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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제주도

제주 용수 성지,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 성당과 기념관

by 혜강(惠江) 2022. 12. 5.

 

제주 용수 성지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 성당과 기념관

 

 

글·사진 남상학

 

 

 

  “ … 누구신가 / 수호천사 라파엘 작은 목선 하나로 / 성난 바다에 돛대도 키도 던져버리고 / 상해를 떠난 지 42일 / 조국을 떠난 지 10년 / 이 나라 최초의 목자가 되어 돌아오신 이, / 흩어진 양 떼를 돌보려 찾아왔으나 / '우리를 잡아 먹으려고 짖어대는 개들'이 / 우글대는 그런 조국을 더더욱 사랑하신 이 / 당신은

(중략) …

누구신가 / 신부 되어 일곱 달 만에 / 사학 죄인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 해괴한 피의 제사의 제물이 되신 이 / 북한산과 도봉산과 관악산이 굽어보는 / 한강의 새남터 모래밭에서 / 비웃음이 소낙비처럼 쏟아질 때 / "여러분은 내 말을 들으시오. / 내가 외국인과 교제한 것은 오직 우리 / 교를 위하고 우리 천주를 위한 것" 이라고 / 하늘과 땅에 외치신 이 / 당신은 … ”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 (김형영) 중에서

 

 

 수월봉에서 북쪽으로 해안을 따라 달리다 보면 아담한 용수리 포구가 나온다. 용수리 포구는 1845년 8월 17일 최초의 한국인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가 중국 상해에서 출발해 서해로 귀국하다가 표착(漂着)한 곳이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인 최초로 상해 진자샹(김가항, 金家巷) 성당에서 페레올(Ferréo)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된 후,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Marie Nicolas Antoine Daveluy) 신부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하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 이곳 제주도 용수리 해안에 닿게 되었다.

  이에 포구 언덕에 김대건 신부의 선교 열정과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천주교 제주교구는 1999년 용수리 포구를 성지로 선포하고, 2006년 지금의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기념관’과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기념 성당’을 건립하고, ‘라파엘호’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김대건 신부가 항해 중에 간직했던 ‘기적의 성모 상본’을 바탕으로 제작된 성모상이 그 곁을 지키고 있다.

 

 

  애초 그들의 목적지는 한강 마포나루였지만, 당시 조선의 대외 강경책으로 인해 서울 주변 경계가 강화되고 강으로 올라오는 모든 배를 아주 세밀하고 엄하게 조사하는 형편이었으므로, 그들은 곧 배를 수리하고 떠나 전라북도 금강 하류의 나바위로 무사히 입국해 복음 선포에 전념할 수 있었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 성당과 기념관 앞을 지나는 길은 천주교 제주교구 순례길 김대건길의 경유지이다. 김대건길은 고산성당에서 시작하여 용수성지를 거쳐 신창 성당까지 12.6km.에 이르는 길이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 성당

 

  용수성지 내 기념관 옆 작은 성당은 성지 내에 선 기념 성당은 해안 순례길을 향해 서 있다. 이 성당 정면은 성 김대건 신부의 서품식이 거행된 중국 상하이 진자샹(金家巷) 성당 정면 모습과 같다. 지붕은 파도와 라파엘호를 형상화했다.

  1만 4190㎡ 넓이의 단층으로 된 작은 성당이지만 순례객들을 품어 안기엔 넉넉하다. 성당 옆 등대 모양의 종탑은 어둠을 밝히는 교회와 김대건 신부를 상징한다. 성당에선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 미사를 진행한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 기념관

 

 

  한적한 해안가 마을 용수리에 있는 성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관은 우리나라의 첫 신부인 성 김대건 신부와 제주 천주 교회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연건평 555.37㎡ 규모로 세워진 기념관 1층에는 영상실·소성당, 상징이미지윌이 있어 영상과 이미지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외에도 인포메이션·성물보급소, 성 김대건 신부 유해공경실, 형구전시실 등이 있다.

 

 

   여기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바로 성 김대건 신부 유해공경실이다. 성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17살이었던 소년 이민식 빈첸시오는 모래사장에 임시매장된 김대건 신부 시신을 수습해 고향인 미리내로 옮겼다.

  55년 후인 1901년,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안치됐고, 가톨릭대 신학대학 박물관엔 김대건 신부 유해를 용산 신학교로 모셔올 때 사용한 목관이 남아 있다.

  이후 김대건 신부 유해는 6·25 전쟁 중 피난을 다니는 수난을 겪다, 1960년 세 곳에 나뉘어 안치됐다. 굵은 뼈들은 가톨릭대 성신교정에, 아래턱뼈는 미리내 성지에, 치아는 절두산 순교성지에 모셔졌다. 김대건 신부를 현양하는 열기가 커지자 한국 천주교회는 유해를 성당과 수도회, 기관 등에 분배했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기념관에 유해공경실이 있다는 것은 이곳에도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를 안치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래서 공경의 예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형구전시실이다. 이곳에 전시된 형구들은 각종 고문과 참수, 교수형, 사약, 몰매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행되었다. 이것들은 한국 천주교회가 얼마나 큰 수난을 겪었는지 가히 짐작해 볼 수 있다.

  김대건 신부는 조선 후기 병오박해를 받은 인물로 그의 생애는 짧은 스물다섯의 인생이었지만, 삶은 마치 영웅 서사처럼 극적이다고 알려졌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성 김대건 신부 제주 표착기념관’의 주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전시관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활동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즉, 김대건 신부 흉상, 김대건 신부 연혁, 사도의 길, 라파엘호의 여정, 김대건 신부의 고난의 길 14처, 한국에서의 첫 미사, 제주에 뿌린 신앙의 씨앗 등으로 구분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서신이나 소장품, 의복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용수리 해안에 닿던 모습을 디오라마로 구성해 눈길을 끈다.

  김대건 신부는 순교자의 집안에서 자란 김대건 신부는 1836년(헌종 2년) 프랑스 신부 모방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생이 되었고, 마카오로 유학하러 갔다. 공부를 마친 김대건은 기해박해 이후로 탄압이 계속되고 있는 조선으로 들어오려고 했으나 천주교도와 입국을 시도하던 중 풍랑을 만나 제주 차귀도 해변에 닿았다. 천주교 제주교구에 따르면 김대건 신부 일행은 맨 먼저 차귀도에 내려 조선 땅임을 확인하고 한경면 용수포구로 이동해 인근에서 머물며 배를 수리하고서 1845년 10월 떠났다.

  이 젊은 신부는 그다음 해 동료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 통로를 알아보다 체포되었고, 1801년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서울 새남터(서울 용산 모래사장)에서 2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유네스코는 2021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김대건 신부를 2021년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했다.

 

 

  이외에도 전시관에는 김대건 신부에 관한 내용 외에 제주교회사 연표, 복음의 전래, 제주 천주교에 관한 제반 내용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천주교의 역사와 대한민국에서 천주교를 전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며 한국을 찾았던 ‘선종 사제’의 험난한 과정의 기록들, 유품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박해 속에서 지금의 모습까지 이어진 천주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건물의 가장 위층 옥상 전망대에서는 멀리 차귀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용수리의 아담한 마을 풍경과 제주올레 12코스와 13코스를 잇는 용수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라파엘호

  성지 내에 또 하나 이색적인 공간은 라파엘호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기념관 옆에 전시된 배는 성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 17일 상해에서 한국 최초 사제서품 후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을 주교 등 일행 13명과 함께 상해 항을 출발하여 귀국길에 올랐던 목선 라파엘호이다.

  출항한 지 3일 만에 서해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9월 28일 용수리 포구에 닿아 고국 땅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했다. 며칠간의 배 수리 후 10월 1일 포구를 떠난 김대건 신부 일행은 10월 12일 금강 하류의 ‘나바위’ 해안에 무사히 도착했다.

  라파엘호는 길이13.5m, 너비4.8m, 깊이2.1m, 총중량 27.2톤 무동력 목선이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지난 1999년 용수성지 선포를 기념하며 고증을 통해 라파엘호를 복원하고 제주-상하이 바닷길 성지순례를 펼치기도 했다.

  당시 페레올 주교가 파리외방전교회 바랑 교장 신부에게 보낸 1845년 10월 29일 자 서한에 따라 라파엘호를 살펴보면, “라파엘호는 길이 25자, 너비 9자, 깊이 7자의 크기에 아주 높은 돛대 2개, 가마니로 이은 돛 두 폭이 달려 있고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은 채 널판은 나무못으로 서로 이었으며, 타마유나 틈막기도 없었다.

  뱃머리는 선창까지 열려 있는데 이것이 배의 1/3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권양기 끝에 나무로 된 닻이 하나 있었다. 라파엘호 갑판 일부분은 자리로 돼 있고 일부분은 아무런 고정기구로 고정되지 않은 채 그저 잇대어 깔아 놓은 나무판자로 돼 있으며 갑판 위에는 배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이 3개 있고, 하늘이 흐리면 닻을 내리고 배에 짚으로 된 덮개를 덮을 수 있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언제 파도에 휩쓸릴지 모르는 열악한 목선을 타고 중국을 오갔다는 것은 생명을 거는 일이었는데 복음을 위해서는 위험조차 무서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라파엘호에 올라서면 더욱 가까이 보이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상’은 김대건 신부가 간직하던 ‘기적의 성모 상본’에 있는 모습을 본 따 만들어 세웠다. 순례객들은 배 위에 직접 올라가 볼 수도 있다.

 

 

  성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 성당과 기념관은 올레길 12코스와 13코스의 연결지점인 용수 포구에 있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들러보기 좋은 곳이다.

 

 

  용수리 포구에서 북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신창풍차해안도로라 불린다. 제주에서 손에 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다. 땅도 바다만큼 낮고 평탄하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달리면 바다에는 차귀도가 모습을 바꿔가며 따라오고, 진행 방향에는 해상풍력단지의 바람개비가 색다른 풍광을 연출한다.

 

 

◎상세정보

 

 

►주소 : 제주시 한경면 용수1길 108 (한경면 용수리 4266) / ►전화 : 064-772-1252

►성당 미사 : 매일 오전 11시(월요일 제외)

►기념관 관람 :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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