 ‘옛 고(古)’자를 붙였다. 또, 신시도엔 최치원이 글을 읽었다는 월영대도 볼거리다. 새만금휴게소 주차장에서 걸어서 20여 분이면 닿는다.
▲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의 위용
신시도를 시작으로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등 비교적 큰 섬 사이엔 고군산대교, 선유대교, 장자대교 등 연도교(連島橋)가 놓여 차를 타고 쉽게 오갈 수 있다. 오늘 우리가 탐방하는 곳이다.
먼저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섬의 성찬이 시작된다. 무당이 춤을 추는 것처럼 생겼다는 무녀도, 무녀도에서 선유대교를 건너면 고군산군도의 대표 섬이자 중심 섬인 선유도가 기다린다. ‘선유도’,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신선이 노닐었다는 이름이 붙었을까? 이 궁금증은 선유봉에 오르면 쉽게 풀린다. 우뚝 솟은 돌산인 망주봉, 그 아래 펼쳐진 고운 모래의 드넓은 해변, 주위 사방으로 흩어진 섬들이 보고 있으면 누누나 신선이 되니 말이다.
▲고군산대교를 지나면,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를 차례대로 갈 수 있다.
▲무녀도에서 썰물이 되면 갈 수 있는 쥐똥섬
선유도는 경치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 고려 시대엔 여송(麗宋) 무역로의 기항지 역할을 했고, 조선 시대엔 수군 본부 역할을 한 요충지였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이순신이 명량해전 승리 후 열하루 동안 머물며 정비를 다진 곳이기도 하다.
선유터널을 지나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선유도 삼거리로, 좌회전해서 장자대교를 건너면 장자도로 이어진다. 우리는 연도교의 종점인 장자도에 차를 세웠다. 장자도는 연도교가 이어지기 전까지는 포구에 고깃배 몇 척 보이는 한적하고 조용한 어촌이었다. 연도교가 세워지고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장자도는 어지러울 정도로 혼잡해졌다. 총면적이 고작 0.13 km2, 해안선 길이 1.9 km밖에 안 되는 섬에 차량이 몰려들자 차를 세우기 위한 주차장과 식당, 펜션들이 가득 들어섰다. 풍선 같으면 터져나갈 지경이다.
▲장자도의 풍경, 언제부턴가 호떡마을로 변했다.
장자도의 풍경 중에서 쉽게 눈에 띈 것은 호떡집, ‘호떡마을’로 불러도 좋을 만큼 촘촘하게 들어선 호떡집에서 꿀호떡을 구워내는 기름 냄새가 풍겨왔다.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허기를 해결하기엔 위해선 이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1만 원 이상 구매 시 ‘공영주차장 2시간 무료 주차’라는 상혼이 주차난을 겪는 곳에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여행객들에게 인기있는 장자도 호떡
우리도 장자도 명물이 된 호떡을 맛보고 나서 장자도에 차를 주차하고 맨 끝자락 대장도로 향했다. 대장도에는 주민의 차 외에는 차를 주차해 둘만 한 공간이 없다. 장자보다 두 배 이상이 크지만, 섬 전체가 바위산이기 때문이다. 섬 사이로 연결된 10여m 정도의 짧은 다리이니 대장도는 바로 코 앞이다.
▲장자도에서 바라본 대장도, 우뚝 솟은 봉우리가 대장봉이다.
▲대장도의 카페와 펜션들
▲대장도 마을 앞에 꾸민 화단과 설치물
끝섬 대장도는 옛날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섬을 한 바퀴 돌아보고 훗날에 크고 긴 다리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 후 사라져 버렸는데 그 말을 믿고 주민들이 대장도라 불렀다고 한다. 대장도 산 중턱에는 아기를 업고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서린 ‘할매바위’가 있다.
▲대장도 바위산에 우뚝 선 할매바위
하지만 대장도의 볼거리는 단연 대장봉이다. 해발 142.8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만만하게 볼 코스는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 오른쪽 구불구불한 길로 올라가 대장봉 정상을 거쳐 나무 계단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양쪽으로 펼쳐지는 장관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는 길엔 ‘할매바위’나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어화대’, 바다 전망 공간에서 잠시 숨을 고를 틈이 있다. 길이 좁은 데다 일부 구간은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므로 노약자에게는 쉽지 않다.나는 이미 20여 년 전,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이 코스를 오른 적이 있다.
▲대장도의 최고봉인 대장봉 (142m의 바위산 정상)
그러나 일단 오르고 나면 힘들었던 것이 금방 싹 가신다. 대장봉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가까이 장자도부터 장자대교와 장자도 스카이워크, 선유도, 무녀도를 포함해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구실을 한다. CNN에 소개된 고군산군도 대표 이미지도 대장봉에서 바라본 군도 풍경이다.
이번에는 나를 포함하여 동행자들이 고령이어서 대장봉에는 오르지 않고, 차를 타고 여객선과 유람선이 닿는 포구로 행했다. 가고 오는 뱃길의 발길도, 사람의 인기척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은 해변 북쪽으로 우뚝 솟은 망주봉, 옛날 선유도에는 많은 선비가 귀양살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선비들이 망주봉에 올라와서 한양 쪽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해 ‘망주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위산 망주봉은 그 자체로 수묵담채화다. 베이지색에 가까운 두 봉우리는 예나 이제나 마치 선유도 해변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서있다. 특히 망주봉의 일출과 낙조는 고군산팔경에 들어가는 절경으로 유명하다.
▲선유도의 명물 망주봉
그리고 길이 750m 중 100∼150m가 모래로 덮여 있어 ‘명사십리(明沙十里)’로 불리는 선유도해수욕장, 주변의 기암괴석들이 매우 아름답고, 물이 맑고 모래질이 좋으며, 수심이 얕고 경사도 완만하여 천혜의 해수욕장으로 꼽히는 곳이라 여름철에는 발 디딜 틈이 없지만 철지난 받바닷가엔 갈매기만 한가하게 앉아 있다.
▲선유도해수욕장과 조형물
섬은 가을이 무르익는 철이라 어느 곳이나 한산하고 고즈넉했다. 그러나 곳곳에서 발견된 모습은 섬이 지니는 고유의 정취는 간데없고 크게 훼손되었다는 느낌이다. 다리가 놓이지 않은 시절, 군에서 여객선을 타고 들어와 설레는 마음으로 섬 정취를 마음껏 느끼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연도교로 이어지면서 교통은 편리해졌으나 넘치도록 찾아오는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는 어쩔 수 없이 섬이 가진 옛 정취를 많이 잃었다. 우리는 선유도에 드리운 가을의 모습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고 선유도를 빠져나와 변산반도로 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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