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태문학관
순수비평문학의 선구자, 김환태의 자취를 찾아
글·사진 남상학
관광의 도시 전북 무주에 김환태문학관이 있다. 김환태 문학관은 일제강점기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KAPF)에 경도돼 있던 비평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순수 비평의 씨앗을 싹틔운 김환태(金煥泰, 1909~1944) 문학의 혼과 삶이 깃든 곳이다.
2012년 설립된 김환태문학관은 무주 출신의 비평문학가 김환태 선생의 생애와 업적, 작품과 유품들을 발굴·연구하고 그의 삶을 조명하기 위한 문학관이다.
김환태문학관은 전통공예문화촌 안에 있다. 공예문화촌에는 김환태문학관을 비롯해 최북미술관, 전통공예공방이 함께 들어서 있다. 문화의 집결지 내지는 문화클러스터라 해도 될 만큼 문학관과 미술관, 공방이 서로 이웃하며 하나의 문화 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1,274.198㎡ 규모로 조성된 김환태 문학관은 2, 3층에 걸쳐 세미나실과 다목적 영상관, 눌인전시관, 그리고 휴게시설 등을 갖추고 김환태 선생의 문학정신, 어록 및 철학, 그의 문학정신을 총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자료와 영상이 비치돼 있다.
또한, 김환태 선생의 사진을 비롯해 출생과 성장기, 유학 후 귀국 활동, 일본 규슈대학의 졸업논문, 구인회 활동 등의 자료와 김환태 비평 선집, 눌인 김환태가 남긴 다수의 저서와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김환태의 문학정신과 비평
김환태문학관에 들어서면, 우선 김환태의 문학정신과 그의 어록 및 철학, 비평의 정의와 단계, 김환태 선생의 영상실, 문예비평의 정의에 대한 전시물을 통하여 비평가였던 김환태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먼저, 김환태의 문학정신을 보자.
“닭은 모이를 먹고 달걀을 낳는다. 모이는 외재적인 환경이고, 닭은 작가이고 달걀은 작품이다. 세상에 이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꽃나무는 비료를 준 토양에서 꽃을 피운다. 비료와 토양은 풍토이고, 꽃나무는 시인이고, 꽃은 시이다. 세상에 이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당당한 비평가와 석학들이 가끔 삼척동자도 아는 이 사실을 잊는 수가 있다. 외재적인 환경이나 작가의 전기로 문학작품을 분석하려는 비평가들이 그렇다. 그것은 마치 달걀 맛을 닭고기 맛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닭고기 맛을 사료 맛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바슐라르도 꽃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고 그 토양만을 분석하려 드는 어리석은 비평가들을 비웃은 적이 있다. 그리고 문학의 효용성을 주장하는 비평가들은 장미 뿌리가 신사의 파이프를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과도 같다.
이렇게 자명한 것들을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을 때 홀로 목청을 높여 이야기한 비평가가 김환태이다. 불행한 역사 고난의 상황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문학작품의 아름다움과 그 맛을 맛보려는 내재적 비평을 사치한 것으로만 여겼다.
그러다가 많은 비평가들이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었다고 탄식을 했다. 하지만 김환태는 한숨이 아니라 실제로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평필을 들고 일어났다.
금과 구리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야 안다. 당장 그 당시의 문단에 호소력을 가졌던 많은 비평가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영영 그 소식조차 모를 때, 김환태는 남아서 우리와 함께 숨 쉰다.”
이 말은 김환태 선생에 대하여 언급한 이어령 교수의 말이다. 이 말에서 김환태 선생이 지닌 문학정신을 엿볼 수 있다.
"문예비평은 뛰어난 문학작품을 읽고 감동을 표현하고자 문학작품의 구성요소, 작가의 세계관, 창작기법, 미적 가치 등을 판단하는 일이다."
1930년대 순수비평문학의 선구자인 김환태는 이렇게 말한다. “문예비평이란 문예 작품의 예술적 의의와 심미적 효과를 획득하기 위해 대상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보려는 인간 정신의 노력입니다. 따라서 문예 비평가는 작품의 예술적 의의와 딴 성질과의 혼동에서 기인하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순수히 작품 그것에서 얻은 인상과 감동을 표출하여야 합니다.”
- 김환태의 <문예 비평가의 태도에 대하여>
그는 문학을 정치 선전의 도구로 삼는 카프의 공리주의적 문학관을 비판하며, 문학의 독립성과 순수성을 옹호한다. 비평의 목적을 “재구성적 체험”에 있다고 주장하며, 인상주의 비평의 뼈대를 세운 김환태는 1930년대의 비평 경향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김환태의 생애와 활동
또한, 김환태문학관에는 김환태 선생의 연보, 출생과 성장, 박용철과의 교류, 유학과 귀국 활동, 졸업논문과 근대 문학, 구인회 활동 등을 보여준다.
김환태(金煥泰, 1909~1944)의 호는 ‘눌인’(訥人)이다. 1909년 음력 전북 무주에서 태어났다. 1921년 무주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전주고보에 다니던 열다섯 살 때 일본인 교사를 추방하기 위한 동맹 휴학을 벌이다가 퇴학당한 후 보성고보로 적을 옮겨 1928년 졸업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28년 도시샤(同志社)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며 이곳에서 정지용을 만나 문학적인 교류를 하였고, 1934년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 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34년 4월에 『조선일보』에 투고한 「문예 비평가의 태도에 대하여」를 시작으로 비평 활동에 나섰고, 그는 당대의 주류이던 카프 진영의 계급 문학론에 반기를 들었다.
당시 문단은 유행처럼 번진 이념성과 사상성으로 순수문학의 입지가 약화하여 있었고, 계급주의적 비평이 문학을 도구화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문학이 정치에 예속되는 양상이 가속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김환태는 “문학비평의 대상은 사회도 정치도 사상도 아니요 문학이다”라고 주창했다. 문학은 문학 그 자체로 존재하며, 그 자체로 위대한 힘을 내재하고 있다는 의미다.
메슈 아놀드와 월터 페이터의 영향을 받은 그는 서구의 비평 이론에 정통했고, 기초적인 비평 원리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그는 ‘해외문학파’와 가까이 지냈으며, 1936년 ‘구인회’에 가입하여 김상용, 이태준, 정지용, 김영랑, 김기림, 박태원, 이상, 김유정 등과 교유하며 문학의 순수성을 견지하는 활동을 펼쳤다.
김환태는 1940년 2월 『문장』에 「주제의 선택과 응시」라는 평론을 마지막으로 발표하고는 문단과 절연한 채 일제 말기를 보냈다. 그가 비평 활동을 멈추고 문단과 담을 쌓고 지낸 것은 건강이 악화한 탓도 있지만, 19430년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 등에 대한 반발 심리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평론으로 「문예시평(文藝時評)―나의 비평태도」, 「예술의 순수성」, 「비평태도에 대한 변석(辯釋)」(1936), 「정지용론(鄭芝溶論)」, 「순수시비(純粹是非)」, 「문학의 성격과 시대」 등이 있다. 유작으로 『김환태전집』(1972년)이 있다.
폐결핵 증세가 깊어진 그는 다니던 무학여고 교사를 그만두고 1943년 고향 무주로 내려왔으며, 1944년 향년 35세로 아깝게 생을 마쳤다.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활동 기간은 6~7년밖에 되지 않지만, 비평의 독재를 지양하고 작품에 구현된 예술성을 옹호한 평론가로서의 입지는 뚜렷하다. 일제강점기 순수문학의 이론체계를 정립하고 계급주의 등으로 경직된 문단에 순수 비평을 싹 틔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김환태문학제와 문학비
무주군에서는 한국 비평문학의 장을 새롭게 열었던 김환태 선생의 문학을 기리고 무주문화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김환태문학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무주군이 후원으로 김환태 문학제를 매년 가을 개최해 오고 있다. 2021년에는 13회 문학제가 열렸다. 문학제가 개최되는 시기에는 김환태 비평 정신을 기리고 계승한 문인을 선정해 평론문학상을 시상한다.
이 외에도 김환태 청소년 문학상은 전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무주출신 김환태 문학평론가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창작 의욕을 주기위해 지난 2019년부터 실시해 오고 있다.
무주 덕유산 국립공원 입구에는 ‘눌인 김환태 문학 기념비’가 있다. 나제통문(羅濟通門) 옆에 세워진 문학비는 지난 1986년 제막됐으며 김동리, 박두진, 백철 씨 등 문인 45명과 유족 등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상세정보
►주소 : 전북 무주군 무주읍 최북로 15 (무주읍 당산리 918-3)
►전화 : 063-320-5636
►관람 : 09:00~18:00
►휴관 : 매주 월요일, 1월1일, 추석 당일, 설 당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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