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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벼 / 이성부

by 혜강(惠江) 2020. 3. 31.

 

 

 

 

 

 

- 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러운 눈 씻어 맑게 다스릴 줄 알고

바람 한 점에도

제 몸의 노여움을 덮는다.

저의 가슴도 더운 줄을 안다.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

 

 

               - 시집 우리들의 양식(1974)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라는 상징적 소재를 통해 민족, 민중의 공동체 의식을 나타낸 작품으로, 비유와 상징의 기법으로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를 의인화하여 표현한 이 시에서 는 민중들의 생명력과 민족의식을 상징한다. 겸손한 내면적 성찰로 속을 채운 는 노여움을 삭일 줄도 알고, 서로 어우러져 의지하고 살다가 때가 되면 소리 없이 떠나는 자기희생적인 태도도 갖고 있다. 시인은 겉으로 나약한 것 같으나 속으로 옹골차게 익어 가는 의 모습을 통해, 비록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이지만, 이웃과 어우러져 살아갈 때 더 큰 힘과 사랑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민중의 자기희생과 강인한 생명력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


 1연에는 서로 어우러져 의연하게 사는 벼를 통해 온갖 고난을 이겨 낸 민중의 모습과 겸손한 자세로 이웃과 더불어 사는 민중의 삶이 나타나 있다.


 2연에서는 벼의 내면적인 덕성인 생명력을 통해 민중 개개인이 공동체가 될 때 비로소 민중의 저력이 발휘됨을 보여 주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의 원관념은 이지만 이를 통해 곤경과 고난 앞에서 공동체 의식으로 더욱 강해지는 민중을 의미한다. 죄도 없이 죄지어서라는 표현은 무고하게 억압받는 민중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는 것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의로 볼 수 있다.


 3연에서는 벼의 내면적 태도를 통해 민중들이 어질고 현명한 존재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서러움을 다스릴 줄도 알고, 시련이 닥쳐올 때면 노여움을 삭일 줄도 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불의한 사회 현실에 대해 저항할 줄 아는 더운 가슴을 가진 이들임을 강조하고 있다.


 4연에는 의 희생적 사랑을 예찬하고 있다. ‘의 희생을 거쳐 새로운 가 탄생되듯이, 쓰러짐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민중들은 알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민중들은 자기희생을 통해 사랑을 실현하며, 끈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선다. ‘이 피 묻은 그리움의 표현 속에는 자유와 평등의 세상에 대한 민중의 염원이 담겨 있으며, ‘이 넉넉한 힘……에는 민중의 저력(연대의식, 희생정신, 끈질긴 생명력 등)에 대한 예찬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이 시의 마지막 연에는 공동체에 대한 자기희생의 실천 속에서 소망하는 삶의 길이 열린다는 주제 의식이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 자기희생을 통해 더 큰 이념과 사랑을 구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작자 이성부(李盛夫, 1942~2012)

 

 

 시인. 전남 광주 출생. 1962현대문학<소모(消耗)의 밤>, <열차> 등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개성 있는 남도적 향토색과 저항적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 참여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서정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이성부 시집(1969), 우리들의 양식(1974), 야간 산행(1996)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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