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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단문(수필)

가을날의 상념(想念) · 1

by 혜강(惠江) 2022. 11. 8.

<수필>

 

가을날의 상념(想念) · 1

 

- 서울숲을 걸으며

 

글·사진 남상학

 

 

  오늘 아내와 함께 서울숲 근처에서  점심을 하고 서울숲을 걸었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과 떨어져 쌓여가는 낙엽 등 점점 회색 조(調)를 색깔이 주조를 이루었다. 평일인데도 많은 시민들이 나와 가을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이맘때는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가을날」이 생각난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에다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을 완성해 주시고,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송이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 고독하게 살면서/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날릴 때,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것입니다."

  3연의 고독은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던 단순한 고독이 아니다. '홀로 깨어있는 자의 고독. 삶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며 내심 느끼는 불안감'을 의미하는 고독일 것이다. 이러한 장면들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한다」를 연상케 한다. 3연은 이 시의 촛점이 되는 1,2연을 뒷받침한다. 이런 처지에 이르기 전에 신의 섭리와 신의 섭리로 얻어지는 결과물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가을이 가면, 또 겨울이 온다고   애석하게 생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사실 진정으로 '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라지는 것은 없다. 고이고 쌓인다. 시간이 그렇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역사가 된다. 그리고 순환한다. 내 삶이 그랬다.

  우리 부부는 50년을 넘게 함께 살았다. 켜켜이 쌓여진 시간, 아내는 어려운 집에 시집와서 직장에 다니며 두 아들을 잘 키워냈다. 이제는 귀한 손자 손녀가 다섯이나 된다. 무엇보다 크게 이룬 것은 없어도 우리가 선 자리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계절이 숱하게 바뀌고 시간이 쌓여 이루어낸 결과였다. 내가 한 것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따스한 햇볕과 바람, 때를 따라 내리는 우로(雨露)를 주신 그분의 은혜(恩惠)였다. 

  이제 곧 내 세계의 나뭇잎들도 햇볕에 그을리고 바싹 말라 떨어져 쌓일 것이다. 나는 그 스산한 풍경 앞에서 별로 아쉽거나 외롭지 않다. 어느 정도 결실의 풍성함은 있었지만, 자연과 더불어 아직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나는 가을과 겨울의 폐허에 무엇이 재건되고 재탄생할지 잘 지켜보며 살아갈 것이다.

  “바람이 스치고 간 거리에/ 노란 은행잎이 떨어져 밟힐 때/ 콩알만 한 저녁 햇살을 광주리에 담아서 이고/ 흩어졌던 영혼의 비둘기 떼 모아/ 떠나온 집으로 돌아가자/ 한 생애 오랜 날 비워둔 자리/ 내 육체의 상처를 싸매듯/ 반나절 남은 햇볕으로 흙벽돌을 만들어/ 무너진 담을 쌓고 바르고/ 부서진 울타리를 매만져 싸리문을 세우자” (졸고 「가을 이야기」의 일부)

  언제일지는 난 알수 없지만, 그날까지 시간을 아끼며 은총(恩寵)을 노래하며 영혼이 편히 깃들 집을 마련하며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신(神)이 주신 귀한 선물이므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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