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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파장(罷場) / 신경림

by 혜강(惠江) 2020. 3. 26.

 

<출처: 네이버 블로그 '김귀녀 시인의 방'>

 

 

파장(罷場)

 

 

- 신경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싯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 출처 농무(1973)

 

 

시어 풀이

 

파장 : 여러 사람이 모여 벌이던 판이 거의 끝남. 시골의 장이 끝나는 무렵.
목로 : 선술집에서 술잔을 놓기 위하여 쓰는 널빤지로 만든 상.
섰다 : 화투 노름의 하나.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어느 시골 장터를 배경으로 황폐화되어 가는 농촌 현실과 농민들의 애환을 진솔하고 토속적인 묘사로 형상화한 서정시이다.

 

 파장까지의 시간의 경과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향토적인 언어와 비속어를 적절히 구사하여 농민들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함으로써 현장감을 드러내고, 4음보 중심의 안정되고 투박한 리듬으로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시골의 장터는 항상 흥겹다. 먹고 살기 위해 늘 장터에서 만나는 친한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장터는 그런 동료들이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서로 간에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파장 무렵이 되면, 사람들이 거의 다 빠지고 한가롭다. 이 시간에는 고단하게 일해 온몸과 마음을 잠시 쉴 시간이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며동료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만큼 서로간에는 유대감이 깊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가뭄으로 농사짓기가 어렵다거나 늘어나는 조합의 빚 얘기등 자신들의 삶의 팍팍함을 토로하다 마음이 심란해져 약장수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모두 서울로 뜨고 싶은 마음만이 앞선다. 점점 피폐해지는 농촌에 기대어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이런 울적한 이야기를 들으면, 자포자기하고 싶은 마음에 화투 노름을 하거나 접대부와 어울려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어찌 아니 들겠는가? 그러나 그런 생각도 호사스러운 상상일 뿐, 막막한 농촌의 현실에 가슴 답답해하며 학교 마당에 모여 겨우 마른오징어를 안주 삼아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이제 해 기울어 파장할 시간, ‘고무신 한 켤레조기 한 마리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로 접어들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시 집으로 향한다. 애달픈 귀가의 모습이다. ‘달이 환한 찻길을 절뚝이는 파장의 마지막 행은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장면으로, ‘절뚝이는이라는 말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는 뜻과 삶의 무게와 중압감에 휘청거린다는 뜻의 중의적(重義的) 표현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참아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60~70년대 농촌의 현실, 당시 근대화와 산업화는 농민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도시가 급격하게 확장되고, 여기저기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농토는 점점 줄어들고, 공장 운영을 위한 값싼 노동력은 농촌의 젊은이들로 채워지면서 이로 인해 농촌은 급속도로 황폐화되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 시는 자신의 시 <농무>와 같이, 1960~1970년대 비참한 농촌의 현실과 그 속에서 좌절하여 자포자기하는 농민들을 다루고 있다. 다만, <농무>는 농촌의 비극적인 현실을 흥겨운 춤을 통해 역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지만, 이 시는 장터의 풍경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분이다. 시인은 당대의 농촌을 배경으로 우리의 현실과 한, 울분, 고뇌 등을 주로 다룬 시를 썼다.

 

 

작자 신경림(申庚林, 1936 ~ )

 

 

  시인. 충북 충주 출생. 1955 문학예술 <갈대>, <묘비>, <낮달>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1973년에 펴낸 첫 시집 농무(農舞)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린 농촌 현실을 기초로 하여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는 시로 평가받고 있다.

 

 시집으로 농무(1973), 새재(1979), 달넘세(1985), 남한강(1987), 우리들의 북(1988), (1990) 등이 있다. 주로 농촌을 배경으로 우리의 현실과 한, 울분, 고뇌 등을 다룬 시를 썼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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