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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산길에서 / 이성부

by 혜강(惠江) 2020. 3. 31.

 

 

 

 

산길에서

 

 

- 이성부

 

 

 

이 길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나를 걷게 하는 그이들이

지금 조릿대 밭 눕히며 소리치는 바람이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 문득 나를 쳐다보는 수줍음으로 와서

내 가슴 벅차게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짐승처럼 그이들 옛 내음이라도 맡고 싶어

나는 자꾸 집을 떠나고

그때마다 서울을 버리는 일에 신명나지 않았더냐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도

힘을 다하여 비칠거리는 발걸음들도

무엇 하나씩 저마다 다져 놓고 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나는 배웠다

그것이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그 부질없음 쌓이고 쌓여져서 마침내 길을 만들고

길 따라 그이들 따라 오르는 일

이리 힘들고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 되는지를 나는 안다

 

 

                           - 시집 지리산(2001)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산길을 오르면서 얻게 된 깨달음, 즉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깨달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화자는 산길을 걸으며 길을 만든 이들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있으며, 인생은 인내와 의지를 통해 만들어지므로 힘들고 어려운 삶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적 태도를 보인다.


 일상적인 소재인 을 통해 인생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을 전달하는 이 시는 단정적인 어조를 통해 화자의 의지와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반복과 변조를 통해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설의법과 도치법을 사용하여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 수법을 활용하고 있다.


 연구분 없이 전개되는 이 시에서 화자는 길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그들이 왜 내 가슴 벅차게 하는지 깨닫는다. 화자는 자신이 산을 오르기도 이전에 산을 올랐던 '그이들'이 만든 길을 밟으며 산을 따라 오르고 있다. ‘이 길을 만든 이들은 도시에서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이며, 길을 만든 이들을 따라 길을 떠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다. 화자인 는 뒤늦게 그들의 부질 없는 되풀이일망정 바람풀꽃들의 내음을 맡을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1~5)


 그것을 깨달은 화자는 길을 만든 이들을 따라 옛 내음(바람과 풀꽃)이라도 맡고 싶어 서울을 떠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그이들 옛 내음이라도 맡고 싶어그들이 만든 길을 짐승처럼 서울을 버리는 일이 신명나는 일이었다고 라고 한다. 그래서 화자인 는 바람과 들꽃들을 느끼며 그이들의 '옛 내음'인 길을 따라 걷게 되는 것이다. (6~8)


 또, 화자는 산길을 만든 이들로부터 배움을 뒤늦게 얻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무엇에 쫓기며 살아가는 이들힘을 다하여 비칠거리는 발걸음들로 다져 놓은 길이라는 것을 뒤늦게 배웠다는 것이다. (9~12)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다져진 길'로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은 먼저 간 이들의 흔적이자, 성과이며, 그러기에 앞으로도 이어질 지속적인 과업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은 '그이들을 따라 오르는 일/ 이리 힘들고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 되는지'와 같은, 역사의식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지게 된다. (13~17)


 이성부 시인은 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가진 시인이었다 ''에 대한 시인의 특별한 애착으로 산행에만 몰두했던 그는 10여 년 만에 다시 시로 돌아온다. 이 때의 시가 2001년에 출간한 지리산(2001)에 담겨 있다. 과거 그의 시가 힘과 부정의 미학에 쏠렸던 데 반해, 산에서는 부드러움과 긍정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의 삶을 본다. 그뿐만 아니라 사유와 자기성찰의 기회가 많아짐으로써 산과 자아가 하나가 되는 것을 확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작자 이성부(李盛夫, 1942~2012)

 

 

  시인. 광주광역시 출생. 1962현대문학<소모(消耗)의 밤>, <열차> 등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개성 있는 남도적 향토색과 저항적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 참여적인 내용을 다루면서도 서정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이성부 시집》(1969), 《우리들의 양식》(1974), 백제행(1977), 전야(1981), 빈 산 뒤에 두고(1989),《야간 산행》(1996), 지리산(2001)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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