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고전소설문학관
남원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전시
글·사진 남상학
전라북도 남원은 국악의 성지인 동시에 우리나라 고전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고전문학의 성지이다. 남원은 판소리 일곱 마당 중 「춘향가」, 「흥보가」, 「변강쇠타령」의 배경지다. 또, 남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에 수록된 「만복사저포기」와 「최척전」, 「홍도전」 등 풍부한 고전소설의 문학 자원도 보유하고 있어 '한국 고전문학'의 성지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특별한 인연으로 남원시는 ‘고전문학의 성지’로서의 도시 이미지를 살려 한국 고전문학의 산실로서의 남원의 정체성을 더욱 뚜렷이 드러내고, 또 남원시민들의 문학적 정서를 공유하기 위하여 2020년 2월 11일 남원 고전소설문학관을 개관했다.
전체면적 206.48㎥ 규모의 고전소설문학관은 남원 광한루와 남원옛촌 등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아담한 목조 한옥 건물이 편안함과 고풍스러운 멋을 드러낸다.
고전소설문학관에는 남원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실을 비롯하여 교육실, 연구실, 사무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췄다.
전시관 바닥에는 남원의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남원 상징의 글귀들이 영상으로 뜬다. 춘향가에서 광한루를 소개하는 방자의 대사 중 "경치 볼만한 곳으로 북문 밖 조종 산성, 서문 밖 관왕묘, 남문 밖 광한루와 오작교가 삼남 제일 명승지"라는 글귀가 소설 속으로 안내하는 듯 인상적이다.
전시실에는 남원과 관련된 고전소설인 「춘향전」, 「흥부전」과 최초의 한문 소설인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 조위한의 「최척전」, 유몽인의 「홍도전」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가 전시되고 있다.
문학관에는 남원을 무대로 한 이들 소설에 대하여 전시와 영상 등을 통하여 자세하게 알려주는 동시에 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각종 교육‧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영상실에서는 「춘향전」 영상이 상영되며,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3시까지는 자서전 쓰기 문학 교실이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남원 고전소설 문학관으로 문의하면 된다.
「춘향전」
「춘향전」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고전문학의 대표적 작품이다. 현재 국문본·한문본·국한문혼용본 등 70여 종에 달하는 이본이 전하고 있다.
내용인즉, 전북 남원의 기생의 딸 성춘향이 광한루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만나 인연을 맺고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다. 두 사람이 남모르는 사랑을 계속하던 중 사또가 서울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된다. 춘향은 지조를 지키느라 다른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지만 새로 부임한 사또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한다. 춘향은 죽기를 무릅쓰고 신관 사또의 요구를 거절하다가 옥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한다. 이때 암행어사가 되어 나타난 이몽룡이 춘향의 목숨을 구하고 함께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이다.
「춘향가」는 소설로서뿐만 아니라 판소리, 희곡, 시나리오, 오페라 등의 다양한 형태로 개작되었고, 이에 따라 제목도 「춘향전」, 「춘향가」, 「열녀춘향수절가」, 「광한루기」, 「옥중화」, 「옥중가인(獄中佳人)」 등 다르게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춘향전」과 관련해서 눈에 띄는 것은 이몽룡이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거지 행색으로 나타나 밥술을 얻어먹으며 쓴 한시이다.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금준미주천일혈 옥반가효만성고 촉루낙시민루낙 가성고처원성고)
“금 술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민중의 피요/ 화려한 쟁반에 담긴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호사한 촛대에서 흐르는 촛농은 민중의 눈물이니,/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하는 소리 높구나.”
이 시는 뻔한 이야기 가운데 조선의 부패한 관료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서 향락만을 일삼던 사회 모습을 비판한 내용이어서 통쾌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는 실제로는 경북 봉화 출신의 성이성(成以性, 1595~1664)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이성은 『춘향전』의 이몽룡의 모델로서, 이몽룡이 암행어사인 것은 그가 3차례에 걸쳐서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 지방을 순찰한 것을 반영한 것이며, 이 경험을 『호남암행록』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흥부전」
흥부전이 남원과 관련 있는 이유는 흥부가 태어난 곳이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이며, 남원시 아영면 성리는 흥부가 정착하고 부자가 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문화재인 판소리 명창 강도근옹의 「제비노정기」에도 "연재를 넘어 비전(현재 동면 성산리)을 지나 팔랑재 밑에 당도 흥부집을 찾아 빙빙 돌더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원시 동면이 1998년 5월 1일에 인월면으로 개칭되었다.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으로 현재 ‘흥부마을’로 불리고 있다. 이곳은 전해 내려오는 설화와 지명을 근거로,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로 밝혀졌다.
이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복덕가(福德家) 춘보설화(春甫說話)가 전해져 오고 있다. 흥부가와 춘보설화는 가난 끝에 부자가 된 인생역정, 선덕의 베품을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 유사하다.
실제로 성리마을에는 박춘보(朴春甫)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매년 정월 보름에 망제단에서 흥부를 기리는 춘보망제를 지내오고 있다. 성리에는 흥부전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허기재, 고둔터, 새금모퉁이, 흰묵배미 등 남아 있다. '허기재'는 허기에 지쳐 쓰러진 흥부를 마을 사람들이 도운 고개이며, '고둔터'는 고승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부에게 잡아 준 명당으로, 흥부는 이곳에서 제비를 고쳐준 발복집터이다.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만복사저포기」
조선 초기,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한문 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에 나오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의 주인공 양생(梁生)이 남원 사람이라는 점에서 관련이 있다.
『금오신화』의 완본은 전하지 않으나, 현재 전하는 것으로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 5편을 수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단편 소설집이다.
고금의 괴담과 기문을 엮은 명나라 구우의 단편소설집 『전등신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힘든 괴담, 기문의 소설을 전기(傳奇)소설이라 칭한다. 이중 「만복사저포기」는 생사를 달리하는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눈 이야기다.
남원의 노총각 양생(梁生)은 만복사(萬福寺)의 불당에서 부처님께 저포(윷과 같은 기구) 놀이를 청한다. 저포 놀이에서 이긴 양생은 배필이 될 여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어버이를 잃은 데다 장가도 들지 못한 양생이 달이 뜬 밤마다 배나무 아래를 거닐며 낭랑하게 읊은 애절한 시가 가슴을 울린다.
“한 그루 배꽃이 외로움을 달래 주지만/ 휘영청 달 밝은 밤은 홀로 보내기 괴로워라./ 젊은 이 몸 홀로 누운 호젓한 창가로/ 어느 집 고운 님이 퉁소를 불어 주네./ 외로운 저 물총새는 제 홀로 날아가고/ 짝 잃은 원앙새는 맑은 물에 노니는데,/ 바둑알 두드리며 인연을 그리다가/ 등불로 점치고는 창가에서 시름 하네.”
이때 문득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타나 부처님 앞에서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하소연하며 배필을 점지해 달라고 기원하고, 밤 깊어 달이 떠오르자 여인이 나타나 노래를 부른다.
“쌀쌀한 봄추위에 명주 적삼은 아직도 얇아/ 몇 차례나 애태웠던가, 향로 불이 꺼졌는가 하고,/ 날 저문 산은 눈썹처럼 엉기고 저녁 구름은 일산처럼 퍼졌는데,/ 비단 장막 원앙 이불에 짝지을 사람이 없어서/ 금비녀 반만 꽂은 채 퉁소를 불어 보네./ 아쉬워라, 저 세월이 이다지도 빠르던가/ 마음속 깊은 시름이 답답하여라./ 낮은 병풍 속에서 등불은 가물거리는데/ 나 홀로 눈물진들 그 누가 돌아보랴. (이하 생략)
인연이 되기 위해서였을까? 두 사람은 정이 통해 하룻밤을 함께 지낸다. 그런데 이 여인은 왜구가 침범한 난리 통에 죽은 처녀의 환신이었다.
이튿날 여인의 동네로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얼마 후 여인이 돌아갈 때 여인이 양생에게 은주발을 선사하는데 그것은 여인의 무덤에 매장한 부장품이었다. 다음날 그들은 보련사에서 다시 만난다. 여인의 부모가 치르는 재(齋)가 끝난 뒤 여인은 저승으로 떠난다. 양생은 끝내 그 여인을 잊지 못하여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평생을 마친다.
죽은 여인의 혼령과 만나는 내용이지만, 어쨌든 두 사람은 인간으로 태어나 과거 이루지 못한 사랑의 꿈을 이루게 된다. 비록 허구적인 이야기이고 혼령과 이루어지는 사랑이지만 읽는 재미가 있다.
조위한의 「최척전(崔陟傳)」
고전소설 「최척전」은 1621년 조위한이 지은 작품이다. 「만복사저포기」와 같이 남원 만복사가 소설의 배경이다. 주인공 최척과 옥영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전란으로 인한 가족의 이산(離散)과 재회를 그린 소설이다.
남원에 사는 최척이 정상사의 집으로 공부하러 다니던 어느 날, 옥영이 창틈으로 최척을 엿보고 그에게 마음이 끌려 시를 써서 보낸다. 이들은 사랑에 빠지고, 옥영은 혼사를 반대하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마침내 둘은 약혼을 하기로 하였지만, 최척이 의병으로 전쟁에 참전하여 혼인 날짜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이에 옥영의 어머니는 부자의 아들인 양생을 사위로 맞으려 하지만 옥영은 최척이 돌아올 때를 기다려 두 사람은 드디어 혼인을 한다. 이후 맏아들 몽석이 태어나고, 정유재란으로 남원이 함락되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옥영은 왜병의 포로로 일본에 잡혀가 상선을 타고 다니면서 왜인의 장사 일을 돕게 되고, 최척은 중국으로 건너가 친구 송우와 함께 상선을 타고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니다 우연히 안남(지금의 베트남)에서 아내 옥영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중국 항주에 정착하여 둘째 아들 몽선을 낳아 기르며 십수 년간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 이듬해 호족이 침입하여, 최척은 아내와 아들과 이별하고 명나라 군사로 출전하였다가 청군의 포로가 된다. 여기서 역시 청군의 포로가 된 맏아들 몽석을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부자는 함께 수용소를 탈출하여 고향으로 향한다. 한편 옥영은 몽선·홍도와 더불어 천신만고 끝에 고국으로 돌아와 일가가 다시 해후하여 단란한 삶을 누리게 된다.
유몽인의 「홍도전(紅桃傳)」
「홍도전(紅桃傳)」은 조선 중기 남원 부사였던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채록하여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수록한 이야기이다. 홍도라는 주인공과 그 가족이 전쟁으로 인해 헤어지고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유몽인의 『어유야담』에 나오는 「홍도전」과 조위경의 「최척전」은 등장인물이나 사건의 전개에 있어서 매우 유사함을 지닌 소설이다. 임진왜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남원을 주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남녀 간의 애정 문제와 이별 등을 다루었으며, 조선과 중국을 동시에 무대에 등장시키는 특이한 방법을 쓰고 있다.
남원의 정생은 같은 마을의 처녀인 홍도와 가연을 맺어 정혼일이 다가왔다. 그러나 그녀의 부친이 정생은 배움이 없다고 결혼을 파혼하려 했다. 이에 홍도는 부친을 설득하여 결혼을 성사시킨다. 결혼 후 2년만에 아들을 낳아 몽석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정생은 남복을 한 아내와 남원에서 피난을 했고 아들 몽석은 조부를 따라 지리산으로 피난했다. 남원성이 함락되자 부부는 생이별을 하게 된다. 정생은 아내가 청병을 따라갔다는 소문을 듣고 청병에게 간청하여 중국으로 들어가 왜적에게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중국 절강성에 머물고 있던 아내를 찾았다.
이후 정생과 홍도는 절강성에서 둘째아들 몽진을 낳아 성장하여 결혼을 시켰으나 정생과 홍도는 다시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부부는 남원의 고향집에서 재화하게 되고 가족과도 상봉한다.
「홍도전」은 소설 「최척전(崔陟傳)」에 큰 영향을 준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홍도전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를 실감과 과장을 덧붙여 기록한 것인데 최척전은 거기에 소설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고 필연성을 곁들여 완성한 작품으로 두 작품을 비교해서 읽으면 더욱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인공 최척과 옥영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란으로 인한 가족의 이산과 기적적인 재회를 그린 소설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한 당시 민중 계층의 희생, 가족들의 이산의 아픔 등이 사실적으로 나타나 있다.
◎상세정보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향단로 10 (쌍교동 60-1)
►전화 : 063-620–5676
►관람 : 화 ~ 일요일 09:00~18:00
►휴관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이면 다음날 휴관), 신정, 설, 추석 당일
►입장료 : 없음
►주차 : 자체 주차장은 없고, 50여m 떨어진 곳에 공용주차장이 있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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