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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누룩 / 이성부

by 혜강(惠江) 2020. 3. 31.

 

 

 

 

누룩

 

 

- 이성부

 

 

 

누룩 한 덩이가

뜨는 까닭을 알겠느냐.

저 혼자 무력함에 부대끼고 부대끼다가 

알맞은 바람 만나

살며시 더운 가슴,

그 사랑을 알겠느냐.

 

오가는 발길들 여기 멈추어

밤새도록 우는 울음을 들었느냐

저 혼자서 찾는 길임을

엄동설한 칼별은 알고 있나니.

 

무르팍 으깨져도 꽃피는 가슴.

그 가슴 울림 들었느냐.

속 깊이 쌓이는 기다림

삭고 삭아 부서지는 일 보았느냐.

 

지가 죽어 썩어 문드러져

우리 고향 좋은 물 만나면

덩달아서 함께 끓는 마음을 알겠느냐.

춤도 되고 기쁨도 되고

해 솟는 얼굴도 되는 죽음을 알겠느냐.

 

아 지금 감춰둔 누룩 뜨나니.

냄새 퍼지나니.

 

                             - 시집 《백제행》 (1977)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술이 되기 위한 누룩의 인내와 자기희생, 민중의 자기희생과 연대 의식에 대한 기대감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술을 빚는 데 사용하는 발효제인 누룩을 민중의 삶으로 의인화하고,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화자는 누룩이 발효하여 술이 되는 과정을 통해, 미미한 존재인 민중이 어떻게 힘을 얻어 세계를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누룩의 발효 과정에 따라 사상을 전개해 나간 이 시의 1연에는 누룩이 뜨는 까닭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 있다. 화자는 누룩 한 덩이가 뜨는 까닭을 알겠느냐라는 물음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을 누룩의 속성에서 찾는다. 즉 혼자일 때는 무력하지만 누룩이 발효하기 위한 조건, 알맞은 바람을 만나면 사랑을 내어 보이는 것이다.


 2연은 누룩이 겪는 고통과 시련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도 밤새도록 우는 울음을 들었느냐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지를 묘사하고 있다. 누룩이 혼자서 찾는 은 곧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술이 되는 것일 터인데, 그것은 곧 민중이 원하는 바람직한 역시의 방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럿이서도 찾는 길임을 암울한 시대를 사는 민중은 알고 있으며,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탄압과 시련을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3~4연은 누룩이 술이 되기 위해서는 속 깊이 쌓이는 기다림/ 삭고 삭아 부서지는과정, 즉 고통에 대한 인내가 필요하며, ’우리 고향 좋은 물‘, 즉 누룩이 발효되기 위한 조건만 만나면, ’덩달아서 함께 끓는 마음‘, 즉 연대감을 바탕으로 함께 죽어(희생하여) ’춤도 되고 기쁨도 되고/ 해 솟는 얼굴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룩은 고통과 핍박을 이겨 내고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시인의 기대감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연은 아 지금 감춰 둔 누룩 드나니/ 냄새 퍼지나니의 구절은 발효하여 퍼지는 누룩 냄새를 통하여 고통과 핍박을 이겨내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는 민중의 힘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알겠느냐’, ‘들었느냐’, ‘보았느냐등 일곱 번에 걸친 물음의 형식을 통하여, 자기희생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민중의 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시로서 매우 저항적이며, 선동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은 스스로 썩고 희생하며 서로 뭉쳐 싸워나가는 민중에 의해 실현된다는 믿음이며, 민중들의 아픔과 시련이 오히려 그들을 성장시키며 결국 새로운 역사의 진보를 만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성부(李盛夫, 1942-2012)

 

 

 전남 광주 출생. 1964년 경희대 국문과 졸. 1962현대문학<소모(消耗)의 밤>, <열차> 등이 추천되어 등단.

 그는 삶의 모순과 현실의 부조리가 사회 현실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하여 현실 삶의 경험에서만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에서 모순의 원천을 찾아간다. 개성 있는 남도적 향토색과 저항적인 현실 의식을 밑바닥에 깔고 억압의 실체를 파헤치고자 하는 의지를 구현해내고 있다.


  시집으로는 이성부 시집(1969), 우리들의 양식(1974), 백제행(1977), 전야(前夜)(1981), 평야(平野)(1982), 빈 산() 뒤에 두고(1989), 야간 산행(1996), 지리산(2001)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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