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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및 정보/- 발칸반도

세르비아의 칼레메그단 요새

by 혜강(惠江) 2016. 4. 25.

발칸여행(03) 

 

세르비아의 칼레메그단 요새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칼레메그단 요새

 

 

글·사진 남상학

 

 

 

 

 

 

  사르보나 정교회 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베오그라드 시의 상징물인 칼레메그단 요새가 있다. 사바강(江)과 도나우강의 합류지점인 스타리그라드(Stari Grad)의 암벽 높이 125.5m 지대에 있다. 터키어로 ‘칼레’는 요새, ‘메그단’은 전장(戰場)‘을 뜻한다. ‘전쟁터’란 뜻을 가진 칼레메그단 요새는 로마 시대의 카스트룸이 세워졌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에는 BC 3세기에 켈트족이 최초로 정착하였고, 이후 지정학적 중요성에 의해 1세기 로마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요새나 성이 위치한 요충지였다. 

 

  현재 남아 있는 요새는 많은 부분이 1740년대에 세워졌으나 그 뼈대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간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는 동안 방치되었다가 수리되기도 했으나, 오늘날의 칼라메그단 요새는 오랫동안 침략을 받은 베오그라드의 역사와 나토의 폭격에도 여전히 온전한 모습을 유지한 채 자랑스러운 상징으로 남아 있다. 요새의 벽 모든 곳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는 전쟁에서 시달린 베오그라드의 과거를 보여준다. 

 

 

 

 

 

 

 

 

   칼레메그단 성곽은 외성과 내성으로 되어 있어서 두 개의 성문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 중세시대에 건축된 성문으로 지금까지 잘 보존된 '진단 카피야'와 15세기 건축의 '데스포토바 카피야'(전제군주의 성문)을 통과해서 성내로 들어갈 수 있다. 칼레메그단 요새 성곽에 올라서면 성곽 아래로 사바 강과 그 유명한 유럽의 젖줄이라 하는 다뉴브 강이 눈에 들어온다.

 

 

 

 

 

 

 

    공원 안에는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절인 535년경 지어진 요새 등 로마 시대의 요새 흔적과 함께 진단문(Gate Zindan), 산책로, 동물원, 군사박물관, 승리자의 탑(또는 빅토르 동상), 투쟁의 분수, 모스크,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에 대한 감사기념비, 예술가들의 흉상 등이 있다.

 

 

 

 

 

 

 

  꽃밭에 말을 탄 동상이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프랑스에게’라 적혀 있다. 제1차 대전에서 프랑스가 보여준 군사협력과 우정에 감사하여 1930년대에 세운「프랑스에 대한 감사 기념탑」였다.

 

 

 

 

 

 

 

    도나우(독일, 오스트리아), 두나(헝가리), 두나브(세르비아), 두나레(루마니아) 등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양한 다뉴브 강은 독일 남부에서 발원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적시고 여기까지 1,500km 넘게 흘러왔다. 이제 강은 남동쪽으로 흘러 루마니아를 적신 후 흑해 품에 안긴다. 

 

 

 

 

 

 

 

  칼레메스단 요새 안에는 군사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내에는 세르비아의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무기 등을 전시해 놓았는데, 수리 관계로 내부는 관람하지 못하고 외부에 전시해 놓은 탱크와 대포 등을 구경하였다. 

 

 

 

 

 

   칼레메그단 요새는 현재 공원으로 조성되어 개방하면서부터 베오그라드의 주요 관광 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복잡한 역사를 가진 만큼 칼레메그단 요새는 많은 지배자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혹독한 전쟁을 치른 베오그라드를 떠나면서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전쟁의 개념과 정의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그 견해를 달리하지만, 그 특징을 간추린다면,

 

 ① 전쟁은 국가의 존망과 생사의 문제이다.

 ② 패자는 승자의 의지 앞에 굴욕적인 굴복을 당한다.

 ③ 전쟁은 약속이나 계약에 의해서 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고자 하는 자의 의지에 의하여 시작된다.

 ④ 민족이나 국가 사이의 분쟁은 조정기관에 의해서 해결된 일은 거의 없었고, 유일한 해결수단으로 전쟁을 구사해 왔다.

 ⑤ 전쟁은 지금까지 인류 생존의 기본 요소가 되어 왔고, 또 인간의 천성이 변하지 않는 한 그 양상을 달리하면서 계속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온 인류는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한번 전쟁이 일어나면 엄청난 인명과 재산과 물적 피해를 감수해야 하고, 또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상처는 측량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한 문명의 위대한 유산이 소실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세르비아인 역시 이런 고통의 역사를 살아온 것이다.

 

  베오그라드 관광을 마친 우리는 세르비아 국경을 넘어 루마니아로 향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루마니아 서부 평원을 지나 분지 도시 하테그에 도착, 페르디난드 호텔( HOTEL FERDINAND)에 여장을 풀었다. 인천공항에서 세르비아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피곤한 터에 바로 첫날 관광을 하느라 힘들었던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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