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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수상 및 후보시

2016.12 월간 See 신인상 당선작 : 전단지 등 5편 / 이심웅

by 혜강(惠江) 2017. 2. 2.


<2016.12 월간 See 신인상 당선작>




전단지 등 5

이심웅

함께 일하실 분을 모십니다

미싱사 ○명

시다 ○명

실밥 따실 분, 초보자 환영

한적한 골목

전봇대 전단지에서

지하공장의 먼지가 부옇게 피어오른다

돋보기를 쓰고 쪽가위를 쥔 주름진 손

스웨터 한 뭉치를 껴안고 실밥을 따고 있다

평생 납기일을 맞추느라 페달을 밟으며 늙어가는 여자와

종일 다리미를 밀며 부어오른 다리를 만지는 사람도 보인다

한 번도 그 공장을 본 적이 없는 전봇대는

어서 오라고 내게 손을 내민다

저녁

어머니는 백수白壽를 다 누리고 가셨다

저녁밥 한 그릇 다 드시고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으셨다

평생 촌부로 지낸 어머니

콩밭에 엎드린 굽은 허리와

거친 손마디로 열 남매를 대처에 심으셨다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노을을 이고 돌아와

분꽃이 피는 마당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까맣게 꽃씨가 익어가듯

하나둘 자식들이 여물어가고

열 남매 두레상에 둘러앉으면

볕에 그을린 어머니, 모처럼 분꽃처럼 환했다

모두 잠든 시간

밤늦도록 호롱불이 꺼지지 않았다

자식들은 아무도

어머니의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저녁과 피붙이처럼 지내시더니

어느 날 저녁과 손잡고 떠나셨다

 

갑을의 생존방식

 

甲은 권리를 내세우며

乙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乙이 된 물과 쌀

그들의 선조가 그랬던 것처럼

오랜 기간 속박을 풀지 못했다

밀폐된 공간의 일 초는 천년

압력솥의 음모가 시작되었다

증기가 새지 않도록 구멍을 막고

무거운 뚜껑으로 압박을 가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숨이 막혀도 온몸으로 중심을 잡는 乙

甲이 끓는점을 120도까지 올리자

참을 수 없다는 듯

세차게 뚜껑을 흔들며 맞서는 乙

뿔뿔이 흩어질까

서로를 붙잡고 한 덩어리로

결과를 기다렸다

소리를 내지르며 밀어붙이는 힘에

슬며시 한발 물러서는 甲

火를 줄이고 온도를 낮추니

팽팽한 긴장이 느슨해지고

품었던 화가 조금씩 사그라진다

이제 솥은 물과 쌀을 품고

한 몸이 되어간다

 

 

중고 부품 상가

 

상점마다 자동차 부품을 수북이 쌓아놓은

장한평

 

어느 날

멈춰버린 저 많은 엔진은

누구의 심장이었을까

사고로 폐차장으로 끌려가던 차들

이곳에 장기를 기증하고

누군가의 몸에 이식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

조물주가 나타나

코에 숨을 불어넣는다면

어떤 장관이 펼쳐질까

 

생의 종착역,

재생과 부활의 순서를 꿈꾸는 장기들

오가는 희망을 붙잡고 따라나선다

 

투석을 하며 신장 하나로 버텨온 친구

그의 핏기 없는 얼굴이 눈에 어른거린다

 

 

삐걱거리는 침대

 

 

이웃집 정우네 부모 매일 서울로 출퇴근한다

정우도 강남으로 등교한다

 

2년마다 하는 이사

가구만 부서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끈끈한 관계도 다 무너진다

전세 값이 오를 때마다 학교는 점점 멀어지고

지쳐가는 다리

온 식구가 주말이 아니면 만날 수가 없다

 

침대는 네 다리의 균형으로 지탱한다

그 중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주저앉는다

A시는 특별시의 한 개 다리가 되어 살아간다 그러나

A시는 무게를 지탱할 수 없다

 

베드타운

위성도시는 대도시를 먹이고, 재워주는 침대다

이사 온 첫날

피곤한 몸을 끌고 잠을 청하지만

균형을 잃고 삐걱거리는 침대는

편안한 잠을 재울 기력이 없다

 

당선소감

 

  처음 시라는 말을 만든 이의 마음이 새삼 느껴집니다.

 

  책상 위에 백지 한 장을 올려놓았습니다. 남은 생애를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차려놓은 밥상에 어떤 숟가락을 올려놓을까. 그동안 주머니 속에 넣고 만지작거리던 것을 이제 꺼내놓고 하나하나 살핍니다.

  뒤늦게 용기를 내어 시를 쓰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것을 반추해보는 기쁨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에 마음이 설렙니다.

 

  저녁노을에 숲이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저녁을 쓰고 싶습니다.

 

  밭에 씨를 뿌려주신 정용화 선생님, 친구 전소영 시인님, 특별히 닫힌 시의 문을 열어주신 마경덕 선생님과 기쁨을 나누려 합니다. 그리고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시인이라는 선물을 제게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심웅 시인

 

1952년생

전남 완도군 고금면 출생

건국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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