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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 탐방

by 혜강(惠江) 2022. 2. 28.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 탐방

 

한국문학의 거장 조정래 일가의 가족문학관

 

 

글 남상학

 

 

 

 

  고흥 운암산 자락에 시조 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조종현과 그 아들 조정래, 조정래의 아내 김초혜 시인 등 문인 가족의 자취를 한 자리에 모은 가족문학관이 있다.  2015년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산 57-2)에 개관했다.

 

  조정래 작가의 이름이 들어간 문학관은 2003년 전북 김제에 건립된 '조정래 아리랑문학관'과 2008년 전남 보성에 문을 연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이 있다.

 

  하지만 고흥에 마련된 문학관은 고흥 출신 시조시인 조종현과 그의 아들 조정래 작가, 그리고 조정래의 아내 김초혜 시인 등 2대에 걸친 문학가족의 활동을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곳이어서 세 사람의 이름과 함께 ‘가족문학관’이라 이름을 붙였다. 

 

 

 

  국내 유일의 가족문학관인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에서는 조정래 문학의 시원(始原)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동시에 한국문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2대에 걸친 문인 가족의 삶과 문학의 향기,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건축면적 895㎡인 문학관은 작가별로 시조 시인 조종현 문학실, 소설가 조정래 문학실, 시인 김초혜 문학실 총 3개 전시실과 영상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실은 문학예술인 3대의 문학세계와 삶의 흔적이 녹아 있다.

 

  이들 전시실 3곳에는 평생 문학 활동을 한 육필원고와 서적·편지·애장품 등 1274점이 전시돼 있다. 가족문학관은 인근에 있는 분청문화공원과 함께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이 운영하고 있다.

 

 

 

 

시조 시인 조종현 문학실

 

 

 

  첫 번째 전시실인 ‘시조 시인 조종현 문학실’은 조종현 시인의 문학세계를 다룬 공간이다. 140㎡ 면적인 조 시인의 전시실에는 승려이자 교육자, 시조 시인으로 활동한 흔적이 담긴 321점이 전시돼 있다.

 

  4남 4녀 중 둘째인 조종현 작가를 비롯해 자식들에게 써준 휘호나 사진 등에서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조 시인의 육필원고와 가람 이병기(1891∼1968)와의 편지 등을 볼 수 있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조종현(趙宗玄,1906~1989)는 86년의 생애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본명은 조용제(趙龍濟), 호는 철운(鐵雲)이다. 스님이자 시조 시인이다.

 

  13세에 선암사로 출가해 종현(宗玄)이란 법명을 얻은 그는 만해 한용운 선생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으며, 1932년 중앙불교연구원 유식과를 졸업했다.

 

  1929년 동요 「엄마 가락지」를 『조선일보』에 발표한 것을 계기로 신석정, 주요한, 정인보, 이은상 선생 등의 지도를 받으며, 1930년 시조 「그리운 정」을 『동아일보』에, 「백운대 갈 때더니」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시조 시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의 초기시는 불교의 교리에 관한 것과 함께 세태에 관한 관심을 드러낸 것들이 많으나, 중기시에서는 전쟁 체험과 분단의 비극에 대한 울분을 강렬하게 표출했다.

 

  해방 후 잠시 선암사 부주지를 맡기도 하지만 사회개혁을 위해 사찰 전답을 소작인들에게 나눠주면서 주지와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져 가족과 함께 순천으로 이사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1948년 10월 여순사건 이후 우경화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모략과 곡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몰매를 맞고 끌려 다니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1947년 환속한 이후로는 전남 벌교와 광주, 서울 등에서 국어교사로 활동하며 시조 시인으로 활동했다. 「천애의 고아」, 「환향(還鄕)」, 「조국의 하늘」, 「나그네길」 등이 그러한 예이다. : 호국(護國) 영령(英靈)에 대한 추모(追慕)의 내용을 담은 「나도 푯말이 되어 살고 싶다」는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나도 푯말이 되어 너랑 같이 살고 싶다.

  별 총총 밤이 들면 노래하고 춤도 추랴

  철 따라 멧새랑 같이 골 속 골 속 울어도 보고.

 

  오월의 창공보다 새파란 그 눈동자

  고함은 청천벽력 적군을 꿉질렀다.

  방울쇠 손가락에 건 채 돌격하던 그 용자(勇姿).

 

  네가 내가 되어 이렇게 와야 할 걸,

  내가 네가 되어 이렇게 서야 할 걸,

  강물이 치흐른다손 이것이 웬 말인가.

 

『자정(子正)의 지구』(1969)에 수록된 이 작품은 전 20수로 된 연시조 중 1, 2, 7 연으로 1975년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고흥군 남양면 한마음공원에는 이 시를 새긴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해방 이후 후기시에서는 불교의 정신세계와 자연에 대한 관조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 1960년에는 시조 시인 월하 이태극(1913∼2003년)과 『시조문학』을 창간해 시조 부흥을 이끌기도 했다. 『자정(子正)의 지구』(1969), 『의상대 해돋이』(1978), 『나그네 길』(1989) 등의 시집을 저술했다.

 

  “천지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는가.” - 「의상대 해돋이」

 

  의상대의 해돋이를 바라보는 벅찬 감격을 표현한 이 시는 웅장하고 장엄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불심이 아니면 시심을 가질 수 없고, 시심이 아니면 불심에 접할 수 없다. 시심, 불심은 그저 동심이어야 한다. 신앙과 시, 시와 신앙은 둘일 수 없다. 신앙은 시라야 하고, 시는 신앙이라야 한다.”

 

  이 말에서 보듯이, 그는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역사와 현실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장시(長詩)와 연작시 등의 실험적인 형식으로 담아낸 시인으로서 독자적인 문학성을 평가받는다.

 

  “내가 이제 이 사바세계를 떠나게 되는 모양이다. 머무를 만큼 머문 모양이다. 떠돌아다니는 나그네가 어디 한 여관에서 오래 묵던 일이 있던가. 끝없는 나그네의 길을 그저 끝없이 갈 뿐이다. 빙그레 웃으며 가자. 염불하고 시도 읊고 노래도 한 곡 부르며 가자.” - 『나그네 길』(1989)

 

  조종현 시인은 입적하기 얼마 전 남겼던 말처럼, 그렇게 초가을 단풍 빛과 함께 떠나갔다. 그러나 시인이 부르던 노래와 삶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며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조정래문학관

 

 

 

  두 번째 전시실은 한국 문학계의 거장이며, 조종현 시인의 아들인 조정래(1943~ ) 작가의 작품세계로 꾸며졌다. ‘소설가 조정래 문학실’이란 테마로 육필원고와 서적, 사진 등 533점을 전시 중이다.

 

  조정래 작가가 좌우명으로 삼은 “문학, 길 없는 길”이란 문구를 비롯해 “노력 없는 재능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과 같다”, “인생이란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다” 같은 잠언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대표작인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의 양장본과 그가 집필한 위인전 시리즈, 교과서들 사이사이에는 각종 사진과 신문기사 등을 배치해 그가 살아온 길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그가 직접 사용한 각종 필기구와 탁상일기, 다기 세트, 손아귀 운동기인 가래 3쌍 등도 함께 전시돼 있다.

 

  조정래 작가는 어린 시절을 주로 순천과 벌교에서 지내면서 순천 사건과 6·25전쟁을 겪었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시작(詩作)에 몰두했으며, 시인 김초혜(金初惠)와 결혼했다.

 

  1970년 『현대문학』에 「누명(陋名)」과 「선생님 기행」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한 뒤 『월간문학』, 『소설문예』, 『한국문학』 등 문예지 발간에 간여하였다.

 

  단편 「거부반응」과 「타이거 메이저」는 반미의식을, 「이런 식이더이다」, 「빙하기」, 「동맥(動脈)」, 「마술의 손」 등은 산업사회의 비인간적인 면과 비정함을 그렸다. 그런 면에서 1983년 「불놀이」는 작가의 작품 경향이 사회의식에서 역사성으로 옮겨가는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다.

 

  중편 「청산댁」, 「비탈진 음지」, 「황토」, 「유형의 땅」, 「박토의 혼」 등에서는 연좌제의 잔혹함과 불합리성을 민족의 수난과 민중의 삶에 비유하였다. 2003년에 쓴 장편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이 대표작이다.

 

 『아리랑』은 일제의 불합리한 수탈과 폭압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한편 이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로, 어두운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민족혼을 표현하고 있다.

 

 『태백산맥』은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우리 근대사의 큰 흐름에서 좌우 정치 세력의 대립과 갈등을 우리 삶의 근원적인 활력과 한(恨)의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다루고 있는 대하 장편소설이다. ‘20세기 현대사 3부작’으로 불리는 이들 대하소설은 1,500만 부라는 초유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김초혜문학관

 

 

  조정래 작가가 아내와 함께 찍은 대형 사진을 지나면 세 번째 전시실이 나온다. 「사랑굿」, 「어머니」 등을 쓴 시인 김초혜 문학실이다.

 

  남편의 전시실과 같은 크기인 119㎡의 전시실은 김 작가의 육필원고와 붓글씨, 필기도구 등 420점의 전시품으로 꾸며졌다. 김 작가가 직접 쓴 시집들 사이로는 그의 작품 활동과 조 작가와의 결혼생활 등을 담은 신문·잡지 기사들이 전시돼 있다.

 

  그 외에도 김 작가가 제자인 박마태오 수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주고받은 손편지와 연하장 등도 눈길을 끈다. 군대에 간 외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해 손자들과 주고받은 편지·엽서 등은 가족 간의 두터운 정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인 김초혜(金初蕙, 1943~ )는 충북 청주 출생으로 호는 죽당(竹堂)이다. 1963년 『현대문학』에 「사월」, 「길」, 「문 앞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대표작으로 「님에게」, 「아가」, 「길」, 「오늘」, 「이별」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연작의 형태로 발표한 「사랑굿」과 「어머니」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시적 탐구로서 상당한 시적 성취를 이루었다.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두는/ 숨은 뜻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 때문임을 압니다. ⃫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고 사는/ 사랑법을 압니다. ⃫ 두 마음이 맞비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褓)를 묶을 줄 압니다.” - 「사랑굿 1」

 

  사랑을 깊이를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1980년대 연작시 「사랑굿」은 한 시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였다.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 「어머니」 전문

 

  어머니와 자식이 본래 한 몸이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헌신적 사랑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통한 이해의 가능성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시는 깨끗하면서도 날카로워 시적 표현의 긴장미를 잘 드러낸다. 특히 인정미가 넘치는 포근한 서정을 일상적이고 쉬운 언어로 시적 공감의 폭을 넓혀줌으로써 대중적인 호응을 받고 있다.

 

  시집 『떠돌이별』, 『어머니』, 『사랑굿』, 『떠돌이별의 노래』, 『그리운 집』, 『고요에 기대어』, 『사람이 그리워서』, 『멀고 먼 길』 등을 간행하였으며, 수필집 『생의 빛 한줄기 찾으려고』, 『함께 아파하고 더불어 사랑하며』 등이 있다.

 

 

 

  가족문학관을 둘러보고 나서 고흥의 모든 역사·문화를 간직한 고흥분청문화박물관고흥갑재민속전시관도 함께 즐길 수 있다이곳을 둘러보고 고흥의 한정식을 맛보고 싶다면 고흥분청문화박물관 앞에 자리한 분청마루에 들러보자아곳은 문어팥죽을 비롯한 각종 신선한 생선회 등이 미각을 자극한다.

 

 

▲고흥분청문화박물관

 

 

▲분청마루 한정식

 

 

◎상세 정보

 

►주소 :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산 57-2)

►전화 : 061-830-5996

운영 : 오전 0900~18:00 (휴관 : 매주 월요일, 1원 1일, 설날 연휴, 추석 연휴

입장료 : 2,000원(같은 입장권으로 고흥분청문화박물관, 고흥 가ㅑㅂ재민속전시관 동시 관라 가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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