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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이탈리아

폼페이,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사라진 비극적인 도시

by 혜강(惠江) 2018. 5. 25.

 

이탈리아(1) : 폼페이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사라진 비극적인 도시

 

 

· 사진 남상학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12시간 반의 비행 끝에 로마 피우미치노(Fiumicino)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피우미치노 공항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붐비고, 유럽에서 여섯 번째로 붐비는 공항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국제공항으로 유명하다.

 

  로마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이른 새벽에 전용버스에 몸을 싣고 처음 도착한 곳은 폼페(Pompeii)이였다. 폼페이는 나폴리 만 연안에서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베수비오 산 근처에 있다. 폼페이는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이탈리아 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사르노 강 어귀 북쪽, 둘레가 3km 방벽이 약 63㏊의 면적을 둘러싸고 있는 고대 도시 폼페이는 로마에서 가장 번성한 항구도시였다. 이 도시에 서기 79년 8월 24일 대재앙이 들이닥쳤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함으로써 고대도시 폼페이는 엄청난 화산재 속에 묻혀 거의 폐허가 되었다. 베수비오 화산은 17세기와 1944년에도 폭발했다. 

 

 

 

    죽음의 도시 고대도시 폼페이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1549년 수로공사중에 유적이 발견되면서였다. 이후 18세기 중반, 정확하게 말해서 1748년에 들어서서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됨으로써 화산재 속에 잠들어 있던 폼페이가 세상에 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먼저 도시로 들어오는 7개의 문과 도시의 윤곽과 주요 건물들이 발견되고, 이어 광장, 목욕탕, 원형극장, 약국 유적지 등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3분의 2가 발굴된 상태다. 

 

  남동-북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중심도로인 스타비아나 가도는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는 베수비오 문(해발 44m)과 가장 낮은 지점에 있는 스타비아 문(해발 8m)을 잇고 있다. 공공건물들은 남서쪽의 거대한 평지에 있는 포럼(광장, 해발 34m), 남쪽 방벽 가장자리의 만이 내려다보이는 높이에 있는 삼각 포럼(해발 25m), 동쪽에 있는 원형투기장 및 체육훈련장 등으로 분류된다. 종교·경제·시민생활의 중심이었던 포럼은 2층의 열주가 있는 현관(포티고)에 의해 둘러싸인 커다란 4각형 지역이다.

 

  중심 방의 사면이 복도로 둘러싸인 거대한 바실리카, 지붕이 있는 이 건물은 상품거래와 재판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서쪽으로는 폼페이의 수호신인 베누스 폼페이아나의 신전이 있다. 바실리카 옆에 있는 아폴론 신전은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삼각 포룸은 폼페이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인 도리아 양식의 신전이 있는 곳이다. 이 어마어마한 도시에 흥미로운 것은 건물 내부에 그려진 벽화와 다양한 형태의 목욕탕이 산재해 있고, 성매매가 공공연하게 벌어진 창녀의 집까지 있다는 점이다.

 

  현재 발굴된 폼페이의 타원형의 원형극장 테아트로 그란데(Teatro Grande)는 로마에 남아있는 콜롬세움과 비슷한 모습이다. 경기장의 규모는 133m, 102m로 폼페이의 전주민의 숫자인 20,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원형투기장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곳은 로마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여흥거리였던 노예 검투사들의 대결장으로 사용되었다.  AD62년 대지진후 복구 작업을 했는데, 그때 쌓아올린 2m 높이의 흉벽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리고 그 흉벽에 그려놓았던 사냥터의 모습과 컴투사들의 격투 모습의 그림들도 남아있다.

 

 

뒤로 보이는 산이 베수비오 산이며, 폼페이 유적은 지금도 발굴 중이다. 

 

 

  폼페이 유적의 발굴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비극이 새겨진 폼페이 유적지의 조명 프로젝트에 국내 중견기업이 개발한 발광다이오드(LED)가 사용돼 화제다. 국내 최초 LED전문기업 서울반도체는 자연광과 가장 가까운 빛을 구현한 ‘썬라이크’가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 카사데이베티(Casa dei Vettii) 조명으로 채택돼 벽화를 비추고 있다고 발표했다. 세계적인 유적지인 폼페이 벽화를 대한민국 기술인 썬라이크로 밝힐 수 있다는 것에 부듯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폼페이 유적 관광은 다소 고역이었다. 어제 저녁 비행기로 긴 시간 시달리며 로마에 도착,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자동차로 출발하여 나폴리를 거쳐 폼페이에 도착하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시차도 극복하지 못한 채 수직으로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잿빛으로 변한 유적을 찾아서 돌이 깔린 거리를 걸으며 이곳저곳 기웃거려야만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폼페이 유적 관광은 내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막강한 권력으로 세운 웅장한 도시가 자연 재앙으로 삽시간에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며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라는 사실과 인간의 욕망과 부요가 결국 향락과 성적 타락을 불러옴으로써 도시 전체가 마치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폼페이를 둘러본 후 소렌토로 가는 열차를 탔다.

 

 

폼페이 유적 배치도

 

폼페이 유적지 입구

폼페이 유적지 관광안내소

 

폼페이 유적지는 프로타 마리나를 통해 들어갔다. 마리나는 '바다'라는 뜻인데 바다로 향해 난 문이 아니었을까?

 

 

폼페이 아폴로신전 뒤로 보이는 산이 베수비오 산이다.

 

 

 

 

폼페이 중앙 장인 포럼

제우스 신전 등 발굴된 폼페이의 유적에서 당시 고대도시 폼페이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유물전시관, 화산재로 죽은 사람의 모습들, 마치 석고처럼 굳어 있다.

 

폼페이 유적지에는 폼페이 비극의 현장을 말해주는 유해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폼페이 유적의 대부분은 나폴리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폼페이를 관광할 때는 돌길이므로 동화를 착용해야 한다. 이 길은 모두 마차가 다니던 길이다.

 

 

 

 

 

 

폼페이 유적에서는 각종 벽화들이 발견되고 있다. 벽화 중에는 사창가 창녀의 집에서 나온 것으로 19금 벽화도 있다. 

 

 

 

 

 

 

 

폼페이유적 중에는 원형경기장도 있다. 

 

폼페이 유적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한컷 사진을 찍었다.

 

폼페이 유적지 앞의 상점들, 레몬가게와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다.

  폼페이에서 발굴된 중요 유물들은 대부분 나폴리 고고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박물관에서 유물들이 주는 느낌과 실제 유적에서 받는 느낌은 차이가 많이 난다. 고대 로마의 생활상을 박물관이 아니라 현장의 유적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실감이 난다. 갑작스런 재난에 고통을 겪다가 석고상처럼 굳어진 당시의 끔찍한 모습을 눈에 담고 폼페이 유적지를 나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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