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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 및 정보/- 충청북도

괴산 산막이 옛길, 옛길 걸으며 괴산댐의 수려한 풍광 감상

by 혜강(惠江) 2015. 3. 17.


괴산 산막이옛길


괴산 댐의 수려한 풍광을 감상하며 걷는 옛길

(시작·끝 :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463↔칠성면 사은리 216-1) 

 

 

 

·사진 남상학

 

 

  

 

        

 

 


   산고수청(山高水淸) 의 고을 충북 괴산은 사계절이 아름다운 자연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뻗어 내리면서 빚어놓은 괴산의 명산들은 산세가 수려하고, 기기묘묘한 계곡들을 품고 있다. 선유구곡, 화양계곡, 쌍곡구곡, 갈은구곡 등은 어느 곳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어 예부터 자연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 괴산에 2010년 산막이옛길이 조성되면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괴산수력발전소를 끼고 도는 괴산 산막이 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오지 중의 오지로 평가되는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연결된 총 길이 4㎞의 옛길로서 흔적처럼 남아있는 옛길에 덧그림을 그리듯 그대로 복원된 산책로이다.

 

 괴산댐 호수와 옛길을 따라 펼쳐지는 산과 물, 숲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은 괴산의 백미로 꼽을 수 있는 곳이다. 옛길 구간 대부분을 환경공법으로 나무데크로 만든 것은 환경훼손을 최소화하고 살아있는 자연미를 그대로 보여주고자 함이었다. 가파른 경사면에는 나무데크 계단을 오르게 하고, 아름다운 호수의 정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세웠다. 걷는 데는 편도 1시간, 되돌아 나오려면 2시간이 걸린다.


산으로 막힌 마을을 잇는 산막이옛길

 

 

 

      

 

 

 

  산막이옛길의 ‘산막이’는 산이 장막처럼 둘러싸고 있다는 뜻에서 얻은 지명이다. 산으로 막힌 마을로 불리는 산막이마을은 달천을 가로질러 건너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오지 중 오지였다. 산막이 마을 주민은 2010년 이 길이 처음 조성될 때 3가구만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산에서 채취한 버섯, 나물, 약초 등을 강 건너 읍내 장에 내다 파는 것이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다.   하지만 댐이 건설되면서 물길마저 사라졌고, 마을은 고립되어 더욱더 오지가 되었다. 그래서 태어난 길이 지금의 산막이옛길이다.  바위들이 둘러친 깊은 호수와 위험천만한 벼랑이 버티고 서 있는 굽이굽이 위태로운 길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오랜동안 깊숙한 오지로 단절되어 왔던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 만든 길이다.

 

 

  이 산막이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랑마을에서 산막이마을을 이어주던 험하고 호젓한 10리 옛길로서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던 길이지만,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이 길을 아름답게 정비하여 호수와 자연이 어울어진 길로 닦아서 산막이옛길을 세상에 소개하자 지난해에만 140만 명이 찾았다고 하니 산막이옛길이 어느덧 명품 길의 반열에 올랐다.

 

 

 

괴산호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아름다운 길 

 

      

 


 
  주차장에서 괴산호의 풍경을 만나기까지는 아기자기한 오르막길이 반복된다. 소나무가 양쪽으로 늘어선 길을 따라 농특산물 지정 판매장을 지나 가파른 길을 걸어 언덕을 오르면 관광안내소가 있다. 관광안내소 주변에는 산막이옛길 안내도와 길 건너에 '사계절이 아름다운 산막이옛길' 조성 내력을 새긴 돌비가 서 있다.

 

  본격적인 산막이옛길 산책은 내리막 길로부터 시작된다. 내리막 길을 내려서면 아직 얼음이 녹지않은 호수와 차돌바위나루에 발이 묶인 배들이 보이는 차돌바위나루를 옆에 두고 소나무 숲으로 오르는 길에는 연리지, 고인돌 쉼터가 있다.

 

 

 

 

  연리지를 보고 있으려니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가 문득 생각난다.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읊은 장한가에는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는 글귀가 있다.

 

 

   ‘연리(連理)’는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으로, 처음에는 지극한 효심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훗날 이 말은 남녀 간의 사랑 혹은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연리지 옆에 고인돌 쉼터가 있는 것은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단길을 따라 오르는 소나무동산엔 40년 수령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구불구불 뻗은 소나무와 단정하게 쌓은 돌담길이 제법 운치 있어 오르는 길이 힘든 줄 모른다. 언덕 정상에 이르면 비로소 괴산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괴산댐은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달천을 가로막아 건설한 댐식 발전소다.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전력시설을 재정비하고 복구하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 기술로 건설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쉬면서 감상할 수 있도록 여러 시인들의 작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유명 시인의 작품들은 산막이옛길을 가는 동안 중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호수를 굽어보며 한숨 돌리고 나면 흙길과 나무데크를 따라 완만한 길이 이어져 발걸음이 제법 경쾌해진다. 소나무 숲 속에 가설한 출렁다리는 산막이옛길의 최고 명소 중 하나다. 소나무 숲 사이로 출렁다리를 연결해 삼림욕과 함께 재미를 더했다.   

 

      

 

 


  소나무 출렁다리를 지나면 산막이옛길에 재미를 더하는 다양한 볼거리가 이어진다. 지금은 연못이지만 예부터 벼를 재배했던 논으로 빗물에 의존해 모를 심었다는 연화담을 비롯해 노적봉, 성재봉, 옥녀봉, 군자산 등이 겹겹이 보이는 망세루가 가장 먼저 반긴다. 1968년까지 실제로 호랑이가 살았다고 전하는 호랑이굴 앞에는 잘 생긴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린 채 지나는 여행객들을 노려보고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장 좋아하는 포토존이기도 하다.  

 

 

      

 

 

  야생동물들이 목을 축였던 노루샘, 매의 형상을 한 매바위, 여우비를 피해 잠시 쉬어가던 여우비바위굴, 앉은뱅이가 약수를 마시고 나았다는 앉은뱅이약수, 골짜기를 타고 시원한 바람이 내려오는 얼음바람골이 차례로 이어지고, 산막이옛길의 가장 아름다운 쉼터인 호수전망대가 지척이다.

 

마흔고개 넘어 괴산호 선상유람까지



  호수전망대를 지나면 또 한 차례 장관이 펼쳐지는 포인트를 만난다. 괴음정과 고공전망대다. 특히 40m 벼랑 위에 설치된 고공전망대는 바닥에 강화유리를 설치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다만, 지금은 많이 닳아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쉽다. 마흔고개는 산막이옛길에서 가장 험난한 구간이다. 마흔고개를 올라서면 다래숲동굴과 진달래동산을 지나 산막이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산막이마을은 몇 가구 안 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집들은 모두 새롭게 단장했다. 마을 입구간판에는 펜션, 식당 등을 안내하는 문구들로 가득차 있다. 산막이옛길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묵어갈 수 있는 집들과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들어섰다. 이 마을에서 산막이옛길 짧은 여정이 끝난다.   마을 입구에는 선착장도 있다. 우리 일행은 이 오지에 예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마을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마을에 한켠에 울타리를 두른 옛 기와집이 예사롭지 않아 발걸음을 옮기니,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의 적소 수월정(水月亭)이다. 본래는 마을 아래쪽에 있던 것을 댐 건설로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한다. 

 

  노수신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조광조의 제자인 학자 이연경(李延慶)의 문하생이자 그의 사위였다. 퇴계 이황과 친분이 있었으며, 율곡 이이와도 친하게 지냈다. 그는 29세에 장원급제하여 31세에 을사사화의 여파로 파직되고 33세에 순천으로 유배되었고, 다시 양재동 벽서사건으로 진도로 유배되어 53세에 홍문관 교리로 등용될 때까지 청춘을 오로지 시와 학문을 닦으며 죄인으로만 살아야 했다. 퇴계 이 황과 사상논쟁을 하며 서신을 교환했던 노수신은 주자학과 양명학의 대가였으며 시인이었다. 그 후 노수신은 1565년 충청도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로 이배되어 적소에 세워진 것이 수월정이다.  

 

 

 

      

 

 

   그는 수월정에서 흐르는 물과 달을 벗삼아 유배의 설움을 달랬을 것이다. 1567년(선조 즉위년) 10월 12일 방면되어 홍문관 교리로 다시 등용되었다. 무려 22년 만인 53세에 다시 벼슬자리에 오른 것이다. 이 황, 기대승 등과 주자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놓고 논쟁을 벌일 정도로 학문적 깊이가 도도했던 노수신은 늦은 나이에 다시 벼슬을 시작했지만 대사간, 부제학, 이조판서, 대제학을 거쳐 승승장구했다.

 

  6년만인 1573년 우의정으로 정승반열에 들어섰고, 1578년 좌의정을 거쳐 1585년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영의정에 올랐다. 그리고 1588년 영의정을 사임하고 영중추부사가 됐다. 74세의 노수신은 이듬해 정여립의 모반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파직돼 1590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수월정을 둘러보고 목을 축일 겸 마을의 ‘산막이산장’(043-832-5553)에 들어가 산막이마을의 내력을 들을 수 있었다.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주인 노광영 씨가 명함을 건네며 노수신의 후손이라고 한다. 후손으로서 선조의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온 그의 삶이 존경스러워 보였다.  

 

 

      

      

 

 

 

   잠시 쉬었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왔다. 선착장에서 편도 5,000원만 내면 배를 타고 산막이옛길 입구인 차돌바위선착장으로 돌아 나오면서 선상에서 새로운 풍경들, 하늘 위로 펼쳐지는 삼성봉, 천장봉, 등잔봉, 국사봉 등을 잇는 둥글둥글한 산세와 벼랑을 따라 이어진 산막이옛길의 고공전망대, 괴음정, 호수전망대 등의 아슬아슬한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을 터인데 댐의 물이 얼어붙은 겨울이어서 무척 아쉽다. 

 

  왕복 2시간 자연을 감상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으로 늘어선 농특산물 지정 판매장의 한 아주머니가 소금장을 찍은 표고버섯을 먹어보라고 한다. 진한 버섯 향과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산막이옛길 주변 농가에서 직접 생산한 농특산물만 판매할 수 있는 판매소는 모두 24곳, 장터 형태로 문을 연다. 표고버섯, 찰옥수수 등 이곳을 대표하는 농특산물을 판매한다.


 

* 주변 음식점

 

얼음골봄 : 지칭개약초오리백숙 괴산군 감물면 충민로 1085 / 043-833-9117
호산죽염된장(돼지된장양념) 괴산군 청안면 질마로 987 / 043-832-1388

산막이원조두부마을(자연산버섯전골) 괴산군 칠성면 산막이옛길 80-8,043-834-322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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