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나무의 농사
- 문태준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 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 시집 《맨발》(2004) 수록
*되 : 부피의 단위. 곡식, 가루, 액체 따위의 부피를 잴 때 쓴다. 한 되는 한 말의 10분의 1.
이 작품은 산수유나무의 그늘에 대한 참신한 문학적 발상을 통해 산수유나무의 그늘이 주는 배려와 편안함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의 그늘의 대립적인 의미를 통하여 타인을 위한 배려와 타인에게 베푸는 것에 인색한 우리의 현실을 산수유나무와 대비하여 보여준다. 1∼2행에서 화자는 산수유나무의 노란 꽃을 보며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노란 산수유꽃의 이미지를 그늘로 전이하여 표현한 것으로, 그늘은 산수유나무의 또 다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 경상북도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處暑〉외 아홉 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사소한 자연물도 귀하게 여기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박한 정서를 통해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2000), 《맨발》(2004), 《그맘때에는》(2005), 《가재미》(2006), 《그늘의 발달》(2008), 《먼 곳》(2010),《우리들의 마지막 얼굴》(2015)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제 오느냐 / 문태준 (0) | 2020.05.26 |
---|---|
평상이 있는 국숫집 / 문태준 (0) | 2020.05.25 |
맨발 / 문태준 (0) | 2020.05.23 |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0) | 2020.05.22 |
흙 / 문정희 (0) | 2020.05.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