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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장미 / 피천득

by 혜강(惠江) 2022. 10. 17.

<수필>

 

장미

 

- 피천득

 

 

잠이 깨면 바라다보려고 장미 일곱 송이를 샀다.

거리에 나오니 사람들이 내 꽃을 보고 간다. 여학생들도 내 꽃을 보고 간다.

전차를 기다리고 섰다가 Y를 만났다.

언제나 그는 나를 보면 웃더니, 오늘은 웃지를 않는다.

부인이 달포째 앓는데, 약 지으러 갈 돈도 떨어졌다고 한다.

나에게도 가진 돈이 없었다. 머뭇거리다가 부인께 갖다 그리라고 장미 두 송이를 주었다.

Y와 헤어져서 동대문행 전차를 탔다. 팔에 안긴 아기가 자나 하고 들여다보는 엄마와 같이 종이에 싸인 장미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문득 C의 화병에 시든 꽃이 그냥 꽂혀 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전차가 벌써 종로를 지났으나 그 화병을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전차에서 내려 사직동에 있는 C의 하숙을 찾아갔다. C는 아직 들어오질 않았다. 나는 그의 꽃병에 물을 갈아준 뒤에, 가지고 갔던 꽃 중에서 두 송이를 꽂아 놓았다. 그리고 딸을 두고 오는 어머니같이 뒤를 돌아보며 그 집을 나왔다.

숭삼동에서 전차를 내려서 남은 세 송이의 장미가 시들세라 빨리 걸어가노라니 누군지 뒤에서 나를 찾는다. K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애인을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K가 내 꽃을 탐내는 듯이 보았다. 나는 남은 꽃송이를 다 주고 말았다. 그는 미안해하지도 않고 받아가지고 달아난다.

집에 와서 꽃 사서 오기를 기다리는 꽃병을 보니 미안하다. 그리고 그 꽃 일곱 송이는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

 
 
<작가 소개>
 

  호는 금아(琴兒). 1910년 4월 21일 서울 출생. 2007년 5월 작고. 상해 호강대학 영문과 졸업. 광복 전에는 경성중앙산업학원 교원으로서 시작(詩作)과 영시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광복 이후에는 경성대학 예과 교수,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하고 뒤이어 <소곡>(1931), <가신 님>(1932) 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 기반을 굳혔다. 또한 수필 <눈보라치는 밤의 추억>(1933), <나의 파일>(1934) 등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았다. 시집 『서정시집』(1947), 『금아시문선』(1959), 『산호와 진주』(1969)를 간행하였다. 그의 시는 일체의 관념과 사상을 배격하고 아름다운 정조와 생활을 노래한 순수서정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서정성은 수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수필은 일상에서의 생활감정을 친근하고 섬세한 문체로 곱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한 편의 산문적인 서정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로 인해 그의 수필은 서정적‧명상적 수필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수필집으로 『수필』(1977), 『삶의 노래』(1994), 『인연』(1996), 『내가 사랑하는 시』(샘터사, 1997) 등이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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