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이 그린 철원 삼부연(三釜淵)
화폭에 담은 절경(絶景), 30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조선일보 이한수 기자
*철원 삼부연 폭포(왼쪽) 정상에서 보면 가마솥 같은 못 세 개가 펼쳐진다. 삼부연(三釜淵)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겸재 정선은 300년 전 이곳을 찾아 산수화 ‘삼부연’(오른쪽)을 그렸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
강원도 철원군청에서 삼부연로를 따라간다. 자동차로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길가에 장쾌한 폭포가 나타난다. 높이 20m에서 흘러내린 물이 깊고 넓은 못을 이뤘다. 삼부연(三釜淵)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천 년 동안 마른 적 없었다는 폭포다. 궁예가 철원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못에 살던 이무기 세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다.
겸재 정선(1676~1759)은 300년 전 이곳을 찾았다. 서른여섯 살 때인 1711년 금강산 가는 길이었다. 6·25전쟁 전까지 철원은 금강산 가는 길목이었다. 당시는 대전에 맞먹는 큰 도시였다. 38선 이북 땅이었다가 전쟁 후 수복했다. 철원 북쪽 지역은 지금 비무장지대(DMZ)와 북한 땅이다.
겸재는 이듬해에도 금강산 가는 길에 이곳에 들렀다. 일흔두 살 때인 1747년 다시 원행(遠行)에 나섰다. 모두 세 차례다. 그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지금 남아 있는 그림은 1747년 작품이다. 간송미술관 소장 '해악전신첩'에 있다.
그림 오른쪽 아래 너럭바위에는 갓 쓴 선비 넷과 수행원 둘이 서 있다. 겸재는 첫 여행을 스승 김창흡과 선배 김시보, 정동후와 함께했다. 네 선비는 이들일 것이다. 김창흡은 호를 삼연(三淵)이라 했다. 세상을 피해 한때 이곳에 은거한 김창흡은 삼부연에서 자신의 호를 땄다.
선비들이 섰던 바위는 지금도 그대로 있다. 도로에서 철 계단을 통해 내려간다. '안전 제일'이라고 쓴 가로막으로 입구를 막았다. 새로 뚫는 용화터널이 완공되는 9월 중 함께 개방한다고 한다. 철원군청의 허가를 얻어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바위 위에 서니 폭포 줄기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못 물에 손을 담그니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삼부연이란 이름은 '세 솥 못'이라는 뜻. 이렇게 이름 지은 까닭은 폭포 위에 서 보면 안다. 옛 용화터널을 지나 용화산 오르는 길로 15분쯤 걸으면 폭포 정상이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물살이 굽이쳐 흐르며 만든 가마솥 같은 못 세 개가 보였다.
겸재 그림은 실제 삼부연과 비슷하지만 똑같은 모습은 아니다. 그림이 실제보다 더 호방하고 웅장하다. 진경산수(眞景山水)란 실경(實景)을 그대로 베낀 그림은 아닐 터이다. 화가는 심안(心眼)으로 실제 풍경을 재구성할 권리가 있다.
한탄강 흐르는 철원 땅은 폭포의 고을이다. '한국의 나이아가라'라는 과장된 별칭이 있는 직탕폭포가 인근에 있다. 높이는 3m에 불과하지만 폭은 80m에 이른다. 폭포 위에 놓인 다리 상사교(上絲橋)를 걸으며 걸음 수를 세니 모두 아흔 걸음이었다. 1억년 전 화산 지형으로 만들어진 고석정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한탄강 물줄기를 바라본다. 래프팅하는 젊은이들이 "하낫 둘, 하낫 둘" 구호에 맞춰 노를 저었다. 단종 폐위에 반대한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다는 매월대폭포에도 들른다. 한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 서울에서 철원군청까지 2시간. 43번 국도를 따라 포천을 벗어나면 강원도 철원으로 들어선다. 서울 수유역에서 신철원공영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시외버스 이용. 삼부연 폭포는 용화터널 직전에 있다. 북한 노동당 강원도당사로 쓰이던 노동당사 건물은 남북 양쪽을 오갔던 철원의 역사를 보여준다. 고석정에서 통통배를 타고 한탄강 절경을 본다. 010-6268-6837, 010-5364-9417. 운행을 쉬는 날도 있으니 미리 확인한다.
'철원 막국수'의 편육·빈대떡과 막국수.
☞ 철원군청 인근 철원막국수는 ‘60년 전통’이라고 간판을 내걸었다. 잘 삶은 편육(중 1만6000원, 대 2만2000원)은 비계 부분의 식감이 쫄깃하다. 주문하면 바로 부쳐내는 빈대떡(8000원)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물·비빔 막국수 6500원. (033)452-2589
<출처> 조선일보 / 2016.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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