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영국사(寧國寺) 은행나무
이 땅이 고난을 겪을 때 나는 속울음, 그러나 근심하지 마라
영동 = 글 이한수 기자 / 사진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 나무가 뿌리 내린 때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략 천년 전이다. 1016년 무렵이라 하자. 고려 현종 7년이다. 해마다 노랗게 잎을 물들이고 다시 파란 잎을 돋우기 천년. 한자리에서 내 몫을 다하며 긴 세월을 지켜왔을 따름이다.
천년을 굵어 왔다. 충북 영동 땅이다. 내가 뿌리 내린 때를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대략 천년 전이다. 1016년 무렵이라 하자. 고려 현종 7년이다. 이해에도 고난은 이어졌다. 거란이 이 땅을 침범했다. 북방에서 요나라를 일으킨 세력이다. 우리 군사 수만 명이 죽었다. 5년 전엔 거란 침입에 쫓겨 임금이 개경을 떠나 나주로 몸을 피해야 했다. 내 앞에 있는 절집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 했으니 흐린 나라 맑아지기를 얼마나 고대했을 것인가.
나라 걱정은 내력이다. 내 나이 삼백쉰 살 때인 1361년 홍건적이 이 나라를 삼키려 했다. 역사는 이들을 도적[賊]이라 낮춰 부르나 실상은 원나라를 떨게 했던 강력한 세력이었다. 나라는 수도를 빼앗기고 임금(공민왕) 일행은 안동으로 피신했다. 그때 나라가 무너졌다면 당신들은 지금 남의 말을 쓰고 있을 것이다. 첩첩산중에 있는 내 앞을 임금은 지나갔다. 절 이름을 영국사(寧國寺)라 고쳐 나라[國]의 안녕[寧]을 기원했다. 지금도 그 이름으로 불린다.
이 땅이 고난을 겪을 때 나는 속 울음을 삼켰으나 누구는 내가 위기 때마다 소리 내 운다고 했다. 어떤 이는 내게 와서 힘겨운 고통을 토로하고 어떤 이는 내게 와서 고달픈 잠을 읽고 가나 나는 삼백예순 날 한자리에서 내 몫을 다하며 긴 세월을 지켜왔을 따름이다. 해마다 노랗게 잎을 물들이고 다시 파란 잎을 돋우기 천년. 그러니 근심하지 마라. 숱한 내우(內憂)와 외환(外患)에도 나는 천년을 굵어 왔다.
천년 세월 견딘… 그렇게 또 금빛으로
연초록 빛깔이 아직 남아 있으나 이번 주말쯤엔 완연히 노란 잎으로 뒤덮일 것이다…높이 31m, 둘레 11m 충북 영동 영국사(寧國寺) 은행나무. 먼발치에서 보니 뒤편 천태산 단풍과 어울리며 홀로 황금빛을 내는 천 은행나무가 더 돋보였다.
천년 나무는 제 몸을 온통 금빛으로 물들이는 중이었다. 긴 세월 한 자리에 뿌리 내려 높이 31m, 둘레 11m로 몸집을 불렸다. 연초록 빛깔이 아직 남아 있으나 이번 주말쯤엔 완연히 노란 잎으로 뒤덮일 것이다. 가까이서 위를 올려다보니 가지 끝이 아득하다. 몸통 일부에 벌어진 틈새를 시멘트로 메우는 시술을 받았으나 천년 지난 지금도 어김없이 무수한 열매를 떨구고 있다. 충북 영동 영국사(寧國寺) 은행나무다. 어떤 이는 자식을 보게 해달라 빌러 오고, 또 어떤 이는 마음의 평화를 기원하며 두 손을 모은다.
▲천년을 굵어 온 은행나무다. 충북 영동 영국사 앞이다. 제 몸을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온갖 고난을 견디며 한자리에서 긴 세월을 지키고 서 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천년 나무는 2m쯤 높이에서 동·서·남·북 사방(四方)으로 가지를 뻗었다. 동서 방향 가지 길이가 25m, 남북 방향 가지 길이는 22m라고 한다. 서쪽으로 뻗은 가지 하나는 늘어져 땅에 닿았는데 그곳에서 다시 새 줄기를 하늘로 세웠다. 천년 나무의 가지와 새 나무의 줄기가 서로 붙은 연리지(連理枝) 형상이다. 천년 나뭇가지에 붙어 있으나 별도로 뿌리를 땅에 박은 이 은행나무를 '아들 나무'라고 부른다. 아들 나무 높이는 5m.
천년 나무가 자리한 절집 영국사란 이름에는 나라[國]의 안녕[寧]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1361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에게 쫓겨 수도 개경을 떠나 안동으로 몸을 피하면서 이곳에 들렀을 때 이름을 붙였다 한다. 당초 이름은 국청사(國淸寺)였다. 이 역시 나라가 맑아지기를 바라는 이름이었으니 이래저래 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절집이었다. 창건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신라 법흥왕 14년(527년)까지 시기가 올라간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때 세웠다. 절은 아담하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작은 기와집이다. 하지만 절집 뒤로 천태산 흰 바위 절벽이 배경이 되어 장엄한 미감(美感)을 드리운다.
* 영국사 옆 망탑봉에 있는 삼층석탑. 이곳에서 보면 산 아래가 아득히 보인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영국사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부리고 고즈넉한 산길을 걷는다. 깊은 산중이다. 계곡물이 너럭바위를 타고 넘는다. '삼신할미'라고 이름한 바위를 지난다. 20분쯤 걸었을까. 절을 알리는 일주문이 나온다. 절집은 산 중턱 분지에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 길로 들어서자 노란빛 천년나무가 눈앞을 막아선다. 먼발치에서 보니 뒤편 천태산 단풍과 어울리며 홀로 황금빛을 내는 천년 은행나무가 더 돋보였다. 나무 옆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절집 마당이다.
영국사와 은행나무를 다 둘러본 후에는 다시 일주문 쪽으로 걸어 왼쪽 길로 간다. 삼단 폭포 정상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조금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망탑봉이라는 봉우리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250m 거리에 지나지 않으니 크게 힘들지 않다. 정상에 석탑이 우뚝 서 있다. 자연 바위를 기단 삼아 삼층탑을 세웠다. '망탑'이라 한다. 탑 앞에 서니 저만치 아래에 차를 세워둔 주차장이 아득하게 보였다. 망탑 옆에는 입 벌린 상어 모양 바위가 위태롭게 놓여 있다. '상어 흔들바위'다. 한 사람이 밀어도 여러 사람이 밀어도 조금만 흔들린다.
* 강물 위에 놓인 다리 봉곡교에서 강선대 정자를 바라본다. 산맥을 돌아 흐르는 금강 물줄기가 유유하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영국사는 '양산 팔경(八景)' 중 제1경. 영동 양산면에 절경 8곳이 있다. 나머지 7경은 금강 물줄기 휘돌아 나가는 곳에 우르르 모여 있다. 다 가지 않는다 해도 최고 절경으로 불리는 제2경 '강선대(降仙臺)'는 꼭 들른다. 아득한 옛날 금강 천변 풍경에 반한 선녀가 이곳에 내려와 몸을 씻었다 한다. 이야기는 믿을 수 없으나 풍경은 믿고 볼만하다. 가을 달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하여 '선대추월(仙臺秋月)'이란 성어(成語)가 남았다. 강물 위에 놓인 다리 봉곡교에서 강선대 정자를 바라본다. 산맥을 돌아 흐르는 금강 물줄기가 유유하다.
충북 영동은 경계의 땅이다. 서쪽은 충남 금산, 동쪽은 경북 김천, 남쪽은 전북 무주, 북쪽은 경북 상주에 닿아 있다. 성격 까칠했던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영동의 지세(地勢)를 극찬했다. "영동은 속리산과 덕유산 사이에 있다. 동쪽에는 추풍령이 있는데 덕유산에서 나온 맥이 지나가면서 정기(精氣)를 멈춘 곳이다. 산이 많지만 심하게 거칠거나 웅장하지 않고, 또 몹시 낮거나 평평하지 않다. 바위와 봉우리가 함께 윤택하고 맑은 기운을 띤다. 시내가 맑고 깨끗하여 사랑스럽다."
영국사 은행나무가 천년의 모진 세월 풍파 견디고 이곳에 자리한 까닭도 맑은 정기 지닌 땅의 기운 덕분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 서산 해가 강물을 붉게 물들였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이 멀다.
서울 기준 자동차로 영동 영국사까지 3시간 30분 걸린다. 서울고속터미널에서 황간시외버스정류장까지 2시간 30분, 영동역(경부선)행 버스로 갈아타고 45분, 영동역에서 명덕(학산)행 버스를 타고 누교리 정류장 하 차까지 1시간 30분. 다시 영국사까지 걸어서 1시간쯤 걸린다.
강선대 건너편 식당 소풍(043-744-3555). 통나무집이 아담하다. 한방 토종닭 4만원, 오리 주물럭(3인 이상) 1인분 1만원. 닭 백숙은 1시간 전 예약. 매실 장아찌, 무말랭이 무침 같은 밑반찬이 정갈하다. 반찬만으로 밥 한 그릇을 비웠다.
<출처> 2016.11.03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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