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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기 및 정보/- 서해

안좌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생가와 ‘퍼플교’

by 혜강(惠江) 2019. 10. 11.

 

안좌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생가와 ‘퍼플교’

 

 

글‧사진 남상학

 

 

 

 

 

 안좌도(安佐島)는 팔금도에서 신안제1교를 건너면 만나는 섬이다. 천사대교 건너 여 육교로 이어진 네 섬 중에서 가장 남쪽에 있다. 신안제1교는 팔금도와 안좌도 사이를 연결하는 연도교로 신안군에서 제일 먼저 완공되었다. 안좌도와 팔금도는 연도교로 연결되어 같은 생활권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색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는 섬이다.

 

 

 

 

 "유달산이 손짓으로 부르면/ 어깨동무하고 달려갈듯/ 시아바다 푸른 파도 건너/ 정답게 어울려 있는 예순 세 개의 섬/ 마흔 여덟 개의 마을들/ 아름다운 어머니의 땅 안좌도 

 여기에서 태어나서 살아가거나/ 낯선 타향으로 떠나가도/ 끝없이 밀려오는 불굴의 저 파도처럼/ 큰 꿈을 이루어내고 있는 안좌 사람들 

 새벽안개 헤치고/ 섬들 사이로 갈매기 떼 날으면/ 아침 햇살에 출렁이는 금빛 바다/ 산과 들에 풀꽃들 피어나는 안좌여/ 위대한 저 바다와 함께/ 길이 편안하고 풍성하여라"

 

 김윤호 시인의 <내 고향 안좌도> 전문이다. 이 글을 읽다보면 안좌도는 분명 살기 편안하고 풍성한 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윤호 시인의 <내 고향 안좌도> 시비

 

 

편안하고 풍성한 섬, 안좌도

 

 

 목포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21㎞ 지점에 있는 안좌도는 면적이 49㎢에 지나지 않지만 주위에 상사치도·하사치도·내호도·외호도·반월도·박지도·부소도·자라도·요력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 있다. 본래는 안창도와 기좌도 두 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연결되면서 섬의 이름을 안좌도는 안창도의 ‘안’과 기좌도의 ‘좌’를 합하여 안좌도라 칭하였다.

 

 섬의 최고 지점은 북서쪽의 봉산(182m)이며, 100m 내외의 산들이 많다. 산간저지와 해안 곳곳에는 농경지와 염전이 분포한다. 해안선은 드나듦이 비교적 복잡하여 무려 91.4㎞에 이른다. 간석지가 넓게 펼쳐져 있어 간조시에 부속섬들과 연결되기도 한다.

 

 

 

 네 개의 섬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면사무소 부근은 식당을 비롯한 이런저런 가게들로 북적이고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주민의 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며, 쌀·보리 이외에 양파·마늘·고사리 등이 많이 생산된다.

 

 연근해에서는 대하·숭어·멸치·갈치·낙지 등이 잡히며, 김·굴 양식과 천일제염이 소규모로 이루어진다. 특히 안좌도의 김은 태양을 많이 받아 약간의 파래가 섞여 있으나, 이 김들이 가장 맛있고 무공해 김이다. 가을에는 ‘왕새우축제’가 열린다.

 

 

 

 

 안좌도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읍동리에 자리한 김환기 화백의 생가와 대리에 새로 문을 연 세계화석‧광물박물관이다. 안좌도의 또 다른 명물은 박지도와 반월도를 잇는 ‘퍼플교’. 보라색 꽃과 농작물이 풍성해 퍼플교(Purple Bridge)라 불리는 나무다리다.

 

 안좌도 안좌도에 많은 여행객이 몰리는 이유는 목조다리인 퍼플교를 통해 안지도·박지도·반월도와 걷고싶어하기 때문이다. 또한, 안좌도에는 방월리 일대의 지석묘 등이 볼거리가 많다.

 

 

◎한국 화단의 거목, 김환기 생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화백은 안좌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안좌도에서 보냈다. 1934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추상미술 운동에 참여하였고, 1936년 귀국하여 3∼4년 동안 고향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42년 김 화백은 안좌도를 떠났다.

 

 살던 집은 팔았고 서당은 국민학교 선생들의 사택으로 기증했다. 또 그 넓은 농토들은 모두 농사를 짓고 있던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눠 줬다 한다.

 

 

 

 

 유년기를 섬에서 보낸 그는 중학교 때 경성으로 유학을 갔다. 하지만 곧 중퇴하고 일본으로 떠나 그림을 공부한 뒤 1937년 귀국했다. 그후 1946∼1949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이 때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조직하여 새로운 창작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한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실현시킨 한국 추상화의 개척자였다.

 

 

 

 1970년 뉴욕에 살던 김환기는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읽고 가슴이 먹먹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의 ‘저녁에’ 전문)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내면 성찰을 엿볼 수 있는 시이다. 고국과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그는 보고 싶은 얼굴을 떠 올리며 캠바스에 점을 하나씩 찍었다. 그리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김광섭의 시에서 얻은 모티브를 바탕으로 1970년에 제작한 이 점화는  그 해 한국일보에서 주최한 제 1회 한국 미술 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를 작품 명제로 삼았던 그는 1974년 7월 뉴욕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출처:림호의 블로그)

 

 

 

 현재, 안좌도 읍동리에 있는 그의 생가는 1910년 백두산에서 자란 나무를 이곳까지 운반하여 건축한 북방식 "ㄱ"자형 기와집이다. 국가민속문화재 251호로 지정된 김환기 생가는 ‘ㄱ자’의 목조 기와집으로, 곳간과 건너방, 대청마루, 안방, '정지' 라는 방언으로 불리는 부엌으로 이루어졌다.

 

 

 

 

  ▲생가 외부 모습

▲생가 내부

▲우물과 장독대

 

 

 꼿꼿이 서 있는 안채는 1920년대 백두산에서 공수한 목재로 지은 것이라고. 김환기 생가는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사에서, 특히 추상미술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한 수화의 혼이 담긴 곳으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다. 김 화백이 태어난 생가는 생가 바로 앞 길 건너에 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남아 있는 생가는 김 화백의 아버지가 새로 건축해서 이사 온 공간이다. 현재 생가 소유자는 신안군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생가에서는 그의 작품을 찾아볼 수 없다. 잘 알려지지 않은 복사본이 딱 한 점 걸려 있는데 ‘요코하마 풍경’이란 작품뿐이다.

 

 

 

▲김환기 '요코하마의 풍경'

 

 

 김 화백이 그토록 그리워했던 고향에 버젓이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세우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먼 길을 달려 찾아간 거장의 생가에서 작품 몇 점이라도 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

 

 

 

생가 아래, 어느 집 벽에 김화백의 그림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세계화석광물박물관

 

 

 

 

 안좌도 남쪽 대리마을에 2019년 7월 개관한 ‘세계 화석·광물 박물관'을 탐방했다. '세계 화석·광물 박물관'은 폐교된 안창초등학교를 매입해 조성한 박물관으로, 신안군 지도면 출신 박윤철 씨가 평생을 모은 화석·광물 등 4000여 점을 기증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입구인 교문을 들어서자 넓고 푸른 잔디밭 뒤로 현대식 산뜻한 단층 물이 보인다. 교실의 형태가 아닌, 건물 전체의 벽을 새롭게 단장했다. 긴 ‘ㄱ'자 형의 건물 뒤로 나지막한 산이 전체를 울타리로 감싸고 있는 모양새다.

 

 

 

▲잘 가꾼 잔디밭, 배경이 된 나즈막한 산, 세련된 멋의 건물이 조화를 이뤘다. 

 

 

 박물관 관람은 건물의 오른 쪽으로 들어가 왼쪽 방향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 전시관에는 화석류 1,200여 점, 광물류 600 여 점을 전시하였는데, 그 중에는 진귀한 것들도 많이 눈에 띠었다.

 

 

 

▲박물관의 전시관은 복도를 통해 이어져 있다.  

 

 

▲다양한 광물들

 

 

▲각종 어류, 조류, 식물 화석들

 

 

 관람 도중에 만난 박윤철 관장은 돌에 미쳐 살아온 자신의 지날 날 삶의 역정과 앞으로의 포부를 밝히면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자신이 모은 화석들을 고향인 신안 군민에게 기증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의 다부진 말을 들으며 김환기 생가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다소 털어낼 수 있었다.

 

 

관람 도중에 만난 박윤철 관장, 화석·광물 등 4000여 점을 기증자이기도 하다. 

 

 

 박물관을 지나 출구로 나오면 창작공방이다. 예술인들을 위한 창작공방은 예술인들의 창작의욕과 편의를 제공함으써 창작, 전시, 휴식을 겸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조성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세계화석광물박물관 내의 창작공방

 

 

 관람시간은 9시~5시까지이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2019년 10월 31일까지 무료. 그래서 우리는 무료로 관람했다. 앞서 김환기 생가 방문에서 느낀 아쉬움을 이곳에 와서 상쇄받은 느낌이다.

 

 

 

보랏빛으로 단장한 '퍼플교' 

 

 

▲퍼플교= 천사의 다리(출처 : 쥼 뉴스)

 

 

 다음 우리의 행선지는 퍼플교. 퍼플교는 안좌도 남쪽에 자리한 두리마을 선착장에서 인근 부속섬인 박지도와 반월도를 'V'자로 연결한 목교(木橋)이다. 이 목교는  안좌도 두리선착장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박지도를 거쳐 오른쪽으로 반월도까지 이어진다.  

 

 두리~박지~반월도를 잇는 1,462m의 목교는 걸어서 육지를 건너고 싶은 주민 김매금 할머니의 소망을 담아 2008년에 개통했다. 소망을 이뤄주는 ‘소망의 다리' 로도 불렸다. 

 

 

 

 

 

 갯벌 위에 세워진 다리는 증도에 있는 ‘짱뚱어다리’를 닮았다. 다리 중간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팔각정과 낚시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밤이 되면 소망의 다리는 더욱 빛이 난다.

 

 

▲파플교 교각 기둥마다 설치된 전, 밤이면 환빛을 드러내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드러낼 것이다.  

 

▲우측으 보이는 박지도 선착장

▲박지도 선착장 뒤로 우뚝 솟은 산은 반월도의 견산(어깨산)

 

 

 그 후 2016년 박지·반월도가 전남의 ‘가고 싶은 섬’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이 지역을 특성화하면서 이곳에 많이 자생하는 보라색 수국과 국화과에 속하는 보라색 꽃(우산국, Aster, 속칭 쑥부쟁이)의 '보라'색의 영어 표기 'Purple'을 따서 다리 이름을 '퍼플교'(Purple Bridge)'로 명명하였다.

 

 따라서 두리마을과 박지도 주변 일대는 퍼플교는 물론 주택의 지붕이나 담, 전화부스 등 색깔을 입힐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보랏빛으로 꾸몄다. 이곳에 오면 이채로운 보라색 때문에 마치 동화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느낀다. 

 

 

 

▲보라색 일색으로 꾸며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리를 건너면 먼저 박지도다. 박지도에 들어서니 마을 입구에서 마을 사람들이 박지도를 예쁘게 꾸미기 위해 진한 보라색의 화분들을 옮기고 있었다. 무슨 꽃인지 몰라 이광수 교장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우산국(Aster, 쑥부쟁이의 일종)이라 헸다. 고혹적인 색깔이다. 이 가을, 섬 전체를 보라꽃으로 단장할 모양이다.

 

 

 

▲인터넷 검색을 위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이광수 교장님

 

▲박지도 주민의 가옥

 

▲관광객을 위한 박지도 천막식당

 

 

 박지도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해안산책로 3.9㎞가 조성돼 있다. 그리고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등산로도 마련되어 있다. 마을 뒷산 정상에서 매년 정월 대보름 때 당제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해안도로를 걷거나 등산로를 따라 산에 올라 섬 주변의 풍광을 감상했다.

 

 

 

▲박지도 산행

 

▲해안산책로 걷기, 걸으며 잡은 풍경

 

 

 이어 박지도에서 915m 길이의 다리를 건너면 반월도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박지도-반월도 구간은 보수공사로 일반인 통행을 금지하고 있어 반월도까지는 걷지 못했다.(11월25일까지 통행금지). 이 보수공사로 안좌도-박지도 구간은 11월25일~2020년 1월9일까지 통제되니 참고할 것.

 

 

 

▲박지도와 반월교의 연결 다리는 현재 공사중이서 건너지 못했다.

 

 

 박지도와 반월도 사이에는 썰물 때 드러나는 징검다리 '노두'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습을 볼 수 없고 슬픈 전설만 남아 있다. 옛날옛적, 박지도와 반월도 두 섬의 암자에 살고 있던 남녀 스님이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바다에 돌을 부어 징검다리를 만들어 나갔다. 마침내 징검다리를 완성해 한가운데서 만났지만, 밀물이 차올라 둘은 영영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전설을 알려주는 현판이 박지도 입구에 있다.

 

 

 퍼플교 전체 구간을 둘러볼 수는 없지만 안좌-박지도 구간을 걷는 것만으로도 바다 정취를 마음껏 누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푸른 바다와 섬, 그리고 목교만이 줄 수 있는 매력적인 향취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은다. 썰물일 때와 밀물일 때가 사뭇 달라 때를 잘 맞추면 걷는 재미를 두 배로 느낄 수 있다.  특히 썰물 때는 게, 고둥 등 바다생물이 많아 갯벌체험장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앞으로 퍼플교는 안좌도의 ‘무한의 다리’와 함께 신안지역의 랜드마크로서 관광객들을 모으는 효자상품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안좌해피하우스펜션 1박

 

 

 자은도 둔장해변의 ‘무한의 다리’ 위에서 지는 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담고 안좌도의 안좌해피하우스펜션(안좌면 향목리 413, 010-5413-0474)으로 행했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7시.

 

 

 

▲안좌해피하우스펜션과 파라솔 아래에서 바라본 모습

 

 

 도착하자마자 숙소에서 저녁밥상을 받았다. 미리 예약한 것이지만 바다향으로 가득한 밥상은 꽃게탕, 박하지게장, 서대구이, 가재미찜, 소라무침으로 차려져 푸짐했다.

 

 주인이 바다에 나가 직접 잡아온 것이고 각종 야채는 텃밭에서 기른 것이라고 했다. 다소 우직해 보이는 주인장은 식사만큼은 자부심이 아주 강했다.

 

 

▲해피하우스펜션 신유균 주인장

 

 

 그리고 더욱 좋았던 것은 단잠을 자고 일어나 마주한 주변 풍경이었다. 숙소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안좌해피하우스펜션은 바닷가에 있어서 만조시에는 바닷물이 가득 차올라 운치를 더했다.

 

 반대로 간조 때 물이 빠지면 갯벌 위로 까맣게 나와 햇볕을 쬐고 있는 칠게(충청도 사투리로 능쟁이)의 미세한 몸놀림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해피하우스 바로 뒤 물가에 흰 바다새들이 먹이사냥을 하고 있는 모습.

 

 

안좌도 먹을 곳, 잠잘 곳

 

 

 안좌도 맛집으로는 한서네 (안좌면 읍동리 884-5, 061-271-6552)는 가성비 좋은 백반집이다. 섬마을음식점 (안좌면 중부로, 061-262-2626)의 백반과 우럭탕도 일품이다. 섬마을식당 (안좌면 읍동리, 우럭강국, 장어탕, 061-262-0330)

 

 잠잘 곳으로는 유성모텔 (안좌면 읍동리 873-1, 061-261-1223), 정원장 (안좌면 읍동리 1134-3, 061-262-0654)이 있다. 청수장 (암태면 기동리, 061-271-1565), 남해장 (안좌면 읍동리, 061-261-4059) 등이 있다. 특히 안좌 피하우스(010-5413-0474)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고, 푸짐한 식사가 가능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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