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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인천. 경기

인천 중구 생활사 전시관,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과 인천의 생활사를 엿보다

by 혜강(惠江) 2019. 1. 22.

 

 

인천 중구 생활사 전시관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과 인천의 생활사를 엿보다

 

 

·사진 남상학

 

 

 

 

 인천 중구 생활사전시관은 1988년 4월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대불호텔 터 (인천 중구 중앙동1가 18)에 개관했다. 크게 두 관으로 나누어 제1관은 대불호텔 전시관, 제2관은 1960~1970년대 생활사 전시관으로 꾸몄다.

 

 

 

 

 

대불호텔 전시관

 

 제1관 대불호텔 전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알려진 대불호텔의 터가 발견된위치에 문화재청과 근대건축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건물의 외관을 재현하여 전시실로 조성하였다.

 

 대불호텔은 1888년 개관한 인천 최초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다. 1880년대 인천항은 조선이 쇄국정책에서 서구에 문호를 개방하던 역사적 전환기에 부산, 원산에 이어 세 번째로 일반 상업 항구로 개항되었다. 당시의 인천항은 제물포라는 한적한 어촌 포구에 지나지 않았으나 개항과 함께 일본, 청국과의 정치, 외교, 군사, 경제 활동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고 개화의 물결 속에서 국제항으로서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따라서 외국인이 조선으로 드나드는 주요 관문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인천은 외국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고 때 아닌 '숙박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통상관계로 인천에 머무는 외국인도 많았지만,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보아 인천에서 서울까지 당일 도착할 수 없는 처지이고 보니 제물포에 도착한 여행객들은 반드시 인천에서 하루 밤을 묵은 뒤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나야만 서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러다 보니 인천에서는 외국인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 건립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대한민국 최초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인천 최초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이 탄생되었다. 호텔을 설립한 사람은 나가사키 출신 무역 상인이었던 '호리 히사타로'였다.

 

 제물포 개항 직후인 1883년, 호리 히사타로는 아들 호리 리키타로와 함께 부산에서 인천으로 이주해 '호리상회'를 열면서 무역업과 해운업을 시작했고, 그 당시의 인천의 풍경, 인천항을 드나드는 서양인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점을 목격한 뒤 1887년부터 벽돌조의 서양식 3층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1888년부터 본격적으로 호텔영업을 시작했다. 3층짜리 양옥 건물로된 호텔은 침대 객실과 다다미 객실 식당을 갖췄으며 일본인 호리 큐타로가 운영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흥망성쇠가 있는 법, 1899년에 인천과 서울을 연결하는 철도망이 구축되면서, 자연스럽게, 여행자들은 더 이상 인천에서 하룻밤을 묵지 않고 바로 서울을 향해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난 뒤, 조선 땅에 서양인들의 왕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결국 대불호텔은 줄어든 숙박 객으로 인한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막을 내리게 됐다.

 

 그렇게 막을 내린 대불호텔은 격변의 변화를 겪은 뒤, 한때 ‘중화루’라는 요리지점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월세집으로 이용되기도 하다 결국 1978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1층에 들어서면 ‘대불호텔의 사계절’.의 영상. 마술 같은 영상미로 대불호텔의 사계절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흥미를 끄는 것은 투명바닥이 설치되어 있어 남아있는 대불호텔의 유구를 직접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대불호텔을 재현하게 된 과정을 영상을 통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주요 볼거리로는 대불호텔의 변천, 숙박요금과 서비스, 지하 저장시설, 기초부 및 건축적 특징, 청요리집 중화루, 대불호텔을 찾은 사람들의 기록과 묘사, 개항과 대불호텔 등 내용들이다.

 

 1888년 인천 중구에 세워진 대불 호텔은 서울 중구에 세워진 손탁 호텔보다 14년이나 앞섰으며 객실 수가 11개였고 커피와 서양식 요리가 제공되고 영어를 사용했다. 숙박료는 당시 화폐로 상급 객실은 2원 50전, 중급은 2원, 하급은 1원 50전으로, 비슷한 시기의 일본인 여관 수월루에서 상급 객실 하루 숙박료로 받은

1원보다 두 배 이상 비쌌다고 한다.

 

 

 

 

 

 

 2층에서는 근대 호텔의 역사와 개항과 함께 들어온 신문물을 관람할 수 있는 제2전시실과 당시의 객실 모습을 연출한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개항기의 모습, 근대 이전의 숙박시설, 인천에 세워졌던 일본식 여관, 서양식 호텔의 서비스, 인천에 세워졌던 서양식 호텔, 증기기관차와 철길, 근대 호텔의 모습, 근대의 커피 이야기, 개항기 신문물·근대 문물의 수용 등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3층은 연회장으로 호텔이 얼마나 격조 높은 곳인지를 가늠케 한다. 서양식 호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큰 공간은 바로 '연회장'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교류되었으리라. 이 연회장은 현재 강의, 세미나, 강연회, 전시회 등으로 대관하여 활용하고 있다.

 

 

 

 

 

 

1960~70년대 인천 중구와 관련된 생활사 전시관

 

 대불호텔 전시관을 지나면 제2관 생활사 전시관으로 이동한다. 제2관인 생활사전시관은 연면적 761.84㎡ 지하1층, 지상2층 규모이며 인천 중구가 출범한 1968년을 기준으로 1960~70년대 인천 중구와 관련된 생활사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인천 중구가 출범한 1968년을 기준으로1960~1970년대 인천 중구와 관련된 생활사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지상1층에서는 1960~1970년대 중구의 의, 식, 주 문화를 볼 수 있으며, 특색있는 음식과 문화상품을 판매하는 전문판매점이 운영된다. 특색 있는 음식과 문화상품을 판매하는 전문판매점들이 있다. 당시의 양장점, 의상실 거리, 사진관·이발소, 가정집, 전파사, 공화춘, 화선강, 답홍관, 인천도나스, 국일관 등의 생활 문화를 엿볼 수 있다.

 

 2층에서는 당시의 문화생활 볼 수 있다. 남자화장실, 여자화장실, 사무 공간, 백항아리 선술집, 극장, 상점, 다방, 무대 공간도 마련되어 문화생활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지하에는 인천 중구 출범부터 현재까지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연표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관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주소

인천 중구 신포로23번길 101 (우)22314지번중앙동1가 18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인천역에서 하차 중구청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어오시면 중구 아트플랫폼 거리에서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한 블록 위에 위치

* 간선버스 15, 28번, 좌석버스 307번을 타고 중구청 정류소에서 하차 후 도보 3분 정도

 

▲주차 : 주차하실 때에는 한중문화관옆에 주차장에 주차하시면 됩니다.

 

▲요금 : 개인 1,000원 (단체 800월), 5개관 (중구 생활사 전시관, 한중문화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개항박물관, 짜장면박물관) 관람시에는 3,400원(단체 2,800원) / 경로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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