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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최영미의 고발시 '괴물' 발표 이후, 이문열의 단편 ‘사로잡힌 악령(惡靈)’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

by 혜강(惠江) 2018. 3. 8.

 

최영미의 고발시 '괴물' 발표 이후

 이문열의 단편 ‘사로잡힌 악령(惡靈)’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

최근 우리 사회가 미투(MeToo-나도 성폭행/성추행을 당했다) 운동이 활발하다. 이는 지난 1월 29일 현직 서 모 검사가 자신이 2010년 남자 선배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그 와중에 2017년 12월에 발행된 <황해문화>에 최영미 시인의 고발시 <괴물>이 발표되었다. 최 시인은 이 시에서 시인 자신으로 유추할 수 있는 젊은 여성 시인은 물론 출판사의 여성 편집자 등에게 성추행을 일삼는 '괴물'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이 시를 읽으면 '괴물'의 정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괴물'은 문단에서 실세 중의 실세로 추앙받고 있는 노(老) 시인 고은(高銀)을 지칭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이 집중되었다. 나아가 최 시인은 그의 일탈한 행위를 알면서도 못본 체 덮으려 하고 도리어 옹호했던 주변의 인물들(문단의 지도자들)까지 싸잡이 비난하고 있다.  


  * <보충 자료> 최영미 시인의 다른 작품 두 편 


 돼지의 변신 / 최영미 
  

  그는 원래 평범한 돼지였다
  감방에서 한 이십 년 썩은 뒤에
  그는 여우가 되었다

  그는 워낙 작고 소심한 돼지였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감옥을 나온 뒤
  사람들이 그를 높이 쳐다보면서
  어떻게 그 긴 겨울을 견디었냐고 우러러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졌다

  그는 자신이 실제보다 돋보이는 각도를 알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 방향으로) 몸을 틀고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무슨 말을 하면 학생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청중을 감동시킬까?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
  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
  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

  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
  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
  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
  변치 않을 오래된 역설이… 나는 슬프다.


  돼지의 본질 / 최영미


  그는 자신이 돼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훌륭한 양의 모범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신분이 높고 고상한 돼지일수록 이런 착각을 잘한다.

  그는 진주를 한번 보고 싶었을 뿐,
  두 번 세 번 보고 싶었을 뿐.....
  만질 생각은 없었다고
  해칠 의도는 더더군다나 없었다고
  자신은 오히려 진주를 보호하러 왔다고.....

  그러나 그는 결국 돼지가 된다.
  그들은 모두 돼지가 되었다.


  원로시인의 성추행을 고발한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이 발표되면서 24년 전에 쓰여진 소설가 이문열의 단편 ‘사로잡힌 악령(惡靈)’이 세간의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는 역시 이 작품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고은 시인을 연상케 한다는 점과 그의 행적이 최근 몇 년의 이야기가 아닌, 오래 전부터 상습적으로 자행되어 왔으나 묵인되어 은폐되었기 때문이다. 

'사로잡힌 악령(惡靈)' / 이문열
   

 ‘사로잡힌 악령’은 소설가 이문열이 1994년 발표한 중단편소설집 『아우와의 만남』(둥지출판사)말미에 게재되어 있다. 지금 서점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도서관에서도 초판을 소장하고 있지 않으면 이 단편을 읽어볼 길이 없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출간되자 등장인물이 고은 시인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고은 시인이 소속된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현재 문단의 주류인 진보 진영의 문인단체였다. 

   당시 이문열은 “작품을 보면 어떤 시인의 행보가 연상되겠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작품이 아닌 1980년대의 시대상을 담아내는 작품으로 봐 달라”고 해명했다. 작품 내용도 일부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국 비난을 견디지 못한 이문열 작가와 출판사는 『아우와의 만남』개정판을 내면서 ‘사로잡힌 악령’을 삭제했다. 이후, 특정인을 연상시킨다는 민족문학 진영의 비난 때문에 전집 목록에서도 삭제했다. 

   이 소설 ‘사로잡힌 악령’은 법조인 화자의 1인칭 시점으로 환속 승려 시인의 악행을 추적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화자인 ‘나’의 시선으로 한 승려 출신 시인의 기회주의적이고 엽기적인 행적을 쫓는다. 환속 후 문단으로 적을 옮긴 주인공은 민족 시인으로 추앙받지만, 자신의 욕구와 야망을 채우는 데 시대를 이용하는 기회주의적인 인물이다. 명사들과 두루 교류하며 높아진 입지를 이용해 여성들을 농락하는 그는 ‘반독재’ 저항시인으로 이 시대 대표문인으로 둔갑한다. 그는 화자에 의해 ‘악령’으로 지칭됐다.

♣ 줄거리 ♣

「삼십 년 전, 법학도인 ‘나’는 유명한 법학자인 스승의 자택에서 그분의 일을 돕고 있었다. 나는 누더기 승복 차림에 짚신을 신은 이십대 중반의 승려가 저명한 법학자에게 당당히 내방을 통보하고 찾아와 마주 앉는 장면을 보고 놀란다. 그는 아버지뻘 나이의 법학자를 친구처럼 예의 없이 대한다. 그는 ‘나’의 친구 운규의 아버지에게도 그렇게 행동했다. 그는 술병을 차고 찾아와서 아버지 연배가 되는, 당대의 유명 시인인, 운규 아버지와 대작하곤 했다. 그는 승복에 가려진 거짓말과 뻔뻔스러움을 밑천으로 이른바 ‘명사(名士) 사냥’을 하는 듯했다.

  이후 그를 만난 것은 내가 사법고시 준비를 하던 사찰에서였다. 술에 취해서 절을 찾아온 그는 그곳 총무 스님에게 노자를 뜯어내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는 동양화․서양화의 대가는 물론, 유명 문인과 학자들의 이름을 대며 그들 모두가 ‘친구’라고 자랑했다. 자신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큰스님의 상좌라고도 했다.

  이후 서른 가까운 나이에 신춘문예에 당선한 그는 ‘환속 승려’라는 이름으로 봇물이 터진 듯 글을 쏟아 놓기 시작했고, 그의 대중적인 명성은 높아갔다.


환속 승려의 파렴치한 엽색 행각


  시간이 흘러 ‘나’는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신출내기 검사가 되었다. 어느 날, 그가 관련된 사건이 내게 맡겨졌다. 승려였다가 환속하여 시인으로 이름을 얻은 자가 유부녀를 겁탈했고, 충격으로 시인인 남편이 자살한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친하게 지내던 교수가 외국에 공부하러 간 사이에 부인을 덮친 사실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를 ‘악령’으로 부르고 그를 주시하게 되었다.

  파렴치한 엽색(獵色)의 식단도 풍성했다. 자랑스레 휘젓고 다니는 색주가는 기본이었고 손쉽고 뒷말 없는 유부녀는 속되게 표현해 간식이었다. 더욱 악의 섞어 말하자면 신선한 후식도 그 무렵에는 그에게는 흔했다. 시인의 허명에 조급했다가 화대도 없이 몇 달 침실봉사만 한 신출내기 여류시인이 있는가 하면, 뜻도 모르고 관중의 갈채에만 홀려 있다가 느닷없이 그의 침실로 끌려가 눈물과 후회 속의 아침을 맞는 얼치기 문학소녀가 있었다. 그 자신이 과장하는 시인이란 호칭에 눈부셔 옷 벗기는 줄도 모르다가 살이 살을 비집고 들어서야 놀라 때늦은 비명을 지르는 철없는 여대생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성적인 행실 때문에 공식적으로 기소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어디선가 좋지 못한 행실로 술상을 덮어쓰고, 또 어디선가는 단짝인 문사에게 된통으로 얻어맞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유부녀를 집적이다 눈이 뒤집혀 덤비는 남편에게 쫓겨 밤중에 담을 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가 북채만한 여동생을 데리고 나타나 칼을 빼들고 설치는 청년 앞에 꿇어앉아 싹싹 비는 꼴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뒤늦게 들었지만 그의 자살소동도 있었다.


‘반독재’ 저항시인으로 변신

  ‘그’는 점차 문단에서 입지가 추락하고 급기야 자살소동까지 벌이는 지경에 이르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순수문학 마당에서 모든 게 거덜난 그가 술김에 구속문인 석방탄원서에다 서명한 것이 변신의 계기가 되었다. 그 바람에 남산으로 끌려가 사나흘 호된 취조를 당했고, 그곳을 나와 보니 ‘저항 시인’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허무주의·탐미주의 시인이 돌연 독재에 항거하는 저항시인으로 시대의 전면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그는 이제 거짓, 뻔뻔스러움, 천박, 비열 따위 다분히 감정적인 험구의 사정권을 가뿐히 벗어나 거창한 반독재의 대열의 뒤에 숨어 버렸다. 그리고 뒤이은 유신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더욱 휘황한 빛을 뿜기 시작한 반독재의 대의는 그의 지난 행적에 대해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이후 10·26과 12·12를 거쳐 5·18이 터지면서 그는 '저항시인'에다 '민중시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들의 끄트머리에는 '민족시인'이란 칭호가 다시 덧붙여지게 되었다. 문단이 민족주의 진영에서 완전히 장악하자 그 동지들의 철저한 함구도 그의 '악'을 보호해주었다. 그의 과거는 은밀한 소문으로만 남았다. 

  그에게 적대적인 세력도 ‘그 시대의 절박한 대의’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성명서마다 감초처럼 끼는 그의 이름과 엄청나게 부풀려져 발표되기 일쑤인 80년대 초 시국사건에의 연루, 투옥, 고문, 재판, 중형으로 이어지는 수난의 이미지는 이제야말로 그의 대중적인 지명도를 전국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쓰는 책은 일정 부수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그의 시간을 비싸게 사려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어떤 '악'은 제 키를 가리고도 남을 면죄부를 찾아내 완숙해진다. 완숙한 '악'은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면 파괴되지도 절멸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저주’뿐 다시 많은 시간이 흐르자 그는 운동권의 중심에서 이탈해 다시 세속의 탈을 쓴다. 그리고 예쁜 약사 아내를 얻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백화점 쇼핑을 즐기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의 악행을 아는 나는 승승장구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이 거짓과 위선을 폭로되어야 하고 이 허영과 뻔뻔스러움은 벌 받아야 한다. 이 악은 파괴되고 절멸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음 일 년이 다해 갈 무렵부터 나는 차츰 그 열정에 지치고 절망적이 되어 갔다.

  그러다가 그 절망감과 무력감은 마침내 그의 '악'에 대한 엉뚱한 축원으로 변해 갔다. 이 '악'을 지울 수 있는 길은 이 세상에 없다. 그의 죄가 탕감 받을 수 있는 벌은 없다. 있다면 오직 하나 그가 자신의 '악' 속에서 영원히 번성하는 것이다. 자신의 '악' 속에 영원히 갇히는 일이다. 너는 너의 '악' 속에서 영원하라……. 」

  한 마디로, 작품 ‘사로잡힌 악령’은 우리사회의 추악한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 민주화라는 훈장 뒤에 숨은 악과 대의를 위해 그 악을 보호하는 운동권의 섬뜩한 정신세계도 묘사한다. 당시 작가 이문열은 “작품을 보면 어떤 시인의 행보가 연상되겠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공격하는 작품이 아닌 1980년대의 시대상을 담아내는 작품으로 봐 달라”고 해명했지만, 소설 출간 후 모 시인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 때문에 민족문학 진영이 들끓었다. 민족문학 진영의 비난은 극에 달했다. 그들의 반발이 얼마나 심했으면 개정판에서 이 작품을 빼고 전집 목록에서도 삭제하였을까?  

발가벗긴 채 숨어 변명하는 아담의 모습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이 작품 속의 인물은 문단에 다소 관심을 가진 이들은 고은 시인임을 알 수 있었고, 이러한 그는 행적은 이미 1980년대부터 계속되었음을 말해준다. 소설에 등장할만한 이 엽기적인 행각은 문단 내에서 오랫동안 감추어졌다. 수십 년을 이어온 추태가 드러나지 않은 건 그의 위상 때문이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고문이고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그는 ‘문단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그의 추태를 오히려 ‘시인다움’으로 떠받들고 그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작품성을 과도하게 치켜세우는 문단 내 ‘카르텔’은 너무도 공고했다.

  드디어, 용기 있는 최영미 시인이 그의 행적을 폭로함으로써 그의 추한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의 만행이 폭로되자 성추행 논란에 휩싸인 그는 최초의 죄인 아담과 하와처럼 발가벗은 몸으로 숨었다. 숨은 그릉 가리켜 사람들은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내밀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지나서 사죄는커녕 "나는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없고, 집필을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것도 외신을 통해서 말이다.

 파렴치한 그의 모습을 보다 못해 거듭 폭로가 이어졌고, 네티즌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오죽했으면 20년 전의 소설로 거의 묻혀졌던  ‘사로잡힌 악령’이 새롭게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을까? 이제야 말로 '시인의 낭만' 운운하지 말고, 고은 시인 당사자는 물론 문단 전체가 깊이 자성할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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