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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강원도

수로부인헌화공원, 남화산 정상에 우뚝 선 수로부인 석상

by 혜강(惠江) 2017. 2. 3.

 

 

수로부인헌화공원

삼척 임원 남화산 정상에 우뚝 선 수로부인 석상

주소 : 강원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산 323-1번지 일대

 


·사진 남상학

 

 

* 남화산 정상 수로부인헌화공원에 세운 수로부인상 



  임원항은 옛 7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삼척 남쪽에 있는 어항이다. 예부터 어항으로 발달하여 어항 옆으로 횟집이 형성되어 관광객이 많은 편이다. 이곳에 최근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임원항을 에두르고 있는 남화산 꼭대기에 ‘수로부인헌화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넓이 2만 6천여㎡ 규모로 총 사업비 50억 원을 들여 헌화정, 산책로, 전망대, 쉼터 등을 조성했다. 나는 삼척 여행의 완결판으로 남화산 정상의 수로부인헌화공원을 찾았다. 

 

 

* 공원안내도 

 

  남화산 정상은 이곳 주민들의 해맞이 장소였다. 그만큼 바다 전망이 좋은 곳이다. 이곳 ‘수로부인 헌화공원’으로 통하는 길은 항구 끝자락 바닷가 언덕에 설치한 수직 엘리베이터가 그것이다. 본래 산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있지만, 너무 가팔라서 51m 높이의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후에는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대나무 숲길을 약 500m 걸어 오르면 정상이다. 20분 소요된다. 오르는 중간에 정자를 세워 잠시 쉴 수도 있고, 전망대를 설치하여 임원항과 울진의 해안과 바다 정경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 삼국유사 중 수로부인의 설화가 기록된 부분



  수로부인헌화공원의 모티브는 『삼국유사』권2 기이(紀異)편’에 실려 있는 ‘헌화가(獻花歌)’ 설화에서 따왔다. 설화에 의하면, 수로부인(水路婦人)은 신라 성덕왕(재위 702~737년) 때 강릉태수(江陵太守)로 부임하는 순정공의 부인이었다.

  수로부인은 신라 최고의 미인으로 짐작된다.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이 점심식사를 위해 바닷가에 자리 잡았다. 그곳은 짙푸른 바다를 끼고 천길 병풍처럼 드리운 절벽으로 아름다운 절경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척촉(躑躅,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봄바람이 싱그러운 오월, 붉은 진달래꽃에 마음이 동한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 수줍게 말했다.

   “누가, 저 꽃을 꺾어 줄 수 있나요?”

  절벽에 오르는 것은 목숨을 내건 행위다. 남편을 포함하여 수행원들도 대답이 없다. 이때 암소를 끌고 길 가던 노인이 절세미인 수로부인과 눈이 마주쳤다. 노인은 절세미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나이를 잊고 절벽을 탔다. 마침내 노인은 ‘헌화가(獻花歌)’라는 노래를 부르며 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쳤다.

  ‘헌화가’는 설화와 함께 4구체의 신라 향가(鄕歌)로 전해진 것인데, 우리 글자가 없던 시절에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는 향찰로 표기된 것을 해독한 것이다.

                    

   자줏빛 바닷가에 
   암소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겠나이다. 

 

 


  이 노래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수로 부인의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 때문에 한 노인이 생명을 걸고 천 길 벼랑을 기어 올라갔다. 꽃을 갖고 싶어 한 이는 아름답고 젊은 상류층의 부인이고, 꽃을 꺾어 바친 이는 암소를 끌고 가는 하류계층의 늙은 노인으로 대조를 이룬다. 노인은 한 여인이 속없이, 거의 불가능한 요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미모에 끌려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이라 말로 묘한 상황을 극복한 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 바쳤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먼저 정상에 있는 헌화정(獻花亭)으로 발길을 옮겼다. 헌화정은 고관의 행차를 이끄는 수행원들의 석상이 도열해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만난다. 2층 헌화정에 오르니 언덕 아래쪽 바다에 가까운 장소에 거대한 수로부인의 석상이 보이고 그 뒤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순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옷의 땀을 식혀준다. 

 

    

 

 

  헌화정 내에는 액자 두 개가 걸려 있는데, 하나는 미당 서정주의 ‘노인 헌화가(老人 獻花歌)’이고, 또 하나는 신달자의 ‘헌화가’였다. 모두 설화의 내용을 소재한 시들이지만 정작 원작 ‘헌화가’는 없었다.

 

  아쉬운 대로 서정주의 작품을 읽어 본다.  



 "붉은 바윗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이것은 어떤 신라의 늙은이가 젊은 여인네한테 건네인 수작이다. "붉은 바윗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햇빛이 포근한 날- 그러니까 봄날, 진달래꽃 고운 낭떠러지 아래서 그의 암소를 데리고 서 있던 머리 흰 늙은이가 문득 그의 앞을 지나는 어떤 남의 안사람을 보고 한바탕 건네인 수작이다. 자기의 흰 수염도 나이도 다아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다아 잊어버렸었다. 남의 아내인 것도 무엇도 다아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다아 잊어 버렸었다. 꽃이 꽃을 보고 웃듯이 하는 그런 마음씨밖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었다. 騎馬(기마)의 남편과 同行者(동행자) 틈에 여인네도 말을 타고 있었다. "아이그마니나 꽃도 좋아라. 그것 나 조끔만 가져 봤으면." 꽃에게론 듯 사람에게론 듯 또 공중에게론 듯 말 위에 갸우뚱 여인네의 하는 말을 남편은 숙맥인 양 듣기만 하고, 동행자들은 또 그냥 귓전으로 흘려보내고,  오히려 남의 집 할아비가 지나다가 귀동냥하고 도맡아서 건제는 수작이었다. “붉은 바윗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꽃은 벼랑 위에 있거늘, 그 높이마저 그만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여간한 높낮이도 다아 잊어버렸었다. 한없이 맑은 공기가 요샛말로 하면 - 그 공기가 그들의 입과 귀와 눈을 적시면서 그들의 말씀과 수작들을 적시면서 한없이 친한 것이 되어가는 것을 알고 또 느낄 수 있을 따름이었다.   

 

 - 미당 서정주의 '노인헌화가' 전문

 

 


  <노인헌화가>는 수로부인을 유혹하던 노인, 그의 수작을 서정주 시인이 다시 현대시로 바꾼 것이다. 자기의 흰 수염도, 나이도, 남의 아내인 것도 무엇도, ‘다아 잊어버린’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는 내용, 서정주의 <노인 헌화가>가 해학적이라면 신달자 시인의 <헌화가>는 치열하다.  

                 

사랑하느냐고                 

한마디 던져놓고 

천길 벼랑을 기어오른다

 오르면 오를수록

높아지는

아스라한 절벽 그 끝에 

너의 응답이 숨어 핀다는

꽃, 그 황홀을 찾아

목숨을 주어야

손이 닿는다는

그 도도한 성역 

나 오로지 번뜩이는

소멸의 집중으로

다가가려 하네

육신을 풀어 풀어                  

하늘도 아찔하여

눈감아버리는

캄캄한 순간 

나 시퍼렇게 살아나는

눈맞춤으로

그 꽃을 꺾는다.


   - 신달자의
'헌화가' 전문

 


  여류시인 신달자도 같은 소재로 꽃을 따는 순간을 ‘하늘도 아찔하여 눈감아버리는/ 캄캄한 순간’이라 표현하며 ‘나 시퍼렇게 살아나는 눈맞춤으로’ 사랑을 쟁취하는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한 여인을 위한 노인의 관심은 생명의 위험도 느끼지 못할 만큼 강했다. 암소를 끌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당당하게 자신과 미인의 미적 욕구를 충족하고자 했던 것일까?

  시 현판이 걸린 헌화정을 내려서서 주변을 산책했다. 공원에는 순정공조각상, 해학적으로 표현한 십이지신 조각과 해가를 부르는 군중상 등 수로부인 전설을 토대로 한 다양한 조각과 그림 등이 들어서 있다. 그 바다의 전망이 좋아 울릉도․독도와의 거리가 가장 가깝다는 곳에 독도전망대라 이름을 붙여놓고 망원경을 설치했다.

 

 

* 산정으로 오르는 계단 양 옆으로 해가를 부르는 군중이 도열해 있고, 정상에 보이는 것이 2층으로 된 팔각정 헌화정이다.


  언덕 아래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바다와 가까운 장소에는 거대한 수로부인 석상이 바다를 등지고 여의주를 문 용의 등에 올라탄 채 앉아 있다. 이 수로부인상은 세계 최초로 천연오색 대리석으로 제작된 조형물이라 한다. 높이 10.6m, 가로 15m, 세로 13m, 중량 500t에 달한다. 크기가 광화문 광장에 세운 세종대왕 동상의 1.5배나 되는 초대형이라고 하니 삼척시가 긍지를 가지고 제작한 기념물이 아닐 수 없다.

  수로부인이 용을 타고 이동한 것도 아닌데 왜 용의 등에 올라탔을까? 이것은 아마도 수로부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공원을 만들다 보니, <헌화가> 외에 수로부인과 관련되는 또 다른 설화인 <구지가>와 연관시켜 수로부인을 용 위에 앉도록 한 것이리라. 수로부인상을 올려놓은 대에 ‘해가’를 기록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설화에 의하면 강릉태수(江陵太守)로 부임하는 행렬은 계속되었다. 수로부인은 진달래꽃이 흐드러진 바위 절벽 아래를 지나며 꽃을 탐하기도 하고, 동해의 절경에 빠지고, 봄볕에 빠지며 이틀을 더 북쪽으로 걸었다. 빼어난 미모로 인해 여러 차례 납치까지 당한다. 어느 날 점심 무렵, 순정공 일행은 임해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난데없이 바다에서 해룡(海龍)이 솟구쳤다. 용이 수로부인을 끌고 바다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공(公)은 땅에 넘어지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굴렀다. 하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해안 절벽의 진달래꽃을 꺾어 수로부인에게 바쳤던 바로 그 노인이었을 것이다.

   "옛말에 뭇 사람의 입김은 쇠도 녹인다 했으니, 용(龍)인들 어찌 이를 두려워하지 않겠고, 모름지기 경내의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르며 막대기로 땅을 치면 나타나리라"

  아니나 다를까. 이 노인의 말대로, 백성들을 모아 막대기로 언덕을 치면서 노래를 불렀더니 과연 용이 부인을 내놓았다고 한다. 이 노래가 『삼국유사』기이편(紀異篇) 수로부인조(水路夫人條)에 내력과 함께 전해지고 있는 노래 "海歌詞曰龜乎龜乎……"로 되어 있어 해가(일명 해가사)였다. 한역가인 노래를 소개한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남의 아내 빼앗은 죄 얼마나 큰가.
     네 만일 거역하고 (수로부인을)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잡아서 구워 먹으리라. *

 

   *龜乎龜乎出水路(구호구호출수로) /  掠人婦女罪何極(약인부녀죄하극) / 

     汝若悖逆不出獻(여약패역불출헌) / 入網捕掠燔之喫(입망포략번지끽)

 

 

 

 

  위의 노래는 가락국의 ‘구지가(龜旨歌)’를 연상시킨다. 작자·연대 미상인 고대가요 ‘구지가(龜旨歌)’와 그 내용이 비슷하다. ‘영신군가(迎神君歌)’ ‘구지봉영신가(龜旨峰迎神歌)‘라고도 하는 ’구지가‘는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강림신화에 곁들여 전한다. 원래의 노래는 전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4구체의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조에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구하구하 수기현야 약불현야 번작이끽야)라고 기록되어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만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


  내용이 흡사한 두 노래는 앞서 소개한 <해가사>가 8구체인데 비하여 <구지가>는 4구체로 되어 있고, 내용도 <해가사>는 <구지가>보다 구체적이다. 그런 까닭으로 논자에 따라서는 <해가사>가 <구지가>를 풍자적으로 개작(改作)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수로부인상 뒤로는 망망대해다. 설화 내용대로라고 하면 바닷가에 길이 있고, 그 옆으로 바위로 된 절벽이 있는 곳이라야 적격일 터이다. 그러나 이곳은 바다가 보이는 산 언덕이어서 무엇보다 탁 트인 동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매력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설화라는 것이 말 그대로 그럴듯하게 지어낸 얘기니 어떤가. 나아가 남화산 일대가 헌화가의 실제 장소라는 증거도 없지 않은가.  

 

 



  경주에서 강릉까지 해안 길은 경북 영덕이나 울진일 수도 있고, 강원 삼척과 동해도 지난다. 삼척에서 수로부인 설화를 선점하고 더 체계화한 것에 불과하다. 삼척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삼척은 이곳 수로부인헌화공원 말고도 ‘쏠비치 호텔&리조트 삼척’이 서 있는 위쪽 바닷가에 ‘해가사의 터’로 지정하고 수로부인공원을 조성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설화부인 설화를 선점하고 공원을 조성한 것은 나무랄 데 없으나 아쉬운 것은 공원 전체가 짜임새가 부족하고 산만해 보였다. 이왕 수로부인헌화공원을 조성할 것이라면 설화의 내용에 충실하게 공원 주변에 진달래 꽃나무를 집중적으로 심고 수로부인에게 헌화하는 노인상 정도는 설치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공원으로 오른 길에서 만나는 전망대 

 

 * 공원으로 오른 길에서 바라본 수로부인상 

 

 *서정주 시인과 신달자 시인의 시가 걸려있는 헌화정

*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 일행의 모습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 해가를 부르는 군중의 한 사람

 * 독도전망대, 망원경을 설치했다. 


 * 수로부인상은 높은 대 위에 설치하여 높이가 10.6m나 된다.

 * 수로부인상 뒤로 잠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다.
 
<그밖의 사진 모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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