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암 촛대바위
바닷가에 솟은 기암괴석, 하늘로 긴 몸을 뻗다
동해 = 이 한수 기자
고전(古典)이란 누구나 잘 알지만 실제로는 다수가 읽지 않은 전적(典籍)이라 한다. 동해 추암 촛대바위는 여행의 고전이랄까. TV 방송 끝날 때 나오는애국가 첫 소절 배경 화면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역시 고전에 속한다. 지난 50여 년간 군 경계 철책 때문에 주변 경관을 온전히 즐기기 어려웠다. 지난 8월 입구부터 왼쪽으로 280m 구간에 이르는 철책을 철거했다. 울타리와 나무 데크를 새로 설치해 해안가 산책 코스를 마련했다. 푸른 바다를 제대로 바라본다. 내년 완공 목표로 관광지 조성 작업이 한창이다. 숱한 시인 묵객이 이곳에서 멋진 풍경을 상찬(賞讚)했다.
천 길 절벽은 얼음을 쌓아올린 듯
하늘나라 도끼로 만들었나
부딪치는 물결은 광류(狂流)처럼 쏟아지니
해붕(海鵬)이 목욕하는 듯한 광경 말로는 못하겠네 - 이식(1584~1647)
바다 위에 청산이 무수히 떠 있어
어느 것이 봉래(금강산)인지 알 수가 없다 - 김득신(1604~1684)
하늘에 치솟은 바위 기둥
수많은 불상을 조각한 듯
동쪽 바다 수평선 너머엔
복숭아꽃 피는 도원경이 있겠네 - 이헌경(1719~1791)
강원도 동해 추암 촛대바위 풍경이다. 김홍도 그림과 비슷한 구도로 사진을 찍었다. 손가락처럼 길게 하늘 향해 솟은 바위는 위태로운 모습으로 긴 세월을 버티고 서있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바닷가에 솟아있는 기암(奇巖)이며 괴석(怪石)을 보고 옛 선비들은 '금강산 미니어처'라고 주장했다. 한갓 과장이 아니다. 대리석처럼 흰 바위 무리가 한껏 제 몸을 뽐내며 늘어서 있다. 한 중년 여성 여행객이 바다 풍광을 보며 감탄했다. "아, 가슴이 확 트이네!"
5분쯤 걸어오른다. 하늘 향해 긴 몸을 세운 촛대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손가락을 뻗은 듯 길고 가는 바위가 서있다. 중간 부분이 가로 세로로 갈라졌다. 곧 쓰러질 듯 위태롭게 보였다. 저런 모습으로 긴 세월을 견뎌왔다니. 바위 꼭대기에는 난초(蘭草)인 듯 지초(芝草)인 듯 푸른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둥지를 틀었을까. 작은 새가 날아들어 몸을 숨겼다.
230년 전 당대 최고 화가 김홍도도 이 바위를 바라보았다. 1788년 그린 작품 '능파대(凌波臺)'가 남아 있다. '능파'란 문자 그대로는 '파도를 가볍게 여긴다'는 말. 아리따운 여인이 물 위를 사뿐사뿐 걸어간다는 속뜻이 있단다. 조선 세조 때 권력자 한명회(1415~1487)가 강원도 체찰사 시절 이 경승을 보고 '미인의 걸음걸이'를 떠올리며 이름 붙였다 한다. 파도 부딪치는 바위 풍경을 보고 미인을 떠올리다니 권력 쥔 이의 상상력은 역시 남다른 구석이 있다. 촛대바위를 바라보는 맞은편 바위에는 '凌波臺'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김홍도 그림 구도와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에 전망대가 있다. 이 천재 화가도 남다른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림 왼쪽 위에 그린 땅은 실제로는 10㎞도 더 떨어져 있다. 저 먼 땅을 그림 안으로 끌어들였다. 형제바위로 불리는 두 섬도 실제는 더 멀리 떨어져 있다. 바위 형상만큼은 지금 모습 그대로 사실적이다. '진경(眞景)'은 단순한 '사경(寫景)'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보면 그림 구도와 더 비슷해질지 모른다.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를 단 2층 원형 전망 건물이 있다. 관계자 외에는 올라가지 말라는 글이 붙어 있어 아쉬웠다.
새로 목책을 만든 산책길을 걷기로 한다. 촛대바위에서 내려와 해안을 따라 걷는다. 군 초소가 있다. '군 작전 지역입니다. 여러분의 형제와 아들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보였다. 근무에 지장을 주거나 자극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말이 함께 적혀 있다. 나무 데크 길을 따라 걸었다. 길 끄트머리에 군부대가 있다. 부대를 뒤로하고 왼쪽 언덕에 조각공원을 조성했다. 해안가에는 '해암정(海巖亭)'이라고 현판을 단 기와집이 있다. 고려 공민왕 때인 1361년 삼척 심씨 시조인 심동로가 낙향해 후학을 기르던 곳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 함경도 유배길에 이곳에 들렀다는 설명문이 붙어있다. 복원한 건물이지만 아담한 자태가 눈길을 끌었다.
인근에 추암역이 있다. 삼척~정동진 해안 구간을 운행하는 '바다 열차'가 하루 두 차례(주말은 3회) 왕복 운행한다. 철로는 하나. 역사(驛舍)는 없다. 지난 금요일 오후 3시 57분 정동진행 열차가 추암역에 섰다. "타실 거예요?" 승무원이 묻는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1분도 정차하지 않은 채 곧바로 출발한다. 열차는 외길 철로 위를 달려 아득히 멀어졌다.
→ 승용차로는 영동고속도로 이용이 일반적.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로 곳곳에 도로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 서행 구간이 많다. 시간이 평소보다 많이 걸린다. 서울 시내 출발이면 5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추암역에 서는 바다열차는 삼척~정동진 구간을 하루 2회(주말 3회) 왕복 운행. (033)573-5474, www.seatrain.co.kr
한반도 등뼈 도로 7번국도는 어디든 바닷가에서 가깝다. 촛대바위→묵호→망상해수욕장 등으로 동선을 짤 수 있다.
→ 망상 해변 오동동횟집(033-534-3122)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서 오징어회를 먹는다. 식감이 쫄깃하다. 3만~4만원. 우럭·농어·광어 등 각종 회 6만~15만원, 해물매운탕 2만5000원부터. 30일부터 10월 3일까지 주문진항 일대에선 오징어축제가 열린다.
[출처] 2016. 9. 29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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