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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가을날의 상념(想念) · 2

by 혜강(惠江) 2022. 11. 9.

<수필>

 

가을날의 상념(想念) · 2

 

- 낙엽 길을 걸으며 -

 

글·사진 남상학

 

 

  가을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가 프랑스 시인 구르몽(Rémy de Gourmont, 1858~1915) 의 「낙엽」 전문이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갯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애송되는 이 시는 지성과 관능이 미묘하게 융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낭만적 서정시이다. 가을 낙엽을 시의 제재로 삼아 인생에 대한 단상을 상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은 가을이면 으레 커피생각이 난다고 한다. 가을 커피는 더욱이 감각적이어서 입맛에 당긴다는 것이 이유다. 헤밍웨이와 토마스 엘리엇 등 수많은 문학가는 커피 애호가였다고 한다. 깊은 상념에 잠길 때, 얽힌 상념의 실타래를 풀어나갈 때, 아니면 가을의 멜랑콜리를 극복할 때 따뜻한 커피잔에 어리는 김과 커피의 질감은 더할 나위 없는 위로가 될 테니까 말이다. 낙엽을 밟을 때 영혼이 운다고 표현한 구르몽도 커피광(狂)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커피의 맛을 잘 모른다. 그런데도 가을엔 커피 생각이 난다. 커피를 머금고 입안 구석구석 돌릴 때 부드러움이 살아나서가 아니다. 커피에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향미 때문은 더욱 아니다. 커피를 마신 뒤에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싶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솔직히 나는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좋고 나쁨을 가려낼 수 있는 능력도 없다.

  그러면서도 가을에 커피 생각이 나는 것은 구르몽의 “발에 밟히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는 표현처럼 커피를 마싷 때면 웬지 영혼이 되살아날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반복되는 세상사에 휩쓸려 바쁘게 돌아가다 보면 내가 왜 살아가는지,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망각(忘却)의 깊은 늪에 빠져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커피잔을 앞에 놓고 앉으면 어느 정도 여유로움 속에서 뒤를 돌아볼 수 있고, 나아가 깊은 상념에 젖어 마시는 커피는 내게 낙엽을 밟을 때 나는 ‘바스락’ 소리처럼 영혼을 살려내는 촉매재(觸媒劑)가 되기 때문이다. 

  쌀쌀해진 바람이 날카롭게 파고든다. 어디선가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친구여, 오늘 낙엽 진 거리를 걷고 나서 한잔의 커피를 마셔보면 어떨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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