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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여행기 및 정보/- 서해

암태도, 선인들의 눈물과 통곡이 스민 역사의 땅

by 혜강(惠江) 2019. 10. 14.

 

암태도

 

선인들의 눈물과 통곡이 스민 역사의 땅 

 

 

글‧사진 남상학

 

 

 

 

▲암태도로 들어가는 천사대교

 

 

 “바다는 따가운 가을 햇살을 재재발기며 팽팽하게 힘이 꼬이고 있었다. 하늘도 째지게 여물어 탕탕 마른 장구 소리가 날 듯했다.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 위로는 뭉게구름이 한 무더기 탐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 송기숙의 소설 <암태도>에서

 

 목포 서쪽 다도해상에 있는 암태도 앞바다는 송기숙(61)씨의 소설에서 묘사된 그대로였다. 천사대교에 달려 가을햇살에 졸고 있는 섬자락에 닿았다. 암태도다. 목포에서 서쪽으로 25㎞ 지점에 있는 암태도(巖泰島)는 압해도에서 천사대교를 건너면 된다. 최근 암태도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어 신안 섬 여행의 거점으로 변모했다.

 

 인근의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는 연도교로, 비금도, 도초도는 카페리를 이용하여 40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조용했던 섬이 여행객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그들에게 묻혀 암태도까지 온 것이다.

 

 

역사의 숨결이 서린 섬

 

 

 

 

 암태도는 원래 3개의 섬이었는데 토사의 퇴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었다. 압해도는 북쪽의 자은도와는 은암대교로, 남쪽의 팔금도와는 중앙대교로, 남서쪽의 추포도와는 방조제로 각각 연결된다. 암태도는 돌이 많고 바위가 병풍처럼 섬을 둘러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남쪽에 추봉(159m), 동쪽에 박달산(197m), 서쪽에 승봉산(355) 등 산지가 많아 쌀 한 톨 구경하기 힘든 척박한 땅이었다. 그러다가 마명 방조제를 쌓아 드넓은 갯벌이 옥토로 바뀌게 되었다. 면사무소가 있는 동남 해안가의 단고리가 중심지이며, 주민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암태도 소작항쟁의 현장

 

 

 암태도에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는 암태도 소작쟁의가 일어났던 곳으로, 암태도 소작인 항쟁 기념탑이 있다. 쟁의를 이끈 지도자 서태석의 고향 오산마을 입구에 의사 서태석 선생 추모비와 가묘, 암태도 농민항쟁사적비가 서 있다. 어디 그뿐인가? 암태도에는 송곡리 매향비, 고목과 돌담길이 어우러진 송곡우실·익금우실 등 역사 여행지가 있다.

 

 

◎암태도 부부벽화

 

 

김지안(46) 작가가 담에 그린 노부부 벽화

 

 

 암태도 여행 1번지는 담장에 그린 부부벽화 그림이다. 자은도와 천사대교로 향하는 갈림길인 기동삼거리의 벽화가 그것이다. 노부부의 인물벽화로, 벽화의 주인공은 문병일(78) 할아버지와 손석심(78) 할머니다. 물론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은 이들이 사는 집의 담벼락이다.

 

 멀리서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동백꽃 파마를 한 모습이다. 하지만 다가가서 보면 동백나무는 담벼락 안 집 마당에 살고 있다. 수줍게 웃는 할머니 얼굴과 장난기 있는 할아버지의 웃는 모습이 한없이 정겹기만 하다.

 

 

▲벽화 옆에 붙은 문패

 

 

 이 벽화는 신안군의 제안으로 몇 년 전 낙향한 신안군 지도 출신의 김지안(46) 작가가 그렸다고 한다. 눈에 띄는 점은 지역민을 그린 것뿐만 아니라 담장 안쪽의 애기동백을 활용한 입체적인 구조다. 애기동백이 시골 어르신들의 단골 헤어스타일인 일명 ‘뽀글이’ 파마머리로 환골탈태했다.  

 

 이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동삼거리에 자동차를 대는 여행객이 많아졌는데, 좁은 도로에 차량의 통행이 잦은 곳이라 주의해야 한다.

 

 

◎암태도 소작인 항쟁 기념탑 (단고리 장고마을)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

 

 

 암태도는 선인들의 피와 땀, 눈물과 통곡이 스며있는 역사와 무게를 짊어진 고장이다. 1924년에 일어난 ‘암태도 소작쟁의’는 우리나라 소작쟁의의 효시였다.

 

 암태도 소작인들은 주민 서태석의 주도로 '암태소작인회'가 결성되어 1923년 8월부터 1924년 8월까지 1년간 고율 소작료 인하운동이 전개했다. 소작회 측에서는 7~8할의 고율소작료를 4할로 내려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지주 측에서 이를 묵살하였다.

 

 이 과정에서 소작료 불납동맹이 전개되었고, 급기야 소작회와 지주 측의 충돌이 발생하였다. 당시 경찰은 지주 측을 비호하며 소작인들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소작회 간부들을 검거 수감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암태도 주민 400여 명은 배를 타고 목포로 건너가 경찰서와 재판소 앞에서 집단 항의를 펼쳐 암태도 소작쟁의는 사회문제화가 되었다.

 

 결국 일제 관헌이 개입하여 '소작료 4할 인하, 구속자 고소 취하' 등의 내용이 담긴 약정서를 작성하여 소작쟁의가 마무리 되었다.

 

 

▲1932. 4. 6일자 동아일보 기사 (출처: 한국학연구원)

 

 

 

 이러한 소작쟁의는 경제투쟁을 통한 한민족의 항일투쟁이었으며, 이후 전국에서 일어난 소작쟁의의 기폭제였다. 이 사건의 기록은 박순동의 『암태도 소작쟁의』((1981, 청년사)에 잘 나타나 있으며, 소설가 송기숙은 이를 소재로 1979년 장편소설 <암태도>를 『창작과 비평』에 3회에 걸쳐 연재한 바 있다. 그후 단행본으로 발간.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암태면 단고리 장고마을에 '암태도 소작인 항쟁기념탑'을 건립하였다. 높이 6.74m ‘암태도 소작인 항쟁기념탑’은 암태도의 숭고한 소작인 항쟁을 기리며 암태도를 지키고 있다.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에는 소작쟁의를 일으킨 지역 농민 43명의 이름과 소설 《암태도》를 쓴 송기숙 작가의 글이 음각됐다.

 

 

 

▲태극기와 신안군기가 펄럭이는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

 

▲암태도 소작쟁의에 앞장 섰던 분들 43인의 명단이 음각되어 있다.

 

▲소설 <암태도>를 쓴 송기숙 작가의 글 

 

암태도 소작인 항쟁기념공원의 기념물 

 

 

 

 한편, 쟁의를 이끈 지도자 서태석의 고향 오산마을 입구에 의사 서태석 선생 추모비와 가묘, 암태도 농민항쟁사적비가 서 있다. 서태석은 소작쟁의 후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정부는 2003년 8월에는 소작쟁의를 주도한 서태석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의사 서태석 선생의 추모비와 가묘, 암태도 농민항쟁사적비

 

 

◎매향비 (암태면 송곡리 109-13)

 

 

▲암태도 송곡리 매향비

 

 

 암태도 송곡리 바닷가에 매향비가 있다. 신안 암태도 송곡리 매향비는 조선시대 초기인 1405년(태종 5)에 세워진 것으로 7행의 글씨가 암각 되어 있다. 매향비는 미륵 신앙 유적으로 매향의 시기와 장소, 관련 인물들을 기록한 것인데, 향나무를 묻고 1,000년 뒤 다시 떠오른 향나무로 향을 피우면 미륵이 출현한다고 믿는 신앙 행위다.

 

 암태도 매향비는 남북한 전 지역에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섬에서 발견된 점이 특이하며 1982년 7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의 도서지방 공동학술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이 매향비는 당초 사유지의 경사지에 있던 것을 원위치에 가까운 평지로 이전하여 보호각을 건립하여 이전한 것으로 2004년 9월 전라남도 기념물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옛 노두길 따라가는 추포도

 

 

갯벌에 돌을 깔아 만든 추포도 옛 노두

 

 

 암태도에는 오래된 노두길이 있다. 이곳 노두는 암태도 수곡리와 추포도 사이 2.5km의 갯벌 위에 자연석 돌 6,000여 개로 다리를 놓아 두 섬을 연결하였다. 썰물 때 바닷길 구실을 했으나 현재 흔적만 일부 남아 있다. 300여 년 전 처음 노두를 만들고 세운 노도비(路道碑)도 남아 있다.

 

 비는 수곡리에서 추포도로 새롭게 연결된 도로의 ‘딸망섬(梧島)’ 남쪽 끝자락에 있다. 추포 노도 길은 여러 해 동안 해일로 파손되었으나 여러 사람들의 공으로 다시 보수하여 완성하였으며 이를 기리고자 병인년(丙寅年) 12월에 비를 다시 세운 것이다. 비의 전면에 ‘路道碑(노도비)’라 새겨져 있고, 공덕도 함께 새겨져 있다. 비의 규모는 높이 100㎝, 너비 43㎝, 두께 15㎝이다. 섬마을 마다 노도(노두)를 설치하였지만, 노도비가 남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그러나 2000년 6월, 노두 인근에 시멘트 콘크리트 도로가 개통되면서 옛 노두는 추억 속에 남게 됐다. 따라서 포장도로를 따라 차로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주민들은 이 길을 아직도 '노두길'이라고 한다.

 

 

 

▲시멘트 콘크리트로 변한 노두

 

 

 현재 노두 옆으로 추포도로 가는 현대식 교량을 가설하고 있는 중이다. 이 다리는 앞으로 추포도에서 비금도까지 대교가 놓이면 천사대교에서 바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시멘트 길 옆으로 현재 현대식 교량이 건설 중이다.

 

 

 추포도에는 수심이 낮고 송림이 울창한 추포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많이 붐빈다. 길이 600m에 달하는 백사장이 깨끗하다. 우리는 해수욕장까지 가지 못하고 추포도 입구에서 되돌아 나왔다.

 

 

 

◎중부권 환승터미널과 암태남강여객터미널 (암태면 와촌리 679-1)

 

 

▲암태도 중부권 환승터미널(위)과 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아래), 두 건물은 붙어있다.

 

 

 

 천사대교 개통으로 암태도는 천사의 섬의 중심에 섰다. 교통의 요지가 된 것이다. 암태도 중부권 환승터미널과 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에는 암태도를 비롯한 인근 섬 여행객들로 붐빈다. 이곳까지 오면 연도교로 이어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는 물론 카페리를 이용하여 비금도, 도초도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광주, 목포를 왕복하는 버스가 천사대교로를 거쳐 암태도 남단에 있는 중부권 환승터미널까지 운행한다. 중부권 환승터미널 바로 옆에는 있는 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에서는 비금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오전 9시와 오후 3시 하루 두 차례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도 하루 6차례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목포 시외버스도 20~40분 간격으로 중부권 환승터미널까지 운행한다.

 

 

 

▲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에 대기 중인 비금도행 카페리

 

 

 암태도(암태남강여객선터미널)에서 비금도(비금가산여객선터미널)까지 가는 페리는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시간 운행한다. 걸리는 시간은 40분

 

 

◎에로스서각박물관 (암태면 신석리 1717)

 

 

▲에로스서각박물관 전경

 

 

 에로스서각박물관은 압해도에서 천사대교를 건너서 암해도의 초입에 있다. 이 박물관은 암태도에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폐교를 이용해 만든 에로스 서각박물관은 2014년 총사업비 18억 원을 투입해 대지면적 9천241㎡, 건축면적 1천840㎡ 규모로 건립됐다. 그간 임시운영을 마치고 2018년 11월 정식 개관한 에로스서각박물관은 서각존, 사랑존, 작가존, 이색 성체험방 등 테마별로 구성하고 목공예 5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별관에 드래곤갤러리가 있다.

 

 

▲서각박물관 입구

 

▲이색성문화관 입구

 

▲뮤지엄 샵

 

 

▲운동장 뒤로 보이는 드래곤갤러리(위)와 용을 조각 중인 내부

 

 

 

 서각이란 글씨나 그림을 나무나 기타재료에 새겨 넣은 것으로 서채, 도법, 채법 등 우리 고유의 전통미와 현대 조각법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며 에로스와 결합한 예술의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모두 정배균 관장의 작품이다.

 

 

 

▲대부분의 작품은 정배균의 작품이다. 그의 약력  

 

 

 

 서각 예술작품, 용 조각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으나 이색성문화관은 성인만 입장이 가능하다. 입장료는 개인 3천원, 20인 이상 단체 2천원이다. 신안군민과 65세 이상은 무료다. 경로 우대자는 3천원 입장료를 받지만, 그 대신 3천원의 물품구매권을 준다. 경로자 우대를 하면서 지역 경제를 살리려는 취지인 셈이다.

 

 

◎팔금삼층석탑 (팔금면 읍리 350-1) 

 

 

 

 

 

 암태도를 둘러보는 김에 중앙대교 건너 팔금도의 팔금삼층석탑을 둘러보았다. 팔금도는 새 여덟 마리가 모여 있는 듯 하여 팔금도라 불린다. 팔금도는 네 개의 섬 가운데 가장 작고, 시간이 정지된 듯한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팔금도의 볼거리로는 팔금삼층석탑이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1호)  

 

 

 

 

 석탑의 조성 연대는 고려초기로 추정되는데, 1970년경 탑 부근에서 발견된 기와편에 '平興國' 이라 명문이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떨어져 나간 부분에 '太(태)'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태평흥국은 중국 태종의 연호로 976년부터 983년까지에 사용된 것이다. 지금부터 적어도 1025년 전에 팔금도에 사찰이 세워져 있었고, 그 곳에서 이 석탑을 조성했을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먹을 곳과 잠잘 곳

 

암태도 먹을 곳

 

에는 중국음식점 샨샤(암태면 단고리 90-1, 061-271-1867)의 자장면과 탕수육이 인기다. 신선한 고기와 현지에서 생산되는 야채 등을 사용한다. 바다식당 (태면 단고리 25-7, 061-271-0466) 영식당(암태면 단고리 27-1, 061-271-9009)은 투박하지만 진솔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차려진 백반을 내놓는다. 암태민박식당 (암태면 신석리 341)에서는 보말죽이 인기다. 또 신육일관 (암태면 중부로 1795, 061-271-6767)의 회와 백반도 먹을 만하다. 생선구이를 먹으려면 가거도일품 (암태면 신석리 157, 061-246-5482)가면 된다.

 

 

 

 

팔금도 먹을 곳

팔금도의 돼지촌(팔금면 읍리 104-4, 061-271-2200)은 흑돼지 삼겹살과 낙지 비빔밥 등을 내놓는다. 수정회식당(팔금면 읍리 406-3, 061-271-6050)은 장어탕으로 유명하다.

 

압해도 잠잘 곳

아름다운 펜션 (백반, 복룡리 147, 010.7353.2813, 010.7353.2813)

늘푸른농원민박 (복룡리 774-2), 다해펜션 (대천리 878, 061-272-5959)

압해펜션민박 (대천리 873-55, 061-271-950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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