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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여성의 미 / 피천득

by 혜강(惠江) 2022. 10. 18.

 

<수필>

 

여성의 미

 

피천득

 

 

  “나의 여인의 눈은 태양과 같지 않다. 산호는 그녀의 입술보다 더 붉다.”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정직한 말이다. 하기야 뺨이 눈같이 희다고 그리 아름다운 것도 아니요, 장미 같다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애인의 입술이 산호같이 붉기만 하여도 그리 좋을 것이 없고, 그의 눈이 태양같이 비친다면 큰일이다.

  여성들이 얼굴을 위하여 바치는 돈과 시간과 정성은 민망할 정도로 막대하다. 칠하고 바르고 문지르고 매일 화장을 한다. 하기야 돋보이겠다는 이 수단은 죄 없는 허위다. 그런데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젊은 얼굴이라면 순색 그대로가 좋다. 찬물로 세수를 한 젊은 얼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어디 Eh 있겠는가? 늙은 얼굴이라면 남편이 코티 회사 사장이라도 어여뻐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인형같이 예쁘다는 말은 사람이 아니오, 만들어 놓은 물건이란 말이다. 여성은 물건이 아니오 사람이다. 단지 얼굴이나 몸의 부분적인 생김생김만이 미가 될 수는 없다. 미스 아메리카와 같이 ‘인치’나 ‘파운드’로 미가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의 미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온다. 맑고 시원한 눈, 낭랑한 음성, 처녀다운 또는 처녀 같은 가벼운 걸음걸이, 민활한 일솜씨, 생에 대한 희망과 환희, 건강한 여인이 발산하는, 특히 젊은 여인이 풍기는 싱싱한 맛, 애정을 가지고 있는 얼굴에 나타나는 윤기, 분석할 수 없는 생의 약동, 이런 것들이 여성의 미를 구성한다.

  비너스의 조각보다는 이른 아침에 직장에 가는 영이가 더 아름답다. 종달새는 하늘을 솟아오를 때 가장 황홀하게 보인다. 그리고 종달새를 화려한 공작새보다도 나는 좋아한다. 향상이 없는 행복을 생각할 수 없는 것같이 이상에 불타지 않는 미인을 상상할 수는 없다. 양귀비나 크레오파트라는 요염하고 매혹적인 여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평화와 행복을 약속하는 건전한 미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나라를 기울여뜨리고 자신들을 망하게 하였다. 참다운 여성의 미는 이른 봄 같은 맑고 맑은 생명력에서 오는 것이다.

  시인 키이츠는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자체가 스러져 없어지는 것을 어찌하리오. 아무리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도 청춘의 정기를 잃으면 시들어버리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여 나는 사심이 넘은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드물게 본다. ‘원숙하다’ 또는 ‘곱게 늙어간다.’라는 말은 안타까운 체념이다. 슬픈 억지다. 여성의 미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약방문은 없는가 보다. 다만 착하게 살아온 과거, 진실한 마음씨, 소박한 생활 그리고 아직도 가지고 있는 희망, 그런 것들이 미의 퇴화를 상당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끝>

 

<작가 소개>

  호는 금아(琴兒). 1910년 4월 21일 서울 출생. 2007년 5월 작고. 상해 호강대학 영문과 졸업. 광복 전에는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원으로서 시작(詩作)과 영시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광복 이후에는 경성대학 예과 교수,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하고 뒤이어 <소곡>(1931), <가신 님>(1932) 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 기반을 굳혔다. 또한 수필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1933), <나의 파일>(1934) 등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시집 『서정시집』(1947), 『금아시문선』(1959), 『산호와 진주』(1969)를 간행하였다. 그의 시는 일체의 관념과 사상을 배격하고 아름다운 정조와 생활을 노래한 순수서정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서정성은 수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수필은 일상에서의 생활감정을 친근하고 섬세한 문체로 곱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한 편의 산문적인 서정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로 인해 그의 수필은 서정적‧명상적 수필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수필집으로 『수필』(1977), 『삶의 노래』(1994), 『인연』(1996), 『내가 사랑하는 시』(샘터사, 199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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