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성경 : 신약 (22)
고난주간 첫날(주일) : 종려주일_예루살렘 입성(入城)
유월절 엿새 전날(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하루 전날)이었다. 올리브산 동쪽 끝 예루살렘 성벽에서 약 3㎞ 떨어진 베다니에 있는 나사로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졌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예수님에 의하여 살아난 사람이다.
● 나사로 집에서의 만찬 - 대속적인 죽음을 준비 (마 26:6-13, 막 14:3-9, 요 12:1-11)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이때, 제자 중 하나로 장차 예수님을 넘겨줄 가룟 유다가 나무랐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그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그는 돈자루를 맡은 인물로서 자신의 비열한 탐욕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그는 나에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정성을 다해 자신의 대속적인 죽음을 준비한 마리아를 칭찬하셨다. 이날에 유대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신 것을 알고 떼를 지어 몰려왔다. 그들은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 사람들이 유대교에서 떨어져 나가서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 예루살렘 입성 (마 21:1-11, 막 11:1-11, 눅 19:29-44, 요 12:12-19)
날이 밝아, 고난주간 첫날(주일)이 되었다. 주님의 고난은 예루살렘의 입성과 함께 시작되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부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의 1주간을 고난(수난)주간이라 부른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가까이 올리브 산이 있는 벳바게 마을에 오셔서, 맞은편 마을로 두 제자를 보내 어린 나귀를 빌려오게 하셨다. 마침 유월절을 며칠 앞두고 예루살렘의 거리는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유월절 양 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구해 온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동편으로 들어오셨다. 전에 갈릴리에 계실 때에 그의 교훈을 듣고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호산나'(오, 구원해 주시옵소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군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승리의 표시인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호위하고, 어떤 사람들은 옷을 벗어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가에 펴기도 하였다. 그리고 목청껏 외쳤다.
“호산나, 복되도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복되어라,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예루살렘의 거리는 예수님의 입성으로 축제 분위기였다.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새끼인 어린나귀를 타고 오신다."
예수님은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대로 왕의 자격으로 그의 도성에 입성하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가까이 오셔서 도시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그러나 지금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그날들이 너에게 닥칠 것이니, 너의 원수들이 흙언덕을 쌓고, 너를 에워싸고, 사면으로부터 너를 공격하여서, 너와 네 안에 있는 네 자녀를 짓밟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얹혀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하러 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였다는 뜻에서 이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군중이 원하는 왕과 예수님의 왕 되심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할 세상의 왕으로 생각하였으나, 예수님의 왕 되심은 제한된 한 민족의 왕이 아니라 우주의 왕이요, 영원한 메시아로 입성하신 것이었다.
제자들은 다윗 왕조의 전통에 따른 왕의 ‘즉위식’을 꿈꾸었으나, 메시아로 선포된 예수님의 모습은 평화의 왕이신 그의 생애가 고난으로 점철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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