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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및 교회, 학교/- 가족

추석연휴의 틈을 타서 떠난 가족여행

by 혜강(惠江) 2018. 10. 21.

 

추석연휴의 틈을 타서 떠난 가족여행

 

 

♣ 여행기간 : 2018. 9.25~26 (1박 2일)

여행장소 : 대부도, 선재도, 영흥도 일원 

 

 

 

▲가족 여행지로 결정한 대부도, 선재도, 영흥도 주변 지도

 

 

 두 아들을 포함하여 우리 가족 10명이 추석연휴를 이용하여 1박2일의 여행지로 잡은 곳은 대부도, 선재도, 영흥도였다. 짧은 기간이므로 수도권에서 가깝고 추석연휴의 교통 체증을 피하여 우리 아이들과 같이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 체험 거리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이만한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세 섬은 섬이지만 이젠 모두 제방과 다리로 연결된 섬 아닌 섬이 되었다.

 

 25일, 날씨는 쾌청했다. 승용차 석 대에 분승한 우리 가족은 9시 좀 지나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달렸다. 추석 연휴의 통행량이 엄청난 상하행과는 다르게 비교적 큰 지장을 받지 않고 시화호 제방으로 들어섰다. 제방을 달리는 동안 갑자기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래 여행의 맛은 이런 거야"

 

 시화호는 안산과 대부도를 잇는 12.7㎞의 시화방조제의 완성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본래 농지나 산업단지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담수호로 계획되었으나 주변공업단지와 도시 폐수가 시화호로 유입되어 수질이 크게 오염된 후에 담수화를 포기하고 해수호가 되었다.

 

 좌측은 호수, 우측은 바다로 시원스레 뚫린 길이지만 연휴를 맞아 시화호 제방으로 낚시를 하기 위해 모인 차량들이 길가에 주차되어 있어 달리는데 주의가 필요했다.

 

 

시화호의 시화나래 조력문화관 · 달전망대

 

 

 75m 높이의 '달전망대'에 올라서 바라본 시화조력발전소와 시회방조제

 

 

  우리의 첫 기착지인 시화호의 시화나래 조력문화관 · 달전망대에 도착한 것은 10시 30분 정도. 이곳에는 조석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조력발전소가 있다. 조력발전소는 시화방조제 중간, 갑문 옆에 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마침 간조 때여서 바닷물의 수위가 낮아져 엄청난 양의 시화호 물을 바다로 내쏟고 있었다. 650여 대를 수용하는 주차장은 거의 꽉 찬 상태여서 주차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조력발전소 바로 옆에는 2014년 6월 개장한 ‘시화나래 조력문화관과 그 옆에 75m의 ‘달전망대’(Moon Tower)가 높이 서 있었다.

 

 전시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조력발전을 상징하는 건축 디자인의 전시관이다. 이곳에는 시화호의 역사와 조력발전의 과학적 원리와 달, 물, 생명, 에너지를 주제로 한 체험과 전시가 진행된다. 달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시화호 조력발전소 개요

 

 달전망대까지는 10명씩 탑승하는 두 대의 엘리베이터가 운행된다. 타워 끝에 달린 둥근 모양의 전망대는 이름처럼 달을 닮았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전망대에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서해바다의 전망과 조력발전소 등을 볼 수 있어 절로 탄성이 나온다. 360도 원형으로 이어진 유리 데크를 따라 걷는 동안 세계최대 규모의 시화호 조력발전소, T-라이트 공원과 휴게소, 멀리 대부도까지 한눈에 감상 할 수 있다.

 

 또 일부 구간은 투명 유리로 된 바닥이어서 바다 위를 걷는 듯한 느낌에 아이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다. 유리바닥에 서보고, 엎드려 까마득한 지상을 내려다며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75m의 시화나래의 ‘달전망대’가 까마득하다.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대기하는 줄

 

 

 

 

 

 

 

 

대 유리바닥에서 즐거워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달전망대의  전망 카페

 

 달전망대에서 내려온 우리는 시화나래 조력공원을 잠시 산책했다. ‘시화나래’의 명칭은 ‘훨훨 날개를 펼치듯 널리 알려지고 솟아오르다’는 뜻이라고 한다. 공원은 산책로를 따라 레크리에이션 활동이 가능한 잔디마당·물결광장, 낙조 조망과 여러 조형물 감상이 가능하도록 조성되었다. 공원 바로 앞 바다에 떠있는 ‘큰가리섬’이 운치를 더해주었다.

 

 

▲시화나래 공원에 서있는 '빛의 오벨리스크' 조형물

 

▲시화나래 조력공원에서 기념촬영

 

 

 

 

 

 

대부도에서 바지락칼국수로 점심식사

 

 시화나래 조력공원을 잠시 산책한 뒤, 대부도에서 점심을 했다. 안산의 하와이로 불리는 대부도는 시화방조제로 연결이 되어 육지가 된 섬이지만 아직도 섬이 가진 낭만과 서정이 곳곳에 남아있다.

 

 무엇보다도 대부도 가는 뻥 뚫린 제방은 섬과 섬을 잇는 색다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대부도에 들어서면 볼거리도 많다. 돌이 검어서 이름이 붙었다는 탄도, 부처가 나왔다는 불도,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감도를 비롯하여 섬 여섯 개가 마치 형제처럼 어깨를 맞대고 서해에 늘어서 있다 해서 불리는 육도, 바지락 생산지로 유명한 도리도와 풍도 등은 독특한 멋을 간직한 곳이다. 대부도의 특산물로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대부포도가 유명하며, 인근 지역에서 지천으로 나는 바지락을 넣고 끓인 '바지락칼국수'가 시원함을 자랑한다.

 

 우리는 대부도의 대표 메뉴인 바지락칼국수를 먹기 위해 비교적 네티즌의 평판이 좋은 ‘유가네칼국수’ (032-886-5334)에 들러 바지락칼국수와 해물파전을 주문했다. 커다란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온 바지락 칼국수는 내가 먹어본 칼국수 중에서 맛이 뛰어났다. 특히 국물이 시원하면서도 깔끔해서 뒷맛이 깨끗했다. 아이들은 칼국수에 해물파전을 즐겨 먹었다.

 

 

 

▲'유가네칼국수' 집에서의 점심식사

 


선재도 목섬까지 걷기

 

 점심식사를 끝낸 우리는 멋진 선재도 관광의 첫코스로 목섬을 걷기로 했다. 선재도는 대부도와는 선재대교 (길이: 550m)로 연결되어 있다. 선재도는 면적은 2.47㎢이고, 해안선 길이는 10.9㎞의 그리 크지 않은 섬이다. 주위의 경관이 아름답고 수려하여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던 곳이라 하여 선재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해변의 굴곡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이름만큼이나 풍경이 빼어나 미국 CNN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가장 아름다운 섬33 중 1위를 차지했다.

 

 

▲ 썰물 때 드러나는 모랫길을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선재도의 목섬, 미국 CNN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가장 아름다운 섬 33 중 1위로 선정

  

 

 선재도의 매력은 썰물이 되어 물이 빠져야만 들어갈 수 있는 목섬과 측도 등 섬이 있다는 점이다. 목섬은 대부도에서 선재대교를 건너다보면 좌측으로 찐만두처럼 생긴 작은 섬이 보이는데 이 섬이 목섬이다. ‘신비의 바닷길’로 불리는 이 섬은 자연이 베푸는 최고의 선물이다. 소위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현상 중에서 가장 큰 규모는 진도 바닷길이지만 아름답기로는 이곳 선재도와 목섬을 연결하는 바닷길만 한 게 없다.

 

 모세의 기적 체험하기. 선재도 본섬에서 약 350m 거리의 무인도인 목섬은 하루 두 번 물이 빠져야만 드넓게 펼쳐지는 갯벌 사이로 조개껍질과 굴 껍질이 잘게 부서진 모랫길을 걸어 들어간다. 가족 단위로 친구 또는 연인끼리 목섬까지 걷는다. 한 번 갇히면 물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라면 한나절 갇혀볼 만도 하다. 목섬은 입장료가 있다. 5세미만 무료, 어른 1000원.

 

 

 

 

목섬에 들어가면서 찍은 사진들

 

 목섬 외에도 선재도에는 밀물 때면 선재도와 분리되고 썰물 때는 차량 및 도보로 통행이 가능한 섬이 하나 더 있다. 측도가 바로 그곳이다. 선재도에서 차로 이동할 수 있는 섬인데 자갈길을 따라 진입하게 된다. 17가구가 살고 있는 측도는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해안선을 따라 주위에 낚시를 즐길 수 있고 조개 등이 풍부하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선재도 ‘뻘다방’

 

 또 선재도에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 있다.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 18권 90화로 소개되었던 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뻘다방’ 이다. 대장장이, 목수, 어부의 직업을 전전한 아버지와 귀향한 사진작가 아들 자우(Jawoo, 본명 김연용)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바다향기’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것을 이제는 ‘뻘다방’으로 운영하고 있다.

 

 밀물이 들면 턱밑까지 들이차는 해변에 자리 잡은 ‘뻘다방’ 곳곳에는 해외를 여행하며 모은 골동품들, 인형, 가구, 빈티지 카메라와 오래된 필름과 사진들이 삼각대와 함께 걸려 있고, 벽에는 어부였던 아버지의 일을 돕던 강아지의 추억이 담긴 사진, 각종 레게풍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해변에는 서핑보드와 카누가 줄줄이 놓여 있고, 모히토와 럼을 파는 바(Bar), 카페가 바다를 향해 창문을 열고 있다. 한편에는 암실과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는데 자메이카 풍의 ‘Jawoo 팩토리’가 사진가 김연용의 작업실이다. 젊은이들은 야외에 놓인 탁자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목섬과 측도, 멀리 달아난 갯벌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한담을 즐긴다.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선재도의 명물 '뻘다방'

 

 

 

영흥도 장경리 해변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나온 우리는 영흥도로 향했다. 영흥도는 선재도 서쪽으로 영흥대교를 통해 연결되었다. 그러니까 선재도가 대부도와 영흥도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영흥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인천에서 서산 쪽으로 왕래하는 여객선이 기착하는 섬이었다.

 

 우리는 내일 고기잡이에 사용할 미끼를 살겸 영흥도 수산시장을 거쳐 장경리 해변으로 향했다. 장경리 해변은 십리포해수욕장과 더불어 영흥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다. 장경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는 내가 졸업한 영흥초등학교와 영흥감리교회가 있고, 지금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만 우리 가족이 1년간 숙소로 사용했던 옛날 공회당 건물도 있다. 장경리 해변으로 간 이유는 그런 추억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장경리해변은 자갈모래로 형성된 해변으로 모래사장이 깨끗하고 주변에 노송이 우거져 있어 해수욕장으로 명성이 나있다. 마침 사리 만조 때여서 그토록 넓고 긴 갯벌은 물론 길이 1.5km 정도의 간 모래사장에도 물로 가득했다.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을 동반한 많은 사람들이 바람을 쐬러 나와 있었다. 간혹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다. 우리 손녀 지연이는 사진 촬영에 좋은 치마를 입지 않고 나온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즐거워하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 장경리 해변에서 낚시를 즐기는 모습

 

 

‘선재도바다풍경펜션’에서 잠시 휴식

 

 장경리 해변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장남인 석우가 미리 예약한 숙소는 ‘선재도바다풍경펜션’ 신관동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선재로 306번길 31-113, 101호, 032-833-4880, 010-9455-1441)이었다. 해변으로 바로 이어지는 곳이어서 바다 전망과 바다풍경이 매우 좋았다.

 

 우리가 이용한 401호는 복층으로 최대 15명까지 이용할 수 있어 우리 가족 10명이 이용하기에는 아주 넉넉했다. 거실과 거실, 온돌방이 있고, 다락방 형식의 복층도도 꽤나 넓었다. 벌써 아이들은 2층 다락방을 차지하고 신나는 놀이에 열중 모드.

 

 거실에는 벽면TV, 소파, 에어컨, 냉장고, 테이블, 싱크대 (주방용품 일체), 전기포트, 전기밥솥, 화장실, (수건, 샴푸, 드라이기 등 세면용품 구비)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고, 바비큐 시설(숯+그릴)이 있다. 바비큐 시설 이용료 30,000원 별도. 인터넷으로 예약한 것이지만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우리가 묵은 '바다풍경펜션' 신관동(위)과 앞 해변(가운데), 낚시하는 사람들(아래)

 

 

 

▲ 아아들은 2층 다락방을 차지하고 신이 났다.

 

 

푸짐한 바비큐 식사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푸짐한 바비큐로 이른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 담당은 전적으로 차남 남경우의 몫. 아들은 아침 일찍 코스트코에 들러 자료 일체를 구입해 왔다.

 

 오후 5시 30분, 숙소에서 피워준 바비큐 숯불에 바비큐 용 두툼한 등심, LA갈비, 소시지, 새우, 고구마 등을 굽기 시작했다. 밤에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형수의 편의를 위해 좀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알맞게 구워진 두툼한 생고기는 부드럽고 육즙이 연해서 입 안이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AI소스에 찍어먹는 맛도 그럴 듯했다. 자료도 좋았지만 불의 온도를 조절하여 적당하게 구워내는 조리사의 뛰어난 솜씨 탓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진 새우와 소시지, LA갈비구이 맛도 환상적이었다. 그런데도 막내 기찬이는 기를 쓰고 밥을 챙겨 먹었다.  마무리는 맛있게 구워진 단 고구마. 아아, 어찌 그 맛을 잊으랴!

 

 

▲ 바비큐장 뒤로 보이는 것이 바다

 

▲ 바비큐 담당자인 둘째아들의 능숙한 모습

 

 

 

 

 

 

열심히 새우껍질을 까는 두 손녀

 

 

 

 

▲ 바비큐를 실컷 먹고 밥까지 챙겨 먹는 남기찬 

 

▲ 둘쩨 손녀는 소시지에 라면까지

 

▲ 바비큐로 푸짐한 저녁식사

 

 저녁식사를 마친 둘째네가 기념으로 찰칵!

 

 

조명을 밝힌 아름다운 영흥대교

 

 식사 후 큰 자부를 서울로 떠나보낸 뒤, 우리는 영흥대교의 야경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웬만한 가족이라면 이렇게 강행군은 하지 않을 텐데 우리는 달랐다. 2001년 개통된 영흥대교는 영흥도민의 교통편의를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지만, 수도권 등지에서 휴양 및 바다낚시를 즐기기 위해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조명을 밝힌 야경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광광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영흥대교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영흥도 선착장이어서 영흥대교를 건너 영흥도 선착장으로 갔다. 영흥대교의 야경은 일곱 색깔 무지개로 변하여 그 아름다운 모습에 절로 감탄사가 뛰어 나온다. 더구나 휘황찬란한 다리 위로 보름달까지 떠올랐으니, 그 아름다움은 우리를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손녀 지연이는 손가락으로 달을 잡는 포즈를 취하여 좋은 사진을 남겼다. 역시 젊은 감각은 어른들이 따를 수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돌아와 숙소에 들기 전, 올려다 본 밤하늘에는 서울과는 다르게 많은 별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조명을 밝혀 아름답게 보이는 영흥대교, 좌측 상단에 달이 떴다.

 

 

 

 

 

▲조명을 밝힌 영흥대교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다.

 

 

노래방 체험

 

 영흥대교의 야경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영흥도 내리에 있는 놀부노래방을 들렀다. 손녀들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노래방 문화가 생긴 지 꽤 오래 되었지만, 내가 노래방을 간 것은 세 번 정도, 그것도 처제들과 한 번, 그나머지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였다.  

 

 그 이유는 워낙 음치인데다 평생 교회에 다니면서 세상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대중가요는 부를 기회가 없었고, 또 그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음악 자체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정화되고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경험했기에 노래를 듣는 것은 즐기는 편이다.   

 

 우리 아이들은 열심히 불렀다. 현지, 가연이, 지연이 모두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노래들을 신나게 불러댔다. 특히 지연이는 부를 때마다 100점이 나왔다. 워낙 목소리가 좋고 음감이 있어 감칠나게 들렸다. 기찬이는 나를 닮았는지 노래 부른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아는 노래는 열심히 따라불렀다. 두 아들도 한두 곡 부른 것 같다. 한 시간 대실하였는데 덤으로 30분 정도 시간을 더 주어 고마웠다.     

 

 

 

  

둘째 날 아침, 호텔 브런치가 못지않은 아침식사

 

   역시 식사 담당은 둘째 내외, 크로와쌍에 햄, 치즈, 토마토, 달걀 부침, 로메인 등을 자료로 하여 만든 대형 샌드위치와 그 외에 케이크, 주스, 우유, 과일, 커피, 원하는 사람이 먹을 라면으로 차린 아침식사. 식사 장면을 사진으로 보고 전해온 큰 자부의 표현을 빌자면 ‘호텔 브런치(Hotel Brunch) 못지않은 진수성찬’이었다. 손쉽게 만든 가벼운 식단 같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식사였다.

 

 

 

 

 

 

 

▲ 웬만한 호텔에서 내놓는 브헌치를 능가하는 푸짐한 아침식사

 

 

숙연했던 아침 예배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숙소에서 서울에서 드리지 못한 추석예배를 드렸다. 자료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옛적 나의 어린 시절 영흥도에서의 어려웠던 삶을 통해 나와 영흥도의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들려주었다. 나의 글 “영흥도, 그 아픔의 세월”을 읽어주면서 열두 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했던 이야기, 영흥도 진두 갯벌에서 생계를 위해 바지락을 캤던 일 등등.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픔은 당장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것은 훗날 내 삶의 자양이 되고 힘의 원천이 되었다. 나는 고난 속에서 인내를 배웠고, 용기를 배웠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이끌어 오셨는지 고백할 수 있다.” 라는 대목에 와서 어린 손자손녀들까지 가족들은 모두 숙연해 하는 분위기였다. 영흥도를 회상하며 드리는 이 날의 예배는 큰 의미가 있었다.

 

 

 

▲영흥도 십리포해수욕장의 소사나무(일명 서어나무), 모진 비바람을 겪으며 자란 나무는 내 어린 시절의 신산(辛酸)한 삶과 닿아 있다.   

 

 

바지락, 소라, 박하지를 잡는 갯벌체험

 

 예배기 끝난 후 우리는 체크아웃을 위해 짐을 싸서 차에 실었다. 갯벌 체험에 나서면 적어도 오후 2시는 되어서야 끝나기 때문에 미리 서둘렀던 것이다. 요즘 선재도는 어촌갯벌체험이 한창이다. 선재대교 북단 선재어촌체험마을에서는 ‘갯벌투어 트랙터’ 체험을 할 수 있다지만 우리는 바로 숙소 앞 갯벌에서 어촌체험을 하기로 했다. 숙소 바로 앞 갯벌에서 어촌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촌체험장 사무실 (032-890-4168, 010-887-3110)은 숙소 바로 옆에 있었다. 갯벌에는 오전 9시 30분부터 출발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체험을 위해서는 요금 8,000원, 장화 대여료 2,000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숙소 이용객이라는 이유로 장화 대여료를 포함 8,000원으로 할인해 주었다. 장화를 갈아 신고 채취용 플라스틱 통 하나씩 받아 갯벌로 나갔다. 나는 바지락을 캐는 장소를 벗어나 박하지를 잡기 위해 더 멀리 나갔다. 돌 밑에 숨은 게(박하지)를 잡는 작업은 돌을 들춰야 하기 때문에 힘이 더 들었다.

 

 예전에 해본 솜씨로 게를 잡다가 우리 손자 손녀들의 목서리는 ‘나 좀 살려줘’라는 소리였다. 막내 손자 기찬이는 뻘에 빠져 장화를 버려둔 채 겨우 몸을 빼내 맨발로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뻘에 빠진 장화는 아들의 것 하나, 손자의 것 둘, 모두 셋이었다. 아예 빠진 장화는 포기한 듯했다. 내가 다가가 요령껏 빼낼 수 있었으나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개흙 투성이 장화를 씻어 다시 신고, 돌을 들춰 게를 잡는 요령을 알려주었더니 손녀 가연이, 현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돌 밑에 숨었던 게(박하지)가 엄지발을 치켜든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무서워하면서도 너무 신기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야말로 선재도의 갯벌은 생태가 살아 숨 쉬는 교육장이었다.

 

 갯벌체험을 시작한 지 3시간 정도, 체험을 마친 우리는 그야말로 갯벌투성이였다. 몸을 씻고 나오자 할머니가 아이스크림으로 지친 몸과 갈증을 풀어주어 너무나 고마웠다.

 

 

▲ 숙소 바로 옆에 있는 갯벌체험장 관리실, 요금을 내면 호미, 플라스틱 용기, 장화를 빌려준다.

 

 

 

 

▲갯벌체험에 나선 우리 아이들

 

▲ 갯펄에서 바지락, 게 같은 바다 생물을 채취하는 모습  

 

▲아뿔사! 갯벌에 빠져 구조를 기다리는 손자가 장화를 빼내지 못하고 있다.

 

 

▲ 박하지를 잡지 못해 어쩔 줄 모르고 있다. 

 

▲ 큰 소라 한 개를 잡고 기뻐하는 남현지 (대어상 수상)  

 

▲남가연가 박하지를 잡고 기뻐하는 모습

 

 

 

 잡아온 바지락과 박하지를 분류하고 있는 장면  

 

▲ 그 시간, 갯벌체험과는 관계없이 숙소 뜰에서 바다 정취를 감상하는 남지연

 

늦은 점심식사

 

 갯벌체험 관계로 오후 2시, 점심식사를 했다. 아침에는 샌드위치로 했으니, 점심에는 밥을 먹기로 하고 선재도에 있는 ‘안동국밥’(선재리 439-72, 032-889-3999)으로 향했다. 안동국밥은 메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어린아이들이 먹기에는 얼큰했다. 그냥 얼큰한 국밥이라고 함이 적당했다.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대부도로 들어가서 대부옥수수찐빵으로 입가심을 하기로 했다.

 

 기대를 하고 갔지만, 우리가 목표로 한 대부옥수수찐빵은 맛볼 수 없었다. 대기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옥수수 찐빵을 맛보려면 40분을 기다려야 한단다. 포기하고 그냥 갈까 하다가 옆에 있는 다른 옥수수찐빵 집에서 대신 찐빵을 구입하여 맛을 보고 우리의 마지막 여정인 구봉도로 향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당 앞 의자애 앉아 사진 한 컷

 

구봉도 낙조전망대 탐방

 

 구봉도 낙조전망대는 구봉도의 서북 쪽 끝에 있다. 낙조전망대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붐비지 않았지만 주차가 힘들었다. 대부도 종현어촌체험마을과 공동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연휴에 몰려든 차량으로 주차장은 꽉 차 있었다. 간신히 길의 한 쪽에 주차를 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을 오후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종현어촌체험사무실에서 낙조전망대로 가는 코끼리열차에 몸을 실었다. 요금은 편도 대인 2,000원, 소인 1,000원. 코끼리열차는 해변 길을 달려 할매, 할배 바위를 지나 병력 하차 지점까지 갈 수 있었다. 간 조시에는 여기서부터 낙조전망대까지 해안 길로 갈 수 있지만 만조에 가까워 물이 들어차 있기 때문에 부득이 산길로 올라가야 했다.

 

 먼 길은 아니지만 산길은 다소 경사가 있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야 한다. 산으로 올라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이 길은 대부해송길 1코스의 일부 구간에 속하는 길이다. 잠시 평지를 걷다가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개미허리에 닿는다. 개미허리 목교는 낙조전망대로 가는 길에서 풍광이 제일 아름답다. 여기서 다시 오르막길, 정상에서 내려가면 낙조전망대로 이어지는 데크로 된 긴 목교가 나타난다. 바다로 돌출된 끝이 낙조전망대다.

 

 우리가 도착한 때는 오후 4시, 이곳에서 낙조를 보려면 2시간은 대기해야 하므로 우리는 멋진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온 방향을 따라 돌아 나왔다. 발밑까지 들어찬 바다는 짧은 여행에 축복을 안겨주듯 넉넉하고 포근했다.

 

 

▲맨 끝의 섬에 우리가 가고자 하는 꼬깔섬 끝에 낙조전망대가 있다.

 

▲ 햇빛이 뜨겁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코끼리열차를 탔다.

 

 

▲해안길이 있으나 만조로 물이 가득차서 산으로 올라서 걸었다. (이 길은 대부해송길 7코스 중 1코스의 한 부분)

 

 

 

▲ 개미허리 목교 위에서

 

▲산에서 내려오면 꼬깔섬으로 이어주는 개미허리 목교에 이른다.

 

▲개미허리에서 낙조전망대를 가기 위해 다시 산을 오른다.

 

정상에서 파는 아이스케익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낙조전망대로 향하는 목교 위에서 한 컷. 사진은 남지연

 

▲조형물에 올라 들어누워 포즈를 취한 남기찬,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낙조전망대 중앙에 설치한 조형물은 낙조와 노을을 형상화한 것이다.

 

 

▲둘째네 세 공주(왼쪽부터 막내 남현지, 첫째 남지연, 둘째 남가연) 

 

▲ 우리 내외 (할머니, 할아버지)

 

 

 

 

대치동 교동짬봉으로 저녁식사

 

 구봉도 낙조전망대를 끝으로 우리 가족 일행은 귀가 길에 올랐다. 실시간 내비게이션 탓인지 길은 붐비지 않아 쉽게 돌아올 수 있었다. 도착한 시간은 7시 10분.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식사 장소는 한티역 뒤에 있는 ‘교동짬뽕’ (대치동 935-37, 02-566-8457). ‘전국5대짬뽕집’이란다. 맛있게 먹었다.

 

 

 

 

 

여행의 마무리

 

  우리는 식사를 끝내고 나름대로 여행을 정리했다. 기본적으로 바다 전망이 뛰어나고 양호했던 숙소, 맛있는 바비큐 파티와 브런치 스타일의 푸짐한 식사가 좋았다.

 

  그리고 빡빡했지만 ‘모세의 기적’을 이해할 수 있는 목섬 가보기, 영흥도 장경리해수욕장 탐방, 황홀했던 영흥대교의 야경 즐기기, 노래방 체험을 통해 노래 실력 알아보기, 갯벌을 헤매며 바지락, 고동 게를 처음으로 잡아본 어촌체험 활동, 구봉도 낙조전망대까지 코끼리열차타기와 해송길 걸어보기 등 다양했던 여행은 우리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 여행을 위해서 두 아들 내외가 성의껏 준비해 줘서 고맙기 그지없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었고 그래서 모두들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 여행에서 가장 소중했던 것은 형제간의 우애와 가족간의 화목을 더욱 두텁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이다. 다만 한 가지, 맏손녀 서연이가 참석하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 아쉬움은 내년 추석, 제주도 여행을 기대하며 달래야겠다.

 

 

 

<글·사진> 남상학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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