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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갈대 / 신경림

by 혜강(惠江) 2020. 3. 27.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문학예술(1956)

 

이해와 감상

  1956년 이한직의 추천으로 진보적 성향의 문예지인 문학예술을 통해 발표된 시로, 인간의 근원적인 고독과 비애에 대한 깨달음을 연약한 갈대에 빗대어 형상화한 주지적 서정시이다. 자연을 통해 인간 존재의 고독과 슬픔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갈대를 의인화하여 표현함으로써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대상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4연으로 됨 이 시는 갈대의 울음을, 2연은 갈대의 흔들림을, 3연은 갈대의 흔들리는 원인을, 4연은 삶의 본질적 고독과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시를 읽어가며 내용을 따라가 본다. 1연의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라는 진술은 이 시에서 핵심이 되는 곳이다. 여기서 갈대는 연약한 인간의 존재를 가리키는 사물로서, ‘갈대울고있는 것을 통해 인간이 존재의 근원적 비애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연은 갈대의 흔들림을 드러낸다. 그 흔들림은 삶의 시련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음을 의미한다. 갈대의 울음이 내면의 흐느낌이라면 갈대의 흔들림은 외면의 나약함을 의미한다. 이런 나약함을 알게 된 것은 스스로 흔들리는 이유를 깨달은 어느 밤이었다.

 3연에서는 갈대의 흔들림의 이유가 바람도 달빛도' 아니고 '울음'이라고 말하고 있다. 외재적(外在的)인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內在的)인 원인으로 갈대는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울음'은 사회적 갈등 등 외부적인 소산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론적 문제라는 말이다. 그런데 갈대는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것이다. 까맣게 몰랐다는 말은 과거에 그랬다는 뜻이고, 지금은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 된다. 인간에 대한 그의 존재론적 각성이 확인된다.

 마지막 4연은 삶의 본질적인 고독과 슬픔을 인식하게 된다. , 존재는 모두 허무를 본질로 하고, 따라서 산다는 것도 슬픔을 동반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존재의 실상을 철학적 깊이로 명상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존재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외부에서인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화자는 그 고통은 결국 타고난 것으로서 내면에 도사린 본연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한 존재로서의 실존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존재한다고 할 때, 단독자로서의 고독과 비애는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된다.

 '갈대'로 표상된 존재의 실상은 이렇듯 허무와 비애를 근본적으로 동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삶이란 것도 단독자로서의 본연적 비애일 뿐이다. 그것은 존재 자체이다. 인간에게서 고독과 비애는 실존(實存)이다. 결국, 이 시는 고독과 비애로서의 인간 실존. 삶의 근원적인 슬픔을 갈대의 울음을 통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연약한 갈대의 울음을 통하여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려 한 그의 시적 탐구가 놀랍다.

 신경림의 이 작품은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소위 민중시 계열로 변모한 70년대 이전의 그의 초기시 세계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 탐구에 주력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시 세계의 변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 존재의 비극적 인식에서 출발했던 '갈대'의 막연한 울음이, 후일 농촌의 암담한 현실에서 우러난 농민의 아픔이라는 구체적 울음으로 확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자 신경림(申庚林, 1936 ~ )

  시인. 충북 충주 출생. 1955 문학예술 <갈대>, <묘비>, <낮달>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73년에 펴낸 첫 시집 농무(農舞)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린 농촌 현실을 기초로 하여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는 시로 평가받고 있다.

 시집으로 농무(1973), 새재(1979), 달넘세(1985), 남한강(1987), 우리들의 북(1988), (1990) 등이 있다. 주로 농촌을 배경으로 우리의 현실과 한, 울분, 고뇌 등을 다룬 시를 썼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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