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수필가인가? 시인인가?
-이창국(수필가. 중앙대 명예교수)
▲수필가·시인 피천득
한국에서 문인 피천득의 위치는 여러모로 독특하다. 우선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대학교수요 영문학자이다. 그가 남긴 작품의 분량은 아주 적다. 97세라는 그의 긴생애(1910-2007)를 통하여 그는 수필집 한권과 시집 한권을 남겼을 뿐이다. 그는 국내의 어떤 문인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거나 관계를 맺지도 않았다. 단체를만들지도 않았다. 그는 항상 독립적이었고 혼자였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다량의 작품을 쓴 국내의 어떤 직업적인 작가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문인으로서 명성을 얻었고 또 누렸다. 흔치않은 일이다.
수필가로서 그의 지위는 단연 독보적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가장 유명한 수필가이다. 그의 이름은 수필이라는 문학 장르와는 동일시 될 정도다. 수필하면 피천득이요, 피천득 하면 수필이라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한국 수필에 끼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수필을 아주 매력 있는 문학 장르로 만들었다. 그의 수필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수필을 좋아하게 되었고, 자기도 수필은 쓸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도록 만들었다. 그가 “수필”이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내린 수필문학에 대한 정의는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지금까지 은연중 한국에서 수필을 쓰는 사람들의 금과옥조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피천득처럼, 피천득이 말 한대로, 피천득을 모방하여 수필을 쓰게 되었고, 또 수필가가 되었다. 한국에서 수필은 거의가 피천득 수필의 모방 내지 아류라고해도 크게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다 피천득은 시도 썼다. 시도 썼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가 분량에 있어서는 그의 수필처럼 소량이지만 그 수준에 있어서 결코 수필에 뒤지지 않는다.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능가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 개인의 생각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피천득 아류의 수필과 수필가들은 많이 있지만 피천득처럼, 피천득 류의, 피천득 수준의 시를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시인 피천득이야말로 한국 시단에 또 하나의 독보적인 존재다.
우리나라 문단에서 피천득처럼 시와 수필을 거의 같은 비중으로 쓰면서 두 분야에서 이처럼 성공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고 본다. 수필도 쓰고 시도 쓴 문인들이 여럿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시인으로 또는 수필가로 쉽게 분류된다. 다른 사람의 경우 하나가 주업이라면 다른 것은 부업이다. 그러나 피천득은 시인이라고 할 것인지 수필가라고 해야 할지 쉽게 분류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비중이 같다.
피천득이 수필가인가, 시인인가 하는 질문은 질문을 위한 질문일 수 있다. 수필가라고 해도 되고, 시인이라고 해도 된다. 수필가인 동시에 시인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문제가 될 성질이나 제기할 가치가 있는 질문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이런 질문이 누구에 의하여서도 제기된 적이 없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구태여 이 질문을 제기하는 이유는 피천득의 문학세계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흔히 상식적으로 또는 막연하게 시와 수필을 구별하고 있지만 그 본질적인 차이점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수필가인 동시에 시인인 피천득의 경우는 이런 의미에서 좋은 연구 대상이다. 이 자리에서 필자는 피천득의 경우를 가지고 수필가와 시인, 시와 수필, 나아가 산문과 시의 본질적인 차이점과 공통점을 규명하고 고찰해보는 하나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시인 피천득은 수필가 피천득으로서 누리는 그런 명성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단에서도 피천득은 시인으로보다는 애써 수필가로 밀어내어 (분류하여) 대접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게 수필가로서의 제일의 자리는 기꺼이 인정하면서도 시인으로서의 피천득은 수필을 쓰면서 곁가지로(심심풀이 정도로) 하는 사람으로 대우하는 듯하다. 본인도 생전 이런 현상을 받아들이면서도 항상 섭섭하게 생각하였다. 과연 그는 수필가인가, 시인인가? 어느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
피천득 수필의 특징 내지 장점 중의 하나는 시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나 장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수필은 우선 간결하다. 잘 읽힌다. 막힘이 없다. 강물처럼 시원스럽게 흘러간다. 리듬감이 있다. 한번 읽으면 잘 잊혀 지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다. 아름답다. 참신하고 적절한 비유와 은유가 산재하여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수필은 산문이라기보다는 시에 가깝다. 어떤 수필은 차라리 시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알고 보면 피천득은 수필가이기 전에 시인이다. 그것은 그의 첫 작품집이 수필집이 아니고 시집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20세가 되던 1930년 <신동아>에 “서정소곡”을 발표함으로서 문필가의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그의 첫 시집 <서정시집>은 그가 37세가 되던 1947년에 나왔다. 그의 시와 수필이 동시에 수록된 <금아시문선>이 나온 것은 그가 50세가 되던 1960년으로 13년 후이며, 이 책은 1969년에는 <산호와 진주>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그의 시와 수필이 분리된, 그러니까, 그의 최초의 독립된 수필집 <금아문선>이 나온 것은 이보다 훨씬 후인 1980년, 그가 70세가 되던 해였다. 이처럼 한국 제일의 수필가 피천득의 수필집이 나온 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그의 시집이 나온 후 33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시로 그의 문필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수필은 오히려 그 후의 일이었음을 말하여준다.
어떤 문인이 시를 쓰면서(쓰다가) 수필에 손을 댄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자연스런 일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시와 수필은(수필과 시는) 어떤 다른 문학 장르보다 밀접하고 친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수필은 문학 장르 가운데서 가장 시적인 문학 장르이다. 발상에서부터 시작해서 다루게 되는 그 소재와 방법,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와 목적에 이르기까지 수필과 시는 매우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 시인이 수필을 쓰는 경우, 수필가가 시를 쓰는 경우가 흔히 있음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피천득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의 <금아시문선>과 <산호와 진주>에 있는 “서문”은 그대로 하나의 시며, 그의“수필”이라는 제목의 수필에 나열된 그의 수필이론은 그대로 하나의 시론이라고 하여도 무방하다.
그러나 수필과 시를 동시에 잘 쓰기는 결코 쉽지 않다. 나는 소위 유명하다는 우리나라의 시인들이 쓴 수필(산문)을 읽고 실망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리고는 수필(산문)을 쓰기가 시 쓰기보다는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시는 그것의 형식이나 관습상 사람들을 속일 수 있다. 산문은 그렇지 못하다. 산문은 지극히 정직한 글이다.
산문은 그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밝혀주는 좋은 척도가 될 수 있다. 시인이 쓴 어설픈 산문(수필)은 그 시인이 본시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 이외에, 그 사람의 기본적인 작문 능력까지 보여준다. 우선 드러내는 것이 그 시인의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이다. 하나의 문단(패라그라프)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 할뿐만 아니라, 글의 시작과 끝이 아무런 연결이 없는 글을 써놓은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문장들은 시에서는 통한다. 왜냐하면 시를 읽으면서 문장 하나 하나를 떼어내어 자세히 읽고 앞뒤의 문장들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독자는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시를 읽는데 있어서는 매우 관대하다. 대충 대충 읽고 넘어간다. 뜻이 통하지 않아도 따지지 않는다.
넓게는 산문(좁게는 수필)을 쓰기가 시보다 어려운 점은 무엇보다도 산문이 시보다 그 내용에 있어서 보다 사실적(事實的, factual)이어야 하고 그 뜻의 전달에 있어서 분명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데 있다. 글이 분명하기 위하여서는 여러 가지가 요구되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조건은 무엇보다 글에 어떤 분명하게 전달하여야만 하는 메시지, 다시 말해서 내용이(이야기 거리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분명히 진술하여야만 될 대상이나 목표가 확실하게 필자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거나 결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쓴 글은 그 글의 요지와 핵심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필자의 의도가 불분명해 진다. 그 뜻이 분명하지 않은 글은 엄격한 의미에서 산문은 아니다.
시는 산문에 선행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시적 언어표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며, 시는 우리 인간이 언어생활을 함에 있어서 부수되는 지극히 자연발생적인 현상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은유나 비유는 인간의 언어가 발달한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부자연하거나 생소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사물을 표현할 추상적인 어휘 자체가 채 생겨나기 전에는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친근한 것이었다. 인간의 언어는 시간을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시적이 된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인이다. 문학의 시작이 산문이 아니고 시라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는 언어의 발생과 발달의 역사에서 보면 어쩌면 자연발생적이고 말할 수 있음에 반하여, 산문은 좀 더 인위적인 것이며, 그것의 발달이나 완성은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개인의 노력이나 시대적인 요구에 의하여 발전해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대한 시인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적으로 탄생하지는 않는다.
셰익스피어를 능가하는 시인이 영문학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하여 현재까지 없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좋은 산문은 시대적으로 늘어놓고 볼 때 시간이 현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 좋은 산문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시간이 과거로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산문은 시와 비슷해지고, 시간이 현재로 이동함과 동시에 산문은 시에서 독립하여 독자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산문은 시에서 멀어진 글이고, 가능하면 시적인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좋은 산문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 과연 훌륭한 시를 쓸 수 있는가를 혼자 생각해 본다. 내가 알고 있는 서양의 대시인들은 대부분 그들의 시에 못지않게 훌륭한 산문을 남겼다. 밀턴이 그랬고 워즈워드가 그랬다. 매슈 아놀드가 그랬고 토마스 하디, 엘리어트가 그랬다. 산문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에 살았던 시인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대부분의 훌륭한 시인들은 훌륭한 시 못지않은 훌륭한 산문을 남겼다. 피천득의 수필이 좋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쓴 시 또한 수필에 못지않게 훌륭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시를 잘 쓰는 사람이 좋은 산문을 못 쓸 리 없다. 같은 이치로 시원치 않은 산문밖에 못 쓰는 사람의 시가 진정으로 훌륭한 시가 될 수 있을 것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시와 산문의 평행선은 궁극적으로 서로 만나는 것이다. 시와 산문은 상호 배격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 시에 산문의 요소가 전혀 없다면 그 시는 무엇인가 부족한 시이며, 반대로 시의 요소가 전적으로 배제된 산문은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훌륭한 산문을 읽으면서 시를 읽는다는 착각을 할 때가 있으며, 반대로 시를 읽으면서 그 속에 제시된 사실과 논리에 꼼짝 못할 정도로 설득 당하는 산문적 경험을 한다. 시는 가능한 한 산문의 정확성과 논리성, 그리고 메시지(이야기)를 그 속에 담을 때 위력을 발휘하며, 산문은 그 속에 신선한 비유와 언어상의 절제와 함축에 의한 경제성, 그리고 파도와 같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음악적 요소가 가미될 때 그 매력이 절정에 이르는 것이다. 시는 산문에서 배워야만 하며, 산문은 시의 경지를 넘보아야만 한다. 훌륭한 시와 훌륭한 산문을 나누어 놓는 그런 절대적인 경계선은 없다. 우리는 피천득의 수필과 시에서 그 이상적인 만남과 조화를 본다.
[계간《문학과 현실》2010년 겨울호(기획특집)에서 전재]
▲이창국(수필가. 중앙대 명예교수)
<끝>
'문학관련 > - 문학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혼의 라르고 (남상학·유화웅·이충섭·최복현 공동 산문집) (0) | 2023.09.01 |
---|---|
<인터뷰> 이문열 “세상과 충돌… 나의 봄은 짧고 겨울은 길어” (0) | 2019.07.05 |
이육사의 ‘육사시집’ , 치열했던 육사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 시, 깊은 울림을 주다 (0) | 2019.02.14 |
홍찬선 시집 '해원가' - “이젠 DMZ 원한 풀고 평화와 통일 노래하자” (0) | 2018.12.11 |
나혜석의 ‘나혜석 전집’ , “에미는 선각자였느니라”... 여성해방의 꿈, 이제야 자리매김 (0) | 2018.1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