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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산수유나무의 농사 / 문태준

by 혜강(惠江) 2020. 5. 24.

 

 

전남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

 

 

산수유나무의 농사

 

 

- 문태준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 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 시집 《맨발》(2004) 수록

 

 

◎시어 풀이

*옥말려들다 : 안으로 오그라들다.

*되 : 부피의 단위. 곡식, 가루, 액체 따위의 부피를 잴 때 쓴다. 한 되는 한 말의 10분의 1.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산수유나무의 그늘에 대한 참신한 문학적 발상을 통해 산수유나무의 그늘이 주는 배려와 편안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자연물을 바라보는 참신한 발상이 돋보인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고 한 것이나,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는다’라는 표현은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산수유나무는 꽃만 노랗다’든가 ‘사람이 산수유나무를 기른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마음의 그늘의 대립적인 의미를 통하여 타인을 위한 배려와 타인에게 베푸는 것에 인색한 우리의 현실을 산수유나무와 대비하여 보여준다.  1∼2행에서 화자는 산수유나무의 노란 꽃을 보며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노란 산수유꽃의 이미지를 그늘로 전이하여 표현한 것으로, 그늘은 산수유나무의 또 다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3~5행에서 화자는 ‘마음의 그늘이 옥말려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아라’라며, 산수유나무 그늘과 점점 좁아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비한다. 그러면서 화자는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라며, ‘그늘’을 산수유나무가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지은 결과물로,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휴식의 공간, 편안함을 제공하는 공간이며, 다른 존재에 대한 배려로서의 의미까지 나타낸다. 이때 ‘농사’는 생명을 키우고 그 생명이 성장하여 다른 생명을 키우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생과 나눔을 의미한다.


  6∼9행에서 화자는 산수유나무를 농부로 보고 작은 산수유나무의 꽃을 좁쌀에 빗대어 그 작은 꽃이 만들어 내는 그늘이 다섯 되 무게가 될 정도로 밀도가 높음을 표현한다. 이는 산수유나무는 다른 생명의 휴식을 허락하는 미덕을 발휘하는 반면, 우리 인간은 마음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타인을 위한 그늘을 만들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는 것은 ‘꽃’과 ‘그늘’의 가치를 같다고 생각*그늘 : 다른 생명들의 휴식을 허락하는 미덕한 발상의 전환이며,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는 그늘의 밀도를 통해 그늘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이 시는 농사는 인간만이 짓는 것이라는 사고와 화려한 꽃에만 집중하는 관념을 깬 새로운 시각으로, ‘나무의 그늘’은 산수유나무가 만들어 낸 배려심을, ‘마음의 그늘’은 삶이 만들어 낸 이기심이라는 점을 들어 타인을 위한 배려에 인색하고 베풀 줄 모르는 우리의 현실을 반성하게 한다.

 

 

▲작자 문태준((文泰俊, 1970 ~ )

 

 

시인. 경상북도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處暑〉외 아홉 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사소한 자연물도 귀하게 여기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박한 정서를 통해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 《수런거리는 뒤란》(2000), 《맨발》(2004), 《그맘때에는》(2005), 《가재미》(2006), 《그늘의 발달》(2008), 《먼 곳》(2010),《우리들의 마지막 얼굴》(2015)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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