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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서울

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 문화비축기지, 석유탱크가 공연·전시장으로 탈바꿈하다

by 혜강(惠江) 2018. 10. 4.

 

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 문화비축기지

석유탱크가 공연,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문화비축기지

 

 

박순욱 기자

 

 

 ‘100억 달러 수출’이 전 국민의 지상과제이던 시절인 1973년 중동전쟁이 터졌다. 그 여파로 일년만에 석유 값이 4배로 폭등했다. 청와대는 비상회의를 열어, 석유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한 석유 비축 탱크 매설을 결정했다. 1978년 조성이 마무리된 석유비축기지는 보안상 통제시설로 하기로 하고 그 존재 자체를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 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의 석유비축기지 조성 스토리다.  

 

 

문화비축기지 전경. 중앙에 보이는 건물이 커뮤니티센터인 T6(탱크 6)이다. /문화비축기지 제공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건설이 결정됐고, 인근에 위치한 석유비축기지는 ‘위험시설'로 분류돼 이전이 불가피했다. 보관했던 석유는 2000년 수도권으로 옮겼으나, 쓸모가 없어진 비축기지는 10년 이상 폐허로 방치됐다. 서울시는 2013년에야 ‘석유비축기지 활용 아이디어 공모'를 내, 산업화시대 유물이라는 역사성을 보존한 친환경생태공원으로 변신시켰다. 지난 9월1일, 개관 일주년을 맞은 공원 문화비축기지 탄생 이야기다.

 

 

◆탱크 두 곳에서 뜯어낸 철판으로 ‘커뮤니티센터’ 탱크 하나 더 만들어 

 

  석유비축기지 시설, 석유를 보관했던 탱크는 모두 5개였다. 문화비축기지 공원으로 변신한 지금도 원형 그대로 보존한 곳도 있고, 부분 리뉴얼한 곳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현재 전체 탱크 수는 6개로 하나 더 늘었다. 탱크 두 곳에서 뜯어낸 철판으로 여섯번째 탱크(T6)를 새로 조성, 카페와 강의실, 운영 사무실이 들어선 커뮤니티센터를 만들었다.  서울 마포구 증산로 87이 문화비축기지 주소이지만,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서문 맞은편이라 얘기하는 것이 위치를 쉽게 찾는데 도움이 된다.

 

  문을 연지 일년이 넘었지만 의외로 모르는 시민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문화비축기지 탐방은 순서가 정해져 있다. 꼭 이 순서를 지킬 필요는 없지만 이곳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쉽게 이해하려면 T5(탱크5), T4, T3, T2, T1, T6 순으로 돌아보는 것이 좋다. 여섯 개 탱크 중 제일 오른쪽에 있는 T5를 가장 먼저 본 뒤 왼쪽으로 옮겨가며 둘러보는 방법이다. T5는 문화비축기지 전체를 소개하는 공간이기도 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낫다.  문화마당이라 이름 붙여진 T0(탱크제로)는 대규모 행사, 장터가 열리는 중앙광장이다. T0에서는 10월말까지 주말 밤도깨비 야시장이 열리고 있으며 시민참여형 행사가 줄잇고 있다. 여름에는 간이 수영장을 만들어 어린이 손님을 맞는다.  

 

 문화비축기지 중앙광장에서는 매주 주말 밤도깨비야시장이 열린다. 문화비축기지 제공

 

 문화비축기지 전체를 둘러보는데는 한시간 정도 걸린다. 화~토 오후 두차례 진행되는 시민투어(가이드 진행) 역시 40~50분 소요된다. 시민투어는 서울시공공예약시스템(yeyak.seoul.go.kr)으로 예약할 수 있다.

 

◆ T5부터 왼쪽으로 T4, T3, T2, T1, T6 순으로 돌아보는 것이 좋아  

 

  첫번째 코스인 T5는 문화비축기지의 어제와 오늘을 둘러볼 수 있는 ‘이야기관’이다. 먼저 1층으로 들어가면 360도 영상관이 반긴다. 캄캄한 암실이다. 과거 석유비축기지 조성 배경과 과정, 그리고 문화비축기지 건설 과정 등을 4분 동안 360도 파노라마 영상으로 보여준다. 석유기지 시절 옹벽을 스크린으로 재생시킨 것이 기발하다.  영상관 한층 위는 전시실. 석유비축기지를 정부가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는 보여주는 증거물도 다수 있다. ‘이곳 5개 탱크 한 곳의 비축 유종(기름 종류)을 바꿀 때,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승인을 받은 내용’이 기록된 정부 문서도 전시돼 있다.


 

문화비축기지 이현옥 해설사가 석유비축기지 조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박순욱 기자

 

 기자를 안내한 이현옥 해설사는 "5개 탱크에서 저장한 총 석유량이 6907만 리터였는데, 1978년 당시에는 서울시민이 한달간 사용하는 양이었는데, 지금은 만 하루도 아닌 반나절 소비량"이라고 말했다. 40년 전에 비해 석유 소비량(서울 기준)이 60배 가량 늘어났다는 지적이다.

 T5 바로 왼쪽이 복합문화공간인 T4다. 탱크의 내부 구조를 가장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다. 탱크 내, 외부를 변형 없이 원형 그대로 유지했다. 천장을 떠받치는 기둥 외에 별다른 구조물 없이 뻥 뚫린 내부 공간에 들어서면 석유로 가득차 있었던 탱크의 속살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원형의 실내 공간은 무대와 객석 구분이 없는 ‘관객 체험형’ 공연이나 전시장으로 사용된다.

 T3는 여섯개 탱크 중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5개 탱크 중 유일하게 원형 100% 보존된 곳이다. 완만한 언덕을 올라가면, 철제 부속물들이 녹슬어가는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다. 기름을 뺀 탱크 안은 빈 채로 그대로 두었다. 관람객은 탱크의 외벽을 볼 수 있을 뿐, 탱크 내부로 들어갈 수도 없다. 이현옥 해설사는 "T3는 과거를 보존하기 위해, 또 미래를 위해 개조를 유보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탱크 높이는 15m 정도. 이중 90% 정도가 30년 이상 보안상 흙에 덮여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탱크를 둘러싼 옹벽이 거의 꼭대기까지 황토색이다.지금은 그 흙들을 다 걷어내, 탱크의 위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 T2, 실내공연장-야외무대로 변신, 가장 인기 많아

T2는 다섯개 탱크 중 가장 근사하게 변신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문화비축기지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곳이기도 하다. 실내 공연장, 야외무대가 주된 시설이다. 기존의 철제탱크는 해체돼 T6 외장재로 사용됐다. 특히 T2의 야외무대는 기존 옹벽 한칸을 그대로 무대 외벽으로 활용, 마치 그리스, 로마시대 유적을 활용한 야외극장처럼 멋지다. 하늘과 산, 그리고 바람이 공연 시설의 일부가 돼 우아하면서도 시원한 형상을 하고 있어 찾는 이들에게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준다. 

 

 

문화비축기지 T2. 이전의 옹벽을 무대 외벽으로 삼아 멋진 야외공연장을 만들었다./문화비축기지 제공

 

 이곳에서는 음악 장르 구분 없는 공연, 영화 상영이 자주 열린다. 돌로 만든 의자도 있지만, 공원측에서 소파, 쿠션 등을 제공하기도 해, 누워서 공연을 즐길 수도 있다는 게 공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화비축기지 시민문화기획팀 이태원 주무관은 "날씨가 선선해진 요즘이 야외 공연 관람 적기"라며 "이곳 야외무대는 11월까지 주말 공연 대관이 이미 다 찼을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T2를 포함한 이곳 문화비축기지의 모든 공연, 전시실은 외부인이 대관 신청, 사용할 수 있다.

 ‘파빌리온'이라는 이름이 붙은 T1은 대형 유리 구조물이다. T2와 마찬가지로 T1의 기존 탱크는 해체돼 T6의 내장재로 재새용됐다. 일부 남은 옹벽을 토대로 유리로 벽체와 지붕을 새로 만들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유리 지붕 위로 파란 가을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70년대 석유탱크를 조성하기 위해 잘랐던 암벽 형상도 유리를 통해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문화비축기지 T1.석유를 저장하던 철판을 모두 뜯어내고 대신 유리로 외벽을 만들어 주변 풍광을 조망하도록 했다. /문화비축기지 제공

 

 대규모 온실 같기도 한 이 공간은 100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어 어린이 공작교실 같은 체험수업장 등으로 쓰인다고 했다. 노을이 깃든 저녁 하늘, 혹은 총총한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 밤 하늘을 지붕 삼아 ‘가든파티’를 해도 좋을 듯 했다. 실내이지만 실외 분위기를 한껏 낼 수 있기 때문이다.

 

◆ T6 , 문화비축기지의 ‘오아시스’ 역할

 T6은 커뮤니티센터는 2016~2017년 문화비축기지를 조성하면서 새로 만든 공간이다. T2 탱크 철판을 해체해 외장재로, T1 탱크 철판을 내장재로 사용했다. T2가 T1보다 훨씬 컸다는 걸 알 수 있다. T5부터 이곳 T6까지 둘러보면 한시간 정도 걸린다. 목이 마를 수밖에 없다. T6는 문화비축기지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1층 카페테리아 이름도 ‘T6’이다. 간식거리와 다양한 커피, 차를 마시는 공간이다. 꽤 넓다. 다만, 제대로 된 식사는 없다. 식사가 필요하다면 주말 도깨비 야시장을 이용하면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문화비축기지 커뮤니티센터인 T6(탱크 6)에서는 댄스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화비축기지 제공

 

 T6의 계단 없는 완만한 경사로는 썰매장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생생(생활생태) 문화 프로그램 강의실도 이곳에 있다. 시민 신청을 받아 숲체조, 댄스, 나무타기, 정원탓밭 만들기 등의 무료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문화비축기지 T6(탱크 6)를 위에서 내랴다 본 모습. /문화비축기지 제공

 

 문화비축기지는 추석 연휴를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한다. T0 문화마당에서는 22일부터 26일까지 윷놀이, 널뛰기, 투호놀이, 제기차기, 굴렁쇠 등 추석맞이 전통놀이가 진행된다. 이밖에 T1 파빌리온, T2 실내공연장, T4 복합문화공간 등에서도 전시, 공연 등이 열릴 예정이다.

 한시간 정도 걸리는 문화비축기지 둘러보기가 다소 짧다고 여긴다면 실망 마시라. 매봉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나무 데크길이 문화비축기지에서 바로 연결된다. 한바퀴 도는데 30분 정도. 어린이도 쉽게 오를 수 있는 평탄한 산책로다.

 또 문화비축기지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월드컵공원이 있다. 월드컵공원 내 노을공원, 하늘공원, 평화의 공원, 난지천공원 등 하나하나가 서울의 명소다. 가볼만한 공원들이 여기처럼 여럿 모여 있는 곳도 드물다.

 문화비축기지는 주차장이 있으며 인근의 월드컵경기장 주차장 이용도 가능하다. 전철 이용객은 6호선 월드컵경기장 2번출구로 나와 월드컵경기장 서문까지 5분 정도 걸어오면 차로 건너편에 문화비축기지 입구가 보인다. 월요일 휴관. 야외시설은 연중 무휴.

 

<출처> 2019. 9. 23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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